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세기

<아시아가 기회다>

 

세계 최초로 종이와 나침반을 발명했던 중국, 세계 3대 종교 발상지의 하나인
인도…. 고대에는 첨단 과학기술과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지만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세계사의 주역에서 밀려났던 아시아가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하이난
성에서 열린 보아오 포럼에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제 전문가들은 2010년이 G2시대가 도래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본다. 냉전이
종식된 후 수십 년간 미국 1강 체제였던 국제질서가 미국과 중국의 2강 체제로 간다는
말이다. 국제 외교 분야에서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이미 성큼
다가왔다.

 

한때 잘나가던 브릭스(BRICs)는 비시스(BICIs)로 바뀌었다. 빠른 경제발전으로
주목받았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가운데 러시아가 빠지고 대신 인도네시아가
포함된 것. 네 나라 가운데 남미의 브라질을 제외한 세 나라가 모두 아시아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조만간 세계의 주역이 되리라는 관측이 많다. 중국은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7% 성장을 했고 올해는 9∼10% 성장이 예상된다.
‘멈추지 않는 성장 기계’ 중국은 ‘늙은 대륙’ 북미와 유럽에서 줄어든 수요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 인도 역시 지난해 7%대 성장에 이어 올해는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의 소비가 침체하면서 중국과 인도 시장은 더욱더 각광을
받고 있다. 두 나라의 부상은 세계시장의 성격과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전략마저
바꿔 놓았다.

 

삼성전자는 최근 선진 시장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제품 전략을 수정해 대중적인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중국과 인도는 인구가 아주 많아서 부유층뿐 아니라 중저소득층
시장도 엄청난 규모이기 때문이다. 오리온이 고작 몇백원짜리 과자만으로 연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것은 바로 중국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도의 2200달러(약
250만 원)짜리 ‘나노’ 자동차처럼 비용을 크게 줄인 기업들이 이를 바탕으로 선진국
시장까지 진출할 경우 다른 나라 기업들이 살아남을 길이 없다.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중국과 인도에서 먼저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의 C K 프라할라드 교수는 세계 40억 명의 저소득층(BOP·Bottom
of Pyramid)이 앞으로 주요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네덜란드 기업
필립스는 인도의 전통 화로를 개량해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인체에 해로운 연기 발생을
줄였으나 가격이 1만6000원으로 저렴한 화로를 내놔 히트를 쳤다. 유니레버의 ‘손
씻기 캠페인’을 동반한 비누와 샴푸 판매는 인도의 질병 발생률을 낮췄다. 저소득층의
생활환경을 개선한다는 ‘대의(大義)’도 추구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시장이 바로
BOP 시장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아시아가 정치나 문화적으로도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미국이 하루만 중국이 된다면’이란
가정을 해봤다. 미국의 정치시스템이 이해 관계자들의 로비와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
때문에 종종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는 데 비해 중국 정부의 리더십과
효율성이 부러워서 해본 상상이었다. 최태원 SK 회장은 “과거 동양 상인들이 추구한
‘견리사의(見利思義·눈앞의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먼저 생각한다)’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의 사회 책임 경영에 답을 제시하는 가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경제적 부상과 더불어 아시아적 가치도 재조명이 이뤄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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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연기를 보고

 

<하이브리드(잡종) 정책시대>

 

영리병원 도입이 다시 미뤄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영리병원에 대해 보고받은
뒤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우리 건강보험제도에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국식 헬스케어가
반드시 좋은 건 아니지 않느냐”며 “아픈데 차별까지 받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느냐”고도 했다. 아무래도 ‘도입’보다는 ‘충분한 논의 후’에 더 무게
중심이 있는 듯하다.

 

현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서비스산업 선진화와 의료분야 규제 개혁을 추구해왔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이번 영리병원 유보 발언은 다소 뜻밖이다. 영리병원은 의료산업을
발전시키고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서 오는 긍정적 효과와, 의료에 시장원리가
도입됨으로써 나타날 ‘상대적 박탈’이라는 부정적 효과 중에서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

 

수만 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의료서비스가 다양해지더라도, 만약 돈 없는 사람이
지금 같은 의료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된다면 위정자로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의료는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달라서 생명과 건강이라는 인간의 기본권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 점을 꿰뚫어 보고 5년에 걸친 논란을 일단 잠재운 것으로
보인다.

