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이론으로 ‘해상강국’, ‘대륙백제’ 증명 시도한 중국인 판보싱

 

한국정치학회로부터 2013년도 박사학위 우수논문상을 받은 중국인 유학생 출신의 판보싱씨 <지호영 기자 f3young@donga.com>

 

지난 8월 인하대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받은 중국인 판보싱(潘博星, 29) 씨가 12월7일 한국정치학회로부터 ’2013년도 박사학위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그는 백제와 신라를 소재로 ‘동북아에서 강대국의 부상과 주변국의 동맹전략 선택’이라는 논문을 썼다. 서구 동맹이론을 삼국시대에 적용시켜 거꾸로 3국의 국력을 측정해본 것이 상을 받게 된 이유다.

 
판씨는 사서 기록을 정리해보면 3국 가운데 고구려의 국력이 월등히 강했다고 판단한다. 그의 관심은 약소국으로 인식돼 있는 백제와 신라로 향해 있다. 강대국이든 약소국이 생존을 하려면 동맹을 맺어야 한다. 헤게모니를 쥔 강대국은 패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수많은 나라와 동맹을 맺는다. 그 패권에 도전해야 하는 강대국은 패권국가에 불만을 품은 나라들을 포섭해 대항한다.

 
그리하여 두 세력간에 균형이 잡히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세력균형이론이다. 이 이론은 미국과 소련이 각각의 동맹국을 이끌고 팽팽히 대립하던 냉전기를 설명한다. 반대 이론도 있다. 불만을 품은 나라가 세력을 증가시켜 경쟁국과 비슷한 국력을 갖거나 능가하면 도전을 해 전쟁이 일어난다는 세력전이(轉移) 이론이 그것이다.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하긴 하지만 세력균형과 세력전이는 강대국의 동맹을 설명하는 이론의 대표로 꼽힌다.

 
강대국이 그러하다면 약소국은 더더욱 동맹에 치중해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약소국이 맺는 동맹은 ‘편승(便乘)동맹’과 ‘균형(均衡)동맹’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편승동맹은 우호적인 강대국에 붙어 생존을 보장받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최강대국에 붙는 것이 생존에 가장 유리한 편승동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나친 편승동맹은 주체성을 상실해 강대국으로 편입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균형동맹은 자신이 중심이 돼 주변 국가를 동맹으로 잡아끌어 적대국에 대항하는 것이다. 균형동맹을 맺은 나라는 편승동맹을 맺는 나라보다 국력이 강하다.

 
균형동맹은 약소국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력균형을 이루기 위해 강대국이 하는 동맹이 바로 균형동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균형동맹을 추구하는 나라는 편승동맹을 하는 나라보다 월등히 국력이 강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고구려는 수·당과 세력균형을 추구한 강대국이었다. 이를 위해 한 때 다퉜던 돌궐을 끌어들였다. 덕분에 수의 침입을 물리치고 당의 처음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돌궐이 당에 패한 다음에는 균형을 잃어 당의 공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집안 광개토태왕비. 이 비석에는 백제를 백잔으로 새겨져 있다. 얼마나 백제에게 시달렸기에.

 

그러한 강대국 고구려에 악착같이 대든 것이 백제다. 그러한 백제가 얼마나 미웠으면 고구려는 광개토태왕비에서 백제를 ‘백잔(百殘)’으로 새겨놓을까. 근초고왕이 이끄는 백제는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죽게 했다. 그에 대한 보복을 광개토태왕이 했다. 광개토태왕은 백제의 해상 요충지인 관미성을 함락시켜 백제에 치명타를 가했고, 그의 아들인 장수왕은 백제의 개로왕을 죽였다. 그런데도 백제는 신라 등과 손을 잡고 전성기의 고구려에 맞서는 균형동맹을 추구했다. 전라-충청도라고 하는 작은 영토를 가진 나라로서는 감히 보일 수 없는 투쟁을 한 것이다.

 

사서(史書)들은 백제가 대륙에도 영토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개로왕이 전사해 백제의 힘이 많이 약해진 동성왕 10년인 서기 488년, 위(魏)나라가 군사를 보내 백제를 침공했다가 백제 군사에 패하였다(魏遣兵來伐爲我所敗)고 적어놓았다. 서기 488년의 위는 선비족이 세운 북위(北魏)를 가리킨다. 북위는 북중국에 있으면서 고구려와 팽팽한 냉전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서해를 건너지 않는 한 한반도 서남부에 있는 백제를 침공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의 정사인 삼국사기는 북위가 백제를 공격했다가 실패했다고 분명히 적어놓았으니 백제는 대륙에 영토나 거점을 갖고 있어야 옳은 것이 된다.

 

무령왕릉 내부. 무령왕은 왜(일본)과 관계가 돈독했던 백제의 지도자였다. 그러한 관계를 가지려면 해양강국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제관장식(金制冠裝飾)과 무령왕릉왕금관식(왼쪽.국보154호), 무령왕릉비금관식(국보155호). 무령왕은 대륙에 있는 양나라와 관계도 했다. 이러한 관계를 맺으려면 서해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동아일보 DB>

 

 

중국의 정사 가운데 하나인 송서(宋書)는 ‘그후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해 점거했다. 백제는 요서를 공략해 점거했다. 백제의 치소는 진평군 진평현이라고 했다(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百濟所治,謂之晉平郡晉平縣)’라고 적어놓았다. 요서는 지금 요하가 있는 북중국인데 그곳을 백제가 공격해 점령하고 진평군 진평현을 중심으로 다스렸다면 백제는 대륙에 거점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

 

중국 정사인 양서(梁書)와 남사(南史)는 ‘진(晉)나라 때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해 점령하니 백제 역시 요서 진평 두개 군에 근거해 있으면서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했다(晉時 句麗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라고 적어놓았다. 중국의 일반 사서인 통전(通典)도 ‘진나라 시기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 점령하니 백제 역시 요서, 진평 두 개군에 근거해 있었다. 지금의 류성과 북평의 사이이다(晉時句麗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今柳城北平之間)’라고 유사한 기록을 남겨놓았다. 대륙 백제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백제가 일본을 지배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대륙을 경략했다는 것은 부인한다. 판씨는 백제가 고구려에 맞서기위해 균형동맹을 추구하려면 대륙에 거점을 둔 해상강국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해상 거점의 대표가 관미성인데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그곳을 공격해 빼앗으면서 백제의 힘이 약해졌다고 그는 본다. 그는 “사서를 분석해보면 백제는 망하는 순간까지 균형동맹을 추구했으니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서양에서 발전한 동맹이론으로 살펴보면 백제는 대륙과 일본에 거점을 가진 해상제국이 아니고는 고구려에 맞서는 균형동맹을 맺을 수 없다. 백제는 백가제해(百家濟海)라는 데서 백제란 국명이 생겼다는 기록도 있으니 강력한 해상국가였을 것이다. 해상국가를 경영하려면 곳곳에 거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일본에 확실한 거점을 가졌던 백제가 대륙에 그런 거점을 두지 않고 해상강국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한 백제와 대비되는 것이 신라다. 모든 것이 힘들었던 신라는 강대국에 붙는 편승동맹으로 간신히 생존을 모색하다 김춘추 때 놀라운 외교력으로 순식간에 남부 한반도를 통일한 외교의 귀재였다.”

 

판씨는 지린(吉林)성 시핑(四平)시 출신으로 공주링(公主嶺)제1중을 마치고 산둥(山東)성으로 가 산둥(山東)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졸업하는 해 바로 한국으로 와 인하대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해 1년 만에 한국어를 습득해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한다.

