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보며 목탁을 치다

 

운문사 강원의 치문반(1학년)스님이 점심 공양을 알리는 목탁을 치기위해 시계를 보고 있습니다. 11시30분부터 시작되는
점심공양을 알리는 목탁은 정확이 11시 28분 29초부터 치기 시작합니다. 1분31초 전부터 목탁을 치는 이유에 대해 스님은 ‘윗반 스님으로부터
그 때 치라’고 배웠다고 합니다. 이 스님께 그렇게 가르키신 스님께 왜 그랬냐고 물으면 필시 그 윗반 스님께 배웠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불문율의 전통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아무도 모를것입니다.추측해 본다면 목탁 소리를 신호 삼아 발우공양을 위해 큰 방에 모여있던 스님들은
입승스님의 죽비소리를 마음 가다듬고 기다릴 것입니다. 느닷없는 공양보다는 준비하는 공양이 훨씬 여유있을 것입니다.범종을 치기위해
연방 시계를 보는 스님들은 꽤 많이 봐왔습니다만 목탁을 치기위해 준비하는 스님은 처음 봤습니다. 비구니스님이기에 더 꼼꼼해서 그렇다라는 해석이
가능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불가의 모든일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일전에 봉화
금봉암에 계시는 고우 큰스님을 뵙고 온 적이 있습니다.스님은 공성(空性)에 대해 참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불교의 핵심을
설명하는 것으로 실생활에 적용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들이었지요. 문제는 그 좋은 법문이 하루가 지나자 잊혀진 것이었습니다. 사바세계에서
시달리다보니 어느새 이전투구에 익숙해진 것이지요. 고우스님의 말씀을 꺼낸 이유가 수행은 반복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색(色)의
세계에서 공(空)의 원리를 깨닫기란 쉬운일이 아니지요. 색이 없는 가운데서 공을 느끼라면 덜 어려울텐데 온통 색으로 이뤄진 세상에서 그것이
본래의 면목이 아니라는 것을 찾아내기란 어쩌면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지식을 매일 친견하고 자신을 채찍질 한다면 법문을 그렇게 쉬
잊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목탁을 제 시간에 치기위해 시계를 보는 스님의 그 마음과 우리네 중생들의 ‘색 안의 공 찾기’란 비슷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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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가 깨끗한 이유

 

스님들이 빨래 건조대 밑 자갈위에 앉아 잡초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빨래에서 떨어지는 물이 바로 땅으로 떨어지면
지저분할 것 같아 자갈을 깔았는데 그 사이에 보일락 말락한 잡초가 나오자 그걸 뽑고 있는 것입니다.
이분들이 운력하는 곳은 외부인들이 쉬 보기 어려운 곳입니다. 집으로 치자면 뒷베란다 혹은
다용도실에 해당하는 곳이지요. 운문사에 오시는 분들은 너무도 깨끗한 도량에 감탄을 합니다. 그 감탄은 환희심으로 이어집니다.
드넓은 경내가 어디 한 곳 빠짐없이 정결하기란 쉽지않은데도 도량 곳곳은 방금 쓸고 닦은 양 반질 반질 하지요. 속세의 때를 잔뜩 묻혀 온
중생들에게 청결한 도량은 거울입니다.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맑은 거울에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환희심은
학인스님들의 청소 운력덕입니다. 수행자들을 볼 때 마다 깨끗한 기운을 얻듯, 운문사에 오시는 분들은 스님들 덕에 그와 꼭 같은 맑음에
감탄합니다. 중생이 자신을 정화시킬 수 있는 기운을 얻으니 스님들의 청소 운력은 노동이 아니라 수행에 다름 아닙니다. 수행자의 회향은
일상에서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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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섬옥수가 지키는 한국불교

 

