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보내는 편지

부농에게 재가한 ‘혁명의 어머니’ (23)

by 주성하기자   2017-03-16 10:29 am

 

김일성 회고록이 말해주지 않는 김일성 항일운동의 진실 오늘은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은 김일성의 모친인 강반석을 위대한 혁명의 어머니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사실 1920년대 후반의 강반석은 그냥 평범한 아낙에 불과했죠.

 

1926년 김형직이 병으로 죽자 남은 가족의 생계가 강반석의 어깨에 걸렸습니다.

 

아들은 셋인데, 김성주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고, 둘째 철주와 셋째 영주는 너무 어렸습니다. 여기에 평양에서 시어머니 이보익까지 김형직 간호를 위해 안도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당시는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던 시절인데, 여자들끼리 한계가 있고, 나중에 강반석의 몸까지 아파서 더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강반석은 소사하 인근 만보라는 중국인 동네에 사는 유일한 조선인인 조광준이란 부농과 재혼합니다.

 

아이 둘은 이보익이 데리고 키웠습니다. 강반석이 재혼했었다는 이야기는 아마 다들 처음 들을 겁니다.

 

하지만 안도 만보에 가면 거기 노인들은 강반석을 잘 알고 있습니다.

 

조광준이란 사람은 그냥 무우밥에 시래깃국이나 먹고 사는 정도였는데, 자기 땅도 조금 있었지만 중국인 땅도 소작 맡아서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워낙 부지런하다보니 해방이 되던 1945년 갑자기 살림이 펴서 땅을 많이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때 해방이 되면서 조광준은 지주로 몰려 맞아죽었고, 이를 목격한 사람도 많습니다.

 

조광준은 본처가 병으로 죽는 바람에 강반석과 재혼했습니다. 하지만 둘은 반 년 정도 살고 다시 헤어졌습니다.

 

강반석이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신은 얼마 살지 못할 것 같다면서 조광준을 설득해 1930년 초에 다시 시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조광준에겐 본처 아들이 있었는데, 해방 전까지 만보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맞아죽은 뒤 송강 어디로 이사 간 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조광준의 아들도 늙어 죽었을 것이고, 손자는 중국 어디에 살고 있을 건데, 자기 아버지를 강반석이란 훗어머니가 들어와 키웠다는 것을 증언해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강반석을 헐뜯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어쨌든 혁명을 하다 숨진 남편을 두었고, 또 자식들도 둘이나 독립운동에 바쳤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생활고에 힘들어하던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누구를 우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있는 그대로, 사실을 이야기하는 세상이길 원합니다.

 

김일성의 회고록엔 길림 육문중학교 때 만났던 스승 상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집에서 홍루몽, 아큐정전 등 많은 책을 읽었다고 회상했죠.

 

상월은 1950년대 중국인민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했는데 그만 모택동이 추켜세우던 작가 곽말약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사상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국 인민일보에 상월에 대한 비판 특집이 실릴 정도였죠. 그때 중국 공안부 정치부에서 상월을 조사했는데, 마침 담당국장이 김일성에게 군사지식을 배워준 스승이었습니다.

 

이 국장이 상월의 자료를 보다가 “혹시 1927년에 길림 육문중학교에서 김일성을 만났냐”라고 물었습니다.

 

상월은 김일성이란 이름을 처음 듣죠. 그러다가 나중에 제자 김성주가 북한의 김일성이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상월은 중국의 반우파 투쟁 때 얻어맞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아내까지 핍박에 못 이겨 자살을 시도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런데 제자가 이웃 북한 지도자가 됐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나와 소년 시절의 김일성 원수와의 역사적 관계’라는 회고록도 하나 쓰고, 김일성에게 자기를 도와달라고 편지도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회답을 한번도 못 받았습니다.

 

상월은 1980년경 죽었는데, 김일성은 1992년 회고록을 내면서 갑자기 그를 엄청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가 죽은 다음에야 띄워주었을까요. 자신의 과거를 잘 아는 사람들과 교류하다간 자신의 혁명역사가 조작인 게 탄로날까봐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까 상월을 조사했다던 정치보위국 국장은 유한흥이란 중국인이었습니다.

 

김일성보다 두 살이 더 많은 유한흥은 정규 군사학교를 나왔고, 1935년 동북인민혁명군이 조직될 때 2군 참모장이 됐는데, 그때 김일성은 대대 정치위원이었습니다.

 

김일성은 1932년 12월 주보중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군사지식을 배워본 적도 없으니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래서 주보중이 당시 길림자위군 2여단 3연대장이던 유한흥을 소개시켜주었습니다.

 

유한흥이 몇 년 동안 김일성을 데리고 다니면서 잘 가르쳐준 덕분에 김일성의 군사지식이 많이 늘었죠.

 

나중에 유한흥은 연안으로 가서 모택동의 최측근 경호관이 됐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뒤 공안부 제1부부장과 정치보위국 국장을 겸직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인가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했는데, 그때 모택동이 유한흥을 불렀습니다.

