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란 무엇인가.
책 제목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다 우스갯소리 하나가 생각이 났다.
‘정의’란 말에 ‘정의(正義, justice)’를 떠올리면 문과생, ‘정의(定義, definition)’를 떠올리면 이과생이라던.
아마 책 표지를 보지 않고서도 나는 자연스레 ‘정의(正義, justice)’를 떠올렸을 것이다.
내가 문과생이라서가 아니라 뒤에 자리잡고 있는 ‘무엇인가’라는
단어가 짐작케 해주니까.
우리는 ‘정의(定義, definition)’를 원론적으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정의하는 것일까’라고 의문을 가져도 그 ‘정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의(正義, justice)’는 다르다.
그건 가치 판단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정의(正義, justice)‘는 우리에게 참 친숙한 단어다.
어릴 때 본 만화영화를 떠올려보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부터 "정의는
승리한다"까지, 정의의 사도들이 TV에 차고 넘치다 못해 TV 밖 현실에서까지
정의로운 용사를 흉내내던 시절.
그렇게 정의는 우리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의(正義, justice)’가 무엇인지 알기는 했을까?
그때의 "정의가 승리한다"라는 말은 ‘선한 것이
이기고 나쁜 것은 지는’ 이른바 ‘권선징악’의 의미가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 자주 즐겨보던 <콩쥐팥쥐>나
<헨델과 그레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도 정의가 승리한 것인가?
「명사」
「1」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 자유와 정의와 진리/정의의 사도/정의를
위하여 싸우다.
「2」바른 의의(意義).
「3」『철학』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 분배 정의/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다.
「4」『철학』플라톤의 철학에서, 지혜ㆍ용기ㆍ절제의
완전한 조화를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正義, justice)’의 뜻은 이렇다.
우리가 익히 보고 들어왔던 정의라는 것은 1번과 2번의
뜻이 강할 것이다.
그리고 마이크 샌델의 이 책은 3번과 4번의 뜻이 강한 듯 보인다.
그가 책 내내 강조하고 있는 ‘정치철학’이란 용어도 그렇거니와
책에서 말하는 정의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 혹은 결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생각이 ‘일치하는’ 합의나 결정은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마이클 샌델은 그러한 문제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아니, 설명이라기보다는 같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사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 "아,
정의란 이런 것이고 저런 것이고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저래서…"라는 식의
정의에 대한 구구절절 가르쳐주는 책인 줄 알았다.
그래서 조금은 정의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도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은 ‘무엇이 정의인가’ 확답을 내리지 않는다.
같은 사안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각 사안에 대해서 어느 누가 어떤 말을 했고, 그래서 어떤
면이 쟁점인지 배경지식을 충분히 설명한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들었다고 해서 ‘정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명확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보다 원론적이고 형이상학적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기에.
누군가 20년 넘게 강의해온 이것을, 단순히 책 한 번 읽고 나서
다 알았다고 하기엔 너무 오만한 거 아닌가?
그냥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고,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경험도 했고, 대학 시절 ‘지식사회학’이나
‘정치사회학’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도 느꼈다.
하루에 한 장(챕터)씩 읽고 다음 날 회사 직원들에게 책의 내용을
요약해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도 던져봤다.
그런 날들이 굉장히 신선했다.
경리팀 차장님은 너무 어려운 거 아니냐고 했지만, 왠지 그래서
매력 있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이런 간혹 넋 놓고 사는 기분이었는데 이런 사고(思考)를 통해서 왠지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관련한 여러 저작들을 읽고 싶다는 욕구마저 일었다.
다시 책 표지를 들여다본다.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헤드 카피가
보인다.
그리고 책 제목과 지은이 밑에 서브 카피가 보인다.
전 세계의 석학들은 왜 정의에 주목하는가?
하버드대 학생들은 정의를 어떻게 배우는가?
책을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겠다.
전 세계 수재들이 모인다는 하버드.
이 강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그들은 행운아다.
어쩌면 그들이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었기에 그 능력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망상일까?
그러면서 아쉬움 하나.
우리에게는 왜 이런 강의가 없을까.
실제 강연 장면을 썼다는 표지를 보면 강의실에 수백 명은 족히
되어보이는 학생들이 보인다.
아마도 우리네 대학이었다면 학점을 잘 주는 교수의 강의였겠지.
그 생각이 떠오르니 문득 씁쓸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