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명을 둘러싼 한 판 공방

요즘 취재하면서 동영상도 함께 촬영하고 있습니다.
사진이 순간 포착이 중시되는 분야라면 동영상은 편집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tv나 신문에 나지 않았던 정치의 뒷편을 동영상으로 찍은 ”정치야사”를 보실 것입니다. 아래의 주소를 누르면 동영상이 나옵니다.

지난 금요일(4일)민주당 유종필 대변인과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 신중식의원이 ”대통합민주신당”이란 당명을 두고 한 판 붙었습니다.
유대변인은 대통합민주신당이란 당명이 ”민주당”에서 유래한 짝퉁 당명이므로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짝퉁 당명이란 지적에 화난 신중식의원이 점잖게 반박을 했습니다. 출범 전 부터 당명이 희화화 된 상황이라 그의 심기는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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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이란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던 20여명의 김한길계의원들이 민주당과 합당해 만든 ”중도통합 민주당”을 말하는 것입니다.
느릿한 말투에 듣는 이가 우스울 만한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진지하게 말하는 유대변인의 지적을 웃으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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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 대변인의 논평 후 ”대통합민주신당”이란 새로운 당명을 설명하기위해 신중식의원이 나섰습니다. 유대변인인의 가처분 신청이 맘에 걸렸던 듯 그에 대한 한마디도 잊지 않습니다.
두 정치인은 며칠 전 까지 한 당사에서 사이좋게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을 껴앉는 문제로 이견을 보여 끝내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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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미 사진전


일본 동경 올림푸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전이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전시회 덕에 제가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지라 생소한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습니다. 전시회에 걸 사진을 고르면서 촬영할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동양의 정서와 불교의 핵심을 나타내는 사진을 중심으로 골랐습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길상사가 갖는 나눔이 일본 관객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진을 찍은 이의 마음도 자연스레 나타났으면 하는 기대도 솔직히 있습니다.


”보통의 미”란 제목으로 걸리는 사진을 분류하자면 기록 사진입니다. 길상사에 살고 있는 스님들과 길상사에 오시는 불자들 그리고 길상사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담되 아무렇게나 셔터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피사체들이 마음에 닿을 때 카메라들 들었습니다. 꼭 찍고 싶었던 장면을 놓쳤다 하더라도 아쉬워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찍을 수 있겠지”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연출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음에 와 닿는 사진은 사진가의 마음이 움직일 때 찍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려 노력했습니다.
불교 사진을 찍고 싶은 바램은 자연스레 부처님께 혼을 다한 사진을 올리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진공양”으로 명명했던 이유는 부처님께 제 노력을 온전히 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 이었습니다. 무형의 마음이 유형의 사진으로 변해 그 안에 담긴 부처님의 자비와 나눔을 나타내는 공양물이 된 것 입니다.


2004년 6월 중순 쯤 동아일보 주말판 위크엔드의 커버 사진을 찍기위해 길상사에 간 게 사진공양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침 같은 부에 있던 정인성군과 공성태군이 홈페이지(
www.urisesang.co.kr)를 만들어 준 터라 홈페이지에 컨텐츠를 채운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쉬 될 것으로 여겼던 불교 사진 찍기는 한 달도 못 가 벽에 부딪쳤습니다. 사진가의 사고의 산물인 사진이 얄팍할 수 는 없었기에 ”불교가 무엇인지” ”왜 불자들은 간절한지” ”왜 절하고 참선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과 불교 그리고 길상사가 갖는 나눔의 의미가 한걸음씩 제게 들어왔습니다.
바쁜 일상을 보내야 하는 사진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진공양 중간에 서원한 3백장의 사진을 부처님전에 바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부처님의 가피 때문이었습니다. 일주일에 6장씩 다른 사진을 찍어 홈페이지 올려야 하는 일이었지만 항상 새로운 장면 못 보던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부처님은 그것들을 볼 수 있도록 제 마음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사진공양 중간에 어머님의 별세라는 청천벽력이 있었지만 어머님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게으름을 물리쳤고 신 새벽의 찬 공기도 이겨냈습니다. 어머님은 생전에 제 사진과 글을 보고 많은 위로를 받으셨기에 어머니와 아버지 영전에 사진공양 회향과 책(이토록 행복한 하루)을 꼭 올리고 싶었습니다. 죽음의 경험은 알게 모르게 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잠시 인연으로 모여 있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 다는 것은 변화였습니다. 잠시 왔다 가는 생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고 분명 그 생각은 사진에 투영되었을 것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일방적인 전달이 이뤄지는 구조 속에서 사진공양은 계속됐습니다. 사진과 글을 보시는 분들의 반응이 어떤지도 궁금했지만 서원했기에 밀고 나갔습니다. 마음껏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은 무엇이든 표현 할 수 있다”란 신념을 구체화 시켰습니다. 피사체를 그대로 찍는 사진은 본래 구체적 표현을 하는 분야이지만 추상의 표현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끔씩 이 생각에 맞는 사진을 찍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또 ”사진에도 상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제는 스스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부제와이 조화를 통해 보여 진다고 여겼습니다. 구도 색깔 형태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사진이 나왔습니다.