 

“중국의 정치학은 마르크스 등 공산주의 정치학을 주로 가르친다. 그렇다고 동맹을 다루는 국제정치학이 없다고 보면 오산이다. 중국 사서를 보면 전국시대 때 합종 연횡을 했다는기록이 많다. 한국인들이 잘 아는 소설 삼국지에도 숱한 동맹이 나온다. 5호 16국시대와 5대10국 시절을 다룬 책에도 동맹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동맹을 구체적으로 본다. 중국은 동맹에 대한 중국식 연구가 활발하다. 동맹에 대한 연구가 적은 것은 한국 같다.”

 

판씨는 현재 인하대 정외과에서 한국어로 ‘동북아 외교관계사’와 ‘동북아 국제정치론’을 강의하고 있다.

 

 

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사진 지호영 기자 f3yo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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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에 대해

hoon@donga.com 주간동아 편집장과 논설위원 등을 거친 동아일보 기자. 묵직하고 심도 있는 기사를 많이 써 한국기자상과 연세언론상, 삼성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국방과 정보 원자력 우주 해양 산악 역사에 관심이 많고 통일을 지론으로 갖고 있다. 천안함 정치학, 연평도 통일론, 한국의 핵 주권, 공작, 발로 쓴 반동북공정 등을 저술했다. 기자 인터뷰 보기 - "국정원 신화 벗기고 싶었다"

댓글(64) “동맹이론으로 ‘해상강국’, ‘대륙백제’ 증명 시도한 중국인 판보싱”

  1. 종로토박이 12월 18, 2013 at 2:59 am #

    당연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식민사학자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하는것은 신라의 지혜다.
    현실을 바탕으로한 목표의 성취는 영광된 과거보다 중요한것이지

    • kangsdogs 12월 18, 2013 at 7:54 am #

      아쉽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대륙백제, 고구려의 국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중국은 당시 수, 당제국에 비해서도 결코 국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중국이 강대해지면 주변국이 힘들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종로토박이님의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 heika 12월 18, 2013 at 9:38 am #

      선덕여왕 즉위과정이나 진덕여왕의 치당태평송 헌납경위를 살펴보면

      신라는 고구려,백제를 통일하려는 웅대한 마음을 먹었다기 보다는 인근

      불량국가들을 더 멀리있는 대국을 구슬려 토벌하게 하여 하루라도 평안

      하게 살려는 일념으로 당나라에 머리를 조아린 것이 아닐까요?

    • heika 12월 18, 2013 at 9:41 am #

      신라의 위험한 불장난은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가 신라까지

      지배하려드는 바람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뻔 하였으나 때마침 머나

      먼 서쪽 토번이 흥기하여 당나라를 위협하는 바람에 겨우 한반도 전체의

      중국식민지화를 면한 것이 아닌가요?

  2. heika 12월 18, 2013 at 8:12 am #

    조선 문종때 편찬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동국병감을 보면

    고려 요나라 2차 침입때 수도 개경이 함락당하고 고려 조정이

    남쪽으로 피신하였을때 요군이 지금의 한강에 이르러 주민을

    잡아다 문초하였답니다.

  3. heika 12월 18, 2013 at 8:14 am #

    그 고려 백성은 한강 이남의 지세를 묻는 요군의 서슬퍼런 심문에,

    이 강 건너 땅이 몇 만리인지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니 실망한 요군이

    회군을 하였다 합니다.

  4. heika 12월 18, 2013 at 8:16 am #

    무지막지한 대답인지,구국의 기망인지 알 길이 없지만 거짓말 한번

    잘하는 바람에 국가에 엄청난 덕을 끼친 희귀한 사례라 할 것입니다.

  5. heika 12월 18, 2013 at 8:17 am #

    해서,저는 그 이름없는 고려백성께 국민훈장 구라장을

    추서해야 된다고 진작부터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6. heika 12월 18, 2013 at 8:19 am #

    그런데,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고려를 제압하려 대군을 일으킨 요나라가 저리도

    적국의 지리에 대하여 무지하였을까요?

  7. heika 12월 18, 2013 at 8:24 am #

    또,연이어 벌어진 요나라 3차 침입때는 유명한 귀주대첩이 일어납니다.

    요군의 참패 소식을 들은 요나라 왕이 격분하여 침략군 최고사령관을

    쇠사슬로 묶어 끌고 갔다는데 문제는 요나라왕의 질책입니다.

    요나라 장수가 왕명을 어기고 너무 깊숙히 들어갔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귀주대첩의 귀주가 고려땅 깊숙한 곳일까요?

  8. heika 12월 18, 2013 at 8:30 am #

    요나라 1차 침입때 서희가 요나라에 변명을 하는 과정에서 요와 고려 사이에

    여진이 있어 통교를 막고 있어 인사를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는 말을 하여 요나라를

    안심시키고(이것도 국민훈장 구라장감) 오히려 고려가 여진지역을 토벌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만 우리가 아는 고려시대 개척 북방지역은 만주 전체에 비기면

    손바닥만 할것입니다.

  9. heika 12월 18, 2013 at 8:33 am #

    따라서,고려와 요나라 사이에 여진이 있었다 해도 그 지역이

    아주 넓었는데다가 고려가 차지하고 있었다 봐야만 요나라왕의

    질책이 의미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10. heika 12월 18, 2013 at 8:35 am #

    당시 요나라는 이미 중국 화북지방 일부까지 차지한 대국입니다.

    그 대국의 왕이 자기군대가 적국 국경에서 오백리도 나아가지 못한

    것을 두고 적진 깊숙히 들어갔다는 표현을 쓸리가 없을 것입니다.

  11. heika 12월 18, 2013 at 8:43 am #

    백제 의자왕은 중국에 끌려가서 죽었는데 당나라는

    의자왕의 무덤을 손호,진숙보의 무덤옆에 만들었다합니다.

    손호는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 마지막 왕이고 진숙보는

    남북조의 남조 마지막 나라 진나라의 마지막 왕입니다.

  12. heika 12월 18, 2013 at 8:49 am #

    손호가 항복함으로써 중국은 삼국시대가 끝났고 진숙보가

    항복함으로써 남북조 시대가 끝나고 대통일제국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오나라나 진나라 모두 한반도의 호남충청 지역의 땅보다는

    수십배도 더 넓은 나라였습니다.

    혹자는 중국이 의자왕을 두 망국지주와 같이 취급함으로써

    망신을 주려한 것이라 보기도 하지만

    적어도 당나라의 태도는 백제를 오나라,진나라 수준의 국가로

    보고 있었다는 반증이라할 것입니다.

  13. heika 12월 18, 2013 at 8:51 am #

    통일신라시대의 석학 최치원 선생은 3국중

    백제군이 제일 강용하였다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백제가 한반도 일부인 좁은 농경지에 웅거한 작은

    나라였다면 강용한 군대를 가질수 있었을까요?

  14. heika 12월 18, 2013 at 9:33 am #

    생면부지의 중국인이 불과 1년만에 한국어를 습득해서 강의까지??

    누구말마따나 대다나다!!!

