자유게시판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여행기(1편) (3)

by bawooko   2017-04-17 6:50 pm

 

Prologue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한국에 돌아가면 당분간 못 뵙게
 되니 한번 더 효도하는 의미에서 딸 내외가 다시 여행을 모시고 싶다고 하여 지난
4월 10일(월)~15일(금)까지 딸 가족과 함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다녀오게 되었다.

 

솔직히 이 두 나라에 대해서라면 동서 냉전이 끝난 후에 동구권에서 분리 독립되어 탄생
한 나라라는 정도만 알지, 정확하게 어디에 위치한 나라이며 어떻게 탄생한 어떤 나라인
지 예비 지식이 거의 없어서, 여행을 가더라도 알고나 가자는 의미에서 출발 전에 찾아
보았다. 비엔나 시내를 달리다 보면, 부다페스트(항거리 수도)나 프라하(체코의 수도)로
가는 이웃 나라에 대한 국제 이정표(방향표지판)를 보게 되는데, 이럴 때마다 내가 유럽의
국제 도시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곤 하지만, 금번 여행국인 두 나라에 대해서는 솔직히
문외한이었다.


 

발칸 반도

 

 

남부 유럽에는 지중해를 끼고 장화 모양의 이태리 반도와 그 오른 쪽에 역사 책에서도
많이 들어본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가 있다. 아시아 쪽으로 터키와 이어져 있는 발칸
반도에는 냉전 시대 동구권 대부분 사회주의 국가들과 그리스가 자리 잡고 있다.

 

발칸 반도가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이유는,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오스트리아(오지리)
의 영토에 속하여 통치하에 있었던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지리의 황태자가 세르비아 계 청
년에게 암살당함으로써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데서 유래됐음은 익히 알고 계실 것
이다. 그 후에도 그리스와 터키의 충돌, 1990년대 동구권의 와해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해
체 및 그에 속한 여러 민족국가들이 분리 독립과정에서 우리들 귀에도 익숙한 코소보 사
태와 같은 여러 민족간의 반복된 내전 등을 통하여 발칸반도가 유럽의 화약고 임이 새삼
입증되었으며 그 갈등은 현재는 소강상태이지만 잠재적 진행형이다.

 

 

유고슬라비아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군주국가이었으나 종전 후부터 동구
권이 해체되는 1990년까지 구 소련의 위성국가 중의 하나가 되어 티토(2차 대전 중 항
(
抗) 독일 독립투사였음) 대통령에 의하여 통치되다가 이제는 여러 나라로 분리된 나라가
구(
舊)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수도 베오그라드)이다

 

 

지중해 중에서 이태리 반도와 발칸 반도 사이 해협에 있는 바다를 아드리아 해() 라고 하는

데 유고슬라비아는 이 바다를 끼고 발칸반도에 위치한 나라였다. 냉전 시기 동구권에 속하면서도 

바르샤바 조약국의 일원이 되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독자 노선을 걸어온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은 다음과 같은 특성때문에 1,2,3,4,5,6,7 공화국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1개의 연방국가, 

2개의 문자 (로마자와 키릴 문자), 

3개의 종교 (로마 가톨릭교, 그리스 정교, 이슬람교), 

4개의 언어 (세르보-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 마케도니아어, 알바니아어), 

5개의 민족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마케도니아인, 알바니아인) ,

6개의 연방국(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마케도니아)
7개의 접경국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알바니아)

 

 

 

 

 

 

5개 민족, 4개 언어를 사용하는 이질적 부족 집단이 연방행태로 통합된 유고슬라비아는,
원래부터 민족간의 갈등이 심했으나 티토라는 강력한 지도자의 리더쉽으로 단일 국가로
존재하여 왔으나 1980년 티토 사망 후부터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소
련 연방이 해체되자 소련 연방 자체에서도 우크라이나와 같은 크고 작은 이민족들이 소련
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을 선포하게 되는 데 유고슬라비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고 연방에
서 각기 다른 민족들이 분리 독립을 시도할 기미가 보이자 유고슬라비아 연방 국가의 지
도층 요직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던 세르비아 계는 연방의 와해를 반대하고 여러 부족 국가들의

분리 독립을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했다.

 

 

연방의 와해 및 분리 독립 전쟁

 

 

분리독립을 제일 먼저 시도한 국민은, 1991년 슬로베니아 민족이었으며 슬로베니아가 유
고 연방에서 이탈, 분리 독립을 주창하자 세르비아를 주축으로 이뤄진 유고 연방군(인민
군 : 북한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의 정규군을 통상 인민군이라고 부른다)이 슬로베니아
영토로 진입하여 슬로베니아 군(슬로베니아 민족으로 이뤄진 정규군 성격의 지역 
방위군)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

 

유럽의 안정을 바라는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유고의 분리 독립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에 유고 연방군의 슬로베니아 침공을 유고 국내 문제(內戰)로 보고 나토 군의 개입은
커녕 수수방관만 하였다. 세르비아 인들의 괄시와 핍박을 평소 많이 받으면서 언젠가 독
립에 대비하여 국력 배양에 암암리 힘써온 슬로베니아인들은 연방군이 침공하자 불타는
애국심으로 항전을 하여 격퇴에 성공하고 유고 연방(세르비아)과의 협상을 통하여 독립국
지위를 확보하게 되고 슬로베니아라는 독립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그 후에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여러 부족 국가들이 하나 둘 유고 연방에서 탈퇴 및 독립국 지위를 확보하려고 할
때마다 분리 독립을 반대하는 구(
) 유고 인민군(세르비아)과 해당 지역 방위군간에 전투가

벌어 지는 데 그 횟수가 7 차례에 이르게 된다.