 

하기야 이것뿐이 아니다. 올해 이슈가 된 사안들은 우파 정부의 정책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야간 학원교습 금지, 외고 죽이기, 대기업슈퍼마켓 규제, 정부
기관들을 동원한 물가 잡기 등…. 오죽하면 “4대 ‘공공의 적’이 있는데 바로 사교육비,
휘발유값, 통신비, 우유값이다”라는 말이 시중에 나왔을까.

 

올 하반기부터는 아예 정책 기조를 ‘친서민’으로 정했다. 우파 정부가 친서민을
강조하다니 좋게 보면 이념을 초월한 실용주의고, 나쁘게 보면 원칙도 일관성도 없는
포퓰리즘이다. 현 정부의 정책들이 얼마나 성공하고 얼마나 실패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떤 것은 조급하고 과격해 보이고, 어떤 것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어떤
정책들은 서로 충돌한다. 분명한 건 과거의 이념적 잣대로 보면 이질적인 것들이
마구 섞여 있다는 사실이다.

 

하이브리드 정책의 결정판은 ‘녹색성장’이다. 과거 좌파나 환경단체의 전유물이던
온실가스 감축과 환경보호 운동에, 성장이라는 우파의 전략을 조합해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만들었다.

 

정책의 잡종화는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미 익숙하다. 모든 정책에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시대와 나라 사정에 맞는 정책의 조합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필요한 건 실제 사례와 과학적 근거다. 서비스산업과 의료복지도 앞서간 나라들의
사례를 면밀히 비교검토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최근 타계한 ‘현대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은 베스트셀러 ‘이코노믹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 경제학은 증거로부터 도출한 사유를
가슴에서 끌어낸 목적과 결합시킴으로써 최선의 기여를 할 수 있다.”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영혼이 없이 경제적 효과만 강조하거나, 실질적 근거 없이
이데올로기만 주장하는 집단은 정당이든 경제, 사회단체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국민 모두가 충분한 의료혜택을 받으면서 의료산업을 발전시키고 외화도
벌어들일 수 있는 묘안이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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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 카운트다운

또다른 민주주의의 시험대, 복수노조

  2009-11-23 03:00  

 

한국의 노사관계 지형을 바꿔 놓을 초특급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다.

 

기업들은 대체로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한다. 1987년 노동운동의 대폭발 이후 시행착오를
거쳐 다져온 노사관계가 일시에 흐트러지면서 노사갈등과 파업이 증가하고 노무관리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벌써부터 삼성과 포스코를 주요 대상으로 지목했다. 양
노총은 글로벌 대기업이면서 노조가 없거나 활동이 미약한 두 회사를 조직 확장 경쟁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삼성과 포스코는 모의 임금·단체협상을 실시해보는
등 전전긍긍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찌감치 복수노조를 도입한 선진국들도 이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비싼 대가를 치렀다. 세계적인 항공사였던 미국의 ‘팬 아메리칸 항공’은 경영난
속에서도 5개 노조가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등을 놓고 제각기 경쟁하다 결국 1991년
말 파산했다. ‘재규어’로 유명했던 영국 자동차 회사 ‘브리티시 레이랜드’ 역시
17개나 되는 노조가 노-노 갈등과 노사분규를 일삼다 1992년 도산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는 1950년대 무려 32개의 노조가 난립해
혼란을 겪다가 20년 가까이 지난 1968년에야 노조가 단일화됐다. 1970, 80년대 잦은
파업으로 유명했던 ‘영국병’의 근원이 복수노조라거나, 가장 최근(2000년) 복수노조를
도입한 인도네시아가 제도 시행 후 파업이 두 배로 늘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실 양 노총도 여러 가지 다른 이유를 대고 있지만 복수노조를 도입하고 싶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제3, 제4의 노동자 단체가 생기거나 군소 노조들이 난립할 경우
두 노총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복수노조와 연결돼 있는 ‘사용자에 의한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결사반대할 수밖에 없다. 산별 노조 체제인 선진국과 달리 사실상 기업단위 노조가
많은 한국에서는 전임자 임금을 줄 수 없는 노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법제화되면
중소기업 등에서는 노조 활동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노사 양측의 이해관계가 이처럼 일치했기 때문에 한국은 법을 만들고도 13년 동안
시행을 미뤄왔다. 1997년 ‘노동조합과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에 두 가지가 들어갔으나
노사 모두 도입을 꺼려 ‘부칙 개정’ 등을 통해 유예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에는 시행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수차례 복수노조 허용을 독촉 받은 데다 내년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하고
선진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려면 노동탄압처럼 비치는 복수노조 금지를
풀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노사정 6자 대표자 회의가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할 경우 공은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노사 양쪽에 치명적인 조항들이 교섭 창구 합리화나 영세
노조 보호 같은 보완책 없이 시행되지 않도록 국회의원과 국민들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보완이 이뤄진다 해도 이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우리 사회는 상당 기간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오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도 있다” “근로자가 행복해야 기업도 잘된다”는 상생의 지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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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경제성장 대신 국민행복지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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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연말까지 ‘국민행복지수’를 만들겠다고 한다. 국내총생산(GDP)이
‘삶의 질’을 알려주는 데 미흡하기 때문에 소득 고용 주거 교육 안전 등의 민생지표를
토대로 이를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달 2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포럼에서 “개인의 행복이나 삶의 질을 사회 발전의 척도로 삼아야 하며 이를
위한 새로운 지표 개발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하루 전날인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추도식에서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말했다.

