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를 위한 보고’는 없다

카테고리 : image + insight | 작성자 : 냉면원샷

외교부 산하단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 직원인 후배에게서 들은 이야기. 이 친구가 동남아의 한 나라에서 2년간 근무를 마칠무렵 규정대로 해당 국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근무연한을 마치고 작성된 이런 보고서는 해당 국가에 대한 정보는 물론, 다음 근무자에게도 유용하겠죠. 무척 힘들었으나 A4용지 30여 페이지로 정리하고는 뿌듯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구역에서 자주 만났던 일본국제협력단(JAICA) 직원도 보고서를 쓰느라 끙끙대더랍니다. “나는 다 썼다”고 말하자 일본직원이 “부럽다”면서 얼마나 썼냐 길래 자랑스레 보여줬다고 합니다. 순간 일본직원 표정이 썰렁… 자신이 작성해 온 걸 보여주는데… 언뜻봐도 1000 페이지가 넘어보이더랍니다.

 

낯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면피용’으로만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보고서. 왜 만드는 걸까요. 왜 중요한가요.
기록을 위함입니다. 기록엔 ’정보’가 담기죠. 정보는 왜 필요한가요. ‘판단’과 ‘예측’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보고서는 ‘판단’과 ‘예측’에 도움이 되도록 작성돼야 합니다. 보고서는 기록으로 시작하지만 판단으로 끝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또한 윗분들이 정확히 상황을 파악한 뒤 닥칠 일을 예측하고 그에 따른 대응을 판단하기 위해 합니다. 그런데 ‘보고’가 정확한 대응에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요? 혹은 ‘보고를 위한 보고’로 상황을 더 꼬이게 하고 일을 망친다면요? 그래서 목표를 잃은 ‘보고의 과잉’은 위험합니다.

 

공무원 사회. 보고서, 즉 문서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사회입니다. 보고가 중요한 체계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기 위해 보고를 하는 게 아니라, 보고를 위해 일을 한다면요?

 

세월호가 물에 잠기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보고만 열심히 하는 행태가 소중한 인명을 구하는데는 무슨 도움이 됐나요? 청와대는 왜 보고만 독촉할 뿐, 조치에 대해서는 큰 대응을 하지 않았나요? 이유와 목적을 잃은 ‘보고’는 방해가 될 뿐입니다. 비상시엔 ‘선 조치, 후 보고’가 원칙인데, 다들 보고할 생각만 할뿐 ‘선 조치’를 선뜻 나선 이가 거의 없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장으로 일단 달려갔던 구조요원들이 “대체 여기 지휘는 누가 하느냐”며 발만 동동 굴렀다는 소식은 ‘보고의 딜레마’에 빠진 해경, 청와대등의 단면이 낳은 결과입니다.

 

 

한 초대형 기관(차마 이름을 밝힐 수 없는)에 있는 화재 매뉴얼에 표기된 대응 순서는 이랬다고 합니다.

 

1) 상황실에 보고
2) 소화기로 화재 진압 시도
3) 119 신고
4) 상황실 지시에 따라 인명 대피

 

아무리 공무원 사회가 첫째도 보고, 둘째도 보고라지만, 대체 이런 경우엔 보고는 왜 하는 걸까요. 인명대피는 왜 맨 마지막일까요. 상황실에 보고하면, 대응방침은 즉각 나오나요? 전화받으신 분은 또 본인의 윗분에게 보고하지 않나요? 그분도 또 자기 윗분에게 보고하고?  (이 기관은 세월호 참사 이후 자체 매뉴얼을 점검한 뒤, ‘인명대피’를 최우선으로, ‘보고’를 맨 마지막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

 

최근 인터넷에 카투사로 군복무를 마친 한 분의 글이 올라 화제가 됐습니다. 어느 겨울 일요일, 폭설이 내려 비상소집령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사병들은 전원 상황실 대기, 부사관과 위관급 장교들은 영내 대기, 그리고 부대장 등인 영관급 장교는 사택에서 전화대기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상황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미군측 대기자로 부부대장인 대령급 장교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하급 장교나 사병들은 어디 가고?” 의문이 들어 물었더니 대답이 이랬답니다.

 

“만약 하급장교나 사병이 상황 대기를 하게 되면 여러 단계를 거쳐 부대장에게 보고를 해야 하니, 결정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느냐? 나는 부대장에게 직통으로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된다.”

 

즉 너네 한국군은 사병이 대기하니 사병->분대장->소대장->중대장->대대장 순으로 보고가 올라가면 상황 대응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뜻이죠. 비록 자신은 사병이었지만 무척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에 한 보고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보고는,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해 정확하게 돼야 합니다. 그런데 ‘전원 구조’라는 황당한 보고로 적절하고 다급한 대처가 아예 되지도 않았습니다. 누가 그런 황당한 보고를 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제 생각엔 책임질 사람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왜 그런 황당한 거짓보고가 들어갔을까요. ‘보고를 위한 보고’가 거듭되다 보면 윗분들, 즉 보고를 받는 분들이 좋아할 보고를 하게 되니 그런 것 아닐까요? 일을 하다 보면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합니다. 그때마다 이분들 어떻게 혼나고 깨지죠? “일을 왜 그따위로 해!”라고 책망 당하기 전에 “그걸 왜 보고 안했어!”라는 호통이 먼저 날라오는게 한국 사회 아닌가요?

 

 

 

자해한 총기사고 주범 임병장이 체포돼 호송되는 순간, 범인이자 중요한 증인이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어디론가 전화들을 하십니다. 일단 헬기부터 태워놓고 전화하시면 안될까요? 포토라인에 세울 ‘대역’을 준비하시라고 보고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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