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태 – 남한에서 사형된 간첩, 북한에선 최고영웅

카테고리 : 북한 | 작성자 : 사막의향기
 

북한의 최고 영웅 인물 탐구 1 – 김종태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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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우표에 관심이 있어 조사해 보던중 북한의 유명인사 김책, 려운형과 어깨를 나란히 할정도로 북한의 최고 영웅중 한명인 김종태의 우표가 제 시선을 사로 잡았습니다.  과연 누구일까?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김종태를 찾아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김종태는 남한에서 간첩이란 죄명으로 1969년 사형을 당한 사람이더군요.

 그런 사람이 북한에서  최고 영웅이란 호칭을 수여받고, 얼굴이 북한 우표에까지 나왔다는 사실이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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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글은 김종태가 누구인가 알아보려고 조사한 것이지 박정희와 김대중, 전라도와 경상도 타령을 하거나 정치 싸움을 하기위한 것이 아닙니다.

댓글에 김종태에 대한 댓글은 거의 없고, 대부분 좌빨 우빨 하면서 서로 욕하는 글이 많아 이 글을 첨부 하는 바입니다.

 

좌빨이건 우빨이건, 댓글에 욕하거나 아무 내용없이 빈정대는 댓글은 전부 삭제 했고, 앞으로도 보는대로 삭제 할것입니다.

 

가능하면 댓글을 김종태에 대한 것만 써주시면 좋겠고, 김대중 혹은 박정희를 존경하신다면,   그분들의 좋은점을 위주로 써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꼭 네가티브한것을 쓰고 싶다면 그분들의 약점이나 단점은 사실만 간략하게 써주시고 욕하거나 빈정대지 말아주시길…     < 사막의 향기 4/2/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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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운형, 김책 과 함께 아래줄 가운데가 북한의 최고 영웅중 한명 - 김종태

 

** 뒷줄은 10전 최영도, 30전 홍명희, 20전 김구. (뒷줄 가운데 인물이 누군지 저도 몰라서 궁금했는데, 신승호 님께서 댓글로 알려 주셨네요… 감사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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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거물간첩 김용규는 그의 저서 “소리없는 전쟁”(증18)에서 김대중은 북한이 키운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이 책의 72쪽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1967년, 공화당과 신민당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통혁당 조직원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역전, 터미널, 사장 터 할 것 없이 찾아다니며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목포가 죽느냐 사느냐 사활이 걸려있는 선거다. 목포시를 살리고 내가 살기위해서는 공화당을 낙선시켜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고 외쳤다.”(증 18, 72쪽)   바로 김대중을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1967년 6월 4일 오후2시 목포역전 광장에서 김대중은 이렇게 유세연설을 했다.
“여러분 내 눈을 똑바로 보세요. 내 얼굴을 똑똑히 보십시오. 나는 내 장래에 대해서 큰 포부가 있습니다. 나는 돈 몇 푼 받아 가지고 내  장래를 망칠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내 꿈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더러운 돈 같은 것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안중에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둡니다 여러분!”

 

통혁당은 1969년 8월에 정식 중앙당 창당을 하게 됐고, 창당하자마자 그달 8월 24일에 비밀 조직망이 탄로나 73명이나 검거되면서 표면적으로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사형 5명, 중형 30명! 통혁당이 검거된 이후 남한의 학생 서클은 조평통(조국통일평화위원회) 산하에 있는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의 지휘를 받아왔다. 4.19를 주도한 ‘신진회‘(고건, 류근일)  세대에서 박정희를 몰아내고 김대중을 지지하자는 ‘민청학련’(이해찬, 김근태, 정동영, 손학규, 장영달, 유인태, 이철, 유흥준, 이강철, 김문수, 김동길, 류근일) 세대로 넘어가는 길목에 통혁당이 있었던 것이다.  

 

사형자는 김종태(북괴노동당 대남공작원), 김질락 (북괴노동당 대남공작원, 가명  백두오), 이문규(북괴노동당 대남공작원 가명 백두육)  이관학(괴뢰군인) 김승환(괴로군인).주동자였던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월북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통혁당 하부선이었던 이진영·오병헌은 68년 4월 22일 월북해 교육을 받다가 통혁단 사건이 노출되면서 귀환하지 않았다. 

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미화 7만 달러, 한화  3,000만 원, 일화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 집단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 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양륙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띠고 있었다.
북한은 통혁당에 대한 검거망이 좁혀오자 김종태 등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공비를 남파하기도 했다.

 

‘김종태를 구하라’는 특별지령을 받은 북한 753부대 소속 무장공작선은 68년 8월 20일 제주도에 도착했으나, 우리 군경과의 교전 끝에 14명 중 12명이 사살되고 이관학, 송승환 등 2명은 체포됐다.  이들 무장공비들은 김종태를 구출하여 월북시킨 뒤 백두일이라는 가명으로 북한정권 수립 20주년 기념일인 9.9절에 남한대표로 김일성 앞에서 연설하게 할 예정이었다.

 

김종태가 69년 7월 10일 사형집행을 당한 후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가 내려졌다.
69년 7월 12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는 김종태 추도 결의문을 채택했고, 같은 해 7월 13일부터 19일까지 1주일 동안 북한 전역에서 김종태 추도기간이 설정됐다.
 

평양대극장을 비롯해 각 시·도·직할시·區분대·區분대당위원회·공업기업소·협동농장·교육문화·보건기관에 이르기까지 대대적 추도식이 거행됐다.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증31)의 383쪽에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지도지침으로 하는 통일혁명당의 창립”이라는 제목이 있다. 이처럼 통혁당은 김일성이 노골적으로 인정한 북한의 역사인 것이다.

 

북한 내각은 김종태에게 영웅 칭호 외 북한 최고훈장인 금성메달과 국기훈장 제1급을 추서하고 “평양전기기관차공장”을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으로,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사범대학”으로 개명했다. 평양 시내에는 김종태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겨났다. 김일성은 김종태를 구출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내려 보낼 만큼 김종태를 사랑했고 그 사랑과 뜻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애석함이 여러 갈래로 표현됐다.

