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전 보도…의미의 과잉?

 교수님이 강의실에 들어와 한 폭의 수묵화를 펼쳐 보입니다.

"무엇이 있습니까?"

"물고기가 보입니다. 잉어 같습니다."

"또 무엇이 있습니까?"

"바위와 수초도 있습니다."

"그것밖에 없습니까?"

"…"

"무엇이 있냐고 물었지 무엇이 그려져 있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아, 물! 물이 있습니다. 잉어가 살아있고 수초가 곧추서 있으니 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붓으로 그려져 있지 않아도 헤엄치는 잉어와 흔들리는 수초가 물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회과학은 이렇게 감춰진 ‘물’을 유추해내는 일입니다."

 

  위의 강의는 저의 21년 전 추억입니다. 어떤 현상을 마주칠 때마다 이 가르침을 되뇌곤 했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되면서 그림을 보는 입장이 아닌 그리는 입장이 됐습니다. 신문을 만들어 독자에게 선보이는 게 제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내가 붓을 들어 물을 그린답시고 덕지덕지 그림을 망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고민하니까요. 제목을 달 때, 주어진 ‘팩트’를 어떻게 묘사해야 독자가 이면의 의미까지 유추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계했던 것은 ‘의미의 과잉’이었습니다. 잉어와 수초가 물을 증명하듯, 팩트를 파고 들면 의미가 보입니다. "자, 이 의미는 이거요"라고 단정하는 것은 촌스러운 저널리즘이라 생각했습니다.

 

  한국 축구가 그리스를 멋지게 꺾은 다음날, 모든 신문쟁이들은 월요일자 신문을 어떻게 만들지 머리를 싸맸을 겁니다. 결과가 다 알려진 상황에서 그 감동을 이어가야 하니까요.

  한 신문은 ‘달라진 태극전사’에 초점을 맞췄고 다른 한 신문은 ‘달라진 한국축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전자는 태극전사들이 축구를 즐기고, 자신감이 넘치며 영리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대라는 것이죠.

  후자의 신문은 ‘뻥축구’와 백패스가 없어졌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예전 경기와 비교한 통계데이터도 제시했습니다.

 

  둘 다 신문을 만드는 전형적 기법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신뢰가 갈까요? 저는 후자였습니다.

  전자의 경우, 박주영이나 기성용이 축구를 ‘즐기는’ 신세대라는 설명은 아마 맞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리스에게 졌다면 이런 분석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의미부여 자체를 위한 의미부여. 즉 의미의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뻥축구와 백패스가 줄었다는 것은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맞아 진짜 그랬어"하고 맞장구를 칠 겁니다. 게다가 통계까지 나왔으니 자신의 ‘축구 감상 수준’에 은근한 자부심도 느끼겠죠.

  뻥축구가 없어졌다는 ‘팩트’에서 자신감이 충만한 선수들이라는 ‘의미’는 바로 유추됩니다. 굳이 해석을 붙이지 않아도 독자가 알아챕니다. 그렇게 알아채는 게 ‘떠먹여 주는’ 계몽주의적 신문보다 더 기분 좋을 겁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피겨스케이팅 박사가 됐습니다. 김연아의 몸짓을 ‘무용’ 정도로 보던 사람도 이제는 그 몸짓이 ‘과제 수행’이며 포인트를 얻기 위한 사투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찰나의 ‘포인트 상실’에 흔들리지 않는 김연아가 얼마나 강심장인지도 알게 됐습니다.

  만약 언론이 김연아에 대한 미사여구로만 지면을 꾸몄다면 그 이면의 ‘강심장’과 ‘강한 체력’은 알려지지 않고 그저 ‘아름다운 선수’로만 남았을 겁니다. 진정한 찬사는 ‘팩트’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과유불급.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자성어입니다. 오버하지 않고 흥분하지 않는, 쿨한 신문을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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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화법'은 편집기자를 흥분시킨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짧고 굵게’ 말한다. 단순한 단어나 토씨도 그의 입을 거치면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발언 타이밍과 메시지, 비유가 무게감을 갖기 때문이다. 과거 의미심장한 수사(修辭)로 명성을 날린 김종필 전 총리(대표작으로 ‘자의반 타의반’이 있다)를 능가한다는 평이다.

  그래서 편집기자들은 ‘박근혜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제목거리’라고 수군댄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발언이 터졌을 때 편집기자는 수많은 ‘제목거리’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13일자 조간신문도 그랬다. 박 전 대표는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다음날인 12일 기자들과의 ‘복도 대화’에서 단 몇 마디로 수정안 반대 의지를 강력히 보여줬다. 편집기자는 예외 없이 그의 발언을 따옴표 씌워 1면 제목으로 삼았다.