운문사 치문반 학인스님들이 자습하는 시간에 큰 방에서 찍은 사진입니다.운문사에 가기 전 부터 이 장면을 꼭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었지요. 이유는 이 손이 한국불교를 지켜낼 가냘프지만 강한 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비구니 스님들은 참 잘살고 계십니다. ‘잘산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불자라면 다 아는 말입니다.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수행 정진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며 도량을 도량답게 만드니 이분들 때문에 한국불교가 새로운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절
취재를 갈 때마다 비구니 스님들이 사는 도량을 꼭 들러봅니다. 어떤 기운을 얻을지, 어떤 맑음이 내게 다가올지 은근한 기대도 하면서
말입니다.출가자들의 급감은 한국불교에 많은 어려움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많은 절들이 이미 전각에 비해 훨씬 모자란 스님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년에 두 번있는 안거철이면 더 그렇습니다. 스님들이 절에 수행을위해 사는지, 아니면 건물을 지키기위해 사는지 알 수 없는
절들도 속출하고 있는 지경입니다. 목탁소리 염불소리가 끊어진다면 절에 오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교세의 약화를 불러 올
심각한 사안이지요.이 위기가 잘 사는 비구니 스님들에게 어쩌면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암자나 사찰들이
비구니스님들의 입성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부처님께서도 말법시대에는 비구승 보다 니승과 재가불자가 불교를
지킬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한국불교에게는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니승이 없는 남방불교와 티벳불교와
승단의 조직에서 확연히 구분돼 양성 평등시대의 사회상과 호응할 뿐 아니라  니승들의 도량과 일상에는 재가불자들이 본 받을 만한 부분이 적잖이
있으니 참선으로 대표되던 한국불교의 또 다른 면이 세계에 부각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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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 벗은 동자상

 

 

 

 

직지사 천불전(비로전)의 누드 동자상입니다. 모셔진 부처님들은 다 옷을 입고 계시나 이 동자상만큼은 벌거
벗은 채로 있습니다. 천불전 중앙에 위치하나 워낙 많은 부처님들이 모셔져 있기에 한 눈에 알아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천불전에 들어서며
한 눈에 이 누드 동자상을 알아보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아들들이 말썽을 피우는 시대에 누가 옥동자를 원할까
하는 생각이 있지만 간절히 아들을 원하는 분이라면 이 사진을 참고로 해서 ‘아들 발원’을 간절히 하고 천불전에 들어가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전에는 다른 부처님들이 금빛 가사를 입고 계셔서 금방 눈에 들어왔으니 지금은 다른 부처님들이 흰 가사로 개의(改衣)한 터라 한 눈에 쉬
들어기는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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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간의 스님들

 

직지사 후원(식당)에서 학인스님 두 분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원에 재학중인 스님들은 공양간에서 음식을 받아
강원의 큰 방으로 날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11시30분부터 강원의 큰 방에서 시작되는 점심 공양에는 선원의 스님들과 주지스님을 비롯한 직지사
대중스님들, 강원의 학인스님들 전부가 참여합니다. 절집에서는 정해진 시간을 지키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습니다. 도량석은
새벽3시, 새벽예불은 3시반, 아침 공양은 5시30분, 저녁예불 전 범종 타종은 5시 55분등 하루일과의 시간표는 1초의 어김도 없이
지켜집니다.  객으로 절에 온 스님들이나 재가불자들도 그 시간표에 맞춰서 생활을 해야합니다. 음식이 언제 나오는지 후원의 주방을
향해 눈은 물론 몸도 돌린 채 바라보고 있는 스님들의 몸짓에서 점심 공양시간에 맞춰 음식을 나르려는 스님들의 ‘간절한’ 마음이 읽혀집니다. 스님
중 앞에 분은 40대 후반 뒷 분은 3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이분들이 여태껏 살아오면서 밥 때를 맞추기위해 애간장을 태웠던 적은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 절을 다니면서 어른스님들로부터 수행의 시작은 ‘작은 것의 실천’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중생세계에서도 꼭 같은
원칙이 적용될 것입니다. 공양시간이 제대로 지켜지는 이유는 스님들의 보이지 않는 애씀이 뒤에 있습니다. 이것은 또 그 분들의 수행의
훌륭한 밑거름 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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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와 고무신

 

 

