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사건 분석⑤(끝)박근혜의 살신성인

3월 31일 구속이 결정돼 올림머리를 내리고 서울구치소로 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동아일보

 

 

 

아이러니컬한 사건들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양강 구도를 보이고 있다. 문 후보는 촛불 시위에 참여했던 세력으로부터 주로 지지를 받는 것 같고, 안 후보는 촛불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던 범 보수 세력이 응원군인 것 같다. 이러한 분포에서 발견되는 현상은 19대 대선은 친문(親文) 대 반문(反文) 구도라는 점이다.
안 후보는 절대로 보수가 아니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정당의 주자였는데, 어느 틈엔간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아무리 봐도 그는 안보 전문가가 아니다. 그의 주변에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그가 신뢰하는 안보 전문가가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방향을 바꾼 것은 ‘문재인만은 안 된다’고 한 반문 세력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의 많은 국민들이 그를 지지하는 것은 ‘문재인은 안 된다’는 반항 심리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되면 현직 대통령은 존재감이 사라지는 법이다. 그러나 안보 문제가 자심하다면, 다시 군 통수권자에게로 관심이 모아진다. 19대 대선이 시작된 지금 대통령도 아닌 권한 대행 황교안 총리의 존재감이 강해질 수는 없다. 그러나 안보 위기가 자심하니, 군 통수권을 쥔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만도 한데,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황 총리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권좌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는 것은 탄핵을 아예 당하지 않았을 때와 탄핵심판에서 파면을 당하지 않았을 때만 가능하다. 탄핵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탄핵 시기 몰아친 안보위기와 지금 몰아치는 안보 위기를 홀로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탄핵을 당했더라도 탄핵심판에서 파면 당하지 않고 회생했다면 작금의 위기를 ‘역시’ 홀로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혼란을 박 대통령은 잘 해낼 수 있었을까. 글쎄… 그런데 그가 없는 지금 안보 대비는 오히려 잘 되는 느낌이다.

 

박 대통령이 파면되니 오히려 안보가 떴다

 

그가 탄핵을 당하고 있을 때 미국은 신속하게 사드 발사차량 2대를 한국에 배치했다. 그리고 후속 사드 장비를 한국으로 이송하고 있다. 사드 배치가 현실화되고 있는데, 필자의 감각으로는, 반(反)사드 바람은 현저하게 가라앉았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위협과 계속된 미사일 발사가 그 원인일 수는 있지만, 꼭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안보 상황이 위중할 때도 우리의 정치 문화는 반대로 간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천안함 피침 사건 후 그해 6월 치른 지방선거였다. 천안함이 침몰해 46 용사가 전사한 것이 확인되자 보수세력들은 응징을 주장했다. 튼튼한 안보를 주장한 것이다. 북한은 그들이 천안함을 격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은 검열단을 파견하겠다는 등의 생쇼를 벌였다. 그러자 희한한 반작용이 일어났다.

 

4월 17일 한국에 와 현충원을 참배하는 펜스 미국 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자 오히려 한국 안보는 강력해진 느낌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챙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동아일보

 

천안함은 암초에 좌초됐다가 부러진 것이다, 배가 오래되었기에 부러진 것이다라는 등의 괴담이 횡행하더니, 잠수함이 충돌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한 괴담에 국민들은 현혹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이 찢어져 나갔다. 종북(從北)이 분명한 좌파세력들은 보수세력을 전쟁 세력, 전쟁광으로 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국민 지지를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응징을 주장하는 세력은 ‘전쟁세력’,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는 세력은 ‘평화세력’이라는 구도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많은 이들은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세력이 압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비슷한 것이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그에 맞선 사드 배치로 갈등을 빚고 있는 현 상황이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다. 2010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권좌에 있었고, 지금은 박근혜씨가 청와대가 아니라 구치소에 있다. 대통령의 유무가 큰 차이점인데, 지금은 2010년 같은 혼란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보수 정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후보가 10%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도 종북세력으로 하여금 ‘안보주장 세력은 전쟁세력, 자신들은 평화 세력’으로 만들지 못하게 하는 요소인 것 같다. 최순실-박근혜 사건의 여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안보 상황이 위중한 지금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대통령이 유고되면 보수화가 이뤄지는가?