  사실 특정인의 말 자체를 제목으로 삼는 것은 그 말을 해석하는 제목보다 더 어렵다. 핵심 내용을 포함한 적절한 대목을 선택해야 하고(잘못 선택하면 ‘신문 입맛에 맞춰 발언을 거두절미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발언자의 캐릭터와 뉘앙스를 살려야 하고(실패하면 무미건조해진다), 말이 간결하고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이 점에서 박 전 대표는 ‘제목 뽑기’에 최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13일자 신문들이 선택한 ‘박근혜 제목’은 비슷하면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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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박근혜 전 대표의 주요 발언부터 살펴보자. 발언 순서대로 정리했다.

① “수정안은 원안이 다 빠지고 플러스 알파밖에 없다”

②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신뢰만 잃은 것이다”

③ (충청 여론이 수정안에 우호적으로 돌아선다면?) "저는 분명히 입장을 밝혔다. 변함이 없다. 달라질 게 있겠느냐"

④ “(정부가) 저한테 설득하겠다고 해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한 것인데 말뜻을 못 알아듣는 것 같다”

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자고 하는 것을 제왕적이라고 한다면 제왕적이라는 이야기를 100번이라도 듣겠다”

⑥ “그 때 약속할 때는 얼마나 절박했느냐”

 

한겨레 “원안 다 빠지고 +α만 남아”

  한겨레는 ①번 발언을 온전히 옮겨 놓았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다.

  수정안 발표 다음날 박 전 대표의 첫 반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절한 선택이다. 정부가 그렇게도 공들인 수정안을 한 마디로 뭉개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한 문장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So What?’이라는 질문에 답이 약하다. ‘원안은 물론이고 플러스 알파를 할 생각을 해야 한다’는 박근혜의 예전 발언을 기억 못하는 독자라면 헷갈릴 수 있다. ‘다 빠지고’는 부정적 뉘앙스인데 ‘플러스 알파’는 뭔가 좋아보이기도 하니까.

  편집기자도 그걸 알았나보다. 그래서 “국민과 약속 어기고 신뢰 잃어”라는 ②번 발언을 부제목으로 받쳐줬다. 그러면 확실히 ‘강한 비판’의 메시지가 살아난다.

  같은 맥락에서 ①과 ②를 합친 제목을 단 곳도 있다. 세계일보는 “원안 버리고 플러스α만… 신뢰 잃어”, 경향신문은 “+α만 남은 수정안 국민 신뢰만 잃어”라고 달았다. 하지만 두 제목 모두 ‘원안은 다 빠지고’라는 구어체의 맛을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국민일보 “국민과의 약속 어기고 신뢰잃어”

동아일보 “국민약속 어기고 신뢰만 잃어”

  ②번 발언을 옮긴 신문은 국민일보와 동아일보다. 이날 발언 중 가장 준엄하게 정부를 꾸짖는 대목이다. 이 제목은 메시지가 단순하게 이해된다는 미덕이 있다. ‘아, 박근혜는 MB와 여전히, 더욱 강력하게 각을 세우는구나’하고 쉽게 상황이 파악된다.

  그런데 좀 식상한 감이 있다. 약속이나 신뢰는 항상 박 전 대표가 강조했던 단어. 수정안이 나온 직후라는 시간적 특수성이 와 닿지 않는다. 숲을 보여준 대신 나무를 놓쳤다고 할까?

  또 두 신문의 제목이 약간 차이가 나는 것도 재미있다. 둘 다 제목의 글자 수를 압축하기 위해 토씨를 생략했다. 국민일보는 ‘만(only)’을 포기했고 동아일보는 ‘과의’를 없앴다.

  ‘Only’가 들어가면 문장이 단호해진다. 밋밋한 문장에 악센트를 줄 수 있다. 동아일보는 그 맛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대(對)국민 약속’도 아닌 ‘국민약속’은 좀 이상하다. 국민요정이나 국민여동생도 아니고 국민약속이라니. 이왕이면 한 글자만 더 넣어서 ‘국민과 약속’정도로 했어도 훨씬 좋았을 것이다.

 

조선일보 충청 찬성 높아져도 내 입장 불변”

  조선일보는 ③번 발언을 썼다. 이건 수정안의 장래에 대한 예측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수정안 발표 → 충청 민심 호전 → 박근혜 설득’이라는 시나리오를 그렸다면 이 제목은 그 기대가 어그러짐을 보여준다. 정치 공학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제목이다.