  15. shaman 12월 18, 2013 at 9:51 am #

    1. 고려는 큰 나라가 아닙니다.
    고려의 국토는 극히 일부 환빠를 제외하고는 이견이 없습니다. 익히 아시다시피 통일신라 이후 태조왕건때부터 깔짝대며 평안도 일부를 조금씩 차지하며 늘리다가 서희의 훌륭한 외교로 압록강까지 가는 거죠.
    한때는 고구려의 중심지였을 그 부분을 다시 수복하는 과정은 험난했을 겁니다. 중간중간 여진족이 다 차지하고 있던 땅을 다시 개간하고 지키고 했겠죠. 그러나 그렇다 해서 그 사이 여진족 지역이 다 고려땅일리는 없습니다. 고려의 영향권 내지 세력권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고을을 제외하고는 타지역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같은 고려사람이라 해도 고위관리거나 상인계급이 아닌 다음에야 자기가 살지 않는 남쪽 지방이 얼마까지 뻗어 있을지 알리가 만무합니다. 더욱이 외국인인 요나라 사람들이 그걸 알기는 더욱 힘들지요.
    조선시대 신숙주의 방일 이전까진 일본땅이 얼마나 큰지, 위치는 어디인지 등도 제대로 몰랐던 것이 우리 나라 실정이었습니다. 중국도 사신이 오간 의주-북경 사이나 어느 정도 알았고 강남쪽은 거의 몰랐죠. (http://blog.naver.com/alsn76/40202855158) 그보다 수백년전 말타고 약탈하던 요나라가 그보다 더 잘 알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2. 대륙백제에 대한 큰 환상은 버립시다
    대륙백제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고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분명 중국이 분열된 혼란기를 틈타 중국 본토에 거점을 마련하였고, 해상에 대한 지배력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이에 대해 큰 환상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요? 그 곳들을 영구히 지배한 것도 아니고, 백제의 패망을 막는데 도움을 준 것도 아닙니다. 백제의 군사력이야 신라에 비해서 강할수도 약할수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대륙에 비하면, 고구려에 비하면 약했을 것입니다.

    3. 글 본문에 비추어 21세기 대한민국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우리 나라는 확실히 단군이래 가장 강력한 나라입니다. 비록 국토는 만주벌판에 비할 바 못되며, 불과 몇십년전 갖고 있던 한반도 북부마저 갈라져 있지만, 이토록 백성을 잘먹고 잘살게 한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전세계에 대한 영향력이 큰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중국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진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여전히 약합니다. 아쉽게도 만주벌판은 더 이상 우리 땅이 아니며, 청나라 말기 짱깨들이 우루루 몰려가 현재는 한족의 땅이 되어버린 만주는 더 이상 우리가 소유권을 주장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강하지만 우리 옆의 중국과 일본은 더 강하고, 더 강해질 잠재력도 큽니다.
    다행이 우리는 몇십년전 이승만때와 달리 편승동맹 대신 미국과 균형동맹을 할 수 있을만큼 국력을 키워 놓았습니다. 한미동맹을 꾸준히 강화하며, 이에만 만족하지 말고 우리 나라의 국력도 계속 키우는 것이 진정 우리나랄 위하는 길일 것입니다.
    과거를 쓸데 없이 현실보다 과장하여 미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요.

    • heika 12월 18, 2013 at 11:24 am #

      송나라 사신 서긍이 썼다는 고려도경을 보셨는지요?

      서긍은 고려 동쪽에 금나라가 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서긍은 거란과 요나라를 다른 존재인양 쓰고

      있습니다.

    • heika 12월 18, 2013 at 11:30 am #

      중국 화중지방에서 일어난 홍건적이 어떻게해서 두 번이나

      화북지방,만주를 거쳐 머나먼 고려에까지 침범하였을까요?

      배우기로는 원나라 상도를 공격하다가 반격에 밀렸다고 하는데

      왜 근거지가 아닌 반대편으로 도망갔으며 홍건적 뒤를 따라 원나라

      군이 따라온 일도 없었던것 같으니 정말로 홍건적 고려침입은 의외의

      사건입니다.

      • shaman 12월 18, 2013 at 11:44 am #

        대륙삼국설은 오래 전에 봤습니다만 그 망상가들도 대륙고려설은 주장 안하던데요;;;

        고려가 금나라 서쪽에도 있었고, 원나라 상도 남쪽 또는 서쪽에도 있었다는 주장인가요?
        해당 지역에 고려의 유적이 있습니까? 해당 지역 유골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DNA(O2b같은)라도 나왔나요? 해당 지역을 고려가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남송에서 봤을 때 고려는 동쪽에 있고, 금나라의 원 본거지는 고려 북쪽입니다. 배를 타고 고려에 간 뒤 거기서 더 위로 갔을때, 그냥 뭉뚱그려 동쪽~이라고 표현해도 뭐 할말 없습니다. 일본을 제주도 남쪽에 있다고 기술하는 경우가 흔했는데, 엄연히 말하면 동남쪽 내지는 동쪽 아닙니까? 제주에서 쭉 남으로 가면 유구국이죠. 평양을 서경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사실 평양은 개성에서 아주 조금 서쪽일뿐 사실 북쪽이라 해야 맞지 않겠습니까? 이런 방향으로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송나라는 요나라에게 털리고, 이어 금나라에게 털리고, 마지막으로 원나라에게 털리며 숨이 끊어집니다. 이 와중에 요, 금, 원이 고려땅을 거쳐서 송나라를 털었다는 기록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명백히 이들은 후방을 안정화하는 차원에서 따로 고려를 공격했을 뿐 결코 송나라를 치기 위한 중간 길로 고려를 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이 원나라 상도를 친 뒤 그 군대가 그대로 더 동쪽으로 도망간 것이 어찌 의외인가요? 이런 식의 집단 유랑은 과거에는 아주 흔했습니다. 그럼 설마 대몽골제국의 중심지에 떡하니 고려따위 식민지 땅이 있었다는 주장인가요? 수시로 공녀를 차출당하고 내정간섭당하고 고려왕을 원 황실 맘대로 갈아치우던 그 시절에요? 우리나라는 그래도 왕실이 보존되었다는 이유로 당시 독립을 유지했다고 기술하지만 우리 외의 전세계에선 그냥 그때 Mongol Empire의 일부로, 같은 색깔로 지도에 표시했던 그 시절에요?

        이런 식의 허황된 민족주의, 국수주의는 결코 우리 민족, 나라에 도움이 안 됩니다.
        비굴했던, 작었던 역사도 그 자체로 소중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서 부강한 21세기 대한민국을 만들면 됩니다.

        참고로 현재 북한에선 아주 허황되게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뻥튀기하여 가르치고 있죠. 내세울게 과거밖에 없으니까요. 고고학적 발견, 역사학의 고증 등은 다 집어치우고요. 우리까지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 heika 12월 18, 2013 at 12:01 pm #

        대륙 고려설은 증산도 계열에서 진지하게 주장되고 있는데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금나라 고려 동쪽설은 나의 주장이 아니라 역사 자료에

        나타나 있는 것이니 추정으로만 반박하실 것이 아니라 왜

        그같이 주장되었는지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이 좋겠지요.

      • shaman 12월 18, 2013 at 1:10 pm #

        제가 쓴 내용들 – 요 금 원이 고려를 거쳐 송나라를 쳤단 말입니까? – 과 관련된 내용이 사서건 어디건 단 한줄이라도 있습니까? 그와 반대되는 무수한 근거들은 다 무시하는 겁니까?

        창조론자들의 주장과, 타블로 깎아내리던 자들의 주장과 동일합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근거 중 자신의 주장가 조금이라도 비슷한 것만 취사선택하고 다른 무수한 반대근거를 다 무시하는 거죠.

        다시 묻습니다. 대체 요 금 원 나라가 송나라 칠 때 고려 땅을 지나 갔다는 근거가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 heika 12월 18, 2013 at 1:18 pm #

        요,금,원이 송나라를 칠때 반드시 고려를 지나가야만 하였는지부터가

        불명이니 곤란한 질문일뿐더러 요,금,원의 침략기록을 다 살필 능력도 없네요.

