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구주대첩 준비하라-북한 핵미사일 제거 시나리오

 

 

화성-14형 발사를 모니터로 지켜본 후 환호하는 김정은. 그의 오른팔 뒤로 방현비행기공장의 지붕이 보인다. 이러한 자료를 모아놓으면 북한이 유사시 어디에서 미사일을 쏘는지 짐작할 수 있다---노동신문

 

 

제2의 구주대첩 일어날 것인가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7월 4일 오전 9시 40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쏜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은 어떤 곳인가. 우리에겐 구성보다는 구주(龜州)가 더 익숙하다. 고려 성종 12년(993년) 거란이 1차 침입을 하자 서희가 거란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거란군을 철수시키고 강동6주를 얻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로 얻은 강동6주 중의 하나가 구주였다.
고려 현종 9년(1019년) 구주는 우리 역사에 빛나는 이름을 남겼다.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이 3차 침입을 해 개경까지 접근했다가 반격을 받아 후퇴하다 구주에 이르자, 강감찬이 급습을 해 대승을 했다. 그 유명한 구주대첩(귀주대첩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을 이룬 것이다. 고려는 몽골의 지배를 받다 독립했으나 이성계에 의해 무너져 조선이 들어섰다.

 

 

구주대첩을 이룬 고려 강감찬 장군 영정. 북한이 화성-14형을 쏜 구성이 고려 때의 구주이다.

 

 

그러한 혼란으로 구주대첩은 잊혀졌다. 조선에는 구주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계유정난으로 왕위에 오른 세조가 정주(定州)의 북쪽을 떼어내 그곳을 고려 때의 구주라고 하며 구성군(龜城郡)을 만들었다. 광복 후 구성군에 방현면이 만들어졌다. 1967년 북한은 구성군을 구성시로 바꾸면서 방현노동자구를 설치했다. 방현노동자구에 북한이 상투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해온 방현비행장이 있다.

 

 

열차로 실어 방현역으로 보내

 

방현비행장이 있는 구성시는 평안북도 정중앙에 있다. 서해위성발사장이 있는 철산군과 핵시설이 있는 영변군과 가깝다--다음 백과

 

 

구성과 그 주변은 북한의 전략시설이 밀집해 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북한의 핵시설이다. 북한은 남한과 달리 우라늄 광산이 많다.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해서는 정련부터 해야 한다. 구성시와 그 북쪽에 있는 천마군과 대관군 사이에는 천마산이 있는데, 이 천마산 지하에 우라늄 정련공장이 있다.
구성시에서 동남쪽의 태천군을 지나면 영변군이 나온다. 천마산에서 나온 정련 우라늄은 영변에 있는 우라늄농축공장에서 핵무기급 우라늄과 발전용 우라늄으로 농축된다. 사용후핵연료는 그곳에 있는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돼 플루토늄을 추출한다. 이러한 핵물질로 탄두를 만드는 곳이 남포에 있는 잠진미사일공장이다. 지난해 김정은은 이곳을 방문해 KN-08에 올린다는 핵탄두를 시찰한 바 있다.

 

 

2016년 3월 북한이 핵탄두라고 주장한 물체를 살펴보는 김정은. 북한은 이 탄두를 생산하는 공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정보당국은 남포에 있는 잠진미사일공장으로 확신하고 있다. 한미정보당국은 김정은이 보고 있는 이 탄두는 한미연합군이 KN-08로 명명한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것으로 본다. 화성-14형과 12형에 탑재하는 탄두도 이 공장에서 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이 공장은 유사시 한미 연합군이 제일 먼저 파괴한다.---노동신문

 

 

미사일 부품은 평양시 만경대약전공장 등에서 제작한다. 그리고 평양시 산음동미사일공장에서 최종 조립된다. 은하 같은 우주발사체도 그곳에서 조립한다. 스커드 같은 작은 미사일은 TEL이라고 하는 이동식 발사차량에 실려 산음동미사일공장에서 바로 현지 부대로 간다. 그러나 큰 것은 2,3개 나눠 열차로 실어 보낸다. 은하는 서해위성발사장, 무수단은 함북 화대군 발사장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북한은 무수단도 개발을 완료됐다고 판단하기에 요즘은 서해위성발사장으로만 2,3개로 나눈 미사일과 우주발사체를 열차로 실어 보내고 있다. 위성발사체는 워낙 크기에 서해위성발사장 발사대에서 최종 조립된다. 이 작업은 노지(露地)에서 이뤄지기에 한미정보당국의 첩보위성에 고스란히 포착된다. 그러나 한미정보당국은 북한이 쏠 때까지 일체 모르쇠로 버틴다.