 

영웅칭호와 1급 훈장을 추서하고, 1주일동안의 추모기간을 정하여 북한의 모든 사업장 단위로 추도식을 거행케 하고, 북한 최고의 공장에, 최고의 대학에, 평양거리에 “김종태”라는 호칭을 부여한 것이다. 남조선에서 싸운
영웅에 최고의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적화통일의 의지를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파격적인 대우다. 적화통일에 대한 김일성의 의지와 욕구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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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혁당 사건은 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에 의해 검거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통혁당은 김종태를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하여 김질락·신영복 주도의「민족해방애국전선」과 이문규·이재학 주도의「조국해방전선」아래 다양한 서클·조직·학사주점 등을 조직, 공산혁명을 획책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통혁당이 합법·비합법, 폭력·비폭력의 배합투쟁을 통해 1970년까지 소위 「결정적 시기」를 조성, 민중봉기함으로써 공산정권 수립을 획책해왔다고 발표했다.

 
A4 용지 1000여 쪽에 달하는 통혁당 관련 판결문은 이 사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통일혁명당이 북괴의 무력남침에 대비한 사전 공작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유격전을 기도하여 무력행사를 준비하였으며, 과거의 남로당 조직을 부활시킨 조직체일 뿐만 아니라 지식층의 청년을 포섭하였으며, 잡지 반포, 당소조의 조직, 당원에의 적색사상 교양, 데모 조정, 해안선 답사, 유격전술요원 입북, 간부진의 빈번한 입북과 국가기밀 누설, 거액의 공작금 지원 등이 있은 사실…》 

 

 <『북지령받는 지하당이 분명』주범 김질락의 자인>

 통혁당의 기본성격은 중앙당인 조선로동당의 지시를 받는 지하당이었다.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월북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당원 이진영·오병헌은 68년 4월22일 월북해 교육을 받던 중 68년 6월 말 통혁당 사건이 발생하자 북한에 머물렀다.

 

통혁당 서울시당 위원장 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미화 7만 달러, 한화 3천만 원, 일화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간첩지령형식인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집단 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양륙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띄고 있었다.북한은 통혁당에 대한 검거망이 좁혀오자 김종태 등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공비를 남파하기도 했다.

 

북한 753부대 소속 무장공작선은 68년 8월20일 제주도에 도착했으나, 우리 군경과의 교전 끝에 14명 중 12명이 사살되고 이승탁, 김일룡 등 2명은 체포됐다. 이들 무장공비들은 김종태를 구출하여 월북시킨 뒤, 북한정권수립 20주년 기념일인 9·9절에 남한대표로 김일성 앞에서 연설하게 할 예정이었다.

 

 통혁당 사건의 주범인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을 당했고,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북한은 통혁당 사건 이후 연루자들에 대한 영웅화에 나섰다. 69년 1월25일 김종태와 이문규에게 사형이 확정되자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김종태와 이문규를 지지하는 평양시 군중대회가 열렸다.

 

김종태는 69년 7월10일 사형집행을 받은 후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가 내려졌다. 69년 7월12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는 「김종태 추도 결의문」을 채택했고, 같은 해 7월13일부터 19일까지 북한 전역에서 「김종태 추도기간」이 설정됐다.

 

평양대극장을 비롯해 각 시·도·직할시·구(區)분대·구(區)분대당위원회·공업기업소·협동농장·교육문화·보건기관에 이르기까지 대대적 추도식이 거행됐다.북한 내각은 김종태에게 영웅 칭호 외 북한 최고훈장인 「금성메달」과 「국기훈장제1급」 을 추서하고 평양 전기기관차 공장을 「김종태 전기기관차 공장」으로,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 사범대학」으로 개명했다. 평양 시내에는 「김종태 거리」가 생겨났다.

 

 

 

me2day

58 thoughts on “김종태 – 남한에서 사형된 간첩, 북한에선 최고영웅

  1. admin

    저널로그 운영자입니다. 이 포스트가 동아닷컴 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2. kwak2904

    중요한 역사적인 얘기를 이제하지요. 진작에 김대중을 박살내야 하는 것인데….김대중을 심판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한, 일어업협정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다. 박정희대통령때에 납치된 것을 일본이 구해준 빚을 갚기 위해 한,일어업협정으로 귀중한 자산을 넘긴 것이다. 또 하나는 비자금의 비리이다. 구제금융으로 수없는 기업들에게 정치자금비리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넘현의 정권으로 가려진 두 얼굴의 모습을 심판해야 할 것이다. 그는 민주운동가가 아니라, 자신의 영욕을 채우기 위하여 지역감정을 이용한 파렴치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 동감입니다.

  3. 익명

    헐….어쩌라구요…

  4. 익명

    박정희 친형 박상희 대구폭동의주역 남로당빨갱이 두목 폭동일으키고 경찰에사살..
    박정희 여순반란 남로당빨갱이 행동대장..반란후 빨갱이킬러 김창룡에게 붙잡혀 동료전부 나발불어 죽이고 자신은 목숨구걸..훗날 쿠데타로 나라엎고 여대생,모델,연예인들 불러다 시바스리갈에 오입잔치 벌이다 영웅 김재규장군에게 사살..

  5. 홀리송

    과거에 군사정권이 날조한 사실들이 그대로 소개되어있구료…ㅉㅉㅉㅉ

    이왕이면 멍바기 과거도 좀 캐보소…

  6. 한심한

    짜라시 동아에 듣보잡 지만원 이군

  7. 익명

    할말없다 더이상 어찌할수 없는 고인아닌가 지금껏 그가 살아온게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건가, 그런게 있다면 그걸 말해야지 이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머리속에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니 꼴통이라고 하는거다

  8. 익명

    그 당시 공부한 인텔리는 대부분 마르크스, 프로이트의 공산주의 이론에 심취되어있었고 역사발전의 한 과정에 불과해 기사거리도 안되며 박정희도 친일파고 유명인사인 이광수도 친일파고 빨갱이 오면 붉은기, 아군이 오면 태극기를 들면서 여러분을 낳았어요,

  9. 익명

    옳은말씀 알고있었지라

  10. 익명

    그러니까 대중이를 미리 사형 시켰어야되는것이지,, 그리고 김대중 ㅃ빨갱이는 국립묘지에서 임진강으로 묘지옮겨주세요

  11. 익명

    좌우지간 남한내에는 아직도 뺄개이들이 너무 많아 큰일이여!