 

 불과 2년 전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747공약(7%
경제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 진입)’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랬던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에서 최근 삶의 질 또는 복지를 강조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3~4년 전에는 성장이 먼저냐 분배(복지)가 먼저냐, 미국식 발전모델이냐
유럽식 발전모델이냐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에서 격렬한 논쟁까지 벌어졌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성장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라도 이뤄졌는지 의아하다.

  

 GDP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 나온 지적이 아니다. 민간과 정부의
소비 지출, 투자 등을 합해 계산하는 GDP는 ‘시장가치’로 계산되기 때문에 한계를
지닌다. 가사노동이나 환경 같은, 가격을 매기기 어려운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또 태풍으로 건물이 파괴되거나 성수대교가 무너진 뒤 새로 건설하면 GDP가
올라가는, 삶의 질과 모순되는 일도 생긴다.

  

  이 때문에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와 제임스 토빈은 이미 수십
년 전에 GDP에 가사노동과 환경, 여가 등을 포함시킨 경제후생지표(MEW)를 제안했고,
폴 사무엘슨은 복지의 개념을 포함한 순경제후생(NEW)을 발표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GDP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연구를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개발된 GDP가 경제발전 지수의 황제 자리를 차지해온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를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삶의 질이나 행복을 보여주는 지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 영국 신경제재단(NEF)의 ‘국민행복지수’, 소득의 불평등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 등 이미 차고도 넘친다. 그동안 정부가 정책을 입안할 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가 그동안 목메어 외치던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까마득하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2%였고 올해는 간신히 마이너스를
벗어날까 말까 하는 정도다.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지만 중국 인도 등 우리보다 잘한
나라도 많다. 잠재성장률도 4~5%대에서 올해 3%대로 뚝 떨어졌다. 1인당 국민소득은
다시 1만 달러대로 주저앉았고, 전체 경제규모도 2003년 세계 11위에서 2008년 15위로
내려갔다 (이 모든 것이 GDP로 계산된다).

 

 삶의 질 향상이 경제발전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민생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폄훼하려는 뜻도 없다. 하지만 GDP가 불완전 지수라는
새롭지도 않은 사실이 초라한 경제성적표를 합리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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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옳은가?

2008. 2. 6

 

[광화문에서]당신은 정말 옳은가

 

한나라당 공천을 둘러싸고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주. 당헌 당규를 엄격히 적용하면 과거 알선수재로 벌금형을 받은 친박계의 김무성
최고위원이 공천 신청을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방호 사무총장 등 친이 측은 “박근혜 전 대표도 모든 문제를 당헌 당규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해 왔다. 부정부패를 끊겠다고 당헌 당규를 만들어 놓고
특정인이 결부됐다고 이제 와서 바꾼다면 국민의 마음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속내야 무엇이든 맞는 말이다.