        혹시,요금원 남송 침략기록을 다 살펴봐서 침략군이 고려를 지나갔다는 기록이

        없는지를 다 알고 반박하시는 것인가요?

      • shaman 12월 18, 2013 at 2:42 pm #

        지도를 좀 보세요.

        요나라가 당나라 망한 뒤 5대10국 혼란기에 할양받은 연운16주를 경계로 하여 송나라와 마주하고 있지요.
        거기에서 바로 송나라를 치고 들어갑니다.

        역사학계에서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주장을 펼치시는 하이카 님이 마땅히 요나라가 어떻게 고려땅을 피하여(과연 고려땅이 존재한다면) 송나라 침공을 벌였는지, 그리고 당시 고려 땅이 대체 대륙 어디에 박혀 있었는지 다 근거를 대셔야 당연하죠.

        님같이 ‘내 주장을 반대하는 근거가 없으니 내 주장이 옳다’라며 ‘모두 다 찾아 봤느냐’ 식의 적반하장식 주장은 창조론자들이 즐겨합니다.

        이를 까는 진화론자는 이와 같이 주장하죠 – ‘태양궤도를 돌고 있는 스파게티우주괴물이 있는데 이게 바로 신이다. 반박해 봐라. 아니란 증거 있느냐’ – 지금 님의 주장은 너무 우습고 말도 안되는게 딱 이 정도 수준입니다.

        고려는 건국때부터 멸망때까지 쭉 한반도 안에 있었습니다. 원나라 지배시 심양왕에 잠시 봉해진 고려왕이 있어서 요동지역을 아주 잠깐 (실제적이건 명예적이건) 우리 민족 출신 왕이 지배한 적이 잠시 있으나 잠시뿐이고 바로 명예직으로 바뀌고요. 그 외엔 한반도 안에서 꼼짝도 못했습니다. 이게 역사적 사실입니다.

        헛된 주장을 하러면, 님의 허황된 공상을 뒷받침할 문헌을 제발 좀 들고 오시기 바랍니다. 님의 주장을 믿느니 차라리 김일성이 축지법을 썼다는걸 믿겠습니다.

      • heika 12월 18, 2013 at 3:18 pm #

        삼국사기 기록도 무시하는 분께 뭣합니다만, 최근에 삼국사기 일식기록을

        천문학적으로 연구하니 관측지점이 3국 모두 한반도가 아니더란 학술결과에

        관해서는 금시가 초문이신가요?

        아직 답변이 나오지 않았지요?

        그건 나의 뇌내망상도,헛된 주장도 아닌 순수한 천문학적 연구결과 아닐까요?

      • Shaman 12월 19, 2013 at 12:02 am #

        일식기록이요? 그건 제가 20년전쯤 역사스페셜에서 본거 같은데, 우리나라에서의 일식 날짜라며 우리 선조가 위대하고 어쩌고 했던 거 본 기억이 나는디 ㅎㅎ 넘 예전이라 이 기억은 틀릴수 있습니다. 주장하시는 님이 해당 논문 또는 연구결과 링크를 달아 주세요.

        그리고 설령 중국땅의 기록이라 해도 상관 없습니다. 당시 최첨단인 중국의 기록을 그냥 베꼈을 가능성도 있고요. 그런 하찮은, 오해의 소지가 많은 극히 일부의 기록을 바탕으로 대륙백제같은 어미어마한 사기극을 주장하기엔 턱 없이 증거가 부적해여

      • heika 12월 19, 2013 at 8:04 am #

        책으로도 발간된 천문학자의 연구 성과이지만 틀림없이

        엉터리라는 비난을 할분이기에 굳이 가르쳐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우리 조상들이 중국의 기록을 베꼈을 것이라는 주장은 성급

        하게 할 말이 아니지요.

        각종 연구결과,주장,근거를 살펴보고 해야할 준엄한 말일 것입니다.

      • 산매니 2월 12, 2016 at 10:21 pm #

        없는 역사를 위조하여 가르치는 그런 나라들도 있습니다. 있었던 역사를 잘 살펴서 알리려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닐진데,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런지요.

    • heika 12월 18, 2013 at 11:41 am #

      삼국사기에 백제 멸망편을 보면 당나라군의 진격로가 우리가 아는

      백제의 지명과 맞지 않고 오히려 중국 어느 지역과 일치한다는 설은 살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 shaman 12월 18, 2013 at 11:50 am #

        당나라군은 바다를 건너서 침략합니다. 신라군은 그냥 육지로 걸어가죠.
        마지막 백제의 부여 유적은 엄연히 한반도 충청도에 있습니다.

        그럼 중국 대륙에 백제라는 나라가 있었고 거기에 수도가 있었고 백제는 오나라와 겨눌 만큼 큰 나라였는데 당나라 신라의 협공으로 망했으면, 거기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중국 땅에 본거지가 있었으면 그 사람들은 다 중국인에 혼혈되며 사라졌겠네요? 그 시절 그럼 충청도 전라도 땅엔 대체 누가 살고 있었나요? 거긴 언제 우리 역사에 들어온 거죠?
        대륙백제와 반도백제가 동시에 있었다는 설이라 치더라도, 어쨌거나 당태종이 중국대륙 내의 백제를 공격했다는 내용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중국대륙 내의 백제 유적은 발견된게 있습니까? 백제식 무덤, 백제식 유품은 있나요?

        제가 20년전 중학생때 이런 류의 환빠적, 국수주의적 책을 탐독하곤 했었는데, 그 땐 한 1년간 우와 신기하다 우리 민족 짱짱맨 이러다 말았었는데, 요즘도 이럴줄은 몰랐습니다.

      • heika 12월 18, 2013 at 12:03 pm #

        사서의 기술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주장으로

        반박하지 마시고 여타 자료로 규명을 하셔야될 것입니다.

      • heika 12월 18, 2013 at 12:49 pm #

        황해를 건너 백제를 침공한 당군은 13만이라 하는데 그 많은

        숫자를 싣고갈 배를 구하는데 얼마나 오렌 시간이 걸릴지 모른답니다.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을 정확하게 분석해보니 한반도가 아닌 중국 대륙

        쪽에서 관찰하였을것이라는데요?

      • heika 12월 18, 2013 at 1:10 pm #

        무엇보다도 삼국사기에 백제의 호수가 76만에 달한다

        기록되어 있는 것은 백제가 결코 오늘날의 호남,충청지역에 살던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는 바입니다.

        76만호라면 400만명이 넘어 지금 호남,충청인구의 40%가 넘을 것인데

        이것이 1300년 전에 가능한 인구이겠습니까?

        해방당시 남북한 통털어 3천만 동포,지금은 남한만 5천만인데요??

      • shaman 12월 18, 2013 at 1:16 pm #

        대륙백제설은 너무나 허무맹랑해서 심지어 북한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내용입니다.

        또한 당시 인구수 조사는 틀린게 너무나 많으며 그대로 안 믿는 학자가 더 많습니다.

        설령 요서지방에 진출 거점을 둔게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백제 땅으로 점령했다 치더라도 그 지역 인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뒤에 수나라, 당나라가 고구려를 치러 갈때 어디 백제땅을 지난다는 말이 한마디라도 있나요?
        쓸데 없는 데서는 사서를 맹신하시면서 이런건 무시하시네요

      • heika 12월 18, 2013 at 1:26 pm #

        역시 마찬가지로 당나라가 고구려,백제 침입시 반드시

        백제나 고구려땅을 지나가야만 되었는지부터가 불분명하지요.

