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 없는 차

 

숙성 기간에 따라 색깔이 다른 각종 보이차. 자연 상태로 숙성
시킨 것을 청병이라하고 강제 발효시킨 것을 숙병이라한다.

 

 

 

며칠 전 어떤 스님과 보이차를 실컷 마셨다.

실컷이 어느 정도인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1.5L짜리 두병을 차로 만들어 마셨으니 어지간히 마신 셈이다. 이렇게 차를 많이 마셔 본 것은 오랜만이다. 차를 좋아하는 스님을 만나면 이런 행운이 따르는데 몇 년 만인 것 같다.

2-3시간 계속되는 차담에 한 종류의 차는 부족하다. 술꾼이 긴 시간동안 한가지 술만 마시지 않듯 말이다. 그날 차담은 보이차가 주였고 나중에는 일본식 말차로 끝을 맺었는데 드문 경우였다. 스님이 워낙 보이차를 좋아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보이차의 질이 좋아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도 보이차의 열풍이 불어 인사동등지에 보이를 파는 차 가게가 꽤나 많이 생겼다. 나 역시 그 바람을 타고 몇 번 보이를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마실 때 마다 다른 보이차의 질을 가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곰팡내 비슷한 보이 특유의 냄새가 지나치면 가짜, 적당히 맑으면 괜찮은 차라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은 하지만 너무 주관적이라 내 나름의 기준이 되질 않았다. 겨우 몇 년간 차를 접한 나만의 경험에서 보이차를 비롯한 어떤 차든지 간에 차즙을 다 토해내면 비린내가 나는 걸 봤다. 차 비린내를 그대로 물로 전이돼 물에서도 그게 맡아진다. 조금이라도 맡아지면 차를 버리는데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차는 마지막에 비린내를 냈다.

이상한 것은 스님과 마신 보이차에서는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좋은 차는 비린내가 절대 나지 않는다’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농도만 엷어진다는 것이다. 스님과 내가 마셨던 차는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어도 그 맛이 변함없었다. 마치 고요한 강물에 뜬 달을 떠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 맛이 엷어진걸까하는 느낌이 들 때 스님은 ‘어지간히 빼냈네’라고 말하면서 차 잎을 다관에서 꺼냈다. 나보다 확실히 먼저 차가 제 몸 공양을 다했다는 걸 아신 것이었다.

한 줌도 안 되는 적은 양의 차가 3L의 물을 견디면서 천천히 제 즙을 두 사람에게 보시한 것이다. 정말 대단한 차였다. 20년정도 묵힌 차라는데 맛 향 빛깔 등이 처음과 끝이 거의 다르지 않았다.

좋은 차를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는지 나는 스님과 차담을 나누면서 화장실을 수차례 들락거렸다. 하지만 스님은 결가부좌로 요지부동! 그것만이 아니었다. 밤새 좋은 차를 경험한 댓가를 잠을 설쳐가면서 치러야 했다. 하지만 차를 감별하는 좋은 잣대 하나를 확실히 배웠으니 화장실 가느라 잠을 못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카테고리 :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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