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에 비친 수행자

 

 

수행자의 얼굴은 일반인보다는 단순하다. 대부분 맑다. 눈은 반짝이고 얼굴은 평화롭다. 그것이 회색의 승복과
어울리니 속세의 중생들에게 맑음으로 다가온다. 수행자들이 항상 맑은 것만은 아니다. 고뇌하는 얼굴을 갖기도 한다. 이 얼굴은 절 밖의 사람들이
보기 힘들다. 치열한 내면을 얼굴로 까지 보내는 것을 그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얼굴들을 찍고 싶다. 맑음으로까지
오게된 그 고뇌의 모습들을 보고 싶다. 먹구름을 어떻게 떨치고 청명한 하늘을 만들어냈는지 짐작하고 싶기 때문이고,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겪었기에
가진 ‘맑음’이 얼마나 귀한지를 다시금 느껴 받들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가불자들도 이런 얼굴들을 많이 봐야 한다.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힘든 처지가 아닌 사람이 없겠지만 수행자들의 맑음 뒤에는 고난의 세월이 있음을 보고 어둠이 전부가 아니고 밝은 날이 온다는
희망을 가져야한다.잡힐 듯 말 듯한 화두가 어느새 다시 사라져버릴 때 수행자들은 낙담하고 실망할 것이다. 얼굴은 오만상을 찌푸릴
것이며 어느 순간 치밀어오르는 분을 삭이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수행자들은 그것을 이겨내고 삭혔다. 그들의 해맑음은 이렇게 얻어진
것이다.수행자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여러생의 인연으로 인해 이생 그 인연의 꽃을 피우고자 출가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진 맑음도 전생과 이생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 것들이다. 맑음의 이면에는 고뇌가 있다. 도반이나 스승에게 보여주는 그 고뇌의 얼굴을 사진쟁이가
보기란 쉬운일은 아니다. 용케 직지사 백련암에서 비구니스님들과 차를 마시다가 그 비슷한 얼굴을 봤다.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쓰느라 잠깐 드러난 수행자의 생각하는 모습. 이 모습이 더 깊어지면 고뇌하는 얼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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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기둥과 스님

 

길고 긴 기둥에 스님 서 계십니다.원래 저곳에 항상 계시는지 아니면 사진쟁이 눈길 피하려 저러시는지 알길없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본 광경이었지만 뭘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 생각을 말하려고 이렇게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더 강조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잘랐습니다.한참을 내려야 보이는 사진이지요. 두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하나는 삶과 인간, 다른 하나는 깨달음과
수행입니다.먼저 생각난 것은 후자였습니다. 기둥옆에 일반인이 서있었더라면 전자가 먼저 떠올랐겠지요. 하지만 스님인지라 몇 생을 바쳐도
쉽사리 오지않을 그 경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 왼종일, 몇 년을 면벽했다 한들 쉽사리 ‘무명을 깨치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볏 짚단을 차곡차곡 쌓듯 여러생을 바쳐 온 몸에 수행의 기운이 돌았을 때 ‘어느 순간’ 그 때가 온다고 합니다. 수생을 바치는
것은 점수(漸修)요 어느 순간 오는 것은 돈수(頓修)입니다. 기둥이 점수의 그 고난의 길을 말하는 듯 하고 그 빛을 맞아 오도송을 부르기위해
서있는 듯 수행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기둥이 만약 사람의 가야할 길이라면 바로 사진쟁이가 가야할 길을 세워놓은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나이 먹어간다고 그 길은 결코 짧아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길은 오히려 더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가까이 왔던 길은 젊었을 적부터
멀게하려고 했던 그 길이었고 멀어진 길은 소박하게 바라던 길이었습니다. 이런 인생은 제게만 그런것인지 아니면 다른이들에게도 그런것인지
모르겠습니다.눈을 위에서 밑으로 한참을 내려야 그 처음과 끝을 볼 수 있는 기둥과 수행자.수행이 그리고 인생이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님을, 바로 이런 것임을 새삼스레 느끼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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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 낙한 스님 스승의 소신공양

공양(供養).

