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차 혹은 백탕

왼쪽의 차는 일반적인 녹차의 색깔이다. 백차는 아무런 색깔이
없다.언뜻보면 빈잔으로 착각한다.

 

백차란 차를 마신 빈 잔에 물을 따라 마시는 것을 말한다. 백차도 분명 차이기에 ‘물을 따라 마시는 것’이란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다. 차를 우려내지 않기에 물 색깔은 흴 수 밖에 없어 백탕(白湯)이라고 하지만 그 맛이 백가지에 이를만큼 오묘하다 하여
백차(百茶)라고도 한다. 어느 표현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어서 두 표현 다 써도 맞지만 아무래도 운치는 ‘백가지 맛을 가진 차’에 더 있다.
아무 것도 없는 맹물에 뭐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이 있다는 뜻인 백차(百茶)는 음미할 만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차를 마신 후라 입에는 차 맛이 그대로 베어있는 상태인지라 맹물이 들어가면 차맛을 느끼는데 그것은 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입에서
나오는 맛이다. 한모금 들이킬 때 그 농도는 차맛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엷은 맛이지만 맹물을 찻잔에 마신다는 의아함이 더해져 분명 어떤 맛을
낸다. ‘이게 무슨 맛인가’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맛을 가늠하느라고 쉬 넘길 수 없다. 맹물을 입안 이리저리 굴리다보면 약간 단맛 같은게
나는데 그 맛을 느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차를 내준 팽주(烹主) 얼굴을 한 번 쳐다보며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팽주 역시 그 눈길을 받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 한다. 백차를 마시는 시간은 차를 마무리 하는 시간이다. 대개의 경우 팽주가 서두르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차를 내는 팽주라면 이 시간을 길게 갖을 것이다. 마셨던 차를 생각해 보고 차우와 나눴던 말들을 곱씹어 보기도 하며 맹물이 내는 오묘함이
무얼 말하는지 여러번 생각할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차담을 마무리 하는  백차를 나누는 것은 ‘의식’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는데 만남을
승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생각에서다.백차는 공즉시색의 한 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이 아니라 무언가
있는 공임을 백차를 통해서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입안에 남아있는 차 맛의 여운이 맹물에 맛이 있다고 느끼게 하지만 이것은 ‘맛을 느끼게
하는데 작은 요소’에 불과하다. 한 모금이면 입에 남아있는 차 맛은 다 씻겨나갈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강하게 맛을 지배하는 것은 ‘맹물을 찻잔에
담아’ 나누는데 있다. 백차를 처음 보는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맹물에 무슨 맛이 있다고 권하는 걸까라는 의아심이 들지만 ‘색깔 있는
것만 받다가 색깔 없는 물에 뭔가 있으니 찾아보시오’라고 내미는 백차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네가 가진 자루의 무게는 얼마나
되나’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팽주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낄 수도 있고 불쑥 내미는 백차에 담긴 의도에 불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란 이런
당혹감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내 경우 백차를 내주는 팽주에 감사한 마음이 항상 들었다.흰 찻잔에 담겨있는 색깔은 백색 그대로다.
눈에는 흰색깔만 보이지만 마음속에 그리는 빛깔은 그야말로 백가지 이상이다. 마음이 답이다. 차는 오관이 마시지만 그 맛이
어떤지는 마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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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없는 차

 

숙성 기간에 따라 색깔이 다른 각종 보이차. 자연 상태로 숙성
시킨 것을 청병이라하고 강제 발효시킨 것을 숙병이라한다.

 

 

 

며칠 전 어떤 스님과 보이차를 실컷 마셨다.

실컷이 어느 정도인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1.5L짜리 두병을 차로 만들어 마셨으니 어지간히 마신 셈이다. 이렇게 차를 많이 마셔 본 것은 오랜만이다. 차를 좋아하는 스님을 만나면 이런 행운이 따르는데 몇 년 만인 것 같다.

2-3시간 계속되는 차담에 한 종류의 차는 부족하다. 술꾼이 긴 시간동안 한가지 술만 마시지 않듯 말이다. 그날 차담은 보이차가 주였고 나중에는 일본식 말차로 끝을 맺었는데 드문 경우였다. 스님이 워낙 보이차를 좋아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보이차의 질이 좋아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도 보이차의 열풍이 불어 인사동등지에 보이를 파는 차 가게가 꽤나 많이 생겼다. 나 역시 그 바람을 타고 몇 번 보이를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마실 때 마다 다른 보이차의 질을 가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곰팡내 비슷한 보이 특유의 냄새가 지나치면 가짜, 적당히 맑으면 괜찮은 차라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은 하지만 너무 주관적이라 내 나름의 기준이 되질 않았다. 겨우 몇 년간 차를 접한 나만의 경험에서 보이차를 비롯한 어떤 차든지 간에 차즙을 다 토해내면 비린내가 나는 걸 봤다. 차 비린내를 그대로 물로 전이돼 물에서도 그게 맡아진다. 조금이라도 맡아지면 차를 버리는데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차는 마지막에 비린내를 냈다.

이상한 것은 스님과 마신 보이차에서는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좋은 차는 비린내가 절대 나지 않는다’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농도만 엷어진다는 것이다. 스님과 내가 마셨던 차는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어도 그 맛이 변함없었다. 마치 고요한 강물에 뜬 달을 떠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 맛이 엷어진걸까하는 느낌이 들 때 스님은 ‘어지간히 빼냈네’라고 말하면서 차 잎을 다관에서 꺼냈다. 나보다 확실히 먼저 차가 제 몸 공양을 다했다는 걸 아신 것이었다.