  12. 익명

    김대중이 간첩에다 수천억 해먹었다고 백일하에 밝혀져도 전라도는 절대 믿지 않는다. 잘못함보다 무조건 감싸는게 먼저니 저들은 나라보다 당연 김대중선상님이 먼저인 사람들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장래에 큰 먹구름이 될 것이다.

  13. 익명

    60년대 사실이였네요 겁난다

  14. 익기

    박정희란 놈은 김일성 하수인격 남로당 빨갱이였던건 어떠냐 ?

  15. 익명

    이미 저세상 사람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음해 해서 뭐하려고 빨갱이 덫을 또 씨우나.!? 나라가 부도나서 IMF 구제금융 받을때도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임게내에 IMF 로부터 벗어나게한 훌륭한 대통령이다, ..욕하는넘 주둥이에 떵을 처 넣어야 정신 차릴려나…!?

  16. 2009

    김대중과 통혁당과 관련이 진실이었다면 그 서슬퍼런 정권이 통혁당원만 죽이고 김대중은 그냥 내버려 두었을까요? 관련자는 대부분 사형시킨 것인데? 아마도 통혁당이 지원했다면 김대중도 잡혀들어갔겠지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공산당이라면 이를 갈았습니까? 이런 추론적인 글로 남의 명예를 추악하게 깍아내리는 우리민족끼리의 한심한 작태에 구역질이 납니다. 그런 박정희의 형제는요? 그 집안은요? 왜 그건 안밝히죠? 목적을 가지고 음해하려는 당신은 썩은 사람입니다. 이제 그만 편히 가시지요!

  17. 익명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어떻게든 국민들을 선동하고 이간질 시키려는 천하에 나쁜인간들과 여기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사람들….

  18. 익명

    [스크랩] 현존 기록이말하는 김대중 노무현 좌익매국노이다 !!!!!!
    2005.02.03 22:53 | 기본폴더 | 실버스타

    http://kr.blog.yahoo.com/minkjung2001/137

    1. 김대중은 김정일에 충성하는 골수 좌익입니다 노무현이는 김대중 김정일을 대행하는 좌익정부

    똘만이에 불과합니다

    (1980. 5월, 김대중 자필 진술조서)

    김대중은 80년 5월 17일 체포되어 수사 받는 과정에서 5월 20일과 5월 25일 2차례에 걸쳐

    자술서를 썼습니다.

    1. 1945년 9월경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목포지부의 선전부장으로 참가했음.

    2. 1945년 9월경 결성된 목포청년동맹에 가입했음.

    3.. 1945년 말경에 좌우합작을 기치로 출범한 신민당(당수: 좌익 백남운)에 가입, 목포지부

    조직부장을 맡았음.

    4. 해방 당시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형편이었으므로, 좌익분자와

    도 같이 일하게 되고,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음.

    5. 1949년 친구의 형이 찾아와 서울 가는 여비를 부탁해 도와주었는데, 후일 그가 좌익활동

    혐의로 체포되었음.

    6. 6.25때에는 인민군을 피해 본인의 선박에 근무하는 박동련이라는 선장집에 숨어있다가 2

    일 만에 발각되어 정치보위부에 체포되었음.

    7. 정치보위부에서는 “우리 애국자(공산주의자)를 몇 명 밀고해서 죽였느냐?”, “이

    새x가 아직도 반성못했다”, “네가 해군과 거드럭거리고 매일 요정 출입할 때 우리가 너를

    얼마나 찢어 죽이고 싶었는지 아느냐”는 등 배신자라고 협박했으나 그 이상의 조사 없이 8

    월 말경 형무소로 넘어 갔음.

    8. 본인은 신병치료차 1972년 10월 11일 일본 도쿄(東京)에 갔다 거기서 유신선포를 맞이

    했음.

    9. 그 후 미.일 양국을 왕래하면서 기자회견, 강연, 양국 정치인의 접촉, 한민통의 결성 하고,

    유신반대와 민주회복 활동을 전개하다 1973년 8월 8일의 납치사건으로 귀국하게 되었음.

    10. 1973년 6월부터 해외에서의 반정부 운동을 좀더 조직적이고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미국

    에 한민통 임시 총본부를 두고 그 산하에 미국지부, 일본지부, 캐나다지부를 두고자 모색했

    으며, 총본부의장에는 본인이 앉고 미국지부 의장은 안병국 목사, 일본지부 의장에는 김재

    화, 캐나다지부 의장에는 이상 목사를 내심 지목하고 있었음.

    (1980. 7, 국가보안법 위반행위 및 내란음모죄: 사형)

    1980. 7. 31일, 검찰은 김대중의 성장 환경, 해방 후의 좌익활동, 한민통의 조직 및 좌익

    활동, 폭력시위, 광주사태 선동 및 배후조정에 관해 단죄했습니다. 김대중은 일본에서 한민

    통을 결성하여 북한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가면서 좌익활동을 했습니다. 한민통은 “한국

    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의 약자입니다. 지금의 민주당도 “국민회의”였습니다.

    “한민통”은 좌익들로 구성된 조직입니다. 육영수 여사를 저격하고 사살한 문세광이가 한민

    통 조직의 일원입니다. 그 직후에 들어왔다가 간첩으로 체포된 김정사도 한민통 조직의 일

    원입니다. 이로 인해 대법원은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규정을 했습니다”(988년 11월 18일

    국회 광주 사태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신경식 의원)

    조총련이 한민통에 매월 1000만 엔 내지 2000만 엔씩 자금을 공급했습니다, 한민통은 좌익

    인 광동희가 발행하는 “민족시보”를 기관지로 활용했습니다. 이는 공산당 선전지였습니다.

    김대중에 적용된 법조문은 1)형법 제90조 제1항, 제2항, 제 87조 2)계엄법 제15조, 제 13조,

    계엄포고령 제1조 제1항 3)국가보안법 제1조 제1호 4)반공법 제5조 제1항 5)외국환 관리법

    제35조, 제17조 제1항 6)형법 제37조, 제 38조였습니다.

    그의 좌익행각은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습니다.