 

 

3월 6일 오산 미7공군 기지에 사드 발사차량 2대를 싣고 착륙한 C-17 수송기.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기 직전 사드를 한국으로 공수함으로써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옵셕을 쥐게 되었다--동아일보

 

대한민국은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는 사건을 겪은 바 있다. 그 직후 최규하 총리를 권한 대행으로 내세웠지만 대통령이 없는 유고 사태를 겪었다. 지금이 그와 비슷한 상황이다. 대통령을 하던 이는 살아 있지만 영어의 몸이 됐기 때문이다. 권한 대행으로 심각한 위기를 돌파해야 하는 것은 유고상황의 특징이다.
1979년의 유고 정국에서 3김씨가 뜨고 서울의 봄이 열렸지만 광주사태를 치르며, 결론은 신군부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유고는 야권의 집권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문과 안 두 호보가 약진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군사적인 제제가 가해진다면 상황은 뒤바뀔 수도 있다. 1980년처럼.
안보 위기라고 하지만 지금은 1980년처럼 절박하지 않은 것 같다. 지난해까지 우리는 보수-진보로 갈려 싸우는 바람에 하지 못했던 안보적인 결정이 위기가 심해진 지금 오히려 쉽게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사드 배치다. 문과 안이 안보를 내세우는 것도 그러한 증거가 될 수 있겠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있었다면 사드 배치를 놓고 한국은 전쟁세력 대 평화세력으로 갈려 싸웠을 것이다. 문과 안도 평화를 주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19대 대선에 여당은 참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한국은 중국과 치열한 신경전을 펼쳐야 했을 것이다.
시진핑은 박근혜에 대해 지독한 분노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막아주지 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 실험 직후 박 대통령이 중국과의 신의를 깨고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에 대해 큰 배신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후 박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제지하지 않으면 사드 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발표했었다. 때문에 사드 배치는 한중 간의 핫이슈가 되었다.
단순한 방공미사일인 사드를 조용히 배치하면 되는 것을 박 대통령은 외교 문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2016년 여름 중국을 방문한 황교안 총리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바 없다고 중국 측에 통보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온 직후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를 발표했다. 중국은 이것을 박대통령의 배신으로 보고 격렬한 외교전을 준비해 시도했다.

 

2015년 9월3일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기 위해 북경에 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인사하고 있다. 이 행사를 마지막으로 박근혜-시진핑 밀월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동아일보

 

그리고 최순실 사건이 일어나면서 박대통령은 권좌에서 밀려나 버렸다. 중국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런데 그후 사드 배치는 오히려 원활해져버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파면되기 직전 사드 발사차량 2대를 한국으로 보내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해버린 것이다. 그렇건만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한국 내 목소리는 과거보다 커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있었다면, 치열하게 갈등해 나라가 두 조각, 세 조각으로 갈라졌을 것인데….

