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름

  찻잔이 스님의 가슴을 지나 입으로 몇 번 오르내리고 나서야 단정한 개량 고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빳빳한 고름에서는 추상 대신 부드러움만 있었습니다. 고름이 주는 온유함 때문인지 스님이 함께하는 차 맛은 더 좋았습니다.

  ‘추상’이 용맹정진하는 수좌의 형형한 눈이라면 ‘온유’는 모든 걸 포용하는 노승의 웃음과 같으니 지금껏 수행해 온 스님의 발자취가 이 고름안에 다 있는 것 같습니다. 머리만 깎으면 다 도인이 되는 줄 알고 출가했다가 새벽2시반에 일어나 밤9시에 자리에 들때까지 한시도 자리에 앉지 못했던 행자시절을 보냈다는 회고에 고름이 어머니의 인고의 표상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찻잔 잡은 손은 당신의 수행정진의 표시인 저 단정한 고름을 지나 고요히 움직였습니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 소리와 죽비 소리는 고름 때문에 더 크게 사진쟁이 가슴에 울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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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달

  새벽 예불을 마치고 경내로 나섰다. 계곡 물소리 요란하다. 멀리 떨어진 선방에까지는 닿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다. 웅크린 채 발걸음을 옮겼다. 선객들에게 소리 들릴라 한발짝 떼는 것도 조심스럽다. 새벽의 봉암사를 일별하기 시작했다. 희양산의 암봉이 눈에 들어왔다. 통화강암으로 된 봉우리리다. 우뚝 한 번에 솟아 생겼을 것 같다. 봉암사에 맞는 모양새다. 밑으로 태고선원이 적막에 쌓여있다. 그곳 수좌들은 새벽예불 대신 법당을 향해 합장 반배 한 후 바로 참선에 들었다. 바로 옆 건물에도 선객들이 있다. 그네들이 자리에 앉은지도 벌써 두시간이 넘었다. 시간은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고 있다. 산사에 들어오면 생각이 멈출 것 같았으나 선객들이 앉아있는 선원을 보니 머리속은 오히려 더 복잡하다. 왜 앉아있는가. 언제까지 앉을 것인가. 결국에는 다시 나와야 될 것 아닌가.

  발길을 돌렸다. 선원 반대편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선방에서 멀어질수록 물소리 커진다. 발걸음 소리가 물에 묻힌다. 몸을 움직여 어깨를 펴본다. 초여름이지만 신새벽의 추위에 오래 웅크리느라 몸이 굳었다. 가방 멘 어깨도 아프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내 길로 가는 것과 같다. 내 길은 시끄럽고 어수선하며 요란스럽다. 그네들의 길과는 다르다. 서로가 흉내 낼 수 없다. 다음 생을 기약하며 짧은 인연의 끈을 놓지않을 뿐이다. 앞서 가는 그들의 맑음에 빚지고 산다.

  발에 걸리는 돌맹이를 차버렸다. 물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유유자적의 표시인가 답답함의 표시인가. 찬기운이 싫은 일행은 방에 불 키고 있었다. 그 불 때문에 그믐달이 있는 줄 몰랐다. 어젯밤에 못 봤던 달이 어디서 왔을까. 달은 사라지기 일보직전이다. 여명이 달을 삼키기 전 용케 내 눈에 띄였다. 지금 여기 달과 내가 있다. 이 광경 가슴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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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

  봉암사의 큰 샘물에 바가지들이 놓여있습니다. 신경 써 놓아둔 것이 아니고 지나는 스님들이 목을 축이고 난 후 손가는 대로 올려놓은 것입니다. 바가지에는 바람에 날리지 않을 만큼의 물이 들어있습니다. 물이 바가지 걸이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넘치는 물에 바가지가 떨어지지 않은 이유도 물 때문입니다. 바가지 밑을 지나 끊임없이 흐르는 물은 돌확에 이끼를 끼게 했습니다.

