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단상①설거지와 주적(主敵)

4월 19일 KBS의 스탠딩 토론회. 이날 문재인 후보는 '북한이 왜 주적이냐', '보안법은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동아일보

 

4월 19일 KBS 스탠딩 토론회 후 때 아닌 ‘주적 논쟁’이 일었다. ‘국방백서에는 주적이란 말이 없다’는 것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맞는 말이다. 국방용어 중에는 주적이라는 말이 없다. 주적은 노태우 정부 때 동아일보 정치부의 김재홍 기자가 만들어낸 말이다. 그런데 어감이 좋아서인지 회자되면서 원래부터 있던 말인 양 고착화 돼 버렸다.
적(敵)은 적일뿐이다. 적에 주적(主敵)이 있으면 부적(副敵) 종적(從敵) 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것은 없다. 국방용어가 아니었기에 주적(主敵)은 국어사전에도 등재돼 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많이 회자된 탓인지 요즘의 인터넷 국어사전에는 올라가 있다. 주적이란 말이 만들어지기 전, 내가 상대해야 할 적 가운데 가장 큰 적은 ‘대적(大敵)’으로 표현됐다. 대적이 주적으로 바뀐 것이다.

 

주적에 대한 잘못된 이해

 

대적을 영어로는 main enemy 혹은 arch enemy라고 하는데, 노태우 정부 시절 김기자가 이를 주적(主敵)으로 번역해 기사를 썼던 것.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펼치면서 중국 소련 등 적성국가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도 완화시켰다. 그에 대한 반발로 main enemy 논쟁이 일자, 그는 이를 주적으로 번역해, ‘주적 대비를 못한다’는 요지의 기사를 만들었다. 이 기사가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 주적은 순식간에 시사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국방용어는 아니었기에 국방백서 등에는 여전히 쓰이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노태우 정부가 한 것을 깔아뭉게려 했으니, 주적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해져 마침내 주적을 국방백서에 올리게 하였다. YS의 뒤를 대북 유화론자인 김대중이 이었는데, DJ 정부는 주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더 나아가 북한을 적으로도 부르지 못하게 했다. 주적과 함께 적이라는 단어도 공식표현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주적의 생명력을 강화시켰다. 이북을 주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진 것이다.
국방을 하려면 속으로는 적에 대한 젹개심을 키워도 겉으로는 감춰야 한다. 북한이 우리의 대적(大敵)임엔 틀림없지만, 때론 대화의 상대이기도 하다. 승리를 위해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이간질시켜야 하니, 북한 전체를 적대시 하는 것은 삼갈 필요도 있다. 그래서 적을 지칭할 때는 대적(大敵)처럼 강조한 단어는 쓰지 않는다. 무미건조하게 ‘적’으로만 지칭한다.
외교 관계를 트는 것은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끼리도 경쟁할 수가 있다. 외교 관계를 텄음에도 그 나라의 침략에 대비해야 할 때는 공식적으로는 그 나라를 ‘위협’이라고 표현한다. 시사적으로는 ‘가상적’으로 부른다. 이것이 외교의 A B C 이다.
그런 점에서 “주적이란 말이 없다”는 문재인 후보 측의 설명은 정확하고, “북한을 주적으로 불러야 한다”는 유승민 후보의 주장은 부정확하다. 유승민 후보의 주장이 옳으려면 그는 “북한을 대적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어야 한다.

 

문재인은 군 통수권자의 책무를 알고 있는가

 

그러나 다음 단계로 들어가면 문 후보의 주장은 맹랑한 것이 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판단까지 든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자이다.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동지’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김정은이 제일 먼저 승계한 것이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 동지였다. 그리고 노동당 1비서와 제1 국방위원장을 맡았다. 미국 대통령도 군 통수권을 넘겨받는 것으로 권력을 이양한다. 우리 대통령 역시 취임식에서 군 통수권을 넘겨받는다.
군을 운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敵)과 아(我)를 구분하는 것이다. 적과 아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는 통수권자가 될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은 북한 지도부와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방백서 등을 통해 적으로 규정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적을 적으로 볼 수 있는 이’가 대한민국 통수권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에 나서야 한다. 그럴 의사와 의지가 없다면 대권에 도전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적과 대화할 수는 있다. 전쟁 중에도 회담할 수 있다. 그러한 회담의 결과물로 종전(終戰)이나 정전(停戰)이 이뤄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를 한다고 해서 적을 적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이는 정말 큰 오산이다. 김대중-노무현 처럼 북한과 대화를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그는 북한 지도부와 인민군을 계속 적으로 보고 있어야 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그날 유승민 후보가 문 후보에게 “북한을 주적으로 부를 수 있냐”고 한 질문은 “북한을 적으로 보느냐”는 질문으로 이해된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대통령이 북한을 주적으로 보면 어떻게 하느냐”고 응답했는데, 이는 매우 매우 잘못된 것이다. 북한 지도부 등은 적으로 보되 대화를 하겠다는 식으로 대답했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이 없다면 그는 대한민국 헌법 체제에서 진행되는 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말았어야 한다.

 

보안법 폐지와 수정을 주장하면서 평화통일을 하겠다고?