신문사(동아일보 사진부)에서의 취재 경험과 길상사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들은 각각의 분야를 긍정적으로 발전 시켰습니다. 사진기자의 마음이 들어 간 보도 사진은 독자의 마음을 즐겁게 했을 것이고 취재 현장에서 얻은 풍부한 경험은 절에서의 순간 포착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진공양이 계속 될 수 록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가 찍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찍는 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가 사진에도 있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찍는가는 바로 마음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진 찍기는 마음 다스리기였습니다.

2006년 4월사진공양이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책 출간이 일본에서 사진전을 갖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일본 아사히 신문 사진부장을 역임하셨던 하나이(花井)상께서 제 책을 보시 곤 사진전을 주선하셨습니다. 작년 8월 하나이상은 사진공양 포트폴리오를 올림푸스 갤러리에 제출하도록 요청했고 갤러리 측은 3개월여의 심사 후 전시가 가능 하며, 되도록이면 원하는 날짜에 전시가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올림푸스 갤러리는 매년 10월경 이듬해 전시 일정을 정한다고 합니다. 갤러리 관장은 그 후 저와 많은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전시장 넓이, 무료로 대여해주는 액자의 수 및 크기, DM구성 및 디자인, 홍보전단에 들어가야 할 사항, 전시장 사용료 등등 전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세세히 올 1월 통보해 전시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했습니다. 충분한 정보를 받긴 했지만 해외에서의 개인전인지라 직접 전시장을 찾아 나름의 구상을 가다듬었습니다. 동경에 있는 사진 갤러리 중에서 대략 캐논 니콘 다음의 명성과 크기를 갖는다고 해서 꽤 클 것으로 예상했으나 인사동의 갤러리에 비해 작았습니다. 여백이 있는 사진들이라 간격을 두고 전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20여점 정도를 전시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 배를 제시 하면서  제고를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일본에서의 사진 전시는 사진과 사진 사이가  10CM미만일 정도로 촘촘히 걸며 관객들이 40여점 이상의 사진을 봐야 만족한다는 설명 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구상했던 전시회 형식과 달라 많이 망설였지만 수용했습니다.
갤러리측은 전시 한 달 전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오는 9월6일 동경 진보쵸의 올림푸스 갤러리에서 일주일간 ”보통의 미”라 명명한 사진전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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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휴가란 ‘신발을 가지런히 잠시 벗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듯한 모양은 아니지만 무질서 하지 않게 벗어 놓은 세 켤레의 신발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길었자 1주일 동안 신발을 벗어두는 것이지만 그 사이 심호흡을 할 수 있습니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므로 한 짝은 여기 또 한 짝은 저기 벗어 둘 수 없습니다. 잠시 쉬는 것은 잘 돌아가기 위함입니다.

생은 만만치 않기에 쉬었다 가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팽팽한 줄과 헐렁한 줄이 내는 소리가 어울려 화음을 내 듯 치열한 일상과 느슨한 휴식이 섞일 때 생의 파도를 잘 넘을 수 있을 것 입니다. 넘으며 그리는 무늬에는 자신의 아름다움이 배어있을 것입니다.