 

 

도살자의 인종 청소와 미국의 개입

 

 

이러한 내분이자 독립 전쟁 중의 하나이며 하이라이트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코소보 사태이다.

슬로베니아에 이어서 크로아티아 등이 연이어 유고연방에서 탈퇴하여 분리 독립에 성공하자, 독립

저지 세력이자 유고 연방을 이루는 핵심 세력인 세르비아 계는 마지막 남은 유고 연방의 코소보

지역 주민들인 알바니아 계 국민들을 더욱 더 탄압하였다.  종족이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 알바니아 계 코소보 주민들 역시 분리 독립을 시도하는데  1989년도에 유고 연방(세르비아)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등극한 밀로셰비치는 알바니아 계 주민들을 몰살하는 소위 인종 청소를 단행

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수십만 명의 알바니아 계 코소보 인들이 살해되었으며, 이 인종 청소로

밀로셰비치는 발칸의 도살자라는 소름 끼치는 악명을 얻게 된다. 

그 때까지 유고 사태를 방관하던 서방세계였지만, 국제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발칸의 도
살자인 밀로셰비의 인종 청소만은 도저히 수수방관할 수 없다고 보고 NATO의  이름하에
유럽의 일원이라는 명분으로 코소보 내전에 개입하게 된다. 세르비아라는 조그만 나라가
미국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고 결국 미국의 폭격에 견디다 못한 세르비아는 유엔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여서 구 유고 연방의 해체에 동의를 하고 발칸의 도살자 밀로셰비치는 체
포되어 전범 재판에 회부되지만 재판 도중 감옥에서 옥사하여 그에 대한 형은 집행되지
못하였다.  유엔의 국제사법 재판소를 비롯하여  미국 등 많은 나라가 2010년에 코소보의
독립 선언을 인정하였으나 코소보에 살고 있는 세르비아 계 주민들의 반발로 세르비아는
물론이고 세르비아 편을 드는 러시아 등 일부 국가들은 코소보의 독립을 여전히 인정하
지 않고 있다. 

 

 

 

코소보 사태(전쟁)는,  전후방이 따로 없는 내전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쌍방 정규 군대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까지 무장을 하여 총력전을 펼쳤고 쌍방간의 포격과 나토 공군에 의한 공습,

코소보 지역의 세르비아 계 주민들은 침공군인 세르비아 편에 서서 자기가 사는 자치주의

코소보 방위군에 대항하고 세르비아 군은 인종 청소라는 더러운 명분으로 점령지의 국민들을 

이민족이란 이유 하나 때문에 극도의 증오심으로 비무장 남성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을 겁탈하고

잔혹하게 살해하기도 했으며, 요행히 종전 후까지 목숨을 부지한 민간인 남성들 중에 일부는

적에게 내통했다는 이유로,  게다가 전쟁 중 세르비아 군에게 강간을 당하여 임신한 자국 여성들은

적에게 정조를 판 반역자란 낙인을 찍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가차

없이 처형했기 때문에 인명 피해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라크, 아프칸 전에서 수천 회 이상 출격하여 단 한대도 격추되지 않았던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한 대가 코소보 내전에서 세르비아 군에게 격추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는 점이나,
격추된 잔해를 재빠르게 비공식 루트를 통하여 입수후 스텔스 기술을 습득하여 자국 전
투기의 스텔스 화에 성공한 중국의 약삭빠름과 용의주도함을 우리나라의 외교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부럽기도 하고 웬일인지 화가 나기도 한다.  또한 코소보 사태의 전쟁

양상이나 결말을 보게 되면, 한번도에서 또 다시 인민군이 전면전을 도발하여 남침할

경우 한국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내다볼 수 있는 강력한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7 개 소국으로 분리된 유고슬라비아 연방

 

 

결국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은, 1. 세르비아(일명 신 유고슬라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2.
슬로베니아(류블랴나)  3. 크로아티아(자그레브) 4. 보스니아 & 헤르체코비나(사라예보) 5.
몬테네그로(포드고리카)  6. 마케도니아(스코페) 7. 코소보(프리스티나) 의 일곱개의 작은
독립국가로 풍비박산이 났다.

 

 

 

 

 

위 일곱 개 나라에서, 미국은 신 유고 연방인 세르비아 최대의 적국인 반면에 나머지 6

국가에게는 세르비아로 부터의 침략을 저지시켜 준 최고의 보호국가로 간주되고 있다.