  하지만 뭔가 강렬함이 떨어진다. ‘if’가 들어가는 조건 문장은 분석적이고 친절하지만 적나라하게 지르는 느낌이 약하다. 실제로 이 제목은 박 전 대표의 직접 화법이 아니라 기자의 질문(충청 찬성 높아지면?)에 박 전 대표가 답변(달라질 게 없다)한 것을 편의상 따옴표에 넣은 것이다.

  편집기자의 고민이 눈에 선하다. 의미를 짚을 것이냐 임팩트를 줄 것이냐. 영원한 숙제다.

 

중앙일보 "제왕적이라는 말 100번도 듣겠다"

  중앙일보는 ⑤번을 택했다. 자신에 대한 친이 측의 비판을 받아치는 자극적인 멘트다. 박 전 대표의 결의를 보여주는 데는 최적의 선택이다. 임팩트 최강이다.

  그런데 이 멘트만 달랑 1면에 있다는 게 문제다. So What? 수정안에 대해서 뭐라고 평했는지 알 수가 없다. 또 정두언 의원이 ‘제왕적’이라는 표현으로 박 전 대표를 비판한 사실을 모르는 독자에게는 뜬금없는 제목일 수 있다.

  그러나 기사를 읽으면 그런 의문은 다 풀린다. 또 독자는 전날 TV 뉴스를 접했을 가능성이 크므로 이정도 ‘생략’은 되레 조간신문의 경쟁력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제목만 놓고 보면 편집 문법에 맞지 않지만 맥락을 따지면 수긍이 가는 제목 선택이다.

  제목의 자체 완결성이냐, 맥락을 감안한 생략이냐. 이는 독자의 수준을 어떻게 가정하고 신문을 만드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골치가 아프다.

  한편 이 ⑤번 발언은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이 3면 해설에 가져다 썼다. 중앙일보는 해설면에 조선일보가 1면에 쓴 ③번 발언을 썼다.

 

아까운 멘트 "말뜻을 못 알아듣는 것 같다"

  ④번 멘트는 중앙일보가 해설면에 소제목으로 쓴 것 외에 제목으로 쓰이지 않았다. 의미가 똑 부러지지 않고, 왠지 비아냥처럼 들리기도 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멘트가 ‘박근혜 화법’의 독특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0월 31일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수정안을 꺼낸 정운찬 총리를 겨냥해 "총리께서 정말 뭘 모르시는거다"라고 말한 적 있다. ‘나의 프레임’을 정해 놓고 그 프레임을 외곽에서 흔들려는 상대를 향해 정말 기분 나쁜 말을 툭 던져놓는 것.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신뢰만 잃었다"나 "제왕적이라는 말 100번이라도 듣겠다"보다 더 기분 나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했던 ‘참 나쁜 대통령’ 발언도 비슷하다. 상대방의 속은 뒤집고 지지자로부터는 강한 공감을 얻는 ‘구어체 중의 구어체’다.

  뭐 그렇다고 이 ④번 멘트가 제목이 돼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목의 ‘메시지’라는 측면에서 많은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뉘앙스’라는 측면에서, 게다가 화자가 박근혜라면, 이 멘트도 그냥 넘길 것은 아니었다.

카테고리 : 편집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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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를 어떻게 대접해야 하나

  1월 20일자 조간신문은 선화공주가 장식했다. 설화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선화공주는 훗날 백제 무왕이 되는 서동과 국경을 넘는 사랑을 한 끝에 백제 왕후가 되고, 익산 미륵사 건립을 제안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번에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글에 따르면 미륵사 창건을 주도한 이는 무왕의 왕후이기는 하되 신라계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것이다. 희대의 연애담이 무너질 판국이다.

 

  편집자는 전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을 때 난감하다. 이 기사의 경우 ① 미륵사지 석탑에서 국보급 유물(문화재청장은 ‘국보중의 국보’라고 극찬)이 대거 출토됐다 ② 그 유물에 따르면 미륵사 창건은 백제귀족 출신 왕후가 했다 ③ 따라서 선화공주 창건설은 사실이 아니다 ④ 그러므로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 자체도 거짓일 수 있다는 4가지 내용이 복합돼 있다.

  제한된 지면, 몇 줄 안되는 제목으로 모든 것을 담기는 힘들다. 어떤 요소를 어떤 방법으로 강조하느냐는 편집자마다 다른 것이다. 이 기사를 1면에 게재한 6개 일간지를 대상으로 그 유형과 장단점을 따져보자.

