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발은 세켤레 입니다.
검정 고무신 흰 고무신 그리고 겨울 신.
겨울 신이라고 하니 좀 이상 합니다. 털신이 낫겠습니다.
길상사 극락전 뒤에는 공양간(식당)이 있습니다. 공양간에는 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스님들이 공양을 합니다. 처음 길상사를 갔을 때는 이보다 훨씬 많은 신발들이 있었습니다. 신발의 종류는 사진처럼 많지가 않았습니다. 아마도 토요일 저녁 공양이라 신발의 주인공인 스님들은 저마다 편한 신발을 신고 나오신 모양 입니다.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가운데 털신 입니다.
한여름에 털신도 털신 이거니와 이 털신은 뒤쪽이 많이 닳았습니다. 만약 겨울 이었다면 발이 시렀을 것입니다.
거침없음을 봅니다. 또한 대자유의 시작을 봅니다. 아직 그 문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죽을 때 까지 보지도 못할 사람이 좀 건방 지다는 생각도 듭니다.
카메라는 도구에 불과 합니다.
사진은 제 몸이 찍는 것입니다. 이 신발들을 보면서 저는 무엇인가를 느꼈고 그것은 제게 말했습니다. 사진을 찍어보라고. 이 사진을 찍을 때 공양주 보살님이 그랬습니다. ‘아니 신발을 왜 찍습니까’. 제 생각을 말하면 흥이 깨져버립니다. 반짝이는 ‘삐쭉 구두’에 익숙했던 제게 세켤레의 신발은 많은 말을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공양주 보살님의 두런두런 하는 소리가 스님들의 귀에까지 들려 문을 버럭 열어 젖힐 것 같아 몇 장 찍지는 않았습니다.
스님 세 분의 체구는 다 다른 모양입니다.
신발을 보면 압니다. 오른쪽 검정 고무신 스님은 장골일 것 같고 왼쪽 흰 고무신을 신었던 스님은 저랑 비슷한 체격일 듯 하고 가운데 털신의 주인은 조금 왜소한 체격으로 보입니다.
도시속에 있는 절 길상사에 꼭 세련되고 ‘삐까뻔쩍’ 것들만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사진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