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탈북자 수기

탈북민 노숙자에서 연극단 대표까지 (3)

by 주성하기자   2017-03-26 11:55 am

 

전원조 씨는 한국에 입국한 후 15년째를 맞는다. 그 동안 10년 이상 고생도 많이 하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대학 4년을 졸업하고 5학년을 다니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대학 4년과 지금 겪고 있는 5학년 그리고 졸업 후 그가 꿈꾸는 삶은 무엇일까?

 

“4년제 대학교를 다녔다는 말이 아니라 제 인생에서 귀중하게 보낸 4년을 그렇게 표현한 거예요.

 

2011년 3월 서울역에서 노숙할 때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생들이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기여 목적으로 서울역을 찾아왔어요. 그때 ‘연극’이라는 말을 듣고 심장이 쿵쿵 떨렸어요.

 

20여 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 ‘내가 연극인이었구나’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전율을 느낀 거죠.”

 

뒤늦게 나는 연극인임을 깨닫다

 

북한에 있을 때 전원조 씨는 배우이자 극작가였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생활할 때 그는 노숙인과 제판기술자 생활을 번갈아 했고, 한국에 들어온 후에는 노숙인 아니면 일용직 노동자였다.

 

자신이 연극인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힘들 만큼 척박한 일상이었다. 그러다 변화가 왔다. ‘노숙인 전원조’였던 그가 연극영화과 졸업생들을 만난 후 ‘연극인 전원조’가 되기 위해 오디션 연습에 돌입했다.

 

그러나 집도 절도 없는 처지에 연습할 공간이 없었다. 그때 노숙인 재활을 돕는 종교 단체를 만났다. 담당자는 전원조 씨의 의지를 보고 긴급주거지원비 석 달 치를 지원해줬다. 쪽방을 얻어 연극 연습을 하면서 종교 단체에서 지원하는 커뮤니티 활동도 시작했다.

 

“노숙자들과 함께 ‘연극으로 필이 통하는 사람들’ 줄여서 ‘연필통’이란 극단을 만들었어요. 조그만 극단이지만 스스로 연기하고 공연하는 게 아주 즐거웠어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한다는 점도 보람이 있었고요.”

 

그리고 2013년 그는 같은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인문학 대학 과정에 입학해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연극과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 눈이 열렸다. 인문학은 단순히 교양, 지식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의 중심을 찾게 해줬다. 인문학 과정을 공부하면서 전원조 씨는 스스로 ‘대학 4년’을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인문학은 단순히 지식만을 배우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장점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고 두려운 탈북자들에게 저는 인문학 강좌를 꼭 들어 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자신과 사회에 대해 스스로 깨달아 가면서 더 이상 남한 사회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두려움도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연극과 인문학으로 대학 4년을 마친 전원조 씨는 더 이상 한국 생활이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다. 연필통 대표로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 지원금을 받은 후 자신감과 용기도 생겼다.

 

“서울시에 가서 당당하게 면접을 보고 156개 팀 중 2.7대1의 경쟁률을 뚫고 지원금을 땄습니다. 탈북민인 제가 말이죠.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원들 사기를 높이기 위해 최근 MT도 다녀왔습니다. 조만간 작은 공연도 할 예정이어서 현재 준비하고 있습니다.”

 

연극과 연극으로 필이 통하는 사람들로 재기 성공

 

대학 4년을 마친 전원조 씨는 많은 자신감을 얻었지만 아직 더 배울 게 있고 할 일이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5학년이라고 말한다. 현재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극단 연필통을 더욱 발전시키는 게 일이다.

 

전원조 씨는 공공근로 등을 하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는데 2016년부터 새로운 수입원이 생겼다. 영화 시나리오의 대사 및 표현 등을 감수하는 코디네이터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2014년 말 촬영을 시작한 단편영화 <은아> 제작팀을 만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독일에 사는 교포인 정승현 감독이 연출한 <은아>는 한 탈북 여성이 서울에서 겪는 외롭고 고된 하루를 담담하게 따라가는 영화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시선 속에서 탈북자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함께 공감해 보고 싶었다고 감독은 말한다.

 

<은아>의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는 실제 탈북자가 아니라 한국의 전문배우다. 그러다 보니 북한말 표현과 억양 등이 많이 서툴렀다. 도와줄 사람을 찾던 제작진은 전원조 씨에게 자문을 구했다.

 

전원조 씨는 영화에 스탭으로 참여하면서 시나리오 작업할 때 인터뷰에서부터 대사 감수, 사투리 지도를 했고 실제 탈북자 역할을 맡아 출연도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북에 두고 온 아들을 데려와 서울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다. 전원조 씨 역시 북한에 처자를 두고 있는 입장이라 깊은 공감대를 가지고 촬영에 임했고, 결과적으로 영화는 가슴 아프지만 현실적인 정서를 담아낼 수 있었다.