오카리나 선율이 신발 주인들에게 다가 갈 때 퍼뜩 떠 오른 ‘그 무엇’이 그들의 휴가를 보상했을지 모릅니다. ‘좋다’라는 생각 하나가 일상을 활기차게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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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 속의 절

세상 맑음 중에 으뜸가는 것이 사람이 주는 것입니다. 구슬처럼 맑고 빛나는 눈을 가진 이를 만날 때,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목소리를 느낄 때 듣는 이의 마음은 맑아 집니다.  눈빛으로 목소리로 그리고 몸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은 그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마음을 맑게 합니다. 다 똑 같은 마음을 가졌는데 누구의 마음은 맑고 또 누구의 마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내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합니다. 날 때 순진문구 했겠지만 세상 살다 보니 때가 많이 끼었습니다. 인연으로 다시 기회를 잡았습니다. 절에 가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닦게 해주는 스승입니다. 아니 절 밖에도 나를 비춰주는 것들은 가득합니다. 보느냐 못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보살님은 정성으로 합장 반배를 올렸습니다. 깊숙이 오랫동안 허리를 굽혔습니다. 그 모습이 마음인 것 같았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니 저런 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녹음과 보살님은 어울렸습니다. 마음이 맑아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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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 출장

오랜만에 긴 출장을 다녀왔다. 기간은 3박4일. 해외 출장이 아닌데 국내에서 4일간 출장을 가는일은 드문 일이다. 교통 수단의 발달 때문이다. KTX는 1박2일의 출장을 당일로 2박3일의 출장을 1박으로 만들어줬다. 큰 일이 없는 한 좁은 한국에서 4일간 빙빙 도는 일은 언론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사라지고 있다.
각오한 출장이라면 그 시간동안 괴롭지 않았을 것이나 급작스런 출장이라 힘들었다. 더위와 싸웠고 취재 현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단벌의 민망함에 창피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예년의 여름 보다 더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직접 겪었던 대구의 더위는 대단했다.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단박에 30도를 넘었다. 창원의 체육관도 잊을 수 없다. 만여명이 군복을 입고 내뿜는 열기는 밖의 뜨거움과 비견할 만했다.

삼복 더위에 다른 기자의 카메라에 내 모습이 찍혔다. 창원 체육관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찍으려 기를 쓰는 게 잡힌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 내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처음 알았다. 박대표 오른쪽에 서 있는 분 때문에 대표를 찍을 수 없었기에 비켜주기를 간청하는 순간 찍힌 것이다. 현장에서의 자리가 중요함을 알려주는 사진이기도 하다.
중앙일보에 나온 이 사진을 보며 ”내 눈이 이렇게 큰 가”하고 놀랬다. ”다급하면 눈이 커지는 게 나도 예외가 아니구나”하며 웃었다. 중앙일보 기자에게 ”내가 찍힌 거 몰랐나” 며 힐난성 질문을 하자 ”정말 몰랐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짧은 시간안에 찜통 같은 데서 마감을 하다보니 박대표의 움직임만 봤지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사진을 그가 마감할 때 봤으나 내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그를 탓할 수 없었다. 오히려 치열하게 취재에 임하는 모습을 찍어 준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창원에서의 내 모습과 비견될 만한 사진이다. 박근혜 대표를 지지하는 김재원(왼쪽 빨간 넥타이) 송영선 한선교의원(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이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송영선의원이 제일 먼저 올라 마지막 까지 춤을 췄다. 기호3번 박후보의 지지자들의 응원이 성에 차지않았는지 치어리더를 자임한 것이다. 그의 막춤 탓에 체육관은 ”박근혜”를 연호하는 소리로 가득찼다. 이 장면은 YTN의 돌발영상에 소개되기도 했다.

울산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후보를 열렬히 지지했던 여성이다. 그냥 있기도 더운데 얼굴 노출을 피하려 수건과 두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감쌌다. 얼굴을 보여 달라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화끈하게 응원을 하려고 나온 양 복장 자체가 ”전투복” 차림이다. 이같은 열렬한 응원으로 숫적 열세를 만회한 것 같다.

24일 포항 죽도 시장에서 이명박 후보가 아이스케끼통을 멨다. 그는 10대 때 이곳에서 아이스케끼 장사를 했다고 한다. 입에 풀칠을 하기위해 아이스케끼 장사를 했던 소년이 50여년 후 한나라의 지도자에 도전하고 있다.
이 사진을 찍고 난 후 왼쪽 어깨를 다쳤다. 수많은 인파와 취재진 속에서 케끼통과 그의 웃는 표정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밀치다 보니 그 와중에 어떤 물체에 세게 부딪친 것이었다.

