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미의 반란

  권력은 어디에나 있다.

  사회가 존재하는 곳에는 어디든 권력이 존재한다. 따라서 어디서든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권력관계는 일상적이다.

  푸코가 경고한 것은 이러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다. 폭력은
다양한 이름으로 자행된다. 그 것은 합리의 이름으로, 혹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조직논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폭력은 정당한 것인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메를로 퐁티는 그의 저서 ‘휴머니즘과 폭력’(문학과 지성)에서 인간은 폭력을 피해서
살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에게 권력관계에서 비롯되는 폭력은 인간에게 있어서 일종의
자연이었다.

마키아벨리즘과 선악의 고찰, 나아가서 자본주의와 스탈린주의까지 거창하게 언급한
그의 결론은 그러나 다소 추상적이었다. 그 것은 권력관계에서 상위에 있는 사람이
상대방을 좀 더 배려하며 권력을 행사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푸코가 제시한 것은 철학적인 방법이었다. 그는 권력관계의 고착화와
그로 인한 사회의 규율화 목록화를 경계하기 위해서 항상 주어진 권위와 지배권력을
뒤집어 보는 전복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철학자들의 이러한 권고는 실상 현실 생활에서는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일개미의 반란’(21세기 북스)은 이러한 권력관계에 대한 고찰로
읽힌다. 주 내용은 직장에서 상사와 동료, 선후배간의 처세술에 관한 것이다. 많이
알려진 이솝 우화들, 예를 들면 저녁 때가 되어 커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자신의
실제 덩치가 커진 줄로 착각한 늑대가 사자에게 까불다 잡아 먹혔다는 이야기 등
등을 통해 직장 생활에서의 주의 상황을 전달한다.

  이 책에는 이러한 일화들이 넘친다. 철학자들의 권력 고찰과 달리
현실 직장 생활에서의 권력 탐구 이기 때문에 좀 더 현실적이다. 반면 인문학적 독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가벼워 보일 수 있다. 그 것은 형이상학적인 고차원의
담론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적나라한 시장바닥과 있는 그대로의 남루한 현실을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고찰에서 좀 더 현실적인 것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주로 언급하는 것은 실제 권력관계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지은이는 가늘고 오래 사는 것이 장땡이라고 과감하게 이야기 한다. 노예 이솝의
우화는 사자 늑대 여우 양 을 주인공으로 한다. 직장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양떼들의 생존기술에 대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그 것은 힘 센자에게 함부로
대들지 말고, 힘센 자의 농간에 인내와 지혜를 갖고 대처하며, 힘센 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처세술을 익히고, 위기 상황에서 빠져 나갈 것 등등을 가르치고 있다. 실수를
부르는 오만과 적을 너무 믿거나 경시하는 경계소홀을 지적하고 있다. 야전 전투에 투입된 병사들의 생존 기술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과도 같다.

 

  책을 다 읽은 뒤의 느낌은 씁쓸함이었다.

 

  그 것은 많은 사람들의 직장생활의 비애를 솔직히 드러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생활은 정글 속의 생존투쟁과 같다고 너무 솔직히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거창한 학설이나 철학적 담론 없이 누구나 아는 이야기들을
간단히 짜집기 해서 편집한 책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런 측면에서의 효율성이
있다. 처세술에 대한 책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 것을 천박하게 여기는
인문주의자들의 시각도 있다. 그러나 책을 소화하는 것은 결국 읽는 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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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무작정 따라하기=고기국과 식은 밥

  ’경영학 무작정 따라하기’(미야자키 데츠야지음, 이우희 옮김, 길벗
간)은 초보 경영학 입문서다.

    안으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잘 관리하면서 밖으로는 고객을
얼마나 잘 설득하는 지에 대한 이론이다. 크게 보면 결국 ‘사람’에 대한 관리 모델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경영학에서도 성선설(Y이론)과 성악설(X이론)이
있다는 것이 크게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성선설에 바탕으로 하는 것이 인간관계론
등이라면 성악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콘베이어 벨트 등의 강압적 시스템이라는
저자의 분석은 흥미롭다. 때로는 독재도 필요하다는 레빈의 리더십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하인처럼 헌신해야한다는 서번트 리더십 등도 이 같은 두 가지 시각의 반영이다.

  7살 때 집을 나와 교육도 받지 못한 마츠시타 고노스케가 세계적인
기업 ‘마츠시타 전기’를 창업하기까지의 일화 등 다양한 인간행동의 분석도 곁들이고
있다. 그는 ‘가난’ ‘허약한 체질’ ‘무식’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3가지 선물이라고
했다. 가난했기에 일찍부터 구두닦이 등 여러 경험을 했고 허약했기에 꾸준히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해야했다. 그리고 못배웠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여기고 물어가며 배울 수 있었다는 것.