  

<1> 흥미 유발형

 

(조선일보) 선화공주의 ‘로맨스’ 역사의 미궁속으로…

           백제 미륵사지 유물 505점 발굴 / ‘서동요’는 허구 가능성 높아져

  로맨스, 미궁, 미스터리 같은 낱말은 독자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1400년전 설화를 ‘로맨스’라는 현대적 어휘로 표현한 위트가 발랄하고 ‘미궁속으로’라는 결말도 팩트를 넘어서지 않았다.(선화공주 설화가 일부는 사실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무왕의 여러 왕후들 중 하나라든지…)

  그러나 이 제목의 결정적 맹점은 ‘왜’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미륵사를 만든 왕후가 백제인이라는 내용은 기사를 읽어야만 알 수 있다. 제목에서 다 보여주지 않고 화두만 던지는 것. 제목으로서의 친절성은 미흡해도 독자를 유인하는 데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한가지 더. 6개 신문 가운데 조선일보만 클로즈업 된 금제사리호(사리 담는 병) 사진을 썼다. 그러나 선화공주 설화를 뒤집는 유물은 사리호가 아니라 봉안기(奉安記)다. 봉안기와 사리호가 함께 석탑 내부에 놓여 있는 사진이 ‘발굴’의 의미를 담는 가장 정통적인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처음 선을 보이는 국보급 유물을, 그것도 일부를 뚝 잘라 클로즈업했다. 일단 1면에서는 눈길을 끌테니 자세한 내용은 관련 상보를 보라는 과감한 편집이다.

 

(한국일보) 익산 미륵사, 무왕의 왕후인 ‘좌평 딸’이 창건

           선화공주-서동 로맨스의 진실은…

           석탑서 사리장엄 발굴…조성내력 밝혀져

          “금동대향로 이은 백제 최대 고고학적 성과”

  역시 ‘로맨스’로 접근했지만 조선일보보다 내용을 많이 담아 친절하다. 그러나 제목이 많을수록 임팩트는 떨어진다. 첫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이 덜한 이유다.

  사실 이 제목은 ‘사실 전달형’으로 분류해야 할지 고민했다. 주제목의 ‘로맨스’ ‘진실’을 빼고는 스트레이트 제목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진 위에 올린 어깨제목만이라도  ‘익산 미륵사 창건한 무왕 왕후는 백제 귀족의 딸’ 정도로 분석적 요소를 가미했다면 “아, 신라계 선화공주가 아니란 말이지”하는 유추가 쉬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크다.

 

<2>사실 전달형

 

(한겨레) 익산 미륵사, 백제인 왕후가 발원

        “선화공주 설화 허구 가능성”… 석탑 해체과정서 사리함 등 발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래서 건조하다.

  이는 기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와 관련된다. 이야기 거리냐 뉴스냐. 한겨레는 뉴스 보도를 택했고, 선화공주를 주제목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선화공주는 설화의 주인공이지 이번 발굴 소식의 주인공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독자는 선화공주가 등장했을 때 눈길을 주고, 화제로 삼지 않을까? 또 이왕 뉴스로 접근할 바엔 문화재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서울신문) 미륵사, 639년 백제 왕후가 창건

          설화속 선화공주 아닌 좌평의 딸로 확인돼

          석탑서 금제 사리호 등 국보급 500여점 출토

  딱 한 글자가 빠졌다. ‘백제 왕후’가 아니라 ‘백제인 왕후’여야 한다. 무왕의 부인이 창건했다는 것은 안다. 문제는 그 왕후가 신라인이 아닌 백제인 이라는 거다. 한 글자가 주는 의미 차이는 크다.

  한겨레에서 아쉬웠던 문화재적 가치를 부각시킨 점은 미덕이다.

 

<3> 해석형

 

(동아일보) 1370년 만에 베일 벗은 ‘백제 미륵사의 비밀’

          ‘선화공주 미륵사 창건’ 사실 아니다

           미륵사지석탑서 금제사리호-봉안기 발견…“백제귀족 딸 왕후가 639년 창건”

  편집자는 ‘선화공주’가 화제 거리가 될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매하게 말을 흐리기보다 확실한 팩트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흥미와 사실의 절충이다.

  주어진 팩트를 해석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신문의 중요한 임무다. 이 제목은 그 점에 충실하다. 미륵사에서 시작해 선화공주까지 논리가 끊기지 않고 연결되고, 강조점은 선화공주에 뒀다.

  하지만 ‘사실 아니다’라는 표현이 거슬린다. 너무 현재적이다. 미네르바가 금융계 거물이라는 설이 사실 아니다 라는 식으로 ‘현재 유통되는 미확인 정보’에 적합한 표현이다. ‘선화공주 미륵사 창건 설화는 허구’ 정도면 좋았을 것이다.