 

<은아>의 작업이 끝난 후 이번에는 장편상업영화에서 감수를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다. 현재 촬영 중이라 제목과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역시 북한 관련 영화다.

 

시나리오 감수 및 사투리 교정을 하면서 전원조 씨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함경도 말과 표현을 많이 잘못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연변말’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에요. ‘연변’이란 1958년 중국과 북한 경계에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붙인 지명일 뿐이고, 엄밀히 말해 연변말은 없습니다. 함경도말 혹은 함경도 사투리죠.

 

그리고 연변 지역에 함경도말의 원형이 살아 있어요. 그런 정확한 표현을 써야 하는데 사극이나 영화 등에서 보면 이도 저도 아닌 말을 함경도말로 알고 있더군요.”

 

현재 촬영 중인 영화는 전원조 씨가 참여하면서부터 대사와 표현들이 생생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제작진에서는 시나리오 대사 감수뿐만 아니라 연기자 개별 지도까지 부탁했고 그 덕에 전원조 씨는 급여도 더 늘어났다.

좋아하는 일 하며 어려운 탈북민 돕고 싶다

 

“개별 지도하면 따로 돈을 줘야 한다고 농담 식으로 말했는데, ‘아,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반갑기도 했고 저 스스로도 이제는 좀 용감하게 이 사회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전원조 씨는 올해까지 극단 연필통을 활성화한 후 2017년, 그러니까 5학년을 마친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계획이다. 연극 및 영화, 드라마 분야에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더 열심히 매진하고 싶다.

 

전문가가 되는 것과 함께 그에게는 한 가지 꿈이 더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탈북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자신이 힘든 생활을 10년 이상 해 와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탈북자들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전원조 씨는 정말 정착 과정이 어려웠다. 두만강을 건너 어렵게 북경으로 가서 한국영사관을 찾았지만, 중국이라서 한국으로 가는 것을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대신 800위안을 주고 청도로 가보라고 해서 청도의 한국인 기업체에서 일을 하게 됐다. 스크린 인쇄를 하는 제판기술자로 먹고 살만한 월급도 받았지만 한국과 보다 가까운 심천으로 옮겼다.

 

심천에서 다시 청도로, 그리고 소주로 옮겨 다니며 제판기술자로 일했다. 기술을 인정받아 돈도 더 많이 받고 여성과 교제도 했지만 그는 한국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가지고 있던 돈을 사귀던 여성에게 다 주고 단 800위안만을 가지고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으로 밀입국했다. 이때부터 고생의 시작이었다.

 

베트남 경찰에 잡혀 다시 중국으로 넘겨졌다가 경비대장에게 죽어도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항변해 다시 베트남으로 넘어갔고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넘어갔다.

 

캄보디아에서 죽을 고비까지 넘기고 태국을 거쳐 어렵게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시간은 불과 대여섯 시간이었지만 그러기 위해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한국에 입국한 후 처음에는 착실하게 돈을 모았으나 식구를 데려다 준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돈을 다 날리고 무일푼이 됐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고생이 시작됐다.

 

전국을 떠돌며 취업과 해고, 일용직 노동 등을 번갈아 했다. 탈북민이 커피도 마실 줄 아냐는 비아냥거림도 들었고, 취업을 하기 위해 일부러 조선족 행세를 한 적도 있다. 노숙을 하며 길거리를 전전하기도 했다.

 

정말 절망의 삶이었고 힘든 세월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길이 있다고 그는 믿었다. 그러나 그 길을 찾는 데 10년 이상 오랜 세월을 허비했다.

 

그는 그 동안 겪은 고생과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착한 정착’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오래 고생하는 탈북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힘든 상황에 있는 탈북자들이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장점을 찾고 사회와 어울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요.

 

물론 마음먹은 대로 돈을 많이 벌수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게 부자 아니겠어요? 저 부자 맞아요?”

 

전원조 씨는 자신이 했던 일에서 정착의 길을 찾았다. 그러면서 중간에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그 같은 고생과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정착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그가 겪은 어려움은 ‘착한 정착’을 낳은 자양분이었던 셈이다. 영화, 연극을 바탕으로 그의 삶에 더 좋은 정착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카테고리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탈북자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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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동적인 스토리입니다. 부디 힘내시기를
    그런데 하나원에서 사기 방지 교육을 좀 강화하여야 할듯..
    왜 이렇게 착실한 분들이 하나같이 사기를 당하시는지..

    2017-03-26 12:37:44

  2. umberto

    정말 고생이 많으셨네요. 이제라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앞으로는 연극도 잘되고 티비나 영화에도 자주 나오시리라 믿습니다. 북쪽에 가족이 있으시다니 가족과도 만날 날이 오길 바라겠습니다.

    2017-03-26 02:23:35

  3. 재미한국인

    같은 이민자로서 탈북민의 이야기에는 늘 공감이 갑니다.

    2017-03-27 03:2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