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탈북자 수기

17세 소년, 한국배에 숨어 청진서 부산까지 (10)

by 주성하기자   2017-02-04 9:31 pm

 

이근혁 씨는 보은전자 해외영업팀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보은전자는 1986년 설립된 디지털영상 및 방송장비를 제조하는 업체이다.

 

연간 매출액은 100억 원 규모다.  KBS, MBC, SBS, EBS, CATV, 위성방송 등 한국의 전 방송 시장을 뛰어 넘어 해외에 까지 진출한 벤처기업이다.

 

한 주의 바쁜 일정들을 마무리하느라 무척 바쁜 시간이지만 근혁 씨와 팀원들은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주었다.

 

방송장비들이며 프로그램들을 유창하게 설명하는 자신만만한 근혁 씨는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청년이다.

 

17세에 청진항서 배 몰래 타고 부산항 도착

 

근혁 씨는 함경북도 함흥에서 외국문화출판사를 다녔던 부모님의 외동아들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

 

하지만 14살 때인 1994년 아버지를 병마로 잃고 생활이 어려워진 데다 고난의 행군까지 겹쳐 어머니와 겨우 생계를 유지해나갔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오기 위해 2년 동안 차비를 마련했다고 했다.

 

외국문화출판사에서 근무했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1998년 어머니를 모시고 북한을 탈출하는데 성공은 했지만 한국으로의 길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생 끝에 북경영사관에 도착은 했지만 받아주지 않아 어머니는 다시 연길로, 그는 3국을 통해서라도 한국에 꼭 가리라 마음을 먹고 청진항으로 향했다.

 

그때 나이 17살, 근혁 씨가 청진항에 도착하자 많은 나라들의 배들이 선적해 있었다. 그 많은 배들 중 유독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은 ‘한진 한국’이라는 한글 로고가 있는 배였다.

 

그 배가 한국으로 가기는 하는지 언제 떠나는지 물어볼 여유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무작정 경비원들의 눈을 피해 가느다란 루프를 타고 배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근혁 씨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기관실 구석에 몸을 숨겼다.

 

처음으로 타보는 배다 보니 멀미가 심해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배가 고파서 식당으로 몰래 숨어들어 음식을 훔쳐 먹으며 며칠 동안 망망대해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드디어 배의 엔진들이 꺼지면서 항구에 도착함을 알았고 그 길로 갑판으로 나가보니 고맙게도 부산항에 도착해 있었다.

 

근혁 씨는 그 길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자신이 북한에서 왔음을 알렸다.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근혁 씨는 한국에 온 후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치는 것부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생활고와 죽음의 고비들을 겪었던 근혁 씨는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수료하면서도 어려움을 몰랐다고 한다.

 

이것뿐만 아니라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특히 더 이상 쫒기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한 후 곧장 고려대 경영학과를 들어갔지만 대학 공부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신이 지식은 있어도 상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대학 공부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통감했다고 했다.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좋은 대학이었고, 진로였다는 것을 통감했다.

 

차라리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몸으로 부딪쳐봤으면 괜찮았을 법 하기도 했고 자신이 정한 진로가 과연 옳은 선택일까 고민하던 중 보은전자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만들기 좋아하고 연구하기 좋아했던 근혁 씨에게 꼭 맞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사가 무슨 일을 시키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고 먼저 대답했다고 했다.

 

모르면 물어보고, 검색해보면 된다는 식의 방식은 어찌 보면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었지만 근혁 씨에게는 어떤 일이든 먼저 도전을 해보는 자기만의 방법 중 하나이기도 했다.

 

“실패 두려워 않고 어떤 일이든 도전하는 게 정착 노하우”

 

물론 실패도 했다. 그는 ‘할 수 있어?’라는 상사의 물음에 무조건 자기가 한다고 해놓고 어떻게 할지 몰라 온 밤을 새워가며 선배들에게 전화를 하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며 퇴근도 못하고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해 회사에 타격도 주기도 했지만 사장과 상사들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하려고 노력한 그 과정을 높이 사주었다고 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그의 기술력은 날이 갈수록 발전했다. 그 노력들이 쌓이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국내영업팀으로 정식 취업이 됐다.

 

그는 팀장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실력을 더욱 깊고 넓게 다지면서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루는 우연히 해외영업팀 일을 도와 외국 회사에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해줘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영어를 몰라 사전을 뒤져가며 겨우 일처리를 끝낸 후 생각했다.

 

영어를 할 줄 알았더라면 아무것도 아닌 이 일을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근혁 씨는 이 일을 겪은 후부터 머리를 싸매고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외영업부 일을 하나씩 하나씩 도와주다보니 자연히 해외영업부 팀장으로 승진했다.

 

“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날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나의 경험과 지식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고, 하루를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으면 그게 행복이고 적응이 아닐까요?”

 

자신의 인생에는 특별한 전환점이 없다고 말하는 근혁 씨. 돌이켜보면 아르바이트생으로 입사할 때는 자신이 해외영업팀 팀장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냥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한 발 한 발 올라온 것이라고 말한다.

 

“해보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고 뛰어들었고 하면 된다는 그 기질을 이용해 세상에 도전장을 내민 그였다.

 

17살 어린 나이에 안내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한국까지 오게 되었던 것도, 그 어렵다는 방송통신 분야의 기술들을 갖추고 해외영업팀장 자리까지 올랐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들은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고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다.

