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최대의 적은 무엇일까? 아마도 ‘나이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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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에서;L 「타고난, 자연의」의 뜻에서〕 a.
1a <사람이> 순진한, 소박한, 천진난만한, 숫된
《naive+of+명+to do》 It’s naive of you to believe that. 그것을 믿다니 너도 순진하구나.
b (특히 젊기 때문에) 세상을 모르는;단순한, 고지식한
c 믿기 쉬운, 속기 쉬운
2【미술】 소박한, 원시적인
3 (특정 분야에) 경험이 없는;선입적 지식이 없는
4 <동물 등이> 실험[투약]을 당하지 않은
━ n. 순진한 사람;경험이 부족한 사람, 이런
뜻이다.
대학 영문학 시간에 ‘캔디다’라는 희곡을 공부할 때 처음 접했던 개념이다.서양 문화의 어느 단계에서 치열하게 고민됐던 개념이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바꾸면 ‘착한 무능’이라고 해야할까? 이 ‘착한 무능’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는 지 우리는 민주화 이래 계속해서 경험하고 있다.개혁보다는 통일에 집착했던 DJ정권을 제외하고 김영삼 정권과 노무현정권의
실패원인은 바로 이 나이브함이 아닐까?일반 기업에서도 숱하게 경험하는 바다.우리나라의 기업문화의 가장 큰 고질병이
바로 이런 무능한 착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문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게다가 이런 무능한 착한 사람은 우리 사회 특유의 ’인정’과 ‘정의’에 대한 대중심리
덕분에 궁극적인 승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언뜻 아이러니로 보이는 이 ‘착한
무능’이란 복잡 다단한 인간의 마음과 욕망이 빚어내는 ‘현장의
치열함’ 혹은 ‘복잡함’에
대한,즉 ’실체적 진실’에 대한 이해 없이 막연하게 ‘착함’을
추구하는 마음이다.숫자를 통한 철저한 계량화나 분석적인 접근보다는 두루뭉실하게 ‘함의’를 추구하는 동양문화의 특징이 만들어낸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구두선이 아닌 실천에 들어가보면 사실 착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현명함,즉 궁극적으로 그 선 혹은 착한 것이
진짜 선이거나 착한 것일 수 있는 지에 대한 통찰력이다.왜냐하면 선은 궁극적으로 공리에 기여해야 선이다.단지 의도가 착하다고 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그런데 우리나라의 ‘개혁’이나 ‘정의’는 대개 ‘의도의 착함’에
머문다.
KAIST와 MB정권의 교육개혁에 관해
걱정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예를 들어,카이스트가 경시나
수능점수가 아닌 학교장 추천이나 내신을 참고해 일반고의 학생들을 뽑고,포스텍이 입학사정관제도로 전원을 선발한다는데 과연 우리사회에서 ‘내신’이 ’공교육의 영역인가’하는
점이다.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 ‘내신’은
절대’공교육의 결실’이 아니다.그야말로 ‘엄마 노력의 결실’이자 ‘사교육의 꽃’이 내신이다.수능이나
경시는 사교육이 뒷받침된다고 해도,즉 엄마가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개인의
능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절대로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특히
수학이나 과학 경시는 더더욱 그렇다.특목고 합격 수준의 영어도 마찬가지다.언어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은 단지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에 살다왔다고 해서 모두 다 특목고에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엄마들이 이미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다.외고들의 목표 역시 단지 영어를 잘하는 아이를 뽑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것이 목표이다.다만 뛰어난 학생들 사이에서는 외국에서 살다온 아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분명한 것은 특목고 입시를 위한 사교육이
평준화 정책으로 인해 미처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영재교육’에
대한 대체역할은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진정한 영재교육인지가 의문이긴 하지만 적어도 사교육은 그나마