 

그러자 당사자인 김무성 최고위원은 “16, 17대 총선에서 두 번이나 당 공천심사와
지역구민들의 심판을 통과했는데, 왜 10년 전 일을 지금 문제 삼느냐”고 항변했다.
강재섭 대표도 “정치에는 신의도 중요하다. 법만으로 살 수 있다면 정치가 왜 필요한가”
하고 거들었다. 이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양쪽 의견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면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을 터. 그래선지 “같이
일 못 하겠다”며 으르렁대던 강 대표와 이 사무총장은 며칠 뒤 중재안이 만들어지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오해가 있었다”면서 손을 맞잡고 활짝 웃었다.

 

정치인들이 ‘밥그릇 싸움’이나 한다고, 자기들 맘대로 다시 손잡았다고 욕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정치판은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정치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원칙을 곧게 세워 밀어붙여야 할 때와, 협상하고
타협해서 윈윈할 때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선지 지금 정치권의 대세는 후자다.

 

불화설과 분당설이 나돌던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5일 대선 이후 처음으로 만나 “강한 야당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자”고 뜻을
모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마련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놓고 맞섰던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날 6자회동을 갖고 본격 협상에 나섰다.

 

5년 동안 누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다 날 샌 경험 때문인지 국민은 편 갈라 싸우는
자체에 염증을 내는 듯하다. 그동안 과거사 청산이 중요한가, 미래 지향이 우선인가,
자주가 중심인가, 용미(用美)가 먼저인가 등 결론을 내기 힘든 문제들에 시달려 왔다.

 

정치뿐 아니다. 세상의 많은 일이 칼로 무 자르듯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실용주의라는 것도 굳이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최우선으로
유연하게 행동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이 아직 연방으로 묶이지 않았던 1787년. 식민지에서 해방된 13개 주가 제헌의회를
열었다. 공업가와 농장주, 큰 주와 작은 주, 남부와 북부 등의 주장이 엇갈려 5개월이
지나도록 합의를 보지 못하자 81세의 원로 벤저민 프랭클린이 나섰다. 그는 연방
헌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믿거나 다른 사람의 판단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타일렀다.

 

그러면서 말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내 판단의 정확성을 자꾸 의심하게 되는군요.”

하지만 그의 판단은 옳았고 미국은 세계 최강의 통일국가가 되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대화의 정치’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

 

신연수 정치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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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삼팔육

2008. 2. 22

 

[광화문에서]아듀 386

 

그해 김세진 이재호 열사가 대학 건물 옥상에서 분신을 했다. 캠퍼스에는 늘 전경이
가득했다. 학교 수업은 사회에 대한 의문,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타는 목마름을
채워 주지 못했고 선배들은 강의실보다 서클 룸이나 학사주점에서 만나는 게 더 쉬웠다.

 

개인마다 경험의 범위는 다르겠지만 1980년대 학번들의 대학 생활은 대부분 이런
공통점을 가졌다. 군홧발이 교정을 짓밟는 상황에서 예술적 낭만이나 지적 호기심만
추구하기는 어려웠다.

 

훗날 돌아보면 386은 이념적으로는 시대의 중압감에 눌렸지만, 생활면에서는 혜택
받은 세대였다. 전두환 정부가 대학 본고사를 폐지하고 과외를 금지함으로써 편안한
중고교 생활을 했다. 대학은 입학보다 졸업을 엄격히 하는 ‘졸업정원제’를 실시한다며
정원보다 30%를 더 뽑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두 졸업했다. 1980년대 경기 호황으로
졸업 후에는 일자리가 넘쳐 몇 개 회사에서 합격통지서를 받는 게 보통이었다.

 

졸업 후 먹고살기 바빠서 젊은 날을 잊고 있었던 그들에게 흑백 사진 한 장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일깨웠는지 모른다. 2002년 말 노동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눈물을 흘리는 한 인권변호사의 사진 말이다.