 

(경향신문) 미륵사, 선화공주와 무관하다

          “백제 무왕의 왕후,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 창건”

          석탑서 명문 발견… 서동요 설화 재검토 필요

  역시 표현이 문제다. ‘무관하다’는 현재적일뿐더러 사무적이다. ‘인사청탁과 무관하다’ 같은 비리 기사에 어울린다. 부제목에 있는 ‘재검토’도 마찬가지. 신문 제목에 ‘서류’ 냄새가 나는 것은 정치-사회면이면 족하다.

  하지만 최대 맹점은 사진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물 발굴 사진은 역사 이야기에 현재적 시점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설화를 잘 모르는 독자가 큰 제목만 봤다면 “선화공주? 그런 별명을 가진 인물이 미륵사와 뭐 얽혔어?”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작게라도 사진이 있다면 유물과 역사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을 쓰지 않는다면 차라리 사실 전달형 제목이 나았을 것이다.

 

  편집에는 전략이 있을 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오답은 있다. 위에 쓴 6가지 예는 모두 오답이 아니다. 나는 진짜 오답은 이 기사를 1면에 쓰지 않은 신문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선화공주 이야기처럼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갖춘 기사’가 나오기 그리 쉬운가? 그런데도 신문의 얼굴인 1면을 팍팍한 시국 훈수로만 채우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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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말의 과유불급

 

  형용사와 부사 같은 꾸밈말은 언어생활을 풍부하고 윤택하게 해주는 요소다. 편집자도 제목을 달 때 꾸밈말을 멋들어지게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내 경험상 제목에 장식을 많이 한 경우 만족한 적 보다 후회한 때가 많다.

  그보다 더 문제인 것은 꾸밈말의 부적절한 사용은 기사의 뉘앙스를 결정적으로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아래 지면을 보자.

 

  기사 내용은 보수성향 시민단체의 신년 인사회에서 ‘입법 전쟁’에서 후퇴한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똥덩어리’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원색적’이라는 묘사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난 큰 제목에 있는 ‘화려한’이라는 수식어가 마음에 걸렸다. 사실 화려한 신년회라는 제목이 없었으면 이 기사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 인사들이 한나라당에 대해 적극적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짐작할 수 있고 그리 재미있는 기사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려한 신년회’라고  규정하면 많은 게 달라진다. "아니, 경제를 살리라면서 호화판 파티라도 했다는 걸까"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제목을 단 편집자는 그 점에서 ‘낚시’ 즉 눈길 끌기에 성공했다.

 

  그런데 ‘화려한’이라는 수식어를 뒷받침 할 만한 내용을 나는 기사에서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첫 문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다’라는 한 구절만이 그나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성대한 것과 화려한 것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많은 사람이 참석해 이심전심 생각을 나눴다면 냉수 한 잔 마셨어도 성대하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하다고 하려면 물질적으로 지나치게 풍족했다는 뜻이 있어야 한다. 기사 말미에는 ‘보수 인사들이 대부분 참석하고 정치권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고 쓰고 있어 ‘성대한’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장소는 명동 은행회관. 사진에는 생수병에 종이컵이 놓여 있다. 만약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칵테일을 앞에 놓고 있는 사진이라면 기사에 화려함이 설명되어 있지 않더라도 제목을 화려하다고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것도 아니었다.

 

  이 모임이 진짜로 화려했는지 검소했는지 나는 모른다. 편집자가 화려한 모임이라는 정보를 알고 이 제목을 달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기사에 한 줄 묘사를 해달라고 취재기자에게 요청하거나 걸맞는 사진을 써야 한다.

  이 기사의 제목은 ‘화려한 신년회’를 빼고 ‘보수단체, 한나라 온건파 원색비난’ 정도로 가는 것이 정석이라고 생각된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똥덩어리보다 못한 한나라 의원들 있다"를 큰 제목으로 쓰는 것도 자극적일 것이다. 그들의 발언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모임이 신년회인지 비상대책회의인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신년회를 묘사하고 싶다면 ‘성대한’정도로 하는게 기사와 부딪치지 않는다. 물론 그 경우 뉘앙스는 180도 바뀐다. 사치스러운 모임에서 훈훈한 모임으로. 그 뉘앙스도 그리 적절해 보이지는 않으므로 이 경우는 수식어를 빼는 것이 나아 보인다.

  과유불급. 편집을 하면서 가장 공감하게 되는 사자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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