한 줌도 안 되는 적은 양의 차가 3L의 물을 견디면서 천천히 제 즙을 두 사람에게 보시한 것이다. 정말 대단한 차였다. 20년정도 묵힌 차라는데 맛 향 빛깔 등이 처음과 끝이 거의 다르지 않았다.

좋은 차를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는지 나는 스님과 차담을 나누면서 화장실을 수차례 들락거렸다. 하지만 스님은 결가부좌로 요지부동! 그것만이 아니었다. 밤새 좋은 차를 경험한 댓가를 잠을 설쳐가면서 치러야 했다. 하지만 차를 감별하는 좋은 잣대 하나를 확실히 배웠으니 화장실 가느라 잠을 못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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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이야기-참선 시작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 죽비를 친 후 이마에 대고 있습니다. 참선 시작입니다. 때는 어스름이 깔린 저녁 무렵.
왼쪽에 앉은 수련생들은 달마산을 향했고 오른쪽의 수련생들은 진도 앞바다를 향하고 있습니다.

화두에 질릴 때 가끔 눈 돌릴 때가 두쪽다
괜찮은 편입니다.

 

사진쟁이는 수련생들이 왜 이자리에 앉아있는가를 잘 알기에 스님의 죽비치기를 끝으로 사진 찍기를
멈추었습니다.한 여름에 찍은 사진을 내일이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영하의 날씨를 보인다는 뉴스를 들으며 보니 저 때가
그립기도합니다.선미는 구도에서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에서도 살짝 나타나는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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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이야기-단출한 공양간

 

미황사의 공양간입니다. 재가불자와 스님들이 함께 공양을 하지요.

 

다른 절에 비해 단출합니다.

 

벽에 걸려있는 세상과
나의 인연을 강조하는 공양게도 공양하면서 음미할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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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이야기-단출한 공양간

 

미황사의 공양간입니다. 재가불자와 스님들이 함께 공양을 하지요.

 

다른 절에 비해 단출합니다.

 

벽에 걸려있는 세상과
나의 인연을 강조하는 공양게도 공양하면서 음미할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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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이야기-금강스님이 가리키는 것

 

 

스님이 뭘 가르키고 있을까요. 선도량 미황사의 주지 금강스님이 손가락을 들어 가르키는 게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림자만 보이는 선 수련생과 스님과는 ‘그만큼’ 떨어져 있습니다.

한 생각 일으키면 저 거리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한
생각은 어쩌면 숙생을 거치면서 쌓았던 업의 결과 일 수 있기에결코 짧은 거리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쪽에서 스님이 재가불자를
향해 일으킨 바람은 서서히 북상하고 있습니다.

맑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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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이야기-법을 향한 마음

 

법을 향한 염원의 그림자가 깁니다. 선수련회 자원봉사자인 거사님은 법당 앞을 지나칠 때 마다 이렇게 합장을 하고
예를 올렸습니다. 정성이 보기 좋았습니다. 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법이 무엇인지를 이제야 확실히 알았습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그것은 나만의 것이 아닌 너희들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란 희망을 주셨습니다. 신심의 시작입니다. 거사님처럼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정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신심과 대분심 그리고 대의심이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것을 향해 가는 첫 걸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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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이야기-발우와 바람

 

 

진도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남풍이 발우 보자기를 날린다. 보자기는 부르르 떤다. 떨면서 맞장구 친다. 발우가 있는
그곳에는 사람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그들에게도 바다의 습기찬 바람이 감겨올 것이다. 온 몸을 맡길 것이다. 더위를 식혀줄것이다. 바람에
감응하는 것이나 발우 보자기가 떠는것이나 진배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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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이야기2-법정스님과 부도탑

 

미황사에 가서 뜻하지 않게 법정스님에 대한 일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지인 미황스님은 법정스님께서 해마다
동백곷이 피는 3월경이면 미황사에 오셔서 동백구경을 하셨다고 합니다.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에는 동백나무가 지천으로 있는데 봄기운이 완연할
때 동백꽃이 뿜어내는 향기와 색깔은 장관이라고 합니다. 스님은 오실 때 마다 이 부도탑 참배를 빠뜨리는 법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고향에
있는 당신이 ‘아껴둔 절’ 미황사에서 부도탑을 왜 참배하셨는지 추측할 따름이지만 그 추측이 맞으리란 보장도 없기에 그냥 여러분의 생각에
맡겨둘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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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이야기1-뿌리

 

지천명이 멀지 않은 나이지만 옛날의 회상은 나이와는 전연 딴판입니다. 자랐던 봉동의 대밭의 노을속에 머리에 수건을
두른 큰어머니와 한복을 입은 채 열심히 일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은 아주 크게 각인됐던 것 같습니다. 장닭을 무서워 하던 코흘리개는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며칠에 한 번은 봤던 그 정경을 오롯이 담아둔 것 같습니다. 그게 사진쟁이의 정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불교가
덧붙여져 가고 있습니다. 제가 가는 길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이뤄진게 아니라 수 십년의 세월속에 어쩌면 면면히 라고도 말할 수 있을만큼 지속된
것입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 마음이 숙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사진은 오후 참선을 끝낸 수련생들이 청소를 하며
좌복을 옮기는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이 보살님은 특이하게도 머리를 묶었는데 그모습이 마치 비녀를 꽂은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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