    1. 8·15해방후 신민당(후에 남로당에 합병)과 민주애국청년동맹, 전국노동평의회등 “극렬

    좌익정당과 단체”에서 활동했고 “남로당” 목포시 당청년부장으로 공산계 파괴활동의 중추적

    분자였다. 이 당시 김대중은 공산독재체제를 위한 적색혁명투쟁에 광분했다.

    2. 6·25가 발발, 목포가 공산군 수중에 들어가자 목포시 인민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부역

    행위를 관리했다.

    3. 특히 남로당 섭외부장 겸 민주주의 민족전선 부위원장 유재식에게 활동자금을 제공한 죄

    로 전남도경에 검거됐다.

    4. 김대중이 의장인 국민연합이 1980. 5월 22일 개최하기로 예정한 민주화 촉진 집회에서 시

    위를 선동하여 폭력으로 국가기관을 장악하려 했다. (핵심죄목 1: 내란음모죄: 15년)

    5. 김대중은 1972년 도일하여 정치적 망명을 가장하여 한국을 비난,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

    했고, “한민통”을 결성하여 반정부 교포들을 규합, 한국정부를 전복시키려했다. 국가보안법

    제1조 제1호 위반에 해당하는 반국가단체 구성죄를 저지른 것이다(사형).

    6, 동년 8월 귀국, 반국가단체인 한민통 일본본부 구성원들과 통신하면서 10·26 사태로 인

    한 정국불안을 틈타 민주회복을 구실로 반정부의식이 강한 복학생 및 재야인사들에게 활동

    비를 뿌리며 반정부 조직을 강화했다.

    7. 박수부대까지 동원, 강연장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강연 모습과 내용을 담은 비디오 테이

    프, 녹음 테이프, 책자까지 제작하여 학원가 및 추종자들에게 배포, 학생 및 일반 국민들에

    게 반정부의식을 고취하다가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에게 5백만원을 주어 광주사태를 유발시

    켰다.

    (핵심죄목 2: 반국가단체 구성죄, 국가보안법 제1조제1호: 1980년 9월 11일 사형구형)

    8. 1981년 1월 23일 대법원이 김대중의 상고를 기각하여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바로 이날

    전두환은 김대중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으며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3월 3일 징

    역 20년형으로 또 감형했습니다

    (1988년 11월 30일 국회청문회에서 밝혀진 사실)

    1. “해방 후 1946년까지는 좌익활동을 했고 1947년부터는 완전히 손을 끊었다”(김대중의

    말).

    2. 1945년 8월 25일 좌익단체인 건국준비위원회 목포시지부에 가입하여 활동한 사실이 있다

    (김대중 시인한 사실이라고 검찰이 증언)

    3. 목포청년동맹에 가입하여 목포시지부 청년들이 남교동 파출소를 습격한 배후 조종의 혐

    의로 구속되었다(김대중 시인한 사실이라고 검찰이 증언)

    4. 당시 좌익정당인 신민당(당수 김두봉, 북한 부주석)에 입당하여 조직부장으로 활동한 사

    실이 있다(김대중 시인한 사실이라고 검찰이 증언)

    5. 1950년 9월 7일 “간첩” 장금성이 남로당 전남 목포시 당위원장 앞으로 제출한 당원등록

    청원서에 1946년 6월 16일 김대중씨의 활약상이 나열돼 있다. 여기에는 “민주청년동맹 목포

    시지부위원회 간부 김대중이 적극 찬동하고 있다”, “민청 간부 김대중에서 교양을 받았다

    “는 대목이 있다(김대중 시인한 사실이라고 검찰이 증언)

    (북에서 받은 돈)

    1, 일본에 있는 동안 간헐적으로 좌익인물들로부터 산만하게 수십-수백만엥씩 받았다는 수

    사기록은 있으나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당사자간에 주고받는 돈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2. 1997년, 평양에서 김병식 부주석이 김대중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기에는 김대중이

    1971년 20만달러를 김병식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확실히 기록돼 있습니다.

    3. 1999년 김정일 발언록에는 “DJ가 김일성에게 많은 빚을 지고 총애를 받았다” 요지의 글

    이 있습니다(일본 문예춘추 12월호).

    4. 일반에게 노출된 것은 언제나 빙산의 일각입니다. 이것 말고도 김대중은 61억엔을 받았다

    는 설을 포함해 많은 말들이 돌고 있지만 아직은 이를 수사할 조직이 없습니다. 이는 앞으

    로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 김대중이 상식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북한에 퍼다주는 것은

    이 빚을 10배 이상으로 갚으라는 김정일의 요구라고들 하지만 이 역시 심증만 가지 확증은

    없습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통령에 대한 의혹은 그 개연성이 있는 한 공론화돼야 한다는

    것이 2002년도의 대법원 판결입니다. 첫째, 김대중은 일본에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많은

    자금도 사용했을 것입니다. 많은 신세도 졌을 것입니다. 그 중에 북한 돈이 없었다고는 누구

    도 말할 수 없습니다. 둘째, 그가 북한으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편지가 있습니다. 그

    당시의 20만 달러라면 지금의 수백억원에 해당합니다.

    셋째, 김일성으로부터 많은 빚을 졌고 총애를 받았다는 사실이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정

    일로부터 노출됐습니다. 넷째, 그는 쫓기는 사람처럼 북한에 퍼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금강

    산 관광객이 가거나 안 가거니 무조건 1년에 50만 명이 간 것으로 하고 1인당 300달러씩 정

    산해주는 것은 이에 대한 단적인 증거입니다. 몰래 준 돈도 수십억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미

    국이 공식적으로 밝혀 준 것은 아직 4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이 네 가지는 그를 의심할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을 제공합니다.

    김일성과 좌익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자금을 받았는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

    다. 문제는 그가 좌익으로 정치 일생을 출발했고, 좌익들과 조직을 만들었으며, 좌익들과 꾸

    준히 연대해왔고, 지금도 좌익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적장인 김정일 찬양)

    1. “김정일은 식견 있고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가진 지도자”라고 평가했습니다. (2000년)

    1) “김정일 총비서는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 등을 상당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

    다”. (2000년 2월9일 도쿄방송)

    2) “김정일 총비서는 실용주의자라고 생각한다”. (2000. 2.28. 독일 슈피겔지)

    2. 2000년, 제3차 ASSEM회의를 김정일 외교장으로 활용했습니다. 대통령의 직분을 망각하

    고 김정일 영업부장을 자처했습니다. 그는 유럽국가들을 상대로 북한과 수교하라고 종용했

    습니다.