발우와 고무신.제 사진에 참 많이 나온 소재이지요. 불교 사진을 찍으면서 처음 알았던 발우와 시간이 흐르면서
고무신을 알게됐지요. 발우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신선한 감정이 주를 이뤘습니다. 밥과 반찬을 담는 나무 그릇은 단순했지요. 그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차츰 알게될 때는 발우는 바라보는 심정은 뭘 배우는 학생의 그것과 비슷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발우가 주는 신선미는 솔직히 많이
떨어졌지만 발우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점점 더 크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견강부회일지도 모르지만 발우을 보며 집착을
생각합니다.발우공양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발우에는 자기가 먹을 만큼의 음식을 담아야 나중에 화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발우에
음식 담는 것은 바로 그 결과가 나타나기에 욕심을 제어 해 덜 집착할 수 있게 만들지만 세상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더, 조금만 더가
매일 이뤄지는 일상.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나를 망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신체검사에서 혈압이 높다는 결과를 받고 참
부끄러웠습니다. 술과 고기등 몸에 꼭 필요하지 않은 음식을 맛과 관성에 이끌려 탐닉한 결과가 고혈압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체중을 빼고 그동안
즐겨했더 음식들을 멀리하면서 혈압은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가운데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가 몸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맛과 분위기에 이끌려 필요하지 음식을 ‘조금 더, 조금만 더’ 부지불식간에 섭취한 결과가 어떤 것임을 자각하게 된것이지요. 아직 제 몸에는
무소유하지 못해서 즉 집착을 끊지 못해서 남아있는 쓸데없는 것들이 남아있습니다. 그것들이 점점 사라지니 몸은 상쾌해졌습니다. 남은 것은 이것을
몸에서만 무소유를 실천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집착을 하지않게 길들이는 것입니다.고무신은 이런 발우에 어울리는 친구라고
생각합니다.두가지면에서 그렇습니다. 우선 색깔입니다. 검붉은 발우와 흰색의 대비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놓고보면 조화를 이루지요.
고무신이 갖는 소박함도 발우 만큼은 안되더라도 복잡한 세상사에 비춰보면 상큼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명품 신발도 저 흰고무신 앞에서 큰 소리 치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은 모든 것을 껍데기로만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직지사 큰 방에서 열려있는 문 사이로 본 발우와 학인스님의
고무신.고혈압이라는 몸의 변화가 없었더라면 결코 한 앵글에 찍지 않았을테지만 다가 온 불편함이 저를 더 성숙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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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더우면 스님도 더워요

 

 

사진을 올릴려고 보니 ‘못 찍은 사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찰나에 나타났던 더위를 짜증내 하는 스님의
표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소위 눈으로 만 본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진은 직지사 강원의 한 스님이 선방 스님들 점심
공양 수발 중에 더위를 참기 힘든지 저고리를 붙잡고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장면입니다. 수행자들이라고 해서 항상 정적이고 사바세계의
중생들과 다른 행동을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기에 희노애락이 있고 어떨 땐 그것들이 표출되기도 합니다. 불자라 할지라고 스님네들을 잘
모르면 가끔씩 터져나오는 스님들의 적나라한 감정의 표출에 당황할 때도 있는데 그럴만합니다. 불자들은 그런 스님들을 한없이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발원합니다. 어려움 이겨내시고 꼭 견성성불하시라고.인간이 불교의 수행을 통해 어떻게 변해가는 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지난 수년간 찍어왔던 사진의 변화가 바로 이런면에서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좀 더 깊숙이 들어 가 세상을
등진 채 머리 깎고 수행하는 스님네들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불교의 한자락을 보여 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같은 사람인데 왜 그들은
참아내고 우리는 그렇지 못하는 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에 찍은 사진이기도 합니다.우리가 더우면 스님도 덥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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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좌를 외호하며

 