야권의 대선 후보를 뽑는 합동유세는 총13번 이다. 울산 유세를 끝으로 세번이 끝났다. 마감하는 사진만 50장에 육박하는 만만치 않은 취재다. 드라마틱한 사진이 나오기도 하고 위에서 보듯 낙수거리의 사진이 나오기도 한다. 여태껏 몰랐던 인간의 다양한 면들이 카메라에 잡힌다. 출장이 길기는 했지만 어쩌면 이런 재미가 있기에 견뎌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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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만난다는 것

아이들이 스님 주위에 모여 있습니다. 스님은 법회 후 아이들에게 법당 옆 빨간 꽃을 설명하고 싶었나 봅니다. 능소화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땅 꼬마에서부터 열 살 남짓한 개구쟁이들이 가만히 있질 않습니다. 아이들이 딴 청을 피우자 하늘로 향하고 있는 꽃을 가리킵니다. 스님의 손짓에 아이들의 눈길은 빨간 능소화로 향합니다.

아이들이 불교를 만나는 방식입니다. 앉았다 일어 섰다를 반복하며 절을 하는 법회는 싫지만 그 다음은 노는 시간입니다. 경내를 가로지르는 다람쥐를 따라다니고 작은 소리에 놀라 떼 지어 날아가는 참새를 봅니다. 절은 좋은 놀이터입니다.

부처님과 불교는 물과 공기처럼 아이들에게 스며듭니다. 막다른 길에 만나는 부처님 법이 아니라 깔깔대며 웃고 노는 사이 만나는 자비인지라 꼬마들은 법을 대했는지 대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법당에 계신 부처님께 엄마처럼 절을 하는 것, 아무것도 없는 땅에 부리를 박고 있는 비둘기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 스님이 준 과자를 친구와 나눠 먹는 것이 훗날 더 큰 자비행의 씨앗 이라는 걸 아이들은 아직 모릅니다. 깨끗한 아이들의 마음 밭에 더 깨끗한 부처님 법이 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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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표가 울지도 모른다는 귀띔에 정신이 번쩍든다. 땀은 줄줄 흐르지만 땀이 문제가 아니다. 박대표를 수행하는 이정현 공보특보가 취재중인 사진기자들에게 전해준 중요 정보다. 찍은 사진을 노트북에서 마감하다 말고 박대표의 눈가를 망원렌즈로 좇는다. 2백mm렌즈로는 부족할 것 같아 더 가까이 찍을 수 있는 컨버터를 부착해 긴장의 도를 높인다. 멀리서 보니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 같기도 하다. 목소리도 울먹거리 는것 같다. 정말 우는 게 아닐까. 울거라는 철석 같은 믿음이 잘못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좋은 자리인지 가늠이 안 선다. 대표가 운다면 정면을 볼 것인가 돌아서서 울 것인가. 돌아서 운다면 물 먹을 거라느 생각이 든다. 땀이 줄줄 흐른다. 언제 박대표의 손이 눈가로 갈 것인가. 시간은 흐른다. 카메라가 무겁게 느껴진다. 대표는 울지 않은 채 연설을 마쳤다. ”에이…” 하면서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온 몸이 끈적댄다. 오늘로서 세번째 흘리는 땀이다. 작은 체육관에 만명이 훨씬 넘게 들어왔다. 월남전에 참전했다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는 월남전의 용사들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설움이 분노로 변했음을 몸이 느낀다. 더 덥다.

1m앞 박대표를 찍기란 쉽지 않다. 경호원 세명이 자꾸 밀쳐낸다. ”안비서…좀 비켜 비켜” 뒷 걸음 치며 수 십장을 눌러댄다. 안대표는 내 얼굴을 아는지라 배려를 해주지만 행사측의 참전 용사는 막무가내다. 힘으로 밀어낸다. 몸과 몸이 부딪친다. 땀은 더 흐른다. 힘에 밀리면 박대표와 참전 용사가 악수하는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한다. 악착 같이 버티다. 힘을 낸다. 얼굴에서 시작된 땀은 허리께로 흐른다. 묘한 상쾌함이 흐른다. 가끔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천성이 사진기자일까.