 

젊은 날 가슴 한옆에 묻었던 ‘민중’에 대한 부채 의식, 사회 공동체와 정의(正義)를
향한 동경, 자유, 사랑, 평등…. 이런 것들이 갑자기 10여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현실을 무색하게 했다. 나이는 다르지만 386운동권들과 ‘정신적 동지’를 자처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 후 5년은 모두 겪은 대로다.

 

‘반미면 어떠냐’ 등 구설수에 올랐던 노 대통령의 말들은 한 나라 대통령의
말로는 적절치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실존적 고민’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386들이 20대에 했던 자신의 과거 및 정체성에 대한 부정과 닮은꼴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에 공과(功過)가 있다면 386세대를 비롯한 일반 국민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도자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5년여 전 1200만 명가량의 유권자가 노 대통령을 선택했다. 2004년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자 이에 반발해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들에게 몰표를
던진 것도 국민이다.

 

그러고 보면 지난 5년 동안 겪었던 분열과 반목, 시행착오는 광복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겪어야 할 성장통이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세계화와 남북통일 시대에 우리가 씨름해야 할 많은 문제에 대한 ‘예방주사’라고
해도 좋다. 이견과 갈등을 좀 더 성숙하게 표현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다.

 

국민은 이번엔 ‘반미면 어떠냐’ 대신 ‘잘살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대통령을
뽑았다. 존재의 고민을 거쳤으니 실질과 효율이 더 수준 높고 단단하길 바랄 뿐이다.

 

현실에서 이미 386들은 사라졌다. 1960년대생, 1980년대 학번들이 나이로는 모두
40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386컴퓨터가 486, 펜티엄으로 발전한 것처럼 과거 386들도
한층 훌륭한 사회의 중심으로 거듭날 것이다.

 

신연수 정치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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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정몽준과 정동영

 

2008. 3. 19

[광화문에서]정몽준과 정동영

 

4월 9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행마(行馬)술이 점입가경이다.

 

통합민주당이 서울에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대선 후보를 내세워 ‘장군’을
부르자 한나라당은 박진 의원과 정몽준 최고위원으로 ‘멍군’을 불렀다. 한나라당이
나경원 전 대변인을 전략 공천한 서울 중구에는 자유선진당이 박성범 의원의 부인인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를 공천할 예정이다.

 

특급 대형마들이 뛰는 서울은 물론이고 영남과 호남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탈락한 거물급 인사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쉽사리 판세를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최대 이슈는 정몽준과 정동영의 대결. 두 사람 모두 대통령 후보였던
데다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은 한국 최고의 블루칩들이기 때문이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준수한 외모,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라는
화려한 경력에 현대가(家)의 아들이라는 백그라운드까지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그동안 국민의 눈에는 5% 부족해 보였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환경을 다
갖고 있으니 황태자, 귀공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기업 총수라면 다소
신비에 싸여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결함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과감한 결단과 희생, 스스로를 낮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 이런 것들이 없어 보였다. 2002년 대선 정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지도자로서
정확한 판단력과 신중함을 갖췄는지 의문을 갖게 했다.

 

정동영 전 대선 후보 역시 나무랄 데가 없다.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민주화운동
경험에다 MBC 기자, 열린우리당 의장, 통일부 장관 등 국정을 맡는 데 필요한 경력을
두루 갖췄다.

 

그러나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뚜렷한 업적이 떠오르지 않고 ‘말은 잘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정치적 리더십도 미지수다. 지난해 구 민주당과 합당 서명을 한 지
며칠 만에 합당이 무산되자 당내에서는 ‘정 후보가 조금만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나왔다.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선거인단을 불법 동원한다는 시비가 잇달았다.
대선 막판에는 세가 몰리자 “내가 무엇을 하겠다”보다 BBK 등 네거티브 공세에만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훌륭한 두 사람이 5%씩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뤘고,
그래서 나라도 잘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고난을 이겨내고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부독재에 맞서 단식투쟁을 하면서, 감옥 속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기득권을 버리는 승부수로 새
길을 개척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두 사람은 이번 총선에서 편안한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당신의
능력과 의지를 보여 달라’는 요구에 답할 수 있는 기회다. 한 사람은 이기고 한
사람은 질 것이다. 승자는 대권 가도에 초석 하나를 더 놓게 된다. 패자는 험난한
정치적 여정을 맞겠지만 담금질을 거쳐 더 큰 지도자로 거듭날 수도 있다.