        주장자가 전제하지 아니한 조건을 전제로 한 질문은 곤란하겠지요.

        참고로,수나라가 고구려 침략을 시작할때 백제가 향도를 하겠다

        자처한 적이 있었는데 수나라군은 요동으로 나아갔으니 호남,충청

        백제라면 감히 요동쪽 길안내 타령을 할수 있었겠습니까?

      • shaman 12월 18, 2013 at 2:47 pm #

        수나라 정벌시 수서, 삼국사기 그 어디에도 수나라가 백제 땅을 지나갔다는 말은 없습니다.
        수나라는 그냥 연(현 북경)지방에서 군사를 집결시킨 후 그냥 행진해 갑니다.

        길안내야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지금 한국에 있지만 예전에 오랫동안 있어본 뉴욕 정도는 길안내할 수 있습니다.

        님의 뇌내망상으로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할 심산이시면, 그에 합당한 근거를 대시기 바랍니다.

        제가 왜 님의 말도 안되는 국수주의적 역사관을 이렇게 비판하는지 아십니까?

        우리 민족에 하등의 이득될게 없기 때문입니다.

        님은 짱깨들이 동북공정 주장하면 무슨 기분이 드십니까? 정말 어이 없지 않습니까?
        지금 님이 자행하시는 역사사기조작이 바로 동북공정과 비슷한 짓입니다.

        Fact를 들고 오세요. 님의 희망사항 공상을 들고 오시지 말고.
        같은 한국사람이란게 아주 부끄럽네요.

      • heika 12월 18, 2013 at 3:09 pm #

        사서 기록도 엉터리라 흥분하고 부정하는 분에게 팩트를 가져다 드릴 것이 없네요.

        남의 사서에 근거한 주장을 가차없이 헛되니 뇌내망상이니 깎어내리는 분이 과연

        합리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으로 인정될수 있을까요?

      • shaman 12월 18, 2013 at 5:30 pm #

        ㅎㅎ 사서의 내용을 마음대로 취사선택하여 믿고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황과 맞을 때에 믿는 거죠

        고고학적 발견, 역사적 맥락, 등등

        그런 것들을 다 따져서 어떤 사서의 어떤 부분은 신뢰성이 있지만 어딘 없고 하며 따지는 것이고, 그에 따라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공감하는 ‘진실에 가까운 역사’가 도출됩니다.

        그렇게 허황된 대륙백제설을 들이밀 거면, 당연히 기존의 모든 사실을 뒤엎는 거니까 더 확실한 증거를 밀어야겠죠?
        이런 허황된 대륙백제설 따위보다, 사실 임나일본부나 동북공정이 더 진실에 가까운 정보들이 많이 있습니다.(물론 저는 임나일본부나 동북공정이 일본 중국이 의도하는 그런 수준의 진실은 결코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륙백제설따위보다야 더 타당하다는 거죠.)

        대륙백제설 따위를 옹호하시는 분의 논리 수준으로는 당연히 임나일본부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서를 객관적 증거 없이 자기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하고 나머진 무시한다면요.

      • 지나가는 사람 8월 20, 2014 at 5:06 pm #

        shaman님은 일본이 써준 역사를 실천한 친일매국노가 지금까지 한국역사편집에 우두머리였다는걸 간과하시면 안되요~ 그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한국역사는 영원히 왜곡되어질껍니다.

        팩트는 전부 왜곡시켜놓은 현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팩트라고 믿는 사실이 허상이라고 생각해보신적이 샤먼님께 다가올껍니다.

        일본은 왜 조선의 역사를 왜곡시켜야했는지 근원부터 찾길 바랍니다.

  16. 나여~ 12월 18, 2013 at 10:59 am #

    중국과는 불가근불가원을 추구하고, 미국과는 향후 백년은 더 동맹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손을 잘 가르쳐 살아남는 기술을
    연마 시켜야죠.

    대륙백제에 대해서는 이문열선생이 소설로나마 저술한것이
    있습니다.

    • shaman 12월 18, 2013 at 11:54 am #

      대한민국은 통일 이후에도 굳건히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합니다. 중국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순간 우리는 중국의 신하국가로 부림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태여 대놓고 널리널리 ‘한미동맹 강화’ ‘짱깨 OUT’을 외치는 것은 감정상에는 좋을지 몰라도 실익은 없을 것입니다. 짱깨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을리 없죠.

      한미동맹 강화는 굳이 떠벌리며 하지 않고, 조용히 실익을 유지해 나가면 될 것입니다.
      대북풍선도 널리 떠들면서 임진각에서 하는건 별로 북한에 가는 것도 없다지 않습니까? 조용히 바람에 맞추어 풍선을 잔뜩 보내는 것이 더 좋듯이, 한미동맹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떠들지 말아야 합니다.

      • 종로토박이 12월 18, 2013 at 2:15 pm #

        shaman님 의견이 실증사학에서 맞는 말이나 하나 간과하신것이 있습니다.
        한민족이 세계사에서 제일 강성하였던 시기는 5세기 무렵의 고구려 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대왕이라 호칭되는 2분중 한분인 광개토대왕의 시기입니다.
        물론 서로마 제국의 쇠퇴나 중국의 분열로 인한 상대적 우위의 시기지만
        다만 한세기라도 한민족이 세계 최강의 반열에 있었다는 역사를 기억했으면

      • shaman 12월 18, 2013 at 2:50 pm #

        대한민국보다 고구려가 더 위대할 수 있다는 주장은 관점에 따라선 더 옳은 주장입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우리가 짱깨의 동북공정에 분노하는 것만큼, 우리 내부의 헛소리를 스스로 단속 잘 하는게 선진 대한민국의 모습이라 생각해서 조금 흥분했습니다. 우리의 국격이 저 짱깨수준과는 달라야 할 것 같아서요.

  17. 담로 12월 19, 2013 at 12:12 am #

    개인 의견이지만
    백제주류는 만주 대륙에서 한강부근으로 바로(?) 온것이 아니라 본다.
    순수대륙인들이라면 과연 한강의 중요성을 파악할수 있었을까?

    소서노가 압록강 부근에서 바로 한강으로 온것이 아니고
    이미 산둥 요동등에 근거지를 가진 해상세력이 한반도의 중심인 한강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있다가
    건너온것이라 본다

    왜국도 가야와 건국신화가 같다
    고대 왜국도 경남 일부와 규슈에 걸쳐 세력권을 형성했던 나라라고 본다

    이 이론대로라면 백제가 구태여 새삼스럽게 산둥 요서에 진출씩이나 할필요가 없다
    건국자체를 즉 출발부터 대륙 한반도 왜에 동시에 해상세력권을 갖추고 시작했을테니…

    현대에 비해 뒤섞여 있는 한중일 국경이 세월이 지나 지금의 모습으로
    깔끔해졌을것이다

  18. 담로 12월 19, 2013 at 12:24 am #

    그리고 shaman님은 말조심을 해야겠다
    토론내용을 보니 heika님은 시종 예의를 갖추고 임하는데도
    상대방의견을 헛소리라는둥 무례함을 상대방탓으로 변명하고있다

    내가 보기엔 shaman님은 백제역사에 대해 더연구할 필요가 없다는…김부식같은 사고방식이다
    그래가지고서는 저 중국인 여류학자만큼의 성과도 힘들것이다

    또 한미동맹은 신앙이 아니다
    굳건히 할필요도 없고
    필요한 만큼만 하면된다
    미국도 자기들 필요만큼만 할테니까..

