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 우리 역사 RSS feed for this section

[지양미]훈민정음 창제 원리 없앤 조선의 비극

    지양미 고대사연구가 hanmut3@hanmail.net 인하대 대학원 박사수료             천지인 합일 원리에 따라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 그의 아들인 세조도 우리 고유사상에 정통했으나 조카(단종)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다는 것 때문에 우리의 고유 사서를 없앴다. 그 비밀을 추적한다.     우리는 늘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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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한반도에서 일어난 태평양전쟁

[필자 권주혁은 국제정치학박사이자 남태평양 연구소장이다. 북태평양의 여러 섬을 누비며 태평양전쟁을 전문으로 추적해온 전사 마니아이다. 헨더슨 비행장(태평양 전쟁의 갈림길)을 비롯해 16권의 전사 책을 낸 바 있다.]           항공모함 6척을 포함한 일본 해군기동 부대가 1941년 12월 8일, 하와이 진주만의 미국 태평양 함대 기지를 기습함으로써 발발한 태평양 전쟁은 이후 태평양 전역을 전투장으로 만들었다. 전사(戰史)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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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활자 출토로 본 고려의 힘 “전성기 영토 고구려보다 컸다”

만월대 금속활자 출토로 본 고려의 힘 전성기 고려는 고구려보다 컸다. -고려사 “우리나라의 넓이는 만리이다”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국사 교과서들은 고려의 국경을 청천강에서 함흥을 잇는 선 정도로 그려놓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려를 거란과 몽골 홍건적 등의 침입을 받은 약한 나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기록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조선 초 만든 고려 정사(正史)인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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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땅’ 고구려 古土를 가다⓸

            장수태왕은 南進 아닌 西進     요동에 있는 평양을 이북의 평양으로 끌고 온 것은 조선이다.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고려를 뒤집은 이방원이 명나라 황실에 ‘화녕과 조선 중에 나라 이름을 정해달라’고 하자 명 황제가 조선을 골랐다. 그때 조선은 요동을 장악하지 못했다. 요동을 수복하려는 최영을 죽이고 등극한 것이 이성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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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땅’ 고구려 古土를 가다⓷

            고조선 평양이 고구려 평양     평양성을 수도로 삼은 고구려는 95년간 번성하다, 다시 심각한 위기를 만났다. 모용황이 이끄는 전연(前燕)군의 압력을 받게 된 것. 고구려는 선비족이 세운 전연과 사이가 좋지 않아 오랫동안 싸웠는데, 그러한 전연이 모용황 시절 강성해졌다. 모용황이 침입할 것이 분명해지자 고구려는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수도인 평양성을 증축했다(고국원왕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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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땅’ 고구려 古土를 가다⓶

    “지안엔 국내성 아닌 黃城”     고구려사를 바로 세우려면 고구려의 수도와 영토가 어디였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먼저 수도 문제를 살펴보자. 우리 국사 교과서는 중국 지안을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 있었던 곳으로 비정한다. 그러나 이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맞지 않다. 그런데도 누구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뜻있는 이들은 “한국 역사학계는 죽었다”라고까지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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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땅’ 고구려 古土를 가다⓵

    “고구려의 수도 평양은 이북 아닌 요동에 있었다!”     ● 삼국사기의 ‘東’자를 해석하지 않은 역사학계 ● 지안(集安)엔 국내성 아닌 황성이 있었다 ● 장수태왕은 이북 평양으로 천도한 적 없다 ● 말로만 식민사관 탈피, 실제론 일제 史觀에 묶여     괄목상대(刮目相對). 오랜만에 찾아간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가 그러했다. 밝아지고 화려해지고 북적였다. 이유는 한국인이 풀어놓는 ‘돈’ 때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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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중국 해남도 조선인 천인갱 사건을 아는가

    중국 하이난도 천인坑의 조선 원혼 광복 직후 일제 학살로 1000여 명 희생   1945년 8월 15일은 내 나이 여덟 살이던 여름날이었다. 개울에서 친구들과 물장난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면사무소(경북 문경군 동로면) 쪽에서 커다란 함성과 함께 꽹과리와 징소리가 들려왔다. “해뱅이다!” “만세!” 라고 외치는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었다. 나는 해뱅(해방의 경상도 사투리)이 무엇인지 몰랐다. 왜 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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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난중일기로 만난 이순신⑧충무공의 飮酒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goldagebook@naver.com     치유와 소통의 수단으로 술을 마셨다     이순신은 조선의 여느 양반처럼 音律을 즐겼다. 그러나 절도가 있었다. 여색을 탐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고통을 씻고 부하와 소통하기 위해 격조 있게 즐겼다. 우리도 그렇게 음주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1592년 1월 1일부터 노량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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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난중일기로 만난 이순신⑦승리를 향한 경영술

    상생과 승리를 위한 혁신 경영가         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역사 칼럼니스트 goldagebook@naver.com     5백년 역사를 지닌 ‘조선’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학자든 일반인이든 많은 사람들은 흔히 ‘성리학(性理學)의 나라’라고 한다. 하나 더 붙인다면, ‘선비(士)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합쳐 보면, ‘양반 문인이 주도한 사변 철학이 지배한 정신문명의 나라’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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