 

두 사람의 깨끗하고 멋진 승부를 기대한다.

 

신연수 정치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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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다른 한국과 미국의 '리더' 양성

리더를 봉사자로 키우는 미국, 경주마로 키우는 한국
- 한국계 최초 미국 아이비리그 총장 탄생 기사를 보고  
 

김용(49) 하버드 의대 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이 한국계로는 처음 미국 아이비리그인
다트머스대 총장이 됐다고 한다. 아시아계로서도 처음이라고 하니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총장에 선임된 후 그가 한 연설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여러분과 같은 학생들은 교수들로부터, 그리고 학생 서로 간에 배운 것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가 세계를 보다 밝고, 생산적이고, 인도적이고 정의롭게 만들 수 있다.”

 

세계를 보다 밝고, 생산적이고, 인도적이고, 정의롭게 만들 수 있다 …. 경제
한파에 주눅 들기 전에도 한국 사회에서, 한국 교육현장에서 언제 이런 말을 들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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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지역 의료구호활동으로 유명한 김 총장은 3월 2일(미국시간) 뉴햄프셔주 다트머스대에서
열린 신임 총장 소개 행사 연설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고등교육에서의 뛰어난 역할, 공동체를 위한 책임감으로
특별한 다트머스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가는 기회를 갖게 돼 더 할 수 없이 기쁘다”면서
“한 사람이 문제를 풀 수는 없지만 세계의 문제를 다룰 일련의 지도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면 가능성은 무한대로 늘어나고 세상에 못 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단다.

 

2006년 미국 주간지 타임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그를 선정하면서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총장 선임권을 가진 다트머스 대학 이사회도 그에 못지않다. 이사회는 새 총장을
발표하면서 “김 박사는 다트머스의 사명인 배움과 창의 그리고 봉사라는 이념을
실천한 인물”이라며 “그는 교육이 단지 지식을 가르칠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거대한
도전에 맞설 지도자를 키우는 것
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단 다트머스대 뿐 아니라 하버드대, 예일대 등 미국 최고의 대학들에서는 입학식이나
졸업식에서 이처럼 사회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사회의
인재이고 리더일수록 그만큼 사회에 대한 봉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할 책무
같은 것이 무겁다는 뜻으로 나는 느꼈다.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많은 미국이지만 그래도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탄생시킨 문화적 포용력과 김 총장과 같은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미국을 건재하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이 하도 오래 되어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대학, 부모, 사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별로 입학식 졸업식 축사는 다 찾지 못했지만 최근 주요
대학의 졸업식 입학식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문화일보에 난 주요 대학 총장들의
입학식 축사 기사가 검색됐다.

 

아니나 다를까.

“입학성적은 잊고 경쟁력 있는 지식인 돼라” “대학총장들 입학식서 정신무장
강조”

“여러분은 누군가보다 늘 무엇 하나를 더 해내야 한다”

“입학성적은 완전히 잊어버려라. 자신의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개발이 따라주지
않고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고려대 졸업장은 단순한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강도와 표현은 다르지만 마치 전쟁에 임하는 무사들을 독려하는 식이다.

결코 대학 총장님들을 흉보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바로 우리의 교육문화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우리는 늘 “남을 이겨라”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쌓은 지식을 실천적 지혜로 승화시키는 ‘성찰적 지식인’으로 성장해야
한다”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따뜻이 보듬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라”고
했다는 서울대 이장무 총장의 입학식 연설이 다소나마 위로가 된다.

또 문화일보의 이 기사는 이런 주제에 맞춰 썼기 때문에 총장님들이 하신 많은
좋은 말씀들 중에서 이런 부분만 강조된 탓도 있을 것이다.  

