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들 사이에서

헌 책들 사이에 서면 두렵다.

 

책읽기의 비효율이랄까, 허무함이랄까를 절실하게 외쳤던 사람 중에 중국 양나라
황제 원제(元帝)가 있다.

 

그는 수도 형주성을 겹겹이 포위한 서위(西魏)의 군대를 보고 황제로서의 자신의
운명이 촌각에 달렸음을 깨닫는다. 그러자 그는 개인 서고 였던 동각죽전(東閣竹殿)에
들어가 그동안 모아온 14만권의 장서를 불사르게 했다. 책들을 태우는 불꽃과 연기사이에서
그는 외쳤다.

 

"만권이나 되는 책을 읽었는데 나에게 주어진 것은 오늘의 이런 파망뿐이었다니..
이 책들을 다 불태워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한제교수의 중국역사기행2-강남의 낭만과 비극, 사계절 간)

 

원제는 대단한 독서가 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황제였다는
것이 박한제교수(서울대 동양사학과)의 설명이다. 그는 주역강소(周易講疏) 노자강소(老子講疏)
등 주역과 노자를 연구한 사상철학서는 물론 효와 충에 관한 서적및 역사지리서도
남겼으며 문학 역사 철학은 물론 그림과 서예에도 능했던 당대 최고의 인문학도였다는
것이다.

 

인문주의적 황제의 현실 패배. 그 것은 인문주의적 삶의 패배인 것인가.

 

송나라 진종황제는 책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 백성들에게 권했다. 책속에 돈과
집과 미인이 모두 있으니 대장부가 뜻을 세우려면 책을 부지런히 읽으라고 했다.

 

책으로 상징되는 정보와 철학의 체계속에서 인생은 확장되고 지혜를 배우며 이를
토대로 태도를 결정한다. 책이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원제의 실수는 어쩌면 편중된 책읽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스스로 통치의
기반이 되는 효와 충을 강조하는 논리를 강조하며  반란과 배반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논리의 냉혹한 측면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혹은 이상적이고 예술지상주의적인
성향으로 인해 피비린내나는 현실의 권력관계를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책이 인생을 구원해 줄 수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모순.
이 것은 책읽기를 둘러싼 개인 행동양식의 결과는 아닐까.

 

책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 한 시각에 편중되거나 현실관계를 도외시 한 책읽기는
눈을 가릴 수 있다. 옛
사람들은
두루 읽되 책으로 대표되는 이상과 논리의 세계(이판)와 현실세계(사판) 모두에 능한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판사판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다.

 

헌책들 사이에 서면 두렵다. 그 것은 책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 것은
그동안 골라두었던 책으로 표현될 수 있는 삶의 방식 및 태도에 대한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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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 헌책들 사이에서

  1. daeyk says:

    유구뮤언입니다…인생이란 무었인지?

  2. 미스터리 says:

    정답은 없는 듯 합니다

  3. 세계경제 says:

    10여만권의 책을 불태운 왕의 이야기는 소개하신 책과는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도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 이야기는 제 머리속 한 켠을 가득 채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실은 데카르트가 비슷한 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데카르트가 자기 나름의 “각성”을 했을 때 외친 말은 “지금까지 쌓여온 고전적 지식과 지혜의 책들을 모두 버리겠다”는 한 마디였습니다. 물론 데카르트는 그 말을 외치고나서 죽거나 망했던 것도 아니고, 그 이후로 어떠한 책도 읽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실제로 책들을 불사른 것도 아니었긴 합니다만, 그 상징적 의미는 대체로 유사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장자(莊子)는 성현의 말씀을 담은 책을 “성현의 찌꺼기”라 불렀습니다. 책은 지혜의 보고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 이를 지혜로서 창조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냥 쓰레기이자 짐일 뿐입니다. 어떤 때는 쓰레기나 짐보다도 못할 때도 있겠지요.

    똑같은 책을 읽고도 그로 인해 얻는 것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은 남들이 쓸데없다고 하는 책을 통해서도 크게 배우는 것이 있고, 어떤 사람은 모두가 좋은 책이라고 말하는 책을 보고도 하나도 얻는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조차도 역시 부족할 것입니다. 지혜란 것조차도 어떤 때는 대단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티끌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공자도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을 면치 못한 일이 있고, 위대한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가 하찮은 로마 병사의 칼에 허무하게 죽기도 하였습니다. 대철인이든 시정 잡배이든 뒷골목을 가다가 돌연 나타난 강도의 칼에 죽을 수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는 세상살이의 모든 위험을 막아줄 수 있는 방패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혜는 “네나 내나 누군가의 단 칼에 죽일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혜로운 자는 덧없는 죽음의 순간에도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갈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죽는 그 순간까지 “두렵고 분하고 억울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만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4. lee38693 says:

    그렇군요.. 지혜와 지식의 차이를 깨닫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선불교에서 선승들이 내세우는 ‘불립문자’도 같은 맥락이 아닐른지요.. 문자로 표현되는 지식의 한계, 논리의 체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선승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군요.. 말씀하신대로 지식이 지혜와 결부되지 않는다면 생의 구원은 어려울지도..

  5. kkkk8155 says:

    헌 책들 사이에 서면 두렵다…

    이런 말을 들으면 두렵다…
    몇권 되지도 않는 헌책이 꽂힌 제 책장을 보게 만드는군요.
    전형적으로
    편향된 독서를 하는 사람으로서
    좀 찔리는 데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분야에만 집중하는 편이라
    의식세계도 답답한 사람입니다만..
    마지막 문장..
    반성하게 만드는군요.
    아마
    한 인간의 삶을
    그의 책장이 대변하고 있으리라..
    빈약한 나의 책장이
    나를 부끄럽게 하는군요.

  6. 미스터리 says:

    저의 책장도 빈약하기는 마찬가지.. 그나마 얼마 안되는 책들도 제대로 읽지 않은 때가 있습니다.

  7. 까만달팽이 says:

    “책이 인생을 구원해 줄 수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해주지 않을 수 있다는 모순” <–이 부분이 공감이 많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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