  한 시간에 한 두번 선방 수좌와 사미승이 물을 마셨습니다. 선객(禪客)은 포행에서 돌아 온 후 갈증을 풀기위해 마시는 듯 했고 사미승은 바삐 지나다 한숨 돌리기위해 물을 들이키는 듯 했습니다. 선방스님이 물을 마실 땐 ‘손잡이를 잡을 때 깨칠 수도 있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미스님이 바가지를 들 땐 ‘삭발의 결심을 다잡겠지’라고 상상했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샘물을 마셔봤습니다. 물 맛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고 폐부를 찌르듯 차지도 않아 마시기 적당했습니다. 시원한 생수 맛이었기에 너 댓 모금을 금새 들이킬 수 있었습니다. 입에 물을 물고 고집있게 생긴 희양산을 훑어봤습니다. 다른 절에 비해 샘물을 담은 돌확이 유독 커 혹 얼굴이 비칠까 이리저리 옮겨봤지만 환한 대낮이기 때문인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확 한가운데 있는 구멍에서 나온 새물은 조용히 흘러 물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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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 중국 출장을 갑니다. 출장 가는 날이 사진공양을  업데이트하는 날이라 이번주는 사진공양을 쉬게 됐습니다.
일주일간 많이 생각하고 다듬어 다음주 화요일에 사진공양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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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구경

보살님들의 춤 연습을 보는 게 재미나기에 스님은 방에 들어가는 걸 잠시 미뤘습니다. 스님의 표정에서 구경의 재미가 묻어납니다. 잘 아는 보살님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니 놀랍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 흥미진진 한 모양입니다. 리더의 시범이 우스꽝스러워 웃지 않을 수 없지만 박장대소를 막기 위해 손을 입가로 가져갑니다. 스님의 미소가 사라지기 전 사진쟁이는 스님의 재미난 모습을 훔치듯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서울 진관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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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아이는 엄마가 전각을 돌며 부처님께 절을 올릴 때 까지 저렇게 있었습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지만 의젓한 자세는 대여섯살 먹은 아이가 맞나 할 정도로 반듯합니다. 30여분 넘게 걸리는 참배 시간동안 아이는 사탕 하나를 입안에 굴리며 얌전히 있었습니다.  

  아이와 칠성각에 모셔져있는 석불좌상은 닮았습니다. 둥글면서도 앳되며 아주 작은 석불좌상을 처음 봤을 때 그 귀여운 모습에 환희심이 났었는데 앙증 맞게 앉아있는 아이 모습을 보니 칠성각의 부처님이 나오신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나이 먹고 때 많이 낀 상태로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이생에 지은 죄 참회하느라 바쁜 사진쟁이는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아이를 보며 ‘내가 돌아가야 할 자리가 저런 것이거늘…’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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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선물

                  중생들에게 주는 덕조(德祖)스님의 선물입니다.
                  당신도 지칠대로 지쳤지만 신록같은 웃음을 띠고 있습니다.
                  사람의 맑음과 수행자의 향기에 마음이 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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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

  양말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구멍만 있는게 아닙니다. 왼쪽 아래는 기운 흔적이 역력합니다. 서울 진관사 진관(眞觀) 회주스님의 양말입니다. 스님은 이 양말을 8년 넘게 신으셨다고 합니다. 기도 스님 말씀이 2000년부터 보셨다고 하니 10년 넘게 신으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두껍다면 모를까 스타킹처럼 얇은 양말을 얼마나 아껴 신으셨길래 8년을 신었는지 대단합니다.

  스님은 이 양말만 찾으신다고 합니다. 다른 양말은 이 양말 만큼 편하지 않기 때문이라네요. 스님만이 알고 있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양말의 어떤면이 스님을 사로잡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쓸 수 있을 때까지 쓴다’라는 스님의 성정을 이 양말로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뒤꿈치 부분의 구멍난 부분도 조만간 기워져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스님 양말을 보니 성철스님 일화가 떠오릅니다. 백련암에서 상좌들이 수박을 먹고 쓰레기통에 버린일이 있었는데 수박에 살이 붙어있는 걸 보신 성철스님께서 불호령을 내려 쓰레기통에서 다시 수박을 건져 짱아찌를 담궈도 좋을 만큼 깨끗이 먹었다고 합니다. 기워지고 구멍난 양말도 성철스님 못지 않습니다. 선지식은 중생들에게 실천으로 까지 가르켜주시니 고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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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어머니를 그리며…