지금은 세 아이의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 하는 근혁 씨. 그는 새로 정착하는 북한이탈주민에게 “지금이 나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그 또한 지나가게 된다”고 조언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 힘들었던 순간순간이 모두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고 그것은 기초가 돼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듯이 작은 것 하나라도 그냥 흘려보내지 말라고 한다.

 

그게 일이 되었든 인간관계가 되었든 꼭 짚고 넘어가고 해결하고 넘어가야지 작은 미흡한 점들이 모이고 모여 신뢰에 금이 가는 일들이 벌어질 수가 있다고 한다. 또 갈등은 묻어두지 말고 초기에 잘 잡아야 한다고 한다.

 

근혁 씨는 또 대한민국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가 참 드물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꾸준히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만큼은 늘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한다.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한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아울러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에서 왔다고 정말 자신의 친아들, 동생처럼 아껴주시는 분들이 많아 너무 고맙기는 하지만 지나친 배려가 때로는 독이 될 수 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통일이 되면 고향에 가서 헤어졌던 친구들에게 술 한 잔 기울이고 싶고 동창 모임도 하고 싶은 게 꿈이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하루하루가 살맛나고 행복하다는 근혁 씨,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멋진 청년이다.

 

카테고리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탈북자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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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배에 타다 잡혔으면 수용소 갈뻔 했구나 . 영사관에서도 북한 사람을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대북압박을 해서 사람들의 살길을 막으면 북한사람들은 다 굶어죽으란 얘기구나.

    2017-02-04 10:21:52

  2. 북한동포에꿈을

    글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되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탈북자가 현재 대한민국에 정착중인 탈북자들은 통일의 전도자라고 하던데 이분이야 말로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면서 진정한 미래의 한반도 통일의 전도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근혁씨의 삶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2017-02-05 12:45:20

  3. 7235

    이근혁씨 불굴의 의지로 험한 사회를 개척하시는 모습이 대단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훌륭한 모범 시민으로 성공하세요.

    2017-02-05 02:00:13

  4. 재미한국인

    “이 고난 또한 지나가리라”
    고서에서나 읽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말을 이 젊은이는 이미 체험된 자신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나의 고개를 저절로 숙이게 하는 이런 지혜를 가진 분이 한국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아무래도 탈북자 집단에서 이런 지혜를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요?한국의 복이지요.

    2017-02-05 11:01:04

  5. 델리

    참 고생 많았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 나 자신부터 반성하게 됩니다. 이땅에서 태어나 평탄하게 살아온 나는 도대체 뭘 이뤄나 하는.

    2017-02-06 09:08:50

  6. ㅇㅇㅇ

    여기랑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예전글에 남기면 혹시 안읽어보실까 싶어서 여기 남깁니다 혹시 주기자님이 이미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토지 공개념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한번 읽어보시는게 어떠실지요 자본주의 자유경제체제를 기본으로 하되 땅 만큼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동소유로 하자는 개념인데 옛날 미국에 헨리 조지라는 사람이 만든 이론입니다 제가 생각하는것 중 하나가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의 땅은 공식적으로 국가 소유로 주인이 없는 상황인데 남한이나 이미 북에서 모종의 방법으로 돈을 좀 모았다는 사람들 또는 외국 자본이 들어와서 핵심 땅을 다 사버리거나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개발 과정에서 어느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땅값 상승에 따라서 빈부차이가 나고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소외되어 버리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것인데 그리고 남한의 사례로 볼 때 결국 북한도 개발이 되기 시작한다면 부동산 붐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때 승자와 패자가 나뉘면서 빈부차이가 나고 자본이 부동산 버블에 잠식당하면서 성장이 둔화되는 상황이 올텐데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드리기가 힘들고 어떻든 간에 흥미로운 이론이라 주기자님이 혹시 시간이 나신다면 한번 찾아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언제 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나중에 통일이 돼서 북한이 개발될 상황에 놓인다면 국가 소유로 된 임자없는 땅의 개발과 처분이 문제가 될텐데 그 때 저보다는 아무래도 주기자님이 더 발언을 하실 수 있는 위치이지 않을까 해서 한번 적어봅니다

    2017-02-08 05:45:24

  7. 109020856099874

    모르면 물어 보는 것은 사실 가장 효율적인 배우는 법이다. 책이나 인터넷은 정리되지 않은 나열된 자료로 자기가 필요한 핵심으로 요약 정리하려면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이미 해 놓은 것이다. 또한 물어보는 것은 일반 대인 관계에도 좋다. 물어보는 사람이 자기를 평가해준다는 점이다. 직장에서는 좋게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그만큼 정열이 있다는 증거니까.

    2017-02-08 10:13:53

  8. kee park

    참참 좋은글임니다!!!
    눈물 글썽이면서 읽었읍니다. 내 고향 함경도에서 오셨구만요. (함흥은 함경남도임니다.)
    1947년 추운 11월 어느날 그차겁든 임진강물건너고 온몸이 와들와들떨든 어린시절을 기억함니다… 참참 장하심니다. You’re just great GREAT!!!
    늘 건강하시고 happy하셔요!!! 멀리보스톤에서 북청에서온 할머니임니다.

    2017-02-08 10:54:13

  9. auk815

    닥치고
    이제는 이 국난에 모두 동참합시다
    하나:271-910062-82607 한병택(박사모)
    농협:053-01-270601한병택(박사모)
    국민:006001-04-185241한병택(박사모)
    우리:1002-235-264261한병택(박사모)
    탄기국(박사모)후원계좌입니다

    2017-02-08 04:03:26

  10. 산골총각

    대단하신 분입니다.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지고 반성하게 되는군요.

    2017-02-11 10:4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