    김춘추나 신라인들도 아마 같은 의견일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당전쟁하려고 감히 선빵을 날릴수 있었겠는가?

    • Shaman 12월 19, 2013 at 3:17 am #

      제가 무례했던 것이 맞습니다. Heika님께도 예의 어긋난 점에 대해서 죄송할 뿐입니다. 사죄드립니다.

      저도 어렸을 때 우리 민족이 과거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대륙삼국설에 깊이 빠져서 여러 책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이 나서 불필요한 흥분을 했었네요..

      백제 건국 무렵 중원에는 강대한 한나라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산동지방은 춘추전국시잘부터 중화문화권인 제나라 영역이었고, 이들이 현재 한민족의 원류 혹은 백제의 건국세력이라 볼 근거가 있을까요? 다들 아시듯이 백제건국설화는 고구려에서 시작되고, 초기 백제고분은 중원이 아닌 졸본, 국내성 등 고구려와 유사합니다.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며, 현재 유전학적 연구로 볼 때 만주족, 한민족, 일본인은 그 뿌리가 유사함이 Y염색체 연구 등을 통해 밝혀졌습니다만 산동 등 중원과는 별 연관이 없습니다. 이러한 최근 십여년 사이의 연구 걀과로 보더라도 우리 민족이 중원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은 역시 어렵습니다.

      한미동맹은 신앙이 아닌 것에 동의합니다. 그들도 국익에 따라 우리 뒷통수를 칠 수 있겠죠. 다만 본문에서와 같이 우리가 힘 있는 나라로 발전해 나간다면 한미동맹을 강화하며 그 시너지를 누릴 수 있을 갓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나치고 불필요한 국수주의적 역사왜곡은 우리가 그토록 분노하는 동북공정, 임나일본부에서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전 대륙백제설 등을 하나의 가설로 놓고 연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를 맹신하여 다른 증거를 끼워 맞추는 것은 국익에도 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 다시 봐도 쫌 예의에 어긋… 많이 어긋나네요;; 거듭 죄송합니다;;

      • Kauli 1월 6, 2014 at 4:45 pm #

        저랑 비슷하거나 약간 어리신 연배신거 같은데, 지난 20여년 이후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도 예전 교과서에서 배웠던 두루뭉실한 고대사와 이해안가는 부분을 가슴속에 간직한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죠. 환단고기에 대한 이야기와 갑론을박은 최근에 들었구요.

        환단고기에 흥분했다가 매우 실망하신 분들이 ‘환빠’들을 극혐오 하시더라구요.
        역사 관련 카페나 갤러리를 눈팅하며 대륙백제론자 들이나 고조선사에 대해 주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환빠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대륙백제론자들의 주장 근거는 모두 중국의 사서이거나 최근의 과학 연구 자료인데도 말이죠. 환단고기에 무엇이 쓰여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거기에 대륙백제론이 있는지 아닌지도요. ‘우리 조상이 예전에 이런 업적을 세웠다….’류의 주장은 거의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놀라울 따름이었지요.

        우리 고대사의 자랑스러운 부분을 주장하거나 연구하는 자체만으로 국수주의, 나찌, 극렬 민족주의 로 몰아부치는데, 너무 앞서 나가는것 같은 느낌입니다. ‘대륙에 백제가 있었던 것 같은 근거가 있다’ 라고 하면 그 땅을 빼앗자는 주장인가요? 우리는 잘나가던 민족이니 짱개들은 찌그러지라는 주장인가요?
        넷상에서는 너무 오바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Shaman 님이 우려하시는 바는 잘 알겠지만 오히려 중국이나 미국에서 한국의 고대사를 논의하고 연구하는 것보다 자유롭고 다면적이지 못한 우리 사학계와 사람들의 태도가 저는 더 우려스럽습니다.

      • Blue 5월 23, 2014 at 9:28 am #

        누가 맹신했다고 하는지 삼국사기, 중국 사서등에 기록 되어 있는데 맹신이라고 하는 자체가 논리에 안맞는 표현이에요. 당신 토론 쭉 보니깐 토론의 기본 소양부터 갖추고 토론 하세요. 님이 아는 자식이 얼마가 되든 토론의 기본 자세, 상대방의 의견 조차도 무시해버리는 태도는 지금 이런 토론할 자체도 필요 없는 사람으로 느껴습니다.

    • 만주벌판 4월 8, 2014 at 3:11 pm #

      역사적으로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보다는 당나라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신라의 박혁거세에 의해 세워진 신라가 내물왕때 흉노족의 후손으로 대치되면서 지도층의 정체성이 단군의 후손보다는 당나라의 황토인에 가깝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신라의 입장에서는 고구려나 백제와는 아무런 유대감도 느낄수 없는 적일뿐이었읍니다. 그 영향은 아직도 남아 있어서 경상도 사람들의 기질은 늘 자신들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읍니다.

  19. heika 12월 19, 2013 at 8:17 am #

    열띈 의견개진과 다양한 자료제시를 바라는 입장이었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적네요.

  20. 누구시길래 12월 20, 2013 at 4:12 pm #

    앞선 댓글들을 통해 보니 Shaman님 혼자 대륙백제설에 반대하며 고구분투하시는 것 같군요.
    저도 대륙백제설을 허황한 환빠류의 설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
    아, 물론 역사학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한동안 삼국과 관련된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갖가지 의문에 휩싸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의문들이란….

    - 고구려가 그렇게 강국이라면 왜 오호십륙국이나 요, 금, 원, 청처럼 중국대륙으로 진출하지 못했을까?

    - 장수왕은 아버지인 광개토왕을 왜 중국처럼 ‘황제’라 칭하지 않고 그저 ‘왕’을 조금 더 높여 ‘태왕’이라고만 칭했을까?

    - 당과 신라가 백제를 협공했습니다. 대륙백제가 있었다면, 당과 신라는 어디를 공격했을까요? 신라의 군사가 대륙으로 간 것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 기록들을 보면 신라는 군량미와 같은 보급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고구려를 공격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신라가 제대로 전투를 벌인 것은 황산벌 뿐이고, 모든 전투는 당군이 벌였던 것이 아닐까요? 이 의문은 다음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 나당전쟁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군이 고구려군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 요동을 공격하면서 시작됩니다. 신라는 국력이 그렇게 강하지 못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을 공격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 상황을 보면, 신라군은 북쪽에서는 고구려군과 함께 당에 맞서 싸웁니다. 남쪽에서는 신라 혼자 당-백제의 잔당들과 싸웁니다. 8년간의 ‘삼한일통’을 위한 전쟁에서 신라는 어떻게 상과 싸울 수 있는 군사력을 보존할 수 있었을까요? (가장 큰 전투에서 당은 이십오만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합니다. 신라가 백제 정벌에 동원한 병력은 오만 정도입니다.)

    -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신라는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요동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나당전쟁이 끝난 뒤 신라는 청천강 이남으로 물러납니다. 왜 신라는 요동이나 압록에서 물러나야 했을까요? 당시 상황은 말갈이 당에 붙었습니다. 말갈의 향배가 신라의 후퇴를 불러일으켰을까요? 아니면, 당의 공격에 대한 마땅한 방어선이 없어 물러난 것일까요? (사실 고구려 때도 수도인 국내성이 털린 적도 있었고, 평양 천도 이후에는 평양의 코 앞에까지 적이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요하에서 평양까지는 방어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래서 농성전이 주 전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나당전쟁에서 고구려의 유민들은 신라와 협력하여 당에 대항하여 싸웁니다. 그런데 백제의 유민들이 그러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도리어 백제의 유민들은 당과 연합하여 신라에 대항합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런 종류의 의문들이었습니다만…. 여기서는 백제가 주제이니 백제에 관한 의문을 말해 보겠습니다.