    3. 많은 돈을 뿌리면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갔으면 로버트 김을 석방해달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김정일 식견있는 지도자입니다. 국제금융을 동원하여 북한을 도와줍시

    다”하다가 THIS MAN의 경멸적인 호칭을 얻고 힘이 빠져 돌아왔습니다.

    (적장과의 내통행위)

    1. 김대중은 김정일로부터 동지적 사랑도 받고 깊은 은혜도 입었다 합니다.

    일본잡지 문예춘추 2000년 12월호에 실린 김정일의 육성녹음입니다. 중요한 것만 발췌합니

    다.

    “지금 정권을 쥐고있는 김대중은 야당 시절을 아득히 먼 옛날처럼 잊어버리고 미제의 등에

    업혀 반사회주의 책동에 음양으로 혈안이 돼있다”.

    “김일성 수령님은 김대중이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애국주의자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

    씀에 그리고 수령님의 사랑과 배려, 동지적 신뢰에 대해 오늘의 김대중은 배신으로 대답하

    고 있다”.

    “김대중은 야당 시절 민주화를 외치며 우리들에게 접근했으면서도 신뢰와 의리를 버리고 반

    사회주의·반통일 책동에 광분하고 있다”.

    “김대중을 두목으로 하는 남조선 당국자는 동포와 민족을 위한다는 구실로 ‘태양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나 사실은 우리 공화국을 혼란시키려는 기만정책에 불과하다”(1999.2월).

    “그도 한때는 민족자주와 미군철수를 주장, 민족주의자임을 자칭했으나 민족의 존엄과 양심

    을 저버리고 악랄한 친미·친일의 사대매국 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다”(1999.11월).

    2. 김정일의 추가적인 폭로가 무서워서인지 김대중은 200.3월에 베를린 선언을 기획하여 김

    정일에 접선해 줄 것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드디어 2000년 6.13 및 6.15일 90분

    간의 단 둘이 차 속에서 밀담을 나누었습니다. 일생동안 색깔로 의심받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대북 관계에서 만이라도 투명해야 했습니다. 북한에 가서 김정일과 단 둘이 갈 때

    에 40분 올 때에 50분간 일행을 이탈해 따로 밀담을 갖는 것은 의심받아야 마땅합니다. 남

    북한 관계의 특성과 그의 색깔론에 비추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3. 국민과 국회의 동의도 없이 김정일과 연방제 통일안에 합의 서명했습니다. 초법행위요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3. “김정일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쟁은 없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이었습니다.

    4. 북한의 사상 최대의 전력증강과 훈련 사실을 국민에게 속이려 했습니다. “2000년의 전력

    증강은 과거 5년 치에 해당한다”, “지난해의 훈련은 10년이래 최대 규모였다”는 연합사령관

    의 보고내용은 쉬쉬하고 감췄습니다. 한국군의 군사훈련을 모두 축소 생략했습니다. 2001년

    에 대대적으로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준비한 6.25행사도 못하게 했습니다.

    5. 북한의 적화통일 행사에 많은 이적단체들을 여러 차례 보내 김정일에 충성을 보였고, 저

    들의 적화통일에 동조한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6. 2001. 2월, 미국방문 전, DJ는 평화선언을 획책했다가 부시에게 저지당했습니다. 1973년

    월맹의 레둑토와 키신저가 파리에서 평화협정을 맞고 노벨상을 탔습니다. 2년후인 1975년

    월맹은 순식간에 월남을 삼켜버렸습니다. 800 – 1,200 만이 재교육 캠프에서 이슬로 사라졌

    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이슬”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7. 지난 2월 김정일 방문이 임박하다며 갑자기 중령급 이상 20%를 삭감시키라고 했습니다.

    반 DJ세력을 제거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반공전선 와해)

    1. 국가통수권자로 전쟁은 없다고 선포한 것은 군.민의 안보정신을 허무는 이적행위였습니

    다.

    2. 적을 의심해야할 위치에 있는 군 최고 통수권자가 적을 의심하지 않으면 내통자로 의심

    받아야 합니다.

    3. 북한은 주적이 아니라 감싸야 할 민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4. 스스로 주한미군 지위변경, 보안법 개정 또는 철폐를 주장하여 지하에서 활동하던 좌익들

    에게 면죄부를 주어 공공연히 활동하도록 격려했습니다.

    5. 임동원, 한완상, 이태복 등을 포함한 좌익용공 인사들을 대거 기용하고 있습니다.

    6. 46개 언론사 사장단을 북에 보내 김정일의 술자리 매너에 홀리도록 하고 그 언론사 사장

    들이 국내에서 김정일 찬양론을 펴게 했습니다.

    7. 국정원으로하여금 사회단체를 초청해 김정일 초호화판 생일잔치 비디오를 보여주고 김정

    일이 식견있는 지도자이며 매우 합리적인 지도자라고 선전하게 했습니다.

    8. 국정원으로 하여금 언론 및 사회단체 간부를 데려다가 전쟁은 없다고 교육했습니다. “110

    만 대군은 남침용이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서 붙들어 둔 것이다”. “서부전선에 콘크리트 장

    애물과 지뢰를 설치한 것은 옛날 장군이 바보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와 철로는 방어하는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는 식의 교육을 했습니다. 모두를 뒤집어서 교육했습니다. 많은 언론

    사 간부들이 교육내용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9. 초등학교 교과서에 김정일 사진을 실었습니다. 학생의대부분, 초등학생의 90% 이상이 김

    정일을 멋있는 장군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10. 전교조의 좌익 용공 교육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남침 통로 열기)

    1. 2000년12월까지 지뢰를 제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열흘 묵던 나그네 하루가 급한 식으로

    제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그럴만한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 타당성 분석과정 없이 경의선을 환상의 실크로드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남침용으로 사용

    될 수 있는 남측 길만 열어주었습니다. 북으로 가는 통로는 지금도 막혀 있습니다.