  시장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 싶은 독자를 위한 책이다.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전문적인 정보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맞지 않는다. 33페이지의 유한회사를 설명하는 도표 부분에서 채권자에게 사원이
무한책임을 진다는 것은 오타가 아닐까. 유한회사는 이름 그대로 유한책임을 지는
회사로 알고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그 것은 강압인가
자발적 동기유발인가.. 서로의 마음을 얻는 것은 때로
생명을 움직일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경영이란 회사란 이익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일생, 국가 , 사회조직을 움직일 때도 적용되는 말이라는 생각이든다.
그 것이 이 책의 주장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점에서 본다면 ‘전국책’의 유명한
고사가 절로 떠오른다.

 

전국시대 중산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연회가 벌어졌다. 잔치가 파할 무렵 왕은
신하들에게 양고기국을 나눠주게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사마자기라는 신하 차례에서
국이 떨어졌다. 사마자기는 필시 임금이 자기를 버렸다는 의미를 제시한 것이라 생각하여
낙심했다. 그는 초나라로 망명했다. 그리고 초나라에서 재상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성공하자 자기를 버린 중산국을 쳐들어가라고 초나라왕을 부추겼다. 이 때문에 중산국은
쑥대밭이 되었다.

중산국왕이 초나라 군대에 쫓겨 목숨이 위태로울 적에 두 명의 용사가 죽을 듯이
덤벼들어 왕을 구했다. 왕이 물었다. "임금인 나를 도우면 표적이 되어 위험할
텐데 나를 왜 돕는가?" 용사들이 말했다. "기억하지 못하실 테지만 과거에
저희 아버지가 굶주려 길가에서 죽어갈 때 임금께서 우연히 지나가다가 식은 밥 한덩이를
내려 우리 아버지를 살리셨습니다. 아버지는 목숨으로 왕을 지키라고 유언했습니다."

  이에 중산국 왕이 한숨쉬며 말했다.

"남에게 베풀 때는 양이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곤경에 처했을 때
베푸는 것이 중요하구나.  남에게 원한을 살 때는 깊고 얕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문제구나!  내가 한 그릇의 양고기국 때문에 나라를
망하게 하고, 한 그릇의 식은 밥 때문에 두 용사를 얻었구나!"

 

 이 구절은 ‘합종책’으로 유명한 전국시대의 책략가 소진이 수집하고 평생
간직했다는 구절이다. 지극히 작은 것으로 감동받을 수 있는 것, 지극히 사소한 일로
원수로 돌아설 수 있는 것이 사람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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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들 사이에서

헌 책들 사이에 서면 두렵다.

 

책읽기의 비효율이랄까, 허무함이랄까를 절실하게 외쳤던 사람 중에 중국 양나라
황제 원제(元帝)가 있다.

 

그는 수도 형주성을 겹겹이 포위한 서위(西魏)의 군대를 보고 황제로서의 자신의
운명이 촌각에 달렸음을 깨닫는다. 그러자 그는 개인 서고 였던 동각죽전(東閣竹殿)에
들어가 그동안 모아온 14만권의 장서를 불사르게 했다. 책들을 태우는 불꽃과 연기사이에서
그는 외쳤다.

 

"만권이나 되는 책을 읽었는데 나에게 주어진 것은 오늘의 이런 파망뿐이었다니..
이 책들을 다 불태워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한제교수의 중국역사기행2-강남의 낭만과 비극, 사계절 간)

 

원제는 대단한 독서가 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황제였다는
것이 박한제교수(서울대 동양사학과)의 설명이다. 그는 주역강소(周易講疏) 노자강소(老子講疏)
등 주역과 노자를 연구한 사상철학서는 물론 효와 충에 관한 서적및 역사지리서도
남겼으며 문학 역사 철학은 물론 그림과 서예에도 능했던 당대 최고의 인문학도였다는
것이다.

 

인문주의적 황제의 현실 패배. 그 것은 인문주의적 삶의 패배인 것인가.

 

송나라 진종황제는 책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 백성들에게 권했다. 책속에 돈과
집과 미인이 모두 있으니 대장부가 뜻을 세우려면 책을 부지런히 읽으라고 했다.

 

책으로 상징되는 정보와 철학의 체계속에서 인생은 확장되고 지혜를 배우며 이를
토대로 태도를 결정한다. 책이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원제의 실수는 어쩌면 편중된 책읽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스스로 통치의
기반이 되는 효와 충을 강조하는 논리를 강조하며  반란과 배반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논리의 냉혹한 측면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혹은 이상적이고 예술지상주의적인
성향으로 인해 피비린내나는 현실의 권력관계를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책이 인생을 구원해 줄 수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모순.
이 것은 책읽기를 둘러싼 개인 행동양식의 결과는 아닐까.

 

책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 한 시각에 편중되거나 현실관계를 도외시 한 책읽기는
눈을 가릴 수 있다. 옛
사람들은
두루 읽되 책으로 대표되는 이상과 논리의 세계(이판)와 현실세계(사판) 모두에 능한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판사판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다.

 

헌책들 사이에 서면 두렵다. 그 것은 책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 것은
그동안 골라두었던 책으로 표현될 수 있는 삶의 방식 및 태도에 대한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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