몇 년 전에도 이같은 기분을 느꼈다.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갔을 때 이 직업이 내게 잘 맞는 다는 생각을 했다. 5분을 걸을 수 없는 상황에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급작스런 출장에 티셔츠 한장도 갖고 오지 못했다. 박대표가 행사장을 떠난 후 맘 편히 마감을 하면서 중앙일보 기자의 냄새를 맡았다. 땀 냄새가 베어나온다. ”나는 어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냄새 나…”
내일은 어디 옷 집에 가 티셔츠 한 장 사야겠다. 이 순간에도 땀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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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와 우산

아이의 장화와 우산이 눈에 띱니다. 사내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노란색 장화와 빨간색 우산을 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팬츠와 셔츠 색깔도 다릅니다. 아이는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노란 장화는 어린이 법회를 가는 길 입니다. 비 오는 날 늦잠 자기 쉬울 텐데 쫄랑 쫄랑 엄마 뒤를 따라가는 걸 보면 법회 시간이 재미있나 봅니다.

우산이 고장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멋쟁이 꼬마는 우산을 짧게 잡고 있습니다. 오른쪽을 바라보며 ‘부처님 안녕’ 하는 듯 극락전을 바라보며 한가로운 발검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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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볼 때가 있다. 잘남과 못남을 가리려는 것 보다 나이에 맞는 얼굴인지 얼마나 편안한지 얼마나 세파에 휘둘렸는지 등등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얼굴을 보며 내 지나왔던 날들을 생각하고 또 앞으로 남아있는 날들을 예감한다. 40대니 20년쯤 어린 젊은이들을 볼 때는 나의 20대를 회상하고 20년 위인 초로들을 보면 나는 저 나이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생각한다. 세상 물정에 익숙하기 보다는 풋풋함이 묻어나는 앳된 청년을 볼 때면 ”나도 저렇게 보였을 거야”라고 속으로 웃는다. 20대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아는 나이인데 그걸 몰랐던 나의 어림에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60대를 볼 때면 편안함을 살핀다. 바라기 때문이다.

20대 초 나는 막연히 편안한 얼굴을 갖기를 원했다. 어떤 계기로 그런 바램을 가졌는지 모르겠으나 삶의 흔적이 얼굴에 남는 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0대 때는 지친 이들을 어루 만질 수 있는 인상을 가졌으면 하고 강하게 바랬다. 겉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또 나와의 약속이었는지라 나는 내 얼굴을 가꾸는데 인색했다. 꿈만 그럴듯 했지 선한 얼굴을 갖기위해 노력한 게 없었던 것 같다. 그 때도 열심히 살았지만 십년쯤 지나고 보니 내가 추구했던 것들이 얼굴에는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느림에 속 터져했고 빠름에 환호했다. 내가 가진 것 보다는 남들이 가진 것에 더 눈이 갔다. 빠른 길이 뭘까 고민했지만 천천히 가는 여유로움의 멋을 몰랐다. 남과 다른 게 있었다면  욕심의 좋은 표현인 열정 뿐이었다.

대학생 때 나보다 스무살쯤 더 먹은 이들은 여러 면에서 나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내 주위에 있었던 어른들은 대부분 40대거나 50대 였는데 그들은 온화하고 점잖았으며 멋있게 보였었다. 그러나 막상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별반 다른 게 없음을 알고 놀랐다. 세월은 겉모습을 그 때 그 어른들과 비슷하게 만들어 줬으나 향기나는 판도라의 상자로 여겼던 내면의 긍정적 발전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살다 보니 좋은 것의 접촉 만큼이나 그렇지 않은 것과의 접촉도 많아 그 속에서 나를 다스리기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휩쓸리고 휘둘리다 보니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我)”만 있음을 내 얼굴이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한달음에 20대에서 40대로 왔다. 60대로 가는 길은 더 빠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길은 세월의 열차를 타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어떤 열차를 탓는지 흔적이 얼굴에 남는다. 나 보다 빨리 열차를 탓던 이들의 얼굴에 지금 자신들의 얼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내들의 속내가 묻어 나온다. 감추고 싶어해도 감춰지는 것이 아니며 보이고 싶어해도 보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없음(無我)이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을 이제야 어슴푸레 알았다. 20대
때의 꿈은 버리지 않았지만 앞 뒤가 안맞기에 당혹스럽다. 상(相)은 한갖 신기루인데 집착하니 말이다.
얼굴 보기는 재미를 넘어 영원한 가치를 찾는 공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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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추는 장삼

장삼이 춤을 춥니다. 목탁채 하늘로 향합니다. 극락전에 나무아미타불 소리 가득 찹니다.

장삼이 춤을 춥니다. 목탁이 웁니다. 채 하늘로 향합니다.

장삼이 너울 거립니다. 너울 거림이 소리를 일으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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