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만들려면, 박근혜는 전두환을 배워라③(끝)

 


황교안 그는 누구인가

 

황교안 대행은 황해도 연안에서 살다 6·25 때 월남해 서울 만리동에 터 잡은 집의 3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사정이 있는지 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집안에 대해 “나는 흙수저 중 무수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단편적으로 확인된 것은 한 형이 돌아가셔서 5남매가 성장했고, 대학을 나온 이는 황 대행뿐이며, 3남매는 미국, 그와 막내누나(황연옥, 65)는 한국에 살고 있다는 것 정도다.
황 대행의 평생을 관류한 것은 ‘기독교의 순종’이다. 그는 서울 목동에 있는 성일교회(침례교)를 50년 이상 다니고 있다. 이 교회는 그의 큰 누나 방에서 개척교회로 시작됐다는데, 그는 야간인 수도침례신학교를 나와 이 교회 전도사를 할 정도로 열심이다. 전도사는 공직 퇴임 후 그가 갖고자 하는 새로운 일이다. 그는 지금도 새벽 2시쯤 일어나 새벽 기도를 한 후 하루를 시작한다고한다.
형수의 중매로 만난 연세대 영문과 출신(80학번)의 부인 최지영 나사렛대 상담센터 교수(55) 또한 ‘위대한 유산’이라는 복음성가 앨범을 낸 철저한 기독교인이다. 그는 어미니(전칠례)를 끔찍이 모셨다. 1995년 아버지와 달리 교인이었던 모친이 돌아가시자 조의금을 토대로 성일교회에 ‘전칠례 장학금’을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오고 있다.

 


경기고 학도호국단장 지내

 

그는 서울 중구 만리동 꼭대기에 있는 봉래초를 나왔다. 봉래초는 1895년 고종 황제 칙령 149호인 ‘소학교령’에 따라 그해 ‘관립정동소학교’로 개교한 유서 깊은 학교다. 그러나 ‘달동네’로 이전했기에 그렇지 않았던 미동·덕수·수송 등과 달리 명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중학교 입시가 폐지된 다음 광성중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문학에 관심이 있었는지 3학년 때 16회 학원문학상 시 부문 ‘우수작 2석’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고교 입시가 치러진 1973년 경기고(72회)에 합격하면서 그는 더 두각을 드러냈다. 최상위권 성적자이면서 노래를 잘 해 학교 행사에서 4중창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 고등학교에는 학생 군사조직으로 볼 수도 있는 학도호국단이 학생회를 대신했다. 리더십을 인정받은 그는 3학년 때 그는 총학생회장격인 학도호국단 연대장이 돼 교련 등 학교 행사를 주도했다.
그러나 서울 법대 입학에는 연거푸 실패해, 후기인 성균관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77학번). 그리고 사시에 도전했으나 졸업할 때까지 합격하지 못했다. 그때 스트레스로 악성 두드러기인 ‘담마진’에 걸렸는데, 담마진 때문에 졸업 직전 치른 신체검사(1980)에서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운이 풀렸는지 이듬해 전 해보다 합격자를 3배로 늘인 사시(23회)에 합격하고, 법무연수원 교관이던 1994년께 담마진도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공안검사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국가보안법(박영사, 2011)’ ‘집회 시위법 해설(박영사, 2009)’ ‘국가보안법 해설(집영출판사, 1998)’ 등의 저서를 내 ‘미스터 보안법’으로 불렸다. 기독교에 대한 열정 때문에 ‘교회와 법이야기(요단출판사, 2012)’ ‘종교 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청림출판, 1998)’ ‘검사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나요(만나, 1994)’ 등 도합 8권의 책을 냈다. 그러나 이념성 때문에 노무현 정부 시절엔 서울고검 검사를 두 번 하였다.
검사로서의 그의 운은 부산고검장에서 끝났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고문을 하던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없었는데도 공안검사의 대부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의 천거로 박 정부의 첫 법무장관이 되는 운을 만났다.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온 탓인지 청문회에서는 군 면제와 변호사 시절 많은 수임료를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흠이 드러나지 않았다. 황 장관은 혼외자식 문제가 드러난 채동욱 검찰총장 사건과 남재준 국정원장이 주도한 통진당 수사를 마무리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2015년 5월 성완종 사건으로 이완구 총리가 낙마하자 박 대통령은 이미 청문회를 통과해 검증된 그를 총리로 지명했다. 최순실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2016년 11월 12일 박 대통령은 그를 김병준 국민대 교수로 교체하려고 했는데, 탄핵 사태로 무산되면서 그는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었다. 그리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포기해 여권의 강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애써 권력의지를 내세우지 않았는데도, 안 되면 운명에 순종하는 듯 포기하거나 돌아갔는데도, 그는 ‘절로 절로’ 대권에 근접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설득하고 기독계가 포함된 보수세력이 응원한다면 그는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강한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제2의 노태우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훈 에 대해

hoon@donga.com 주간동아 편집장과 논설위원 등을 거친 동아일보 기자. 묵직하고 심도 있는 기사를 많이 써 한국기자상과 연세언론상, 삼성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국방과 정보 원자력 우주 해양 산악 역사에 관심이 많고 통일을 지론으로 갖고 있다. 천안함 정치학, 연평도 통일론, 한국의 핵 주권, 공작, 발로 쓴 반동북공정 등을 저술했다. 기자 인터뷰 보기 - "국정원 신화 벗기고 싶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남기기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