 

  어머니…
가신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제품에 안겨 세상 떠나실 때 너무도 믿기지 않아 기막혔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평생 안고 가야할 아픔 입니다. 살아 계시면 올해 예순 아홉이 되시는 군요. 만약 그 순간을 잘 넘겼더라면 8순은 물론이고 9순까지도 건강히 사셨을텐데 아쉽고 아쉽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 며칠 전 진관사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어머니가 더 그립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서울 진관사 회주 진관(眞觀)스님이 상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편히 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머니 살아계셨더라면 ‘저게 바로 어머니 모습이고 내 모습 일텐데’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발을 주무르고 지원이 혹은 재혁이가 가운데 앉아 어머니에게 우스개 소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  또 회주 스님이 살아계신 외할머니와 닮아서 어머니가 주무르고 지원이가 가운데 앉아 재미난 말을 하는 듯 합니다.

  어머니…
가운데 앉아 손뼉 치며 웃고 있는 법해스님은 스승인 진관스님이 오래 오래 사시길 빌고 또 빈다고 합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를 넘어 두터운 모녀지간이 됐음을 사진이 말하주고 있잖습니까. 20여년을 회주스님 슬하에서 공부했던 법해스님은 회주스님을 세상에서 가장 큰 선지식 존경하고 어머니로 봉양하고 있습니다. 노스님은 새벽 2시반에 기침하셔서 예불을 올리고 참선과 경전 공부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젊었을 적에는 엄함속에 자애로움을 감췄지만 지금은 친정 어머니가 시집 보낸 딸을 대하듯 제자들을 대하니, 그 따뜻한 마음에 제자들이 하루를 감사히 보낸다고 합니다. 살아계실적 어머니의 그 마음에 하루 하루를 살던 것과 꼭 같아 어머니가 더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버이날 이승에 있는 제가 어머니를 위해 한 일 이라고는 길상사에 영가등 단 것 밖에 없습니다. 극락에 계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지만 영가등을 또 단 이유는 극락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시기를 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생 어머니 덕에 세상에 나왔고 어머니로부터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기에 이나마 사는 것 같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법도가 엄하고 절집의 법도가 추상 같음에도 불구하고 오손도손 망중한을 보내는 진관사 스님들을 뵈니 어머니 그리워 하는 맘 주체할 길 없는 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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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모르긴 해도 고독은 수행자의 친구일 것입니다.  집착을 떨치려는 노력을 하기에 고독은 항상 그의 주위에 머무는 것이겠지요. 혼자있음을 즐기는 것도 ‘고독이라는 친구’와 사이 좋게 지내기 때문이 아닐까요. 고독과 친하기에 그 무게를 말하는 것은 쓸데 없는 일입니다. 필부들이 느끼는 천근만근과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법정스님이 부처님과 마주 앉아 계실 때 수행자의 고독이 묻어납니다. 서까래가 삐그덕거리던 낡은 설법전을 다시 지어 축하하는 날 엉뚱하게도 스님의 고독을 봅니다. 찍었던 많은 사진 중에 이 사진을 고른 것도 그 냄새가 맡아졌기 때문입니다. 스님과 대중을 갈라놨던 병풍이 걷혀진 후 스님도 건물 안의 한사람으로 묻혀졌지만 뒤에서 보니 스님과 고독은 동의어 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신은 가을 겨울 병마와 홀로 싸웠습니다. 평생 고독이 낯설지 않으셨겠지만 지난 겨울의 그 ‘친구’는 스님께 무척 생소했을 것입니다. 친구와 친해지기 어려웠음이 스님 얼굴에 보이니 가슴이 아련합니다. 사진쟁이가 스님 친구를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나 스님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안도할만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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