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탐욕, 기업가의 두 얼굴

“기업은 2류, 행정과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 이 말은 정치인과 관료들을 분노케 했다. 삼성은 후폭풍을 막느라 곤욕을 치렀지만 공감하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드디어 경제계가 정치권보다 우위에 올라섰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한국 기업들은 오랫동안 정치권에 기를 못 펴고 살아왔다. 정부의 육성과 지원으로 자라난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독대입니다” 하는 전화가 오면 돈을 뭉텅이로 싸 갖고 들어가야 하는 게 대기업 총수들이었다. 인재들도 기업보다는 군인이나 공무원을 선호했다.

 

그러던 경제계가 1990년대 이후 양적 질적으로 팽창하면서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그룹이 됐다. 정부 법조계 의료계 교육계가 독점적 지위에 안주하고 있을 때 치열하게 경쟁하고, 소비자의 만족을 얻기 위해 노력한 기업들은 나날이 발전했다. 기업들은 어느새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문화, 새로운 국제 흐름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인공이 됐다.

 

세계 역사를 봐도 비슷하다. 산업혁명 이후 기업들은 인간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철도 석유 자동차 세탁기 컴퓨터 같은 인류 문명은 기업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는 인간의 문화와 사고방식까지 바꿨다. 조지프 슘페터는 이처럼 경제발전을 이끄는 힘을 혁신(innovation)이라고 봤고, 혁신을 이끄는 사람을 기업가(entrepreneur)라고 했다. 신제품을 만들거나 생산방식을 바꾸는 일,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고 새로운 원자재를 찾아내는 일 모두가 혁신에 속한다.

 

기업가를 혁신하게 만드는 건 주로 이익이다(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는 기업가도 있긴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우리가 저녁식사를 차릴 수 있는 건 정육점 주인이나 빵집 주인의 자비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이익, 즉 돈벌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대로다.

 

이익 추구 그 자체는 선(善)도 악(惡)도 아니다. 보상이 없다면 어떻게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기업의 이익 추구가 도덕과 법을 벗어난다면 비난과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외에서 논란이 된 사건들은 기업이 잘못된 이익 추구를 위해 어떻게 혁신에너지를 사용하는지 보여준다.

 

애플과 구글은 해외 조세피난처에 자회사를 차려놓고 엄청난 이익을 이전하는 방법으로 수십조 원의 세금을 내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애플과 구글이 동원한 탈세 기법은 ‘새롭고 혁신적인’ 것이 많아 화제다.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21일 청문회에서 “애플은 조세회피를 하는 데도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를 실천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애플의 광고 카피였던 ‘다르게 생각하기’는 애플의 창의성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조세피난처에 자금을 빼돌린 기업가들의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CJ그룹은 영화와 방송에 많은 돈을 투자해 문화산업 발전에 기여했고, 식품산업 현대화에도 긍정적 역할을 했다. 그 훌륭한 자원을 자금세탁과 탈세에 이용했다면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부동산 여왕 리어나 헴슬리는 “세금은 멍청한 소시민이나 내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부자와 기업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큰일이다.

 

사람의 ‘리비도(libido)’가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되느냐, 사회를 향한 폭력으로 치닫느냐는 주변 환경에 달렸다. 요즘은 기업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레이저 눈총’을 쏘자 한화 신세계 SK GS그룹이 잇달아 비정규직 사원들을 정규직으로 바꿨다. 현대자동차와 LG는 계열사에 맡기던 일감을 중소기업들에 대폭 개방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엔 왜 안 했을까.

카테고리 : 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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