    - 백제의 지배층은 부여계입니다. 이들이 당시 마한지역을 합병하여 보다 큰 나라를 만듭니다. 마한은 지금의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있던 나라인데, 대륙백제가 있었다면 마한 합병 후에 백제가 대륙에 진출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백제의 대륙원정기록은 없습니다. 대륙의 일부라도 점령하여 영토로 만들려면 많은 병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선박의 숫자만 해도 장난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런 기록은 왜 없는 것일까요?

    - 대륙에서 백제를 먼저 건국했다면, 적당한 시기에 군사력으로 한반도를 밀고 들어오는 것이 순리적입니다. 역사에서 대륙에 세워진 나라는 모두 그렇게 했습니다. 이 경우 우선 고구려를 격파하고, 그 다음에는 낙랑, 대방 이렇게 순차적으로 밀고내려와야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소수만 들어와서 마한의 눈치를 보면서, 그 허락을 받아 한강 유역에다 조그만 나라를 만들었을까요?

    역사는 우선 있는 그대로 보아야겠지요.

  21. Kauli 1월 6, 2014 at 4:21 pm #

    shaman 님께서 ‘당시 최첨단인 중국의 천문 기록을 베꼈을 수 있다’는 말씀은 너무 경솔하거나 주관적이신거 같습니다. 중국이 최첨단 이었나요? 중국 사서에서 나오는 천문 기록의 시뮬레이션 상 실현율이 우리나라 사서의 천문 기록 실현율보다 낮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없으셨나 봅니다.

    천문 관측 기록 및 예측은 우리 조상들이 더 최첨단이었던 걸로 여겨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 검색하면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중국’ 하면 무조건 대국이고 최첨단은 아니잖아요. 중원을 차지한 종족은 계속 바뀌어 왔거늘…..중국이 언제부터 중국이었다구.

    너무 자학적인 사관을 가지고 계신건 아닌가 의심되네요.

  22. 만주벌판 4월 8, 2014 at 2:46 pm #

    저는 역사학도는 아니고 꿈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보통 꿈은 잠재의식의 발로인데 이 잠재의식에는 역사성이 있읍니다. 그리고 역사성은 일반적으로 DNA 와 언어를 통해 유전 되어집니다. 그런데 이꿈을 해석하다 보면 기이한 것을 많이 보게 되어지는데, 그중에 하나가 천문과 관련된 꿈입니다. 보통 우리나라 단군조선의 사상은 다산과 풍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산과 풍요 사상은 하늘에 대한 경배인데 이러한 하늘에 대한 경배의 대상은 일월성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월성신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고인돌입니다. 고인돌의 발생연원은 보통 기원전 3000년경 청동기 시대인데 이 고인돌이 전세계적으로 50프로 약 3만개가 한반도에 있고, 이 한반도에서도 전남지역에 1만개가 있읍니다. 한편 이 고인돌은 전남지역을 기점으로 만주벌판 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퍼져 있읍니다.
    둘째로 이 고인돌이 보다 발전된 형태인데 피라미드입니다. 피라미드에서 우리나라 전통 놀이인 고누(꼰놀이)놀이와 바둑 ,팔방(주역의 낙서와 유관),윷놀이 등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피라미드는 만주벌판과 중국의 서안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한편 고구려의 장군총은 유명한 피라미드와 고인돌의 연합형태입니다. 그러니까 고구려 시대에 피라미드가 많이 발달했음을 볼 수 있읍니다.

    한편 천문학으로 말씀드리자면 천문학의 시초는 고인돌이며 이 고인돌위에 북극성을 포함해 81개의 별자리가 새겨져 있고 경남의 낭하리 암각화에서도 천문도 그림이 발견 되어지며, 천부경의 81자는 이 천문도와 유관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로를 보게 되면 전남-만주-중국대륙 쪽으로 뻗어 있읍니다.

    한편 언어적으로보면 언어에는 지명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이 언어는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천부인과 관련된 언어가 수없이 많읍니다. 예를 들면 우리 민족의 언어는 삼부인인데 이삼부인과 관련된 언어들이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대륙 심지어 유라시아 지역에까지 도처에 나타납니다.

    다음으로 문자에 대해 살펴 보면 최초의 문자는 신지녹도문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창힐이 발명했다는 한자는 단군이 만들게 한 신지녹도문의 변형이라는 것은 평양법수교비문과 창힐의 조적비를 보면 금새 알 수 있읍니다.

    여러분들은 사서에 기록된 것만 가지고판단할지 모르나 이외에도 암각화나 혹은 고고학적 자료를 보면 단군시대부터 우리민족의 강역은 이미 아시아 전역에 퍼져있었음을 알수 있읍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혈통을 동남아시아와 북방계열의 혼혈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럼 민족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가늠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DNA 가 나타나는 정신이 아닌가 싶읍니다. 본시 우리민족의 정신은 다산과 풍요이기 때문에 다소 성적으로 문란한 경향이 있읍니다. 그러다가 중국의 유교의 영향을 입게 되어지는데 만일 우리 민족의 전통 정신이 조화라고 한다면 유교의 문화는 질서입니다. 그리고 질서에는 이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조화에는 감정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그런데 우리민족을 보면 일본은 이성이 강하고 우리나라는 감성이 강합니다. 한편 중국역시 이성이 강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단군의 정신은 아무래도 한반도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편 감성이 강하면 정이 많고 남을 돕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홍익인간의 정신이 나옵니다.
    하지만 감성이 강하면 다툼이 많고 또한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본성이 강해 도덕성이 상실되어지는 수가 있읍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래도 대한민국 국민밖에 없는것 같읍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최소한 오늘날은 대한민국 국민만이 진정한 단군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읍니다.

  23. 만주벌판 4월 8, 2014 at 3:01 pm #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만이 단군의 자손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기이하게 여기는 것은 이 국민성속에서도 유독히 전라도만이 다른 지역에 비해 독특한 정신세계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시 왜국은 전라도의 나주에 있던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광개토왕에 패해 일본으로 건너가 식민지를 건설한 곳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라도쪽에서도 나주 사람들은 약간 다른 지역과는 정서가 다른면도 있읍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보면 전라도 사람들은 감정이 대단히 강해서 문화예술이 발달하고 인심이 풍부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포용력이 강하고 남에대한 배려가 강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정체성에 대해 도전을 할 때에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 기질도 있읍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위대한 인물들이 전라도에 와서 실패한 경우는 거의 없읍니다.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삼별초, 장보고등은 바로 이러한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사람들입니다. 즉 훌륭한 인물을 만날때에는 거침없이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의 기질입니다.
    하지만 비도덕적인 사람들에대해서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것이 또한 전라도 사람들의 기질입니다. 때문에 어떤 시대에도 불의가 용납되지 않았고 불의를 강제할때에는 저항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이 전라도입니다.
    하지만 경상도의 기질을 보면 옳고 그름보다는 내편이냐 네편이냐가 더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경상도에는 타지인이 성공한 예가 거의 없읍니다. 아무래도 골품제도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읍니다.