 

“이봐, 유 국장, 자네 김일성에게 군사를 배워주었다면서. 이번에 회포를 나누어보게” 이랬죠.

 

그래서 유한흥이 기쁜 마음으로 김일성을 영접하려 나갔는데, 김일성이 그를 보고 얼굴을 획 돌리더랍니다.

 

떠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아 유한흥은 무안을 당했다고 합니다. 회고록에도 유한흥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 생각이지만 자기를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라고 잔뜩 선전했는데 중국의 일개 보위국 국장을 아는 척했다가, 나중에 그가 “저 북조선 김일성은 내가 군사를 가르쳐준 사람”이라고 말하면 체면이 서지 않을까봐 그런 거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김일성은 자기가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언할 스승들은 철저히 생전에 무시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김일성을 의리의 화신처럼 선전하고 있으니 참 어이가 없는 일이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이 글은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내용으로 2017년 3월 10일 방송분입니다.
남한 독자들이 아닌 북한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임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의 출처인 ‘김일성평전’은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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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남기기


  1. 샘터

    김일성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우게 되네요.
    주성하 기자님 오늘도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리플작성 2017-03-16 12:17:57

  2. 강마을

    “이봐, 유 국장, 자네 김일성에게 군사를 배워주었다면서. 이번에 회포를 나누어보게”
    ========
    “배워 주었다”라는 말이 조금 이상하네요. 이북에서 쓰는 말인가요
    “가르쳐 주었다”고 하는게 바른 표현이지 않을까요.

    리플작성 2017-03-16 12:24:25

    • 동의

      북한 표준어상 남한말과 달리 배워 주었다라고 합니다.
      이 글은 북한 동포들을 위한 방송 글이고
      정확한 표현입니다.

      리플작성 2017-03-16 12:28:57

    • 주작

      우리말에 좀 납득이 안가는 표현이 있습니다.
      배워주다도 그렇지만 쌀팔다도 그렇지요.
      여기에 정확한 유래는 찾기 힘들지만 민간어원설은 좀 있습니다.
      어쨋든 배워주세요, 쌀팔았어요 등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리플작성 2017-03-16 01:29:07

  3. 감찰관

    SBS 이 뭐시기 PD 놈 말씀이 이승만이 희대의 악당이라던데 그 놈 손으로 김성주 일대기 도큐를 만들면 뭐라고 할까?

    김성주는 쪼다네…

    리플작성 2017-03-16 01:02:14

    • 아텐보로

      이승만은 희대의 악당이 아닙니다.
      하와이 시절의 이승만은 조폭 양아치였을뿐이죠.

      리플작성 2017-03-16 09:02:31

      • 감찰관

        하여간 동일한 잣대로 김성주놈을 평가하기를 앙망하나이다.

        리플작성 2017-03-16 09:16:32

        • 타발적이라는 단어

          감찰아.니가 좋아하는 달래가 자발적의 반대어가 타발적이래.에휴 병신새끼들.

          리플작성 2017-03-16 09:17:36

        • 타발적이라는 단어

          그리고 북한에서 살다가 온 북한출신인 주성하기자의 조직지도부 진단을 마음대로 바꿔서 결론내리는 새끼가 달래 이새끼란다.뭐라고 하냐하면은 정책은 서기실이 통치는 조직지도부가 한다면서 아주 결론을 내더란다. 그런거보면 달래 이새끼가 북한에서 살다가 왔다는 증거란다.

          리플작성 2017-03-16 09:20:15

      • garmin

        보았나? 근거는.

        리플작성 2017-03-18 12:47:14

        • 아텐보로

          garmin//근거?
          1. 하와이에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이승만은 한국 깜빵에 있을때 의형제를 맺었던 박용만이 초청해줘서 하와이로 갈수 있었습니다.

          2. 하와이로 간 이승만은 자신이 박사학위를 가진 것을 부녀자들에게 개신교 선교를 할때 써먹습니다.

          3. 이렇게 박사학위 가진걸로 부녀자들에게 선교한 이승만, 그 다음단계로 이 부녀자들에게 자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섬길것을 요구합니다.

          4. 그리고 이 부녀자들의 남편에게 이런점을 이용해 충성맹세를 받아내죠.

          5. 그리고 대망의 디데이, 박용만이 이끄는 국민회가 공금운용 가지고 욕먹을 짓을 하나 하자 그걸 가지고 비난에 앞장서면서 모든 국민회 공금은 자신을 거쳐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6. 이런 주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자신에게 충성맹세한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박용만 지지자들에게 백색테러를 하기 시작, 하와이 교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국민회 간부들을 활동 못하게 해놓고 자신의 측근들을 이자리에 임명합니다.

          7. 이렇게 해서 재미교포들의 투표가 아닌 폭력을 통해서 유명 한인이 된 이승만, 하지만 이런일은 이번 한번뿐이 아닙니다.

          8. 이런 이승만의 조폭양아치 같은 행태는 해방전까지 미국땅에서 계속되었죠.

          리플작성 2017-03-18 01:22:13

          • 감찰관

            니말이니? 북한 교과서에 그렇게 써있니?