 

 

방현비행장(왼쪽 위)과 방현비행기공장(오른쪽 아래)--구글어스

 

 

미사일은 방현역에서 내려 방현노동자구에 있는 방현비행기공장으로도 불리는 구성공작기계공장으로 보내져 최종 조립된다. 이 공장은 상당부분이 산속 갱도에 들어가 있다. 출구만 방현비행장 등으로 나와 있다. 조립을 마친 미사일은 TEL에 실려 갱도를 통해 밖으로 나온 다음 발사를 한다. 5월 14일 북한이 화성-12형을 발사하기 전 김정은은 이 공장을 방문했었다.
7월4일 북한이 ICBM을 발사하기 1주일여 전부터 우리 군 레이더는 평양에서 구성으로 여러 대의 고속기가 뜨는 것을 탐지했다. 정기 항로가 없는 곳을 비행하니 전투기급이 분명했다. 그런데 작전기동을 하지 않고 고속 비행만 했으니, 김정은을 탄 전투기가 다른 전투기의 호위를 받아 날아간 것으로 판단되었다.
김정은은 러시아제 IL-62를 개조한 ‘참매-1호’ 전용기를 갖고 있지만, 잘 타지 않는다. 그것은 눈속임용으로 사용하고 실제로는 전투기를 타고 고속으로 이동하고 있다. 때문에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중요한 실험 발사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7월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로 현실화되었다.

 

 

GBU-43이란 공식 이름보다는 모든 폭탄의 어머니란 별명이 더 유명한 모압(MOAB) 폭탄. 산 하나를 무너뜨릴 수 있으니 북한의 갱도 공장을 파괴할 수 있다.--미 공군

 

 

 

MOAB으로 폭격해야

 

7월4일 ICBM 발사를 한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발사 장소를 감추려는 듯 배경으로 산만 찍힌 사진을 공개했다. 그런데 발사 장면을 모니터로 본 후 환호하는 김정은을 찍은 사진에서 김정은의 오른쪽 팔 너머로 파란색 지붕이 보였다. 구성시에서 이러한 지붕을 가진 곳은 방현비행기공장뿐이다. 때문에 우리 군은 ICBM 발사 위치를 정확히 확인했다.
때문에 방현비행기공장과 미사일 발사처는 평양의 산음동미사일공장, 남포의 잠진미사일공장 등과 함께 유사시 한미연합군이 최초로 공격하는 표적이 된다. 북한이 철산군에서 우주발사체를, 구성시에서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종심이 깊어 방어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지원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현비행기공장. 방현비행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구글어스

 

 

유사시 한미 공군기가 이곳을 폭격하려고 날아가면, 중국이 위협을 느껴 대응을 한다. 북한은 뜻밖의 지원군을 얻는 것이다. 때문에 이곳에 있는 지하 공장을 없애려면 B-2 스텔스 폭격기로 ‘모든 폭탄이 어머니’라는 별명을 가진 초대형 폭탄 모압(MOAB)을 싣고 가 투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갱도진지 같은 작은 표적은 현무-3나 토마호크, SLAM-ER, 타우르스 같은 초정밀 순항미사일을 발사해 파괴한다.
북한 미사일이 이미 갱도 밖으로 나와 발사 준비에 들어갔다면, 시간이 없으니 7월 5일 우리도 위력발사를 한 현무-2와 ATACMS 탄도미사일을 날려야 한다. 이 미사일들은 15분쯤 뒤 방현 비행장 일대를 초토화할 수 있다. 이 공격이 성공하면 우리는 제2의 구주대첩을 이루는 것이 된다. 미국은 북한이 ICBM 개발을 완료했다고 판단했으니 구주대첩의 날은 그리 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정훈 에 대해

hoon@donga.com 주간동아 편집장과 논설위원 등을 거친 동아일보 기자. 묵직하고 심도 있는 기사를 많이 써 한국기자상과 연세언론상, 삼성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국방과 정보 원자력 우주 해양 산악 역사에 관심이 많고 통일을 지론으로 갖고 있다. 천안함 정치학, 연평도 통일론, 한국의 핵 주권, 공작, 발로 쓴 반동북공정 등을 저술했다. 기자 인터뷰 보기 - "국정원 신화 벗기고 싶었다"

댓글(5) “제2 구주대첩 준비하라-북한 핵미사일 제거 시나리오”

  1. 김영삼 7월 9, 2017 at 11:24 pm #

    중공이 중국으로 변했죠.곧 중국도 자유중국으로 변합니다.그러면 북한은 자동으로 처리 됩니다.옛날 고르바초

    프가 개혁.개방 이렇게 지껄이다가 자신이 민주세력에게 무너졋죠,,,,,,,,,중국의 현제 공산주의 일당독제도 그렇게

    오래 못갈것입니다.중국이 자유중국되면 북한지도부는 그냥 붕괴됩니다

    [고르비가 이전 지도자와 달리 자기 부인옷잘 입히고 왕비처럼 치장해서 일반대중에게 자랑했다=구소련붕괴]

    [시진핑이 이전지도자와 달리 자기 부인 옷잘 입히고 왕비처럼 치장해서 일반대중에게 자랑햇다=곧중국 붕괴]