박 대통령의 유고 덕분에(때문이 아니고 덕분이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오히려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개월된 초짜가 아니라 4년, 아니 10년쯤 대통령을 한 노숙한 인물로 보인다. 일본과 중국 북한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쉽게 장관들을 장악하고 세계의 지도자들도 장학해 나가고 있다. 나이가 많은 탓도 있겠지만 ‘마초’급인 중 일 러의 지도자들을 따라오게 만들고 있다.
후보로 유세를 하던 시절 트럼프는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국으로 규정하고 더 많은 방위비를 분담시키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말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고, 한미 FTA를 개정하자는 압력도 넣지 않고 있다. 국방-국무장관에 이어 부통령도 한국에 보내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칼비는 항모 전단이 한반도 수역으로 달려가게 하는 군사적인 조치도 취하고 있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있었으면 일어나기 힘든 일을 그는 지금 쉽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결정에 대해 종북세력들은 항의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으로 있었으면 그들은 ‘보수세력은 전쟁세력’으로 몰았을 터인데, 박 대통령이 파면이 되었으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레드 라인을 분명히 밝혀 응징을 할 이유를 만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했더라면 종북세력은 “전쟁하자는 것이냐”며 막가파식으로 대들었을 터인데, 트럼프는 한국에 없으니 항의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필자의 눈에는 참으로 신기하다.
미국이 사이버 프로그램인 Left of Launch로 발사된 북한 미사일을 파괴시켰다는 기사가 있엇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트럼프의 미국에 단단히 잡힌 꼴이 된다. 그러한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가혹한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하는 것이니, 종북 세력들은 항의를 하지 못한다. 종북세력이 기승을 부렸던 것은 국내에 기댈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언덕이 사라지면 종북은 힘을 쓰지 못한다.

 

박근혜의 역사적인 기여, 외생 변수가 많이 개입하는 19대 대선

 

김일성 105주년 생일 열병식에서 북한이 공개한 신형 ICBM 발사차량. 미국은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기기를 기다리고 있다--노동신문 사진

 

박근혜는 파면을 당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안보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최순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역사에는 항상 아이러니가 있다. 2010년 천안함 피침 사건이 지방선거에서 보수의 참패를 가져왔다면 2017년의 박근혜 파면은 3주 남짓 남은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읽어보면 최초의 여성 임금인 선덕여왕은 통치를 잘 하지 못했다. 필자인 김부식은 별도로 마련한 비평칸인 ‘논’에서 ‘그렇게 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라고 비판해놓았을 정도이다. 그런데 선덕과 진덕여왕을 거친 후 신라에서는 김춘추와 김유신이 강하게 일어나 절박한 외교와 투쟁으로 삼국 통일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덕여왕과 같은 기능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정승절까지 쫓아갈 정도로 그렇게 심한 친중 노선을 고집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실속도 없이 파탄이 낳고 시진핑은 사드로 시비를 단단히 걸었다. 한미, 한일 관계만 힘들어졌다. 통일대박을 주장하면서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함께 끌고 간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수라면서 가장 연성의 군 지도자를 곁에 둔 것도 ‘진짜 보수야?’하는 의문을 일으켰었다. 세월호 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단호한 모습도 보이지 못했다. 경제도 잘 살려내지 못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한일정보보호협정을 맺고, 사드를 배치를 결정하고, 반북을 분명히 했다. 예상도 못한 전환을 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박근혜의 살신성인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현상으로 보아야 하나? 사가들의 판단이 기다려진다. 훗날 한국사를 쓰는 사관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 것인가.

트럼프는 작금의 한국 위기를 기막히게 잘 막아주고 있다. 오히려 반전을 만들 정도다. 때문에 박근혜 파면은 살신성인이라는 이해도 나오는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19대 대통령 선거 다음을 기다릴 것이다. 한국에 대통령이 있어야 한미관계가 오히려 삐걱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남북대화를 강조하고, 자주를 내세우는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중국과 북한은 더 좋은 국면을 맞게 된다. 미국도 이러한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도 찾을 것으로 보인다. 19대 대선은 외생 변수가 깊이 개입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박근혜는 그러한 무대를 만들고 사라져갔다.

이정훈 에 대해

hoon@donga.com 주간동아 편집장과 논설위원 등을 거친 동아일보 기자. 묵직하고 심도 있는 기사를 많이 써 한국기자상과 연세언론상, 삼성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국방과 정보 원자력 우주 해양 산악 역사에 관심이 많고 통일을 지론으로 갖고 있다. 천안함 정치학, 연평도 통일론, 한국의 핵 주권, 공작, 발로 쓴 반동북공정 등을 저술했다. 기자 인터뷰 보기 - "국정원 신화 벗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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