물론 나머지 6 개 국가의 최대의 적국은 세르비아 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은 사라졌지만 오늘 날에도 유고연방이란 별칭은 여전히 남아있는
데, 현재 불리는 유고 연방은 구(
) 유고슬라비아 연방과 구분하여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약칭 유고연방)으로 불리는데 이는 세르비아를 일컫는다는 점과, 20세기 말의 발칸
내전이라 함은 유고 연방의 와해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려고 한 세르비아와 연방 내 다른
민족간의 전쟁이란 점 정도를 알아두면 동유럽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르비아가 유고슬라비아의 적통을 이어가고 있음은,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를 여전히 수도로 삼고 있음에서도 알 수 있다.

 

 

 

 

한국과의 인연

 

 

 1차 세계 대전의 진앙지 사라예보가 우리의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1973년 이에리
사와 정현숙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태극 낭자들이 세계 탁수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중
국을 물리치고 여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슬로베니아를 여행 일정에 넣은 이유는, 오지리에서 크로아티아를 가려면 위 지도
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반드시 슬로베니아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었으며, 슬로베니아에서
는 1 박을 하였다. 또한 우리는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를 여행 일정에 포함시켰는데,
이 도시는 1960년대 후반에서 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영화계의 여성 트리오
남정임, 엄앵란과 더불어 활약했던 윤정희/백건우 부부(당시 파리 거주)가 현지에 거주하
던 친북 인사 이응노(동 베르린 간첩단 사건에도 연루된 바 있음) 화백의 아내 박인경의
꾐에 빠져 유고의 자그레브까지 갔으나 북한으로의 납치 직전 이를 간파한 두 사람의 기
지로 현지 주재 미 영사관으로 피신하여 미국 측의 신변 보호로 납치를 모면한 도시이기
때문에 필자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은 오로지 평양- 북경 및 평양- 모스크
바 노선에만 저들의 정기 편 항공기를 띄우고 있었으나 김정일이 한국 여 배우의 납치에
얼마나 집요하고 광적이었는지는 윤정희 부부를 싣고 갈 고려 항공 여객기를 자그레브 공
항에 대기시킨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최근에 비밀 해제된 크로아티아 당국의 정부 문서에
의하면, 당시 유고 정부는 납치가 불발로 끝난 후 미국 정부의 항의에 따라서 현지 주재 북
한 대사를 불러서 유고 영토내에서의 납치와 같은 불법행위를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표명
하고 재발 방지 약속과 사과를 요구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필자는 1960~70 년대의 국민 여배우로 불리던 최은희 납치사건이 상기 윤정희 납치 미수
사건보다 먼저 발생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으나 집 사람이 바로 잡아줘서 확인한 결과
윤정희/백건우 사건이 1977년도, 최은희 사건이 1978 년도에 발생했음을 확인했는데 지
금으로부터 39년전과 4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니 기억이 희미할 만도 했다. 여기서 우리
는 김정일이 우리 나라 여배우들을 납치할 정도로 얼마나 영화광인지 미루어 알 수 있으
며,  또한 당시 한 미모 하던 여배우 윤정희에 대한 납치가 미수에 그치자 후속 타로 최은
희 납치 사건을 벌였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 2 편에 계속 -

 

 

 

 

 

 

 

 

카테고리 : 자유게시판

댓글 남기기


글에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을 해야 합니다.

  1. 잘 읽었습니다. 유고연방 분리과정을 이해하려고 검색 몇 번 하다가 하도 복잡해서 그만둔 적이 있는데, 이렇게 요약해 주시니 좋군요. 유고연방의 분리는 민족도 상이하지만 종교의 상이점도 큰 요인이었겠지요?

    잘은 모르지만 저는 유고연방의 국민들이 “지금의 분리상태나 내전상태를 더 좋아할까? 아니면 정치적 자유는 억압되었지만 티토의 구유고연방을 더 좋아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좋은 여행을 하셔서 부럽습니다.

    2017-04-18 08:17:49

  2. 오른손잡이

    잘 읽었습니다.

    2017-04-18 09:57:26

  3.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유고연방 해체 당시 신문들의 만평이 기억나는 군요.자기 집 대문의 문패에 국가이름을 걸어놓고 사냥총으로 지키고 있는 그림이었는데.당시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설명했었죠. 복잡한 인종, 종교등등으로 이뤄진 연방이 단지 공산주의라는 허울로 묶였는데.나눠질 때의 칼부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죠.이에 대비 중국 공산주의 몰락 후의 그림도 피부름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알렉산더대왕이 전세계를 호령하던 마케도니아의 영광은 한여름 꿈처럼 사라지고.피골상접한 국가들로 분열되어 신음하고 있는 국민들.근대의 공산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30대에 불운하게 죽은 알렉산더는 유언으로 관밖으로 자신의 손을 드러내 주길 원했는데.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의미였다죠.

    2017-04-18 11: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