    3. 2001.6월, 북한에 제주해협 통항권을 주자고 있고, NLL도 개방하며, NLL일부를 북한에

    떼어내 줄 것을 시사했습니다.

    4. 연천의 제5땅굴을 조사해보지도 않고 “천연동굴”이라고 못박았습니다.

    (한국군의 손발 묶기)

    1. 현장지휘관에게 부여된 “UNC 자동교전규칙”을 박탈하여 “먼저 쏘지 마라”, “청와대에 먼

    저 보고하라”며 군의 손발을 묶었습니다.

    (적장에 군자금 대주기)

    1. 러시아에서 받은 돈 14억7천만 달러를 안 받을 테니 그 대신 러시아가 북한에서 받을 돈

    50억 달러를 받지 말라는 거래를 했습니다.

    2. 알게 준 돈은 5조 규모입니다.

    3. 모르게 준 돈은 누구도 모릅니다. 단지 미국이 그 일부를 폭로해 주었습니다. 2000년도

    한 해에 4억 달러를 김정일에게 비밀로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미의회 조사국(CRS)은 2002.

    2. 25, 의회에 한.미 관계 보고서’에서 미CIA와 주한미군 사령부가 파악하고 있는 내용을

    밝혔습니다. “정부는 1999년과 2000년 어느 날까지 현대를 통해 “비밀리”에 4억달러를 북한

    에 주었다. 관광대금 4억 달러도 주었다. 총 8억 달러가 갔다. 그 중 4억 달러를 무기 구입

    에 사용했다”는 요지였습니다. CIA는 2001년1월 이 내용을 한국정부에 경고했지만 한국정부

    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러주기를 강행했다 합니다. 여기에 더해 김대중 정부는 미국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2002. 3. 27 일간지들)

    4. 업체들에게 북한 투자 및 지원을 강요하고, 대북지원에 나서는 업체에 세무조사를 면제해

    주었습니다.

    5. 2년전에 환했던 평양시내가 지금은 깜깜하답니다. 전기가 무기제조 및 땅굴 굴착에 사용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대중은 북한에 경수로 용량과 맞먹는 50만 KW의 전기를 공급

    하려다 미국에 의해 제지당했습니다.

    6.. 금강산 사업으로 퍼준 돈, 비밀리에 상납한 돈, 앞으로 임동원이 북한에 약속할 돈 이외

    에도 정부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북에 지원한 돈은 쌀, 비료, 투자비 등이 2조 4천억입니다.

    필자의 조사로는 현 정부에 들어 이제까지 북한에 퍼 준 돈이 다음과 같이 집계됐습니다.

    1) 2000.9.28: 60만 톤(3,120억원)

    2) 6회에 걸쳐 104만톤(4,660억원)

    3) 정부가 사용한 남북 협력기금: 1조864억원

    4) 1999년 한해 동안 대기업들이 부담한 준조세: 업체 당 평균 745억 원.

    이는 기업들이 부담한 국세의 1.2배이며 지방세의 20배 규모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5) 99년10월6일 현대가 20인치 칼라 TV 3만대를 북송(445만 달러: 58억원)

    6) 99년8월16일 대한제당이 연간 2만톤(60만 달러)씩 북한에 제공(31억원)

    7) 99년11월27일 삼성이 172만 달러를 투자(22억원)

    8) 2000년 1월 25일 현대아산이 190만 달러 상당의 기와공장 설비 반출(25억원)

    9) 2000년2월 8,863평 짜리 평양실내 체육관 준공(450억원)

    10) 평화자동차 공장에 금강산 국제그룹이 3억 달러 투입(4,000억원)

    11) 2000년 3월7일 삼성전자가 평양체육관용 전광판 시스템에 400만 달러를 투자(52억원).

    12)2000년3월22일 삼성이 조선컴퓨터 소프트웨어 지원에 73만 달러를 부담(10억원)

    13) 내복 1,000만벌(600억원)

    14) 2000년 3월6일 축협에서 계란 1천만 개, 새마을운동에서 곡물 1,660톤을 보냈다.

    15) 2000년 4.12일 평화의 숲에서 묘목 20만 그루.

    총계 2조3,892억 원이다.

    7. 앞으로 더 가는 돈:

    1) 5월 중순부터 비무장지대(DMZ) 내 경의선 공사를 시작해 10월 이전에 연결을 완료하

    고, 5월 중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한 임시도로 연결 공사에 착수한다 합니다. 군사분계선-개

    성 12㎞ 구간 공사에 필요한 레일, 침목 등 기자재를 북측에 지원하겠다 합니다(2002,4.23

    한국일보).

    2) 군사분계선에서 강릉을 잇는 동해북부선 남쪽 구간(127km) 공사를 올해 안에 시작해

    2009 년께 완공한다 합니다(한겨레, 문화일보 2002. 4. 22).

    3) 4월말에 비료 20만 톤을 보낸다 합니다(한겨레 2002.04.12)

    4) 6월부터 3개월에 걸쳐 북에 쌀 50만톤을 수송한다 합니다(세계일보 2002.4.24).

    (반공 역사 말살하기)

    1. 2000년10월1일, 이어서 6.25를 “실패한 통일 노력”으로 정의했습니다.

    2. 어이없게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베트남 대통령에게 한국군 파병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월남전을 민족해방전쟁으로 본 것입니다. 2001. 8. 23일, DJ가 천득렁 베트남 주석 환영만찬

    에서 “우리가 불행한 베트남전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 고통을 준 점을 미

    안하게 생각한다”며 “사과”를 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망발이 아니라 한겨레 21의 “아!

    몸서리 처지는 주월한국군의 양민학살”론과 맥을 같이 하는 색깔 있는 발언이었습니다. 한

    겨레 21. 강정구, 한홍구 같은 사람들은 베트남전을 민족해방전쟁으로 보고, 월맹군을 민족

    해방군, 미군/한국군을 반역군으로 몰아 부치고 있습니다. 영문으로 번역하여 세계 각국에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 여기에 김대중이 가세한 것입니다.

    3. 여수-순천, 4.3 반란사건을 일으켜 방화 살인한 좌익들을 통일의 역군으로 둔갑시켰습니

    다.

