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말의 과유불급

 

  형용사와 부사 같은 꾸밈말은 언어생활을 풍부하고 윤택하게 해주는 요소다. 편집자도 제목을 달 때 꾸밈말을 멋들어지게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내 경험상 제목에 장식을 많이 한 경우 만족한 적 보다 후회한 때가 많다.

  그보다 더 문제인 것은 꾸밈말의 부적절한 사용은 기사의 뉘앙스를 결정적으로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아래 지면을 보자.

 

  기사 내용은 보수성향 시민단체의 신년 인사회에서 ‘입법 전쟁’에서 후퇴한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똥덩어리’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원색적’이라는 묘사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난 큰 제목에 있는 ‘화려한’이라는 수식어가 마음에 걸렸다. 사실 화려한 신년회라는 제목이 없었으면 이 기사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 인사들이 한나라당에 대해 적극적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짐작할 수 있고 그리 재미있는 기사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려한 신년회’라고  규정하면 많은 게 달라진다. "아니, 경제를 살리라면서 호화판 파티라도 했다는 걸까"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제목을 단 편집자는 그 점에서 ‘낚시’ 즉 눈길 끌기에 성공했다.

 

  그런데 ‘화려한’이라는 수식어를 뒷받침 할 만한 내용을 나는 기사에서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첫 문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다’라는 한 구절만이 그나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성대한 것과 화려한 것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많은 사람이 참석해 이심전심 생각을 나눴다면 냉수 한 잔 마셨어도 성대하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하다고 하려면 물질적으로 지나치게 풍족했다는 뜻이 있어야 한다. 기사 말미에는 ‘보수 인사들이 대부분 참석하고 정치권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고 쓰고 있어 ‘성대한’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장소는 명동 은행회관. 사진에는 생수병에 종이컵이 놓여 있다. 만약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칵테일을 앞에 놓고 있는 사진이라면 기사에 화려함이 설명되어 있지 않더라도 제목을 화려하다고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것도 아니었다.

 

  이 모임이 진짜로 화려했는지 검소했는지 나는 모른다. 편집자가 화려한 모임이라는 정보를 알고 이 제목을 달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기사에 한 줄 묘사를 해달라고 취재기자에게 요청하거나 걸맞는 사진을 써야 한다.

  이 기사의 제목은 ‘화려한 신년회’를 빼고 ‘보수단체, 한나라 온건파 원색비난’ 정도로 가는 것이 정석이라고 생각된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똥덩어리보다 못한 한나라 의원들 있다"를 큰 제목으로 쓰는 것도 자극적일 것이다. 그들의 발언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모임이 신년회인지 비상대책회의인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신년회를 묘사하고 싶다면 ‘성대한’정도로 하는게 기사와 부딪치지 않는다. 물론 그 경우 뉘앙스는 180도 바뀐다. 사치스러운 모임에서 훈훈한 모임으로. 그 뉘앙스도 그리 적절해 보이지는 않으므로 이 경우는 수식어를 빼는 것이 나아 보인다.

  과유불급. 편집을 하면서 가장 공감하게 되는 사자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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