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공주를 어떻게 대접해야 하나

  1월 20일자 조간신문은 선화공주가 장식했다. 설화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선화공주는 훗날 백제 무왕이 되는 서동과 국경을 넘는 사랑을 한 끝에 백제 왕후가 되고, 익산 미륵사 건립을 제안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번에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글에 따르면 미륵사 창건을 주도한 이는 무왕의 왕후이기는 하되 신라계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것이다. 희대의 연애담이 무너질 판국이다.

 

  편집자는 전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을 때 난감하다. 이 기사의 경우 ① 미륵사지 석탑에서 국보급 유물(문화재청장은 ‘국보중의 국보’라고 극찬)이 대거 출토됐다 ② 그 유물에 따르면 미륵사 창건은 백제귀족 출신 왕후가 했다 ③ 따라서 선화공주 창건설은 사실이 아니다 ④ 그러므로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 자체도 거짓일 수 있다는 4가지 내용이 복합돼 있다.

  제한된 지면, 몇 줄 안되는 제목으로 모든 것을 담기는 힘들다. 어떤 요소를 어떤 방법으로 강조하느냐는 편집자마다 다른 것이다. 이 기사를 1면에 게재한 6개 일간지를 대상으로 그 유형과 장단점을 따져보자.

  

<1> 흥미 유발형

 

(조선일보) 선화공주의 ‘로맨스’ 역사의 미궁속으로…

           백제 미륵사지 유물 505점 발굴 / ‘서동요’는 허구 가능성 높아져

  로맨스, 미궁, 미스터리 같은 낱말은 독자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1400년전 설화를 ‘로맨스’라는 현대적 어휘로 표현한 위트가 발랄하고 ‘미궁속으로’라는 결말도 팩트를 넘어서지 않았다.(선화공주 설화가 일부는 사실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무왕의 여러 왕후들 중 하나라든지…)

  그러나 이 제목의 결정적 맹점은 ‘왜’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미륵사를 만든 왕후가 백제인이라는 내용은 기사를 읽어야만 알 수 있다. 제목에서 다 보여주지 않고 화두만 던지는 것. 제목으로서의 친절성은 미흡해도 독자를 유인하는 데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한가지 더. 6개 신문 가운데 조선일보만 클로즈업 된 금제사리호(사리 담는 병) 사진을 썼다. 그러나 선화공주 설화를 뒤집는 유물은 사리호가 아니라 봉안기(奉安記)다. 봉안기와 사리호가 함께 석탑 내부에 놓여 있는 사진이 ‘발굴’의 의미를 담는 가장 정통적인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처음 선을 보이는 국보급 유물을, 그것도 일부를 뚝 잘라 클로즈업했다. 일단 1면에서는 눈길을 끌테니 자세한 내용은 관련 상보를 보라는 과감한 편집이다.

 

(한국일보) 익산 미륵사, 무왕의 왕후인 ‘좌평 딸’이 창건

           선화공주-서동 로맨스의 진실은…

           석탑서 사리장엄 발굴…조성내력 밝혀져

          “금동대향로 이은 백제 최대 고고학적 성과”

  역시 ‘로맨스’로 접근했지만 조선일보보다 내용을 많이 담아 친절하다. 그러나 제목이 많을수록 임팩트는 떨어진다. 첫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이 덜한 이유다.

  사실 이 제목은 ‘사실 전달형’으로 분류해야 할지 고민했다. 주제목의 ‘로맨스’ ‘진실’을 빼고는 스트레이트 제목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진 위에 올린 어깨제목만이라도  ‘익산 미륵사 창건한 무왕 왕후는 백제 귀족의 딸’ 정도로 분석적 요소를 가미했다면 “아, 신라계 선화공주가 아니란 말이지”하는 유추가 쉬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크다.

 

<2>사실 전달형

 

(한겨레) 익산 미륵사, 백제인 왕후가 발원

        “선화공주 설화 허구 가능성”… 석탑 해체과정서 사리함 등 발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래서 건조하다.