 

“입학성적은 잊고 경쟁력 있는 지식인 돼라”

대학총장들 입학식서 정신무장 강조

 

최악의 경제위기속에 입학식을 맞은 대학 총장들이 신입생들에게 ‘강해지라’는
내용의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환영사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미 졸업식에서도 졸업생들에게 ‘위로사’를 전했던 대학 총장들은 신입생들에게도
덕담보다는 현실적으로 경쟁력있는 학생이 될 것을 당부하고 나섰다.

2일 오전 11시 교내 체육관에서 열린 서울대 입학식에서 이장무 총장은 식사를
통해 “우리 인류가 당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진취적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학생이 서울대가 키우려는 인재의 모습”이라며 “밤낮으로 학문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노력’을 강조했다. 이 총장은 아울러 “오늘날 전 세계에 큰 고통을
몰고 온 경제 위기의 이면에는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한한 탐욕과 경쟁심이
자리하고 있다”며 “쌓은 지식을 실천적 지혜로 승화시키는 ‘성찰적 지식인’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도 이날 입학식에서 영어 축사를 통해 “비좁은 국토에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국제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여러분은
누군가보다 늘 무엇 하나를 더 해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경쟁력 제고를 강조했다.

사학 맞수인 고려대와 연세대 총장은 앞서 지난달 열린 입학식에서 경각심을 주문했다.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입학성적은 완전히 잊어버려라. 자신의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개발이 따라주지 않고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고려대 졸업장은 단순한 종이쪽지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김한중 연세대 총장은 “베토벤은 불멸의 교향곡인 제5번
‘운명’을 작곡하는 데 5년의 세월을 바쳤다”면서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도 2월27일 열린 입학식에서 “세계를 향해 눈을 열고 세계
무대를 향한 꿈을 꾸라”고 말했고, 같은날 서울시립대 입학식에 운영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축사를 통해 “실패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작은
꿈을 설정해 그 꿈에 맞춰 인생을 사는 게 더 문제”라며 큰 꿈과 비전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김병채기자 haasskim@munhwa.com

 

그렇다 해도 아직 한국 사회는 리더를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 ‘세상을
좀더 살만하게 만들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사람’ 보다는 ‘남보다 앞선
사람’ ‘남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듯하다.

 

리더에 대한 이런 인식-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이 리더’
라는
의식이 우리 사회를 이처럼 척박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은 아닐까.

 

경쟁에서 이기는 것, 경쟁력을 갖추는 것….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1970, 80년대에는 리더에게도 이것이 절체절명의 미덕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 경제, 사회를 막론하고 리더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가치 –
세상 사람들을 위하는 높은 이상(理想)과 사회 공동체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걸
실천할 만한 능력을 강조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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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RTY 경제학

2005-12-16

 

컴퓨터 키보드의 영문 자판은 왼쪽부터 QWERTY의 순서로 배열된다.

 

1870년대 타자기용으로 개발된 이 자판은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하기보다 당시 기계적으로 실현 가능한 수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후 타자기가 널리 보급되자 비능률적인 자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잇따랐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편리하고 타자 속도도 빠른 다른 자판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존 자판에 익숙한 타이피스트들이 많아 다른 자판이 발붙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QWERTY 자판의 사례는 ‘경로 의존 현상’이라는 경제이론이 되었다. 즉, 시장원리에 따라 가장 훌륭한 제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우연한 사실’에 따라 어떤 제품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으로도 활용된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우연’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산업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뭐 대단한 이론 같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960, 70년대 정부 주도로 산업을 일으킨 한국은 QWERTY 경제학을 알기 전에 이미 이를 실천했다.

 

지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울산과 창원 공단이 이렇게 만들어졌고 지금 한국을 먹여 살리는 철강 자동차 조선 산업이 이렇게 키워졌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방식의 경제개발이 어렵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의 협약에 따라 정부가 개별 산업을 직접 육성하거나 지원하지 못한다. 정부가 자원을 집중 투입해 특정 산업을 지원한다는 계획은 우선 국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터이다.