불가에서는 부처님께 바치는 모든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일의
공양은 법(法)공양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고 가장 나중의 것이 물질을
바치는 공양이다. 이 공양중의 하나가 소신공양(燒身供養)이다. 소신공양은 말 그대로
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다. 경(經)에서 소신공양에 대한 유래를 찾자면 희견보살이 향유를 바르고 몸을 태워 공양함으로써 불은에
보답했다는 ‘법화경(法華經)’의 ‘악양보살본사품’이 있다. 자신을 태울만큼 간절한 원이 있을 때
올리는 공양인지라 흔히 보는 공양은 절대 아니다.

불가에서 이공양은 대개 정치적인 이유로
행해지는 듯 하다. 며칠 전 수좌(首座:주로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 문수스님은 4대강 공사에서
죽어나가는 생명들이 안타까워 그것을 멈추게 해달라는 원을 부처님께 올리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으니 역시 정치색을 띠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근세의 소신공양중 가장 유명한 그것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베트남 출신 틱
낙한 스님의 스승이신 틱 광둑(Thich Quang Duc)스님의 소신공양이다. 스님은 1963년
6월 고딘디엠 정권의 반불교정책에 항거하는 표시로 소신공양을 올렸다. 틱 광둑
스님은 당시 베트남의 고승이었다. 우리로 치자면 성철스님 만큼이나 불교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신망이 두터운 종교 지도자이자 선승이 소신공양을 올린 것이다. 그런 스님이
만인환시리의 백주 대낮에 소신공양을 올렸으니 그 충격은 엄청났다. 스님이 모습을
찍은 말콤 브라운의 사진은 전세계로 퍼져 반전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고 미국은 고딘디엠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틱 광둑 스님의 소신공양 모습=사진 출처 다음 이미지

 

불길이 스님의 온 몸을 휘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자세는
꼿꼿하기 이를데 없다. 스님의 수행이 어느정도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삼매에 들었기에 불길의 뜨거움과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지만
불가사의하다.

스님은 소신공양을 하기 전 제자들에게 "내가 불에 다 타고서 쓰러질 때
앞으로 쓰러지면 이 나라에서 불교가 사라질 것이니 너희들은 빨리 베트남에서 탈출하여 딴 나라로 가서
불법이 망하지 않도록 하고 내가 뒤로 쓰러지면 이 나라에서 불교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언했는데
뒤로 쓰러져서 베트남에서 불교가 다시 회복됐다고 한다.

불길 속에서도 꼿꼿한
스님의 모습은 사람을 해치기도 했던 만주 벌판의 사나운 들개들이 수월스님을 만나면
꼬리를 치며 반가워했던 모습이나, 임진왜란 후 평화협정을 위해 일본에 갔던 사명당
유정대사를 왜가 해칠려고 스님이 주무시던 방을 막고 불을 땠으나 스님은 오히려
가부좌 한 채 염불 삼매에 든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소신공양도 법을 펴기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불길 속에서도 고요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스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육신이 한낮 4대(地,水,火,風)로
뭉쳐진 것이며 그것은 언제든 변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고개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이생에 뒤집어쓰고
있는 몸이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거기에 매달리지 않음을 수행의 결과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법에 엎드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틱 광둑 스님의 소신공양이나
문수스님의 그것을 보며 안타까움은 남는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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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와 모자

 

범어사 강원 대교반(4학년)스님 입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스님은 강원을 졸업하고 선방이나 대학원에 해당하는 율원
혹은 스승님 절에 가서 소임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님의 소임은 강원의 큰방에서 벌어지는 공양시간이나자습시간을 알리는 작은 종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강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스님인지라 쉬운 소임을 맡았을 것입니다.스님의 얼굴을 가린 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얼굴 나오기를 한사코 꺼렸기 때문에 이렇게 찍었지요.스님들 찍을 때 항상 얼굴을 찍지 않지만 대부분의 스님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찍히지 않고 싶어합니다. 이유는 다양하지요. ‘좋을데로 하세요’라고 말씀하시는 스님은 열에 한 분 정도 있을까 말까 합니다. 스님들의
의견을 존중했기에 일부를 갖고 전체를 설명하는 식의 사진을 지금껏 찍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사진이 싫증납니다. 동종류의 사진을 무려
7년가까이 찍은 이유가 가장 크고 당당히 얼굴을 찍어도 좋다라는 스님을 찍고 싶은 마음도 크기 때문입니다.수행자를 존경하는
중생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담히 보여주는 스님이 어딘 가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어떤 얼굴을 가졌든 또 어떤 삶의 방식이 몸에 뱄든
그것은 ‘내 모습’입니다. 내 모습 안에 들어있는 부처님의 모습, 한국불교의 모습을 찾고 싶고 찍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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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빗자루들고 청소하는 스님