  이는 기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와 관련된다. 이야기 거리냐 뉴스냐. 한겨레는 뉴스 보도를 택했고, 선화공주를 주제목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선화공주는 설화의 주인공이지 이번 발굴 소식의 주인공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독자는 선화공주가 등장했을 때 눈길을 주고, 화제로 삼지 않을까? 또 이왕 뉴스로 접근할 바엔 문화재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서울신문) 미륵사, 639년 백제 왕후가 창건

          설화속 선화공주 아닌 좌평의 딸로 확인돼

          석탑서 금제 사리호 등 국보급 500여점 출토

  딱 한 글자가 빠졌다. ‘백제 왕후’가 아니라 ‘백제인 왕후’여야 한다. 무왕의 부인이 창건했다는 것은 안다. 문제는 그 왕후가 신라인이 아닌 백제인 이라는 거다. 한 글자가 주는 의미 차이는 크다.

  한겨레에서 아쉬웠던 문화재적 가치를 부각시킨 점은 미덕이다.

 

<3> 해석형

 

(동아일보) 1370년 만에 베일 벗은 ‘백제 미륵사의 비밀’

          ‘선화공주 미륵사 창건’ 사실 아니다

           미륵사지석탑서 금제사리호-봉안기 발견…“백제귀족 딸 왕후가 639년 창건”

  편집자는 ‘선화공주’가 화제 거리가 될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매하게 말을 흐리기보다 확실한 팩트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흥미와 사실의 절충이다.

  주어진 팩트를 해석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신문의 중요한 임무다. 이 제목은 그 점에 충실하다. 미륵사에서 시작해 선화공주까지 논리가 끊기지 않고 연결되고, 강조점은 선화공주에 뒀다.

  하지만 ‘사실 아니다’라는 표현이 거슬린다. 너무 현재적이다. 미네르바가 금융계 거물이라는 설이 사실 아니다 라는 식으로 ‘현재 유통되는 미확인 정보’에 적합한 표현이다. ‘선화공주 미륵사 창건 설화는 허구’ 정도면 좋았을 것이다.

 

(경향신문) 미륵사, 선화공주와 무관하다

          “백제 무왕의 왕후,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 창건”

          석탑서 명문 발견… 서동요 설화 재검토 필요

  역시 표현이 문제다. ‘무관하다’는 현재적일뿐더러 사무적이다. ‘인사청탁과 무관하다’ 같은 비리 기사에 어울린다. 부제목에 있는 ‘재검토’도 마찬가지. 신문 제목에 ‘서류’ 냄새가 나는 것은 정치-사회면이면 족하다.

  하지만 최대 맹점은 사진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물 발굴 사진은 역사 이야기에 현재적 시점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설화를 잘 모르는 독자가 큰 제목만 봤다면 “선화공주? 그런 별명을 가진 인물이 미륵사와 뭐 얽혔어?”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작게라도 사진이 있다면 유물과 역사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을 쓰지 않는다면 차라리 사실 전달형 제목이 나았을 것이다.

 

  편집에는 전략이 있을 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오답은 있다. 위에 쓴 6가지 예는 모두 오답이 아니다. 나는 진짜 오답은 이 기사를 1면에 쓰지 않은 신문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선화공주 이야기처럼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갖춘 기사’가 나오기 그리 쉬운가? 그런데도 신문의 얼굴인 1면을 팍팍한 시국 훈수로만 채우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카테고리 : 편집은 어려워

댓글(7) 선화공주를 어떻게 대접해야 하나

  1. 운영자 says:

    blogmaster입니다. 이 포스트가 동아닷컴 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2. 지나가다 says:

    진흥왕 딸 중에 백제 무왕과 결혼했을만한 딸은 없음.

  3. 지나가다 says:

    아 죄송. 진흥왕이 아니라 진평왕.

  4. 김선혜 says:

    음.. 그래도 조선일보 제목등이 쌈박한게 제일 낫다고 느꼈다면..?
    암튼 제목부터가 감각적이어야만 일단 독자들 관심을 모을수있는데..
    낚시하곤 좀 다른 뉘앙스..

  5. ahtpfh says:

    서동은 마를 캐는 아이, 맛동을 말한다. 백제왕중 맛동은 말통대왕인 모대이다. 모대는 동성왕을 말한다. 동성왕은 신라 공주(이찬 비지배의 딸)과 혼인했다. 이것이 와전되어 삼국유사는 비지배의 딸을 선화공주로 만들고 또 맛동의 맛과 비슷한 음인 ‘무’를 찾아 무왕을 맛동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6. 호박마녀 says:

    같은 기사가 편집에 따라 이렇게 뉘앙스가 달라지는군요~ 머리 아프시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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