    그럼 왜 전라도에는 이러한 기질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바로 단군의 홍익인간의 정신때문입니다. 즉 우리나라를 보면 단군의 홍익인간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사실상 전라도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지역감정 일으키려고 한것이 아니라 기질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포용력은 다양한 민족을 이끌어 가야 하는 제국민의 성품으로 가장 적합한 것입니다. 즉 사서의 그림을 보면 백제의 사신중에는 동남아시아 사람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는 백제가 일본,동남아시아 중국에 이르기까지 거느린 22 담로국 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해의 백성들을 천시하지 않고 동등하게 받아준 사람들이 바로 이 백제 사람들이었읍니다.
    백제성왕시기에 고구려와 비교해도 백제는 고구려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의 충청도와 전라도만 가지고는 채울 수 없는 수입니다. 때문에 대륙백제설은 결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고 보여지며, 장보고가 해상왕국을 건설한 것도 이러한 해상왕국 백제의 통로를 따랐기 때문이며,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백전백승할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연유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백제는 세상의 중심이었읍니다.

  24. 만주벌판 4월 8, 2014 at 3:20 pm #

    우리민족의 이러한 정신세계는 사실 조선시대까지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읍니다. 그래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조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어지는데 이 조선은 고구려의 후신인 고려의 선대나라 즉 고구려 이전의 나라인 조선으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용상 뒤에는 일월오악도라는 병풍이 있었는데 이것은 단군조선의 신앙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읍니다.
    한편 조선말기에 고종황제는 나라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는데 이는 조선이전의 나라 즉 환국으로의 회귀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나라는
    환국-고조선-고구려

    (고)고려-(고)조선-대한제국(환국)
    이 되었던 것입니다.

    앞에 어떤분이 환빠라고 하셨는데 환빠가 아니라 우리조상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들입니다. 조선말기에 조선의 백성들이 천부경을 기독교의 주기도문처럼 외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우리 민족의 나라를 한반도에 국한시킨다는 것은 너무 민족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이 아닐까 싶읍니다.

  25. 6월 12, 2014 at 4:27 pm #

    조선은 대륙을 포함하고 베트남을 포함하고 인도 까지가 동방의 제국 이였다
    위에 몇몇 자들은 왜놈들의 사학에 말을 하지만 그것은 조선 사람 이라면
    무식의 극치라 할수 있다 대륙은 본시 명청의 지배로 인한 히석이 되여 그렇지 대륙의
    종족을 보면 몽골리안 의 종합 인종 들이 있는 것으로 보면 우리 조선의 한 부류들임을
    역사가 말하고 있는데 이 반도 사관은 무슨 헛다리인지 …..

    한민족은 하나의 혈통 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일제 침략자들의 사학개념이고
    진정한 한민족이라함은 다민족관을 가져야한다
    왜냐고 한다면 몽고의 대륙에 있던 민족은 다혈통 다 족속의 집합 공동체로
    그 집합체가 대 제국을 이루기 위해 떠난곳이 1차로 중원 대륙이고 그로 인한 파생이
    가장큰 명 이요 다음은 청나라니 이것을 다시 말하면 대제국 고구려의 집합체니

    우리 조선의 영토가 아니고 무엇이랴

    명 청은 본레 화족놈들의 족속이 아니며 대 조선에 속했던 족속이니
    대륙은 조선 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역사의 대 기록이 저 대륙의 피라미드 내부에
    고스란히 기록 되 있음을 알아야한다

    언젠가는 일백 20개가 넘는 대륙의 피라미드가 공개되는 날에는 위 반도 사관이나
    대륙에 조선의 역사를 비방하던 자들은 그 입에 재갈이 물릴 것으로 본다

    대륙은 전체가 조선의 영토이며 그곳의 역사는 조선의 영토인 것이지 지금 화족놈들의 영토가 아니다

    예를 들면 한반도에 반으로 잘려 북한이 란 나라가 만들어 진 것 같이 대륙의 중국은 조선 땅위에
    이름만 세운 중국인 것이다 그러니 중국은 북한 처럼 조선의 땅에 이름 만 세웠으니 실체가 모호한 나라들인 것이다 그러니 아님 밤중에 홍두깨라고 중화 주의나 부르짖는 것이지요

    역사는 왜곡한다고 바궈지는 것이 아님을 머지안아 알게 될것이지요

    조선은 1만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노대국 즉 전 세계 부모국 임을 상기하기를 바라지요

    환국은 엄현한 역사며 이런 환국을 무슨 환상의 역사 인냥 치부한다는 것은 이나라 조선 사람의 수치라 말하지 안을수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륙은 전체가 조선의 영토이며 일부 몰지각한 자들에 의한 주권 침략을 당한 현재 인 것이다

  26. 곽경 9월 28, 2014 at 6:34 am #

    백제와 일본은 한 나라임‥ 지배관계가 아님.
    대륙백제는 삼국사기 최치원전에 있음.
    필자의 책 에 자세한 설명이 있음.

  27. ffff 3월 4, 2015 at 11:26 pm #

    와 진짜 우리나라 사학자는 저사람 발톱때만큼이라도 따라갈수 있을까?

  28. 뭐지이건 5월 31, 2015 at 12:23 pm #

    위의 글의 문제점

    1. 대륙백제에 관련된 기록은 중국의 송서, 양서, 남제서인데 전부 북위의 적국인 남조에서 기록한 사서들입니다. 관련된 기록들은 북조의 역사서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2. 백제가 일본을 지배했다? 백제가 일본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일본의 야마토 조정 역시 백제에 순응한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백제의 전지왕은 일본 야마토 조정에서 볼모로 지내야만 했고, 왕위 등극을 위해서 야마토 조정의 양해를 구해야만 햇습니다.

    3. 관미성을 빼앗기면서 백제가 약해졌다?
    판씨가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분이지 역사학을 전공한 분은 아니란게 드러난 것 같네요. 백제는 관미성을 빼앗기고도 한동안 고구려군을 괴롭혔습니다. 이 때문에 광개토대왕이 후연과의 원정에서 전력을 집중시키지 못했던 이유기도 하죠. 결국 고구려는 475년 한성을 함락하여 백제를 1차적으로 굴복시켜야만 했습니다. 이후에도 백제는 전라도 정벌을 바탕으로 동성왕, 무령왕 대에 국력을 회복했으며 성왕은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되찾았습니다.

    4. 결정적으로 대륙백제는 고고학적 근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481년 고구려가 태백산맥 동쪽을 경유해서 신라를 기습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때, 경주 인근에 겨우 일주일 정도만 주둔했었는데 이와 관련된 고고학적 근거가 발견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대륙백제는 전혀 고고학적 근거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5. 백제가 강력한 해상제국이 아니라면 균형동맹을 유지할 수 없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한 결론을 내렸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백제의 사신은 수시로 고구려 해군에 의해 저지되어 중국에 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한강유역을 장악했던 7세기 신라 역시 김춘추가 고구려 해군에 의해서 사로잡힐 뻔 했으니까요.

    전체적으로 동맹이론을 근거로 억지로 짜맞춘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29. 광화세계 7월 14, 2015 at 5:53 pm #

    동맹이론이 상당히 맞는 것 같군요. 공부를 하지 않고 아는 지식만 갖고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것은 아무런 해답을 찾을 수 없지요. 백제 관미성은 현 산동성 연성시입니다. 관미성은 도한 미추홀이었으며, 대방이었지요. (근거: 삼국사기 지리지 제4 매초홀은 미추홀이라고도 한다.) 또한 관미성의 위치가 백제 하북 위레성이지요. 황하(한수0를 건너 형 산동성 제남시에 하남 위레성을 지었습니다. 하남 위레성= 한산성=한성=북한산성.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명칭을 모두 달리 기록했지요. 그러니 한강 풍납토성은 백제성이 아니며, 고인돌 문명 후손들이 남긴 유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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