영재들의 ‘선행’에 대한 욕구라도 해소시켜 준다.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공교육에서도 영재교육의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또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의 성향상 공교육에서 영재교육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지에 의문을 갖는 부모들도 많다. 특목고나 경시같은 제도의 문제점은 그 내용이 아니라, 기회의 불평등과 ‘과열’로
인한 사회적 낭비,어린 시절부터 아이를 입시전쟁으로 내모는 아동학대같은 부작용이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대학수능의 경우 특목고 입시와는 또 다르다.수능에서 상위권의 점수를 내는데 외국 경험이나 경시경험은 충분조건은
돼도 필요조건은 아니다.그래서 집안이 가난한 학생일수록 오히려 수능에 승부를 건다.반면 내신은 그야말로 ‘엄마의 뒷받침’이 필수다.그 뿐만이 아니다. 지식에
대한 폭넓은 접근보다는 오로지 ‘시험용 공부’에만 매달리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 내신이다. 전교1등을 하려면 고교3년
내내 전과목 고액과외를 받아야한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도 있다.게다가 음악,미술,체육까지
내신을 잘 받으려면 아주 어린시절 부터 어떤 ‘뒷받침’이
필요한 지 엄마들은 안다.심지어 입시컨설팅업체들은
초등학생 엄마들을 상대로 내신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수시에 합력하려면 초등학교때부터 대학입시를 전제로 한 로드맵을 짜야한다고 충고하는 실정이다.
입학사정관제 역시 정말 걱정되는 부분이다.사정관의 ‘자의’가 ‘합격의 잣대’인 이 제도가 과연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에서도 ‘착한’ 제도일 수 있을까? 온갖
뒷거래와 엄마들의 ’독특한 스펙만들기 전쟁’의 또 다른 도화선이 되지않을까? 입시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않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환경이다. 많이 배우고,돈많고,똑똑하고,시간많고,오로지
내 가족밖에 모르는 ‘엄마’들이 이끌어가는 전쟁이 바로 ‘입시전쟁’이다. 그런 나라에서 과연 입학사정관제도가 순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결국,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평등한 것은,아니 진정한 인재를 선별하는 방법은 ’난이도’를 통한 변별이다.그나마 외고나 과고 입시는 사교육이 필요조건은 돼도 충분조건은
안된다는 것이 엄마들의 경험이다.안되는 애는 외국에서 2-3년씩
유학해도 안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교육이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의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작용하는 한,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제도를 취하든 ‘경쟁’이나 ‘과열’은 피할 수 없다.우리
사회가 어떤 직업을 택해도 평생 안정적으로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 전까지는.이같은 현실을 인정하고 나면,결국 우리나라 입시전쟁에서 실천할 수있는 미덕은 ’모두에게
얼마나 공평한 경쟁기회를 제공하느냐’이다.공교육 강화의 목적은
거기에 맞춰져야 한다.즉,가난한 아이들에게도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는 제공돼야 한다는 뜻이다.어떤 방법으로도 입시전쟁을 없앨 수는 없으니 공교육이 그 입시경쟁을
맡아야한다는 뜻이다.그런 의미에서 공교육을 강화한다면서
국제중,특목고,자율형 사립고를 확대하는 MB정권의 교육정책의 정확한 목표가 무엇인 지 참으로 혼란스럽다.이것
저것 다 펼쳐놓고, 우왕좌왕 하지말고, 일단 정확한 목표를
정하고,거기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야하지 않을까싶다.
결국 정부건 KAIST건 포스텍이건 ‘공교육 활성화’의 실체적 의미를
깨우치고,공교육 강화에 나서야 ‘사교육비 절감’과 ‘공평한 기회 제공’이라는
최소한의 ‘선’이라도 실현할 수 있다. 엄마들 사이에
전두환 정권이 취한 교육 정책이 그나마 우리나라 현실에서 가장 ‘착한’ 입시정책이었다는 회고담이 나도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당시와 지금은 교육의 수요가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영어가 대표적인 예다.그런 의미에서 정부나 카이스트나 포스텍의 개혁정책은 공교육
현장이나 사교육 현장의 정확한 ’실체’에 관해서 잘 모른 채 ‘나이브하게’
개혁에 나서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하면 지나친 기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