 

예불 끝나고 어디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법당도 아닌 스님 처소에서 염불소리가 나니 이상할
수 밖에요. 큰 절에서 드물게 보는 스님의 참회 수행이기에 놀랄만한 일이었지요.소리는 바로
이스님이 방에서 자비도량참법을 하면서 내는 소리였습니다. 보통의 빗자루에 막대기를 달아 눈에 확 띄는 빗자루로 청소를 하고있는 스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잠깐이지만 뜻 깊은 대화도 놓칠뻔 했는데 참 다행이었습니다. 빗자루를 일부러 크게 만든 이유는 뒤에 보이는 건물의 높은 부분을
청소하기위해서 였다고 합니다.스님은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에 떨어진 빨간 동백이 눈에 거슬린 게 틀림없습니다.그 자극적인
붉은색이 점점이 경내를 돌아다니니 눈이 어지러웠을 것이고 가만두면 마음까지 영향을 받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수행자의
한모습에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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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

 

 

생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경계… 있는 사람도 있지만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스님이라면 그 경계를
누구나 다 건너왔을 것입니다. 이 행자님도 이제 그 경계를 넘고 있습니다. 회색빛 승복을 입기위해 먼저 입은 붉은 행자복이 그 경계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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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 하게 걷는 길

 

발걸음 홀가분 합니다.아직 사미계도 받지 않은 행자님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털어버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시원함을 느끼는 듯 합니다.바라보는 저도 덩달아 홀가분해 집니다.무소유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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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근이 있는 풍경

 

나무 밑 굽어진 길로 누가 올까요.이사진을 찍는 순간 만큼 비워두고 싶었습니다.사람 마음
無常한지라 저 역시 그 범주 안에 들어갑니다.이풍경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고 저풍경을 보면 저런 생각이 듭니다.있는 그대로의 길이
더 편했습니다.사진에 생각이 들어간다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나무는 연리근(連理根)입니다. 뿌리와
뿌리가 연결 돼 있습니다.그 뿌리 돌담의 선과 산의 선을 이어주고 있으니 끊어지지 않아 마음 편했습니다.수만가지 이유로 절에 가서
그만큼 얻어오지만 그 못지 않게 생각도 많이 합니다.생각 많은데 마음 편한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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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의 수좌

 

스님들 특히 수좌를 찍으면서 ‘만일’이라는 생각을 많이한다.머리 깎고 회색빛 승복을 입으라면 입겠지만 하루 열
몇시간씩 면벽하고 앉아 참선에 몰두하는 것은 왠만해서 결심하기 힘들다. 사바세계에 있다가 가람에 들었을 때는 스님들만 봐도 눈이 휘둥그레
지다가도 그 풍경에 익숙해지면 선방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수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만일’ ‘만일’을 입에
올린다.눈을 비스듬히 뜨고 화두를 참구하는게 참선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중의 하나일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생에 이만큼 살아온것도 보통일은 아닐텐데 수많은 생을 거쳐 온 기억들과 습관들이 내 몸에 들어있어서 한순간도 ‘정지의 순간’을 맛볼 수 있게
놔두지 않는다. 그것과의 겨룸이 참선일 수 있다. 쉽지 않기에 엉덩이에 진물이 날 때 까지 앉아있어도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선방은 고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객들을 반기지 않는다. 세상에서 온갖 냄새 베어있는
얼굴과 생각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수좌들은 꺼려한다. 묻어오는 것들이 그들을 다시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몇 걸을 떼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사바세계의 기준으로 봐도 억울한 일이다. 그들은 참는다. 수행자이기 때문이다. 수좌들은 자신과 겨루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오는 바람과도 겨뤄야 한다. 바람은 사진쟁이였다. 닮고 싶고 흉내 내고픈 마음을 수좌는 아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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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동백

 

동백 떨어졌다.마당에 붉은 선홍 점점이 흩어졌다.회색빛 가득한 절집에 선홍같은 꽃잎 어지럽게
널려있다.스님 발걸음 무심하다.많은 것 참고 붉은 빛 냈건만 그것은 한순간에 불과했다.생사의 경계가 이런
것인가.세상에 변하지 않은 것은 없다.無常이 여기있다.아름다운 동백이 떨어져 그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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