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의선사 부도탑과 서산대사 부도탑입니다. 앞쪽에 있는 것이 초의선사탑이고 왼쪽 뒤가 서산대사의
그것입니다.대흥사를 세상에 있게한 인연 깊은 분들의 부도탑이지요.서산대사는 대흥사에 주석하지는 않으셨지만 자신의 법을 이은
법제자와 제자들을 통해 ‘만년이 지나도 훼손되지 않을 성지’ 대흥사로 의발(衣鉢)을 내려보내셨습니다.초의선사 역시 대흥사가 배출한 13대
종사로서 조선시대 후기 불교를 대표할 뿐 아니라 시서화차(詩書畵茶)에 능한 四絶이셧습니다. 선사와 추사 김정희선생이 나눈 각별한 우의로 인해
선사의 진면목을 제대로 모르는 게 안타깝다고 대흥사 스님들은 입을 모아 말씀하십니다.대흥사에서 찍은 많은 사진 중 이사진을 제일
먼저 올리는 이유가 대흥사가 표방하는 ‘호국 도량과 차의 성지’라는데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서산대사께서 임진왜란 때 수행자의 몸이지만 살생을
무릅쓰며 의병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이나라는 큰 어려움에 빠졌을 것이고 차나 이순간도 없었을지 모릅니다.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 세계적인 예술가와 함께 지성사의 한시대에 큰 획을 그었던 분들은 이제 윤회속에 들었습니다. 봄이 길다해서
장춘동(長春洞)이라 불리는 대흥사 계곡에 그 분들의 부도탑은 고즈넉하게 서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