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단히 설명하자면
‘황금 물고기’는 2008년 노벨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쓴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다. 사실
나는 성장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본전은 하는’ 안전한 선택 같기도 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청춘을 소모하고 있는 나를 야단치는 소리 같아서.
작년 11월에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있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고은 선생이 받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한 편으로 ‘속죄’의 이언 매큐언, 혹은
‘노인을 위한 바다는 없다’를 거쳐 ‘로드’로
만개한 코맥 매카시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수상자는 (내게는
의외였던) 르 클레지오였고, 운의씨가 생일 선물로 그의 작품, 황금 물고기를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 읽게 된 소설
‘황금 물고기’의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라일라. 밤이란 뜻이다. 밤은
세찬 진실의 시간. 라일라는 밤처럼 어두운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 무렵 누군가에게 납치돼 팔려간다.
랄라 아스마란 이름의
할머니가 라일라를 사들인 뒤 집에서 키우며 친할머니와 다를 바 없는 애정을 쏟지만 얼마 안가 숨을 거둔다. 할머니를 잃은 라일라는 이후
표류를 계속한다. 태어난 땅과 피로 맺어진 가족을 그야말로 ‘강탈당한’ 라일라에게 표류는 숙명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를 그물로 잡으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끈끈이에 들러붙게 했다. 그들은 자신의 감상과 그들 자신의
약점으로 내게 덫을 놓았다. 본문 중에서.
라일라는 랄라
아스마의 고약한 아들 내외를 피해 여인숙으로 들어가 ‘공주님’들과 지낸다. 이
‘공주님’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타고난 것인지 오랜 표류 생활 속에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라일라의
자유롭고 예술가적 면모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랄라 아스마 할머니의
고약한 아들내외에게 학대를 당하다 도망을 쳐 예전 여인숙의 공주님들과 다시 함께 살기 시작한다.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가난을 경험한 적이 없는 라일라에게 아프리카 빈민촌의 생활은 견디기 어렵다. 스페인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다 잡히는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의 사진을 자주 본다. 사진 속의 불안에 떨리고 운명을 저주하는 듯한 얼굴이 라일라와 겹쳐졌다. 라일라는 그들 중 한 명이
돼 프랑스로 간다.
스웨덴 학술원은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르 클레지오는 새로운 시작과 시적인 모험, 감각적인 황홀경을 표현하는 작가로 지배 문명 안팎을 넘어 인류애를
탐험하였다”고 밝혔다.
황금물고기에서도 르
클레지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안쓰러운 인생들이 있다.
넉넉하거나 많이 배운 사람들은 지성과 교양으로 위장한 발톱으로 라일라에게
생채기를 낸다.
그 생채기를 핥아주는 건 언제나 어렵고 괴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
라일라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아니다.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간다. 소설 속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해 놀랍도록 현실적인 삶을 보여주지만 책을 덮은
뒤에 누구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라일라는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손에 힘을 주어 붙잡지
않는다. 그녀는 모두와 함께 헤엄치고, 모든 것을 그저 헤엄쳐 지나간다.
랄라 아스마 할머니를 잃은 라일라는 엘 하즈 할아버지를 만나고,
자매 같은 후리야와 멀어지면 시몬느와 가까워지고,
시몬느가 사라지면 새라가 나타난다. 남자친구 노노를 떠나면 벨라를, 장 빌랑을
만나게 된다.
사람은 끊임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운다.
기쁨도
슬픔도 끊임없이 대체된다. 라일라의 표류는 서서히 항해로
변해간다.
우리는 젊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그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라일라는 어렸을 적
교통사고를 당해 한 쪽 청력을 잃었다.
한 쪽만 들리는 귀로 라일라는
세상과 절반만 소통한다.
라일라는 이 사실을 불편해하지도, 이상하거나 슬프게 여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따금씩 들리지 않는 한 쪽 귀 뒤로 편안히 숨어든다.
어차피 사람 사이의
완전한 이해나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완전한 이해나 소통을 기본값으로 생각한다.
인간이 외롭고 불행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결핍감을 지나치게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은 외롭고, 불행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조금 덜 외롭고 덜 불행할 수 있을텐데.
라일라가 하킴의
할아버지 엘 하즈를 만나면서 라일라의 항해의 목적지는 자신의 뿌리가 된다.
그는 예언자
마호메트와 가장 먼저 기도에 헌신했던 그의 종 빌랄에 대해 말했다.
헤지라
이후 예언자 마호메트가 아이샤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두었을 때,
빌랄은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밀림을 헤매다가 만난 큰 강을 따라 내려가 대양의 연안에 이르렀다.
엘 하즈는 빌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일이 자기 가족에게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 했다.
그 때마다 하킴은 바닥에 앉아서 빨려 들어가듯
귀를 기울였다.
그 후 나는 빌랄의 이야기를 결코 잊지 못했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또한 나 자신의 이야기였다. 본문
중에서
라일라의 표류에 잠시
잠깐 동행하는 이 불안한 젊음들은
때로 해지는 파리 거리를 내려다 보며
건물 옥상에 모여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선명했던 한 장면.
밤이 내린 파리에서 울려 퍼지는 노노의 북소리,
하킴의 산자소리,
시몬느와 라일라의 노래소리.
이들의 뿌리이자 검은
대륙의 소리,
그 날것의 소리가 귀가 아닌 심장으로 들려왔다.
라일라가 소리를 듣는 바로 그 방식으로.
라일라는 서서히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키를 돌리기 시작한다.
잠시, 아주 잠시
믿지 못할 행운이 라일라를 찾아오기도 한다.
팡파레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오오, 기구한 운명을 이겨내고
고통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눈물겨운 인간 승리의 음악가,
그 이름은 라일라’가 되기 직전,
표류라는 천형은
라일라에게 열병을 선물한다.
열병에 걸린 라일라는 나머지 한 쪽의 청력마저 잃어버린다.
라일라가 나머지 귀의
청력마저 잃어버리는 과정은 슬프게 그려지지 않는다.
라일라는 괴로워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이마저도 생의 한 단계로서,
이제껏 그래왔듯, 지나쳐 간다.
세상의 소리와 완전히
단절되었지만 라일라는 이미 물리적 소리의 무의미를 몸으로 체득한 뒤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시작된 곳으로, 모든 것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고향을 빼앗긴 채
아랍과 프랑스, 미국을 떠돌던 소녀는 마침내 아프리카로 돌아간다.
그저 한 사람의 개인일 뿐인 동시에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 여성과
자연, 비문명의 상태이기도 한 그녀는 먼 곳을 돌아 마침내 자신의 뿌리로 돌아온다.
표류를 마친 황금 물고기는 처음으로
불안과
이질감이 없는 충만하고 평온한 어머니의 바다를 헤엄친다.
더 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 곳이다.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울음소리.
십오 년 전에, 영겁의 시간 전에, 물 때문에 생긴 분쟁, 우물을 놓고 벌인 싸움,
복수를
위하여 힐랄 부족의 적인 크라우이가 부족의 누군가가 나를 유괴해 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 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본문 중에서
그리고
험한 바다와 폭풍우의 기억이 없는 나의 성장은 더디고 지난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