            2017-03-18 01:29:14

          • 아텐보로

            출처:
            우남 이승만 연구(정병준, 역사비평사, 2006)
            재미한인의 독립운동(방선주, 1989)
            재미한인 50년사(김원용, 혜안, 2004)

            참고로 재미한인의 독립운동을 쓴 방선주 박사는 미국에서 한국내 교수들이 현대사 관련 미국의 기밀해제된 문서를 찾으려할때 도움을 주시는 분인데 그런사람이 쓴책이 북한교과서라?
            크하하하합

            2017-03-18 01:40:32

          • 아텐보로

            감찰관// 꺼낸김에 이승만이 일으킨 저 폭력사태에 대한 일본쪽 시각을 보여주는 글 하나 남깁니다.

            이승만은 문치파(文治派) 수령으로 자임하여 무단파(武斷派)의 수령인 박용만이 주관하는 무관학교를 공격하고 그 불필요를 주장하고 또 박용만이 제의한 하와이 조선인 중학교 설립계획에도 반대하여 박의 계획에 불만이 있는 자들을 규합선동하여 기부헌금 소력을 방해하고 이미 모은 2천여불은 태평양잡지 발간의 자금으로 충당할것을 (요구하여) 기부자의 동의를 얻고… 1914년 12월 태평양 잡지 초호를 발간하여 자기선전의 기관잡지로 삼았다(중략-저자 주). 당시 대한국민회 총회장 김종학은 자유교(즉 장로교 일파-저자주)신도였던 관계상 이승만 일파와는 항상 반목의 경향에 있었는데 박용만은 김의 고문격으로 일시 박의 위망(威望)이 일반 선인간에 투터웠으므로 이승만은 양자를 질투하여 이들을 함정에 빠칠(빠뜨릴) 기회를 엿보던 차 독립군단의 유지비 문제에 관하여 국민회의 기본금을 회를 거치지 않고 지출한 내막을 탐지한 이승만은 총회석상에서 이를 문제로 삼았지만 당시의 총회는 이승만의 발의를 용납하지 않고 유야무야로 얼버무렸었다.

            출처: 재미한인의 독립운동 83p

            2017-03-18 01:46:28

          • 아텐보로

            감찰관// 그리고 박용만이 국민회를 이끌던 시기에 재미교포에만 제한해서 국민회가 경찰권 행사하는것을 허가 받았는데 이승만이 일으킨 폭력사태 덕분에 그 경찰권 행사 허가가 취소되어 버립니다.

            2017-03-18 01:47:44

          • 텐프로/ 이승만이 박용만의 무관학교(?)를 왜 반대했는지 설명하시오.

            2017-03-18 01:55:02

          • 아텐보로

            찐따강// 위에 출처로 써놓은 책들 있으니 읽어보십시오.

            2017-03-18 02:34:51

  4. j1203sy

    북개 살인마왕의 진실을 말하면 문죄인이 싫어할 텐데…

    리플작성 2017-03-17 09:36:59

    • 관찰감

      그 살인마왕에게 충성편지 쓴 여자도 있다

      리플작성 2017-03-17 09:39:22

  5. 최흥선

    서구식 토지법이 제정, 집행되고 일본군을 지원하려는 일제 수탈로 농민들이 보릿고개를 경험하는 상태에서 조선인들끼리 파당을 만들고 분열하여, 마치 현재 가계 부채 원인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 시중 은행들의 (남 핑계) 방만한 운영 결과이듯이, 결국 지주가 65-70 %, 자작농이 15-20 % 가량이었는데 일제가 항복을 선언하자 ‘으쟁이, 뜨쟁이(Tom, Dick, and Harry, including Kim in this case)’들까지 혁명하겠다고 작당을 했다’, ‘그것이 사실이냐?’, 더나아가 ‘식민주의 사관이냐, 아니냐?’, 논란이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죠.

    리플작성 2017-03-17 12:14:10

  6. 최흥선

    정확히 ‘Kim, IlSung’, 또는 ‘Kim, SungJoo’, 전주 김씨,인데 일본이 보는 김 일성에 대한 해석, 예를 들어 일찍부터 북한에서 농민 쟁의를 포함해 항일 운동을 했고 ‘코민테른’의 지령으로 공산당 결성을 위해 만주로 이동했고 그런 내용들보다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개 팔아 서푼 닷냥’였던 시절에 솔직히 싱거운 얘기죠, 마누라가 몇 명였다니 꺽정패와 놀아났다니 ‘항일 운동인지 혁명한다면서 그냥 제 마음대로, 내키는데로 살았다’는 얘기인데.

    리플작성 2017-03-17 04:36:20

  7. 부킷빈땅

    좋은 글입니다.
    김일성 일가의 인간적인 면이 잘 나타나네요.
    북한이 김가 왕조를 신격화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리플작성 2017-03-18 01:37:00

  8. 낙타

    북의 인민들이 김일성에 대해 모두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읽고 많은 걸 배웁니다.

    리플작성 2017-03-21 08: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