    4. 13년전, 7명의 경관을 죽이고 11명의 전경에게 주상을 입힌 동의대 좌익 데모학생을 민주

    화투사로 명예회복시켰습니다.

    5. 13년전, 과격한 불법노동운동으로 실형을 받은 전교조 교사 1,139명에을 민주화투사로 둔

    갑시켰습니다.

    6. 좌익 대모를 민주화투사로 둔갑시켜 최고 2억까지 보상합니다. 반면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가 싸운 고엽제 환자들과 전상자들은 약값조차 제대로 대주지 않고 있습니다.

    6. 법원이 반국가단체로 판결한 한총련에까지 명예회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7. 과거의 사법부 재판의 권위를 몇 명의 수상한 무명인물들이 “민주화명예회복 및 보상위

    원회”를 만들어 짓밟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법부가 현재의 “민간심의위원회”보다 못한 것입

    니다. 과거의 정통성을 모조리 부정하고 공산주의 통일정권을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9. 애써 잡은 63명 간첩은 영웅 취급해서 보내주고, 국군포로, 강제 납북자는 쥐어박고 입을

    막습니다.

    10. KAL기 폭파범 김현희는 극진히 대접하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115명의 유족은 홀대하

    고 학대합니다.

    11. 국군 포로를 이산가족으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12. 좌경 데모는 보호하고, 보수 데모는 차단합니다.

    13. 국정원, 기무사, 경찰의 간첩 잡는 활동을 은밀히 차단합니다.

    (언론의 입막기)

    1. 46개 언론사들을 북한에 보내 북한의 명예를 손상하는 글을 쓰지 않기로 합의케 했습니

    2. 언론사들에게 “햇볕정책”에 악영향을 주는 글을 쓰지 못하도록 합의케 했습니다.

    3. 언론사 죽이기를 자행했습니다. 특히 김정일이 가장 싫어하는 조선과 동아를 죽이려 했습

    니다. 국세청 800명 인력의 半인 400명을 풀어 60-90일간 세무조사를 폈습니다. 서울방송에

    51명, 조선일보에 50명, 동아일보에 35명, 중앙일보에 24명이었습니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

    회도 가담했습니다. 한마디로 쑥대밭을 만들어 언론을 잠재우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국가가

    도둑을 맞아도 짖는 개가 한 마리도 없게 만들려 한 것입니다.

    (기막힌 거짓말)

    1)”이 김대중은 돈을 돌보듯 합니다”(1967)

    “여러분 내 눈을 똑바로 보세요. 내 얼굴을 똑똑히 보십시오. 나는 내 장래에 대해서 큰 포

    부가 있습니다. 나는 돈 몇 푼 받아 가지고 내 장래를 망칠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내 꿈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더러운 돈 같은 것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안중에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둡니다”

    (1967년 6월 4일 오후 2시 목포역전 광장에서 행한 DJ의 국회의원 선거 유세).

    2) “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 가족은 무재산 가족이 될 것입니다”(1997)

    “저희는 이번에도 저희자식들 재산까지 다 공개했는데 앞으로 대통령이 되면 자식뿐 아니

    라형제의 재산까지도 공개를 하고 이렇게 해서 정말 무소유가 되겠습니다. 정말로 내 자식

    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가족은 무재산 가족이 될 것입니다. 돈은 먹고 살 만큼

    만 있으면 됩니다. 이번에 영등포의 땅과 경기도 수원의 땅은 장애인을 위해 내놓았고요 저

    희 집 현재 살고 있는 것도 가족회의에서 이미 결정이 났습니다”.

    (1997. 10. 8일 관훈클럽)

    3) “국민 여러분, 이 김대중은 이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

    가족들이 모두 도둑질을 했습니다.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2002.6)

    “저는 지금 고개를 들 수 없는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국민 여러

    분의 성원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저는 자식들이나 주변의 일로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

    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드렸으나 결국 저는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 했습

    니다”. (2002.6.21 일간지 일동)

    4) 2002.07.10, “국민 여러분께 한없는 죄송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2002.7)

    김대중씨가 박선숙 대변인을 통해 차남 홍업씨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알선수재, 조세

    포탈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고 홍업씨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가 발

    표된데 대해 한 말입니다.

    검찰은 홍업씨가 기업들로부터 48억을 받았다고 공소했습니다. 현대에서 16억, 삼성에서도

    5억을 받았고, 이 2개 업체들로부터 매달 5천만원을 받았다 합니다. 임동원한테서도 때때로

    2,500만원, 신건 한테서도 1,000만원씩의 상납을 받았다 합니다(2002.7.11 조선, 중앙).

    홍업씨는 10억원을 아파트 베란다 창고 안에 숨겨 놓고 그 앞에 가구를 쌓아 놓고 지냈다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닮아 “부정한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왔습

    니다.

    이런 사실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홍업이가 검찰에 숨긴 사실, 검찰이 또 점수 따려고 감싸

    준 사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더구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나서서 송정호 법무장관에게 수

    사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넣었는데도 이 정도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6.11일 오전, 국무회의

    가 끝난 직후 이한동 총리가 법무장관에게 했다는 말을 소개합니다.

    “어른이 매우 섭섭해하십니다. 어떻게 한 집안에서 두 자식을 구속할 수 있느냐고 하시더

    군요. 불구속 수사는 도저히 안 되는 건가요?”

    5) “이 김대중은 일생동안 거짓말이라고는 해 본적 없습니다”(1997).

    “저는 일생에 거짓말한 일이 없습니다.(청중들 폭소) 저는 거짓말한 일이 없어요. 이것은

    약속을 못 지킨 것이지 거짓말 한 것은 아닙니다. 거짓말한 것하고 약속했다가 못 지킨 것

    하고는 다릅니다”.

    (1997. 10. 8일 관훈클럽)

    6) “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가 국정을 농단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

    니다”(1997).

    “하나 첨부하면 제가 집권하게 되면 청와대 비서실을 대폭 축소해서 그것을 문자 그대로 비

    서실로 만들고 모든 국정은 국무위원들과 협의해서 하겠습니다. 지금 보면 이 나라에서는

    청와대 비서관 회의가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국무회의라는 것은 있으나마나 해요. 청와대에

    서 국민이나 누구에 대해서도 책임을 안지는 청와대 수석 비서관이 장관에게 전화 한 통 하

    면 쩔쩔매고 그대로 따라가야 해요. 이건 이 나라 헌법 질서가 잘못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점도 앞으로 시정할 것이기 때문에 비서들 자신들이 정치를 농단하는 일은 저희 집권

    하에서는 없을 것이다, 이것도 말씀드리겠습니다”.