선방에서 참선에 정진하는 스님들을 수좌(首座)라고 합니다. 머리 수자에 앉을 좌를 쓰는데 아마도 참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국불교의 전통이 그대로 묻어나는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불교는 통칭 통(統)불교라 하지요. 통할 통자를 쓰는 이유는 한국의 불교는
불교의 모든 게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참선으로 대표되는 선과 강학(講學)으로 대표되는 교(敎)를 아우를 뿐 아니라 밀교적인 수행법도
한국불교에서는 널리 행해지고 있기에 통불교라하고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한국의 불교가 면면히 내려왔던 이유는 바로
참선에서 비롯된 깨달음을 얻었던 스님들이 그 맥을 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의 맥 즉 선맥(禪脈)은 화두를 갖고 참선 정진했던 수좌들이 아니었다면
형성되기 어려운 거대한 흐름이었습니다. 바로 이 선맥이 없었더라면 한국불교는 사상누각에 불과했을 정도로 빈껍데기만 남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선맥은 아무나 구성될 수 없는 것이지요. 몇 년이 지난 것을 하루 이틀 지난것으로 느끼고 엉덩이가 짓물르는 것도 모른 채 일념으로 화두에
들어 오도송을 불렀던 선사들의 수 그 흐름에 들어가는 분들이지요.선사들 역시 하늘에서 떨어진 분들이
아니었습니다.’공부’했기에 후세들의 사표가 될 수 있었는데, 바로 사진에 보이는 수좌들 역시 훗날 사표가 될 가능성을 잉태한 분들입니다.
선방이 있는 사찰의 스님들은 선방의 수좌들을 ‘외호’한다고 합니다. 그 스님네들이 오직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온 신경을 다 씁니다.
왜그럴까요. 그네들을 통해 부처님의 법이 보존되고 내려가기 때문입니다.선방스님들이 좀 더 호탕하고 상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외호의 정도가
조금은 느슨해질 수 있으나, 깨달음이란 게 그야말로 ‘어느 순간’에 오는지라 노심초사의 심정으로 선방의 스님들을 보살핍니다.사진쟁이
이제서야 스님들 마음 알아 가능하면 그 외호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공부가 깊으면 당신들 얼굴 찍히는 게 그리 큰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진쟁이 내는 소리에 공부 거슬린다면 지어서는 안될 업을 짓는 것이라 자제하기로 했지요.이 사진 역시 스님들 심기 불편하게 하지않기위해
멀리서 직지사의 경내와 스님들이 어울리도록 구도를 잡아 찍은 것입니다. 구비구비 작은 도량에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와 우뚝 서있는 큰 나무 그리고
점심 공양을 마치고 선방으로 돌아가는 수좌스님들이 어우러져 보여주는 순간은 사진쟁이의 외호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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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바위

 

 

후원 앞에는 크고 널따란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처음 볼 때도 좌복이 널려있었는데 볼 때 마다 바위위에
놓여있는 것은 달랐습니다. 좌복만 있었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어떤 때는 이불이 놓여있기도 했습니다. 하여 든 생각이 "아하…저 바위가 빨래
바위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 생각인지 몰라도 꽤 그럴듯한 발상인 것 같습니다. 절집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곳이
후원인데 그 앞에 넓고 듬직한 바위 하나 같다놓아 여러 용도로 쓰이게 하니 말입니다.다 헤어진 발이 멍석을 대신해 바위위에
깔려있습니다. 도시라면 버렸을 발이 여기서는 역할을 왠만큼 합니다. 보살님은 그 위에 이불 솜을 널었다가 다시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생의
무게가 이 솜이불처럼 가벼울 때도 있지만 ‘빨래 바위’처럼 묵직할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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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전의 지붕과 풀 뽑는 학인스님

 

 

선과 점으로만 된 사진을 찍기를 원합니다.사진이 그냥 사진이 아니라 생의 동반자 이고 불교의 깊이를 더해주는
수행의 방편이기에 드는 생각입니다.이런 생각을 갖고 절에 가서 사물을 살핍니다.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며 자르다가 그것도 안되면
부제들은 주제에 복종하도록 만듭니다.간결함과 단순함 역시 제가 추구하는 것입니다.아무리 복잡다단하고 어수선해도 그 안에는
그것들을 움직이는 단순한 진리가 있을것입니다.바로 그것을 찾는 여정이 이생에서의 사진찍기 입니다.찍기도 즐거운데 그것을 부처님법
가득한 도량에서 펼치니 어찌 더 감사하지 않겠습니까.한국 불교 건축물 중 가장 큰 건물 가운데 하나인 직지사 만덕전의 지붕이
호방합니다.그 뒤에서 학인스님 한 분이 뙤약볕임에도 불구하고 풀을 뽑고 있습니다.지붕이 큰 면이라면 거기에는 선도 있습니다.
스님은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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