  2. 알간모르간 7월 11, 2017 at 3:06 pm #

    북한을 삽시간에 폭격하여 완전히 초토화 그것이 끝나는대로 남한에선 반동노무새끼들종북 소탕작전 종북들을 한놈도 빠짐없이 즉사시켜버려

    미사일수만발 전략 폭격기 타격 북한핵 도발에 대한
    선제 공격은 그동안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북한이 알래스카 주를 공격할 수 있는 북한통신내용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 이후 이것이 더는 상상하지 못할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3. 알간모르간 7월 11, 2017 at 3:22 pm #

    박원숭일자리추경 긴겨울기업들수출망 문재에게말핻나 엠씨무현현대차 안팔리는대 삼송리재룡부회장구치소에서갇혀 엉뚱한결정내리는

  4. 알간모르간 7월 11, 2017 at 3:31 pm #

    어느나라국회인가 여름휴가갇노 추경안처리
    전두황미납금반갖다바치 박그내못걸어다니는병동

  5. 력사멀알고씨부리나 7월 11, 2017 at 4:36 pm #

    과거부터 큰 나라 사이에 끼여서
    끊임없이 침략을 받아오면서도 은근과 끈기로서 실낱처럼 가는 목숨을
    비굴하게 유지해온 민족으로
    한편으로 강인하다는 점을 말하려는 듯 하면서도
    결국에는 약소국 민족

    [조선시대에는 7차례]
    우선 조선시대를 보면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것이
    제국주의 시절에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이 침략하거나 공격한 사실이 있다.
    그 이전에는 임진왜란 등 일본이 두 차례, 병자호란 등 청 두 차례다.
    그래서 조선시대 통틀어서 외국으로부터의 침략을 7차례로 계산한다.
    청일 전쟁때와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 군대와 청나라 군대, 러시아
    군대가 진입하기는 했지만 반드시 침략으로 규정하기가 어려워서 제외.

    [고려시대는 20차례]
    고려시대때는 거란이 6차례, 몽골이 7차례, 홍건적 2차례, 그리고
    여러 차례의 왜구 침략이 있었다. 홍건적의 침략은 특정 국가를 대표하는
    군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워낙 대규모인데다
    스스로 독자적인 정치집단이라고 주장했기때문에 침략을 받은 나라
    입장에서는 외국의 침략 사례로 포함시켜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러나 왜구의 침략은 규모와 형식을 볼 때 외국으로 분류하기에
    어림없을 정도의 소규모 침략이 많았다. 따라서 왜구의 침략 중에서
    외국의 침략으로 분류할 정도의 규모가 되는 것이 대체로
    5차례 전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고려시대에 침략을 받은 회수는 20회로 계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후기 신라 시기에는 1차례]
    후기 신라 시기에 외국의 침략을 받은 것은 삼국통일 직후
    당나라가 10년동안 신라를 공격한 것 말고 뚜렷하게 없다.

    중간집계를 해보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 이후
    지난 1,300년 동안 우리는 외국으로부터
    약 30회 정도 침략을 당한 사실이 있다.

    [삼국시대 - 고구려]
    대체로 50회 정도의 침략을 받았다.

    정리하면 당나라로부터 십여차례, 수나라로부터 네차례,
    선비족인 모용씨의 나라인 연나라가 십여차례,
    중국의 삼국시대 나라인 위나라가 한 차례 침략,
    한나라 시절에 광무제와 왕망이 한 차례씩 침략한 적이 있고
    요동 태수, 현도 태수, 유주 자사 등이 몇 차례씩 침략했는데
    한나라 시절을 모두 합쳐 20회 미만이다.

    [삼국시대 - 백제]

    700년 가까운 역사 중에서 외국의 침략을 받은 것은
    한 차례로 정리해야 한다.

    백제는 신라, 고구려, 말갈, 낙랑 등의 정치 집단과
    끊임없이 전쟁을 했지만 이것은 대외 침략 사례로 구분하기 어렵다.
    당시에는 상호간에 외국이라는 개념이 있었겠지만
    지금의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조상님이 됐기때문에
    외국과의 전쟁이 아니고 내전으로 구분하는 것이 마땅하다.

    [삼국시대 - 신라]
    신라가 외침을 받은 사례는 없다. 왜구의 침략과 백제의 침략과
    고구려의 침략과 말갈의 침략이 다수 있었다.
    그러나 왜구의 침략의 경우 국가적인 차원의 군대 파견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본다.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은 당연히 내전으로 간주한다.
    말갈의 침략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말갈은 이 시기에는 고구려에 부속한 정치집단으로
    고구려의 침략으로 간주하는 것이 적절하다.

    낙랑의 침략 사례가 여러 차례 기록돼 있다.
    그러나 낙랑은 중국 중앙 정부의 지시를 받았다는 근거가 희박하고
    결국 우리 나라의 영토로 통합됐다는 점에서
    일단 내전의 사례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신라에 대한 외국의 침략은 우리가 계산할 때
    논리적으로는 없다.

    [고조선]
    고조선때는 한나라의 침략을 받은 것이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이제 정리를 하면 지난 2천 5백여년동안 우리 나라 역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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