 

그 대신 정부는 기초연구개발을 지원하고 국내외 기업과 대학, 연구소들이 활동하기 좋은 여건을 마련함으로써 ‘경로 의존적 발전’을 이끌 수 있다. 중국의 중관춘(中關村)이나 스웨덴의 시스타 같은 산업클러스터가 정부의 직간접 지원으로 조성됐다.

 

한국도 경제자유구역이나 기업도시를 만들어 혁신과 발전의 핵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2003년 시작된 인천, 부산-진해, 광양 등 경제자유구역은 아직도 이렇다 할 외국 기업이나 병원, 대학을 유치하지 못하고 황량하기만 하다. 기업도시는 기업 없는 도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싱가포르가 2003년 바이오폴리스 건설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GSK 노바티스 존스홉킨스 등 세계적인 기업 및 대학 연구소들을 유치한 것과 대조적이다.

 

과감한 유인책을 써서 돈과 인재를 끌어 들여야 할 텐데 정부는 이런저런 힘에 떼밀려 ‘안 되는 걸 어쩌나’ 식이다. 전국적으로 공공기관 이전 등 신도시를 너무 많이 추진해 자원이 분산되는 것도 문제다.

 

해마다 자금융자와 기술지원 등으로 막대한 예산을 들이는 중소기업 지원은 ‘나눠 주기’가 많아 기업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현 정부는 다양한 경제 정책을 내놓았지만 각각이 경쟁력 강화정책인지 복지정책인지, 국토균형정책인지 국가발전전략인지 목표마저 헷갈린다. 이러니 말만 무성하고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지금이라도 누군가 구심점이 되어 21세기 형 ‘QWERTY 자판’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 세대를 먹여 살릴 성장 동력은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신연수 경제부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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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를 어쩌나

2006-01-06

 

사례1: 한 중견기업 사장은 후두암 진단을 받고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미국 병원들은 후두암 수술 경험이 별로 없고 한국 병원이 우수하니 그리로 가라”는 조언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와 수술을 받았다.

 

사례2: SK는 예치과 새빛안과 탑성형외과 등 전문 병원들과 제휴해 2004년 중국 베이징에 ‘SK아이캉병원’을 세웠다. 진료비가 일반 병원의 수십 배에 이르는 이 병원은 중국 저명인사들이 즐겨 찾는 고급 병원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국내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의료산업의 현실을 보여 주는 사례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도 ‘병원 기업’을 허용한다. 태국은 일찌감치 의료서비스와 관광을 연계한 상품으로 돈을 벌고 있고, 인도도 헬스케어 중심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의료 허브를 국가 비전으로 내세우고 2010년까지 100만 명의 환자를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에서는 아직 주식회사 등 영리법인이 병원을 운영할 수 없고, 병원 광고 제한 등 정부의 규제가 많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영리 법인 허용에 대해 “의료비가 비싸지고 공공 의료체계가 무너진다”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가 의료서비스를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삼아 뛰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공공성을 강조한다면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국내 손님까지 뺏기게 될 것이다. 민간의 풍부한 돈과 창의성을 끌어들여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의료분야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발달할수록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보살피는 복지부의 역할은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복지부는 의료산업을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고령화시대 의료산업은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과 연계해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미래 산업에서 더 많은 일자리와 부(富)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복지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이제는 재경부보다 복지부가 더 중요한 경제 부처”라고 말했다. 경제개발 시대에 비해 재경부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보다는 경제에서 복지부의 역할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넓어지고 높아진 책임을 다하려면 복지부가 변해야 한다.

 

경제계는 복지부를 어떻게 보고 있나. 복지부 출신으로 기업에 간 한 인사는 “복지부는 아직도 눈이 국내와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개방과 규제 완화라는 큰 흐름에서 비켜 있는 분야는 교육과 의료뿐”이라고 말한다.

 

외국 기업들은 한국 정부의 정책이 불투명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중 상당수가 의료 제약 분야다.

 

한마디로 복지부에 국제 감각과 경제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 큰 병에 걸려도 집안이 망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는 우리가 계속 추구해야 할 가치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의료산업에 날개를 달아 주는 일도 더 미룰 수 없다.

 

경쟁력과 사회복지, 두 가지 다 복지부가 포기해선 안 되는 목표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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