 

그리고 그는 더 놀라운 대답을 했다. 홍준표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의 민정수석을 하던 시절 송영근 기무사령관을 불러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총대를 매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무 찬양을 내용으로 한 보안법 7조는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론한 것이다. 이는 그의 이념성과 대적관(對敵觀)을 보여주는 중요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7조를 폐지하는 쪽으로 수정해 버리면 보안법은 더 이상 보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을 막연히 ‘반(反)국가단체’로만 규정하는 선언적인 법률이 돼 버린다. 이러한 답변은 ‘북한을 적으로 부를 수 없다’는 그의 먼저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러하니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을 갖춘 이인지 의심스러워 지는 것이다.
자칭 민주인사라고 하는 이들은 서독이 이룬 평화통일을 통일의 교범으로 꼽는다. 독일 통일을 이룬 핵심 세력은 독일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BfV)이다. 우리의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기구인데, 국내 정보를 주로 다룬다. 이 BfV가 활동 근거로 삼고 있는 법이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비슷한 ‘헌법수호법’이다.

 

동방정책이 아니라 헌법수호법이 독일통일 만들었다

 

독일의 평화통일은 BfV 등이 헌법수호법에 의거해 철저히 공작했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물론 서독 안에서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세력도 척결했다. 통일되기 20여년 전에 펼쳐졌던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이 독일 통일을 만든 것이 아니라, 헌법수호법에 의거한 BfV 등의 활동이 평화통일을 만든 것이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동서독 대화를 가능케 했는지는 몰라도, 통일의 단초는 만들지 못했다.
햇볕정책에 의해 우리가 북한과 대화를 시도한 지 벌써 17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주력할 것은 국가보안법에 의거해 평화통일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지도부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보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거듭된 핵과 미사일 개발 때문에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도 참여한 유엔 안보리로부터 8차례 제재안을 받았고 공동성명은 수도 없이 받았다는 것을 대권 주자들은 외면하지 말하야 한다. 국제사회가 외면하는 북한을 대한민국이 적으로 보지 않겠다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판단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가 되면 그 순간부터는 국가가 부여한 명령을 수행해야 하니, 자신의 판단을 국가 명령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어긋나면 그때부터 국정은 삐걱거리고, 국가는 위기에 빠진다. 그러한 문제를 없애기 위해 우리는 대통령 당선자에게 ‘헌법을 준수한다’는 내용의 선서를 하게 한다. 헌법과 헌법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의 준수는 매우 중요하다. 이정미 헌재 소장 대행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해야 하는 한 이유로 ‘헙법과 법률을 수호할 의지 부족’을 들었다. 마찬가지로 대통령 당선인이 대한민국 헌법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밀어내야 한다.
대적관이 문제가 되자 문 후보는 ‘적(敵)은 국방부장관이 불러야 한다’란 대답을 했다. 이는 국방부장관이 군 통수권자라는 뜻인지라, 완변한 헌법 위반이 된다. 헌법은 통수권자는 국방부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이라고 규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장관은 대통령을 대신히 통수권을 행사해주는 사람이지, 통수권의 주인은 아니다. 대통령이 적을 적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데, 그의 위임을 받은 국방부장관이 적을 적으로 부르는 것은 있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한 현상을 우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이미 경험했다. 적을 적으로 부르고 싸우는 것은 국방부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이 결정해야 한다.

보안법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것은 북한 지도부와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을 형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형법에는 적에 대한 개념이 없다. 적(敵)은 국가가 결정한 정치적인 결정이니, 보안법을 따로 만들어 이를 어긴 이를 처벌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보안법을 바꾸고 폐지하겠다고 했으니, 문 후보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통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워 지는 것이다. 형법으로부터 피의자의 인권을 지키는 인권변호사와 적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대통령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면 정말 곤란하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이러한 것을 깨닫고 “통치와 정치는 다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설거지론은 사과했는데

 

스탠딩 토론회의 말미에 홍준표 후보가 ‘설거지는 여성 몫’이라고 한 발언 때문에 코너에 몰렸다. 그는 ‘스트롱 하게 보이려고 그랬다’고 변명하더니, “잘못된 말이다”라고 사과했다. 그러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홍 후보를 비난하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사과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사과 이전에 주목한 것이다. 사과를 한 이는 비난하면서 사과를 하지 않는 이는 비난하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인가?
대통령 선거는 제대로 된 ‘설거지론’을 가진 이를 뽑는 행사가 아니다. 지금 위중한 것은 안보다.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가 수호’이다. 그렇다면 바른 국가관과 안보관을 가진 이를 선별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안보관을 가진 후보라면 이를 수정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설거지 문제에는 흥분하면서 주적과 보안법 문제는 떠들다 수그러지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나라인가’란 생각을 해본다.

이정훈 에 대해

hoon@donga.com 주간동아 편집장과 논설위원 등을 거친 동아일보 기자. 묵직하고 심도 있는 기사를 많이 써 한국기자상과 연세언론상, 삼성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국방과 정보 원자력 우주 해양 산악 역사에 관심이 많고 통일을 지론으로 갖고 있다. 천안함 정치학, 연평도 통일론, 한국의 핵 주권, 공작, 발로 쓴 반동북공정 등을 저술했다. 기자 인터뷰 보기 - "국정원 신화 벗기고 싶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