    (1997. 10. 8일 관훈클럽)

    7) “이 김대중이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 상금을 국가에 내놓겠습니다”(2000),

    “노벨평화상은 한국국민 모두의 업적으로 받은 상이니 만큼 저는 상금(11억2,222만원)을

    노벨상 취지에 맞게 사용하겠습니다”.

    (중앙일보 2000.12.11)

    8) “노벨평화상 상금은 이 김대중의 것입니다”(2001)

    “노벨 평화상 상금은 아태재단에 넣어두었다”.

    (2001. 12.10 조선일보).

    9) “노벨평화상금을 김정일에 바치려 합니다”(2002).

    “노벨상금과 그 이자를 평양과학기술대학에 기탁할 것이다. 그들은 6.15 기념관을 지을 것

    이다”.

    (2002.5.20 중알일보, 세계일보, 신동아 2002.6월호)

    10) “김정일은 나쁜 놈입니다”(1997).

    “저는 김정일을 대단히 위험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호전적인 사

    람, 어렸을 때부터 안하무인으로 컸고 71년부터 막강한 권력을 장악해 왔고 그래서 대단히

    위험한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런 위험한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 정말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저는 김정일에 대해서 조금도 방심하

    지 않습니다”.

    (1997.10.8 관훈클럽)

    11) “김정일은 식견 있고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가진 지도자입니다”(2000년)

    “김정일 총비서는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 등을 상당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

    다”.

    (2000년 2월9일 도쿄방송)

    “김정일 총비서는 실용주의자라고 생각한다”.

    (2000. 2.28. 독일 슈피겔지)

    12) “김정일과 담판하여 노동당 규약을 개정시키겠습니다”(1997).

    “저는 집권하면 북한에 대해서 분명히 따질 것 따지고 짚을 것 짚고 그래가지고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남북정상회담을 하겠습니다. 그 가장 전제조건이 노동당 규약을 개정해서 그러한

    자세를 우리가 분명히 믿을 수 있게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노동당 규약은

    북한에 있어서 헌법 이상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1997. 10. 8일 관훈클럽)

    13) “김정일에 군자금을 대주었습니다”(2002).

    그는 김정일에 알게 모르게 현금과 쌀로 군자금을 대주었습니다. 5조원 규모입니다. 그는 일

    본에 있을 때부터 김일성으로부터 많은 정치자금을 받았습니다. 김정일이 입을 열면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김정일은 그가 물러나기 전에 그를 최대한으로 이용할 것입니

    다. 노벨상을 받으면서도 그는 김정일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김정일과 함께 상을 받지 못해

    죄를 지은 기분이리고 말했습니다.

    14) 1980.3.26일 김대중의 YWCA 초청 연설문입니다. 그의 사기성이 잘 나타나

    있는 연설문입니다.

    나는 내 일생의 교훈으로써,「어떤 경우에도 국민을 배반하지 말고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

    도 국민의 편에 서라」는 것, 이것이 내 인생과 정치의 신조입니다.

    우리 집 가훈이 세 가지 있는데 그 중 첫째가「하느님과 국민에게 충실하라」입니다. 둘째

    는「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야 된다」이며, 셋째는「절대로 부자가 되지 마라」는 것입

    니다(박수, 옳소! 환호).

    나는 내 자식들에게 말하기를「돈과 하느님은 같이 섬길 수가 없고, 돈과 양심을 같이 섬

    길 수가 없다. 돈은 먹고사는 데 부족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 이상의 부를 가지게 되면

    부의 노예가 되고,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고, 국민으로부터 격리되고, 그리고 교만해지고 타락

    한다. 따라서 만일 너희들이 경제계에 나가서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는 등등 경영자가 되는

    것은 좋지만, 만일 부자가 되면 아버지와 너희들과는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을 나는 얘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국민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을 정치인으로서의 최대의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

    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둘째, 셋째입니다. 나

    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내 양심에 충실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

    다. 내 양심에 충실하다가 기회가 있어서 대통령을 맡게 되면 봉사할 것입니다(박수, 환호).

    그러나 국민과 양심을 버리고「무슨 수단을 쓰든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 이것은 내가

    죽으면 죽었지 추구할 수 없는 길입니다.(옳소! 박수)

    여러분에게 솔직히 얘기한다면, 나는 다음 정권, 그렇게 대단한 매력이 없습니다. 왜? 첫째,

    경제만 보더라도 박정희씨가 아주 망쳐 놓았습니다(박수. 옳소! 환호).

    이것을 맡아 놓고 수습한다는 것은 마치 다 파먹은 김칫 독에다 머리를 집어넣는 것과 마

    찬가지입니다(옳소! 박수).

    4년 동안 뒷치닥거리나 하고 나면, 그것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뒷치닥거리를 하고

    나면 4년은 끝나는 것입니다(웃음, 박수).

    남북문제, 노동문제, 청년·학생문제, 군대를 통솔하는 문제 등등 다음 대통령의 짐이 여간

    무겁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내 개인적인 생각을 하면,「누가 한 4년쯤 해서 실컷 고생하고

    난 뒤 그때쯤 내가 맡는 게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박수, 환호)

    여러분! 나는 아직도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여기서 공개할 수 없는, 그 동안 많은 치욕과 고

    통과 괴로움을 당했지만 그러나 나는 믿습니다. 나를 바닷 속에 상어밥이 되게 던지려고 할

    때도,「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국민은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으며, 내가 법정에

    섰을 때도 판사를 향해, 검사를 향해,『당신들이 나를 지금 재판하지만 역사와 국민은 내

    편』이라는 것을 얘기했습니다(옳소! 박수).

    누구에게 천대를 받건, 누구에게 멸시를 받건, 누구에게 박해를 받건, 아니 오늘 생명을 잃

    건, 내 국민만 나를 버리지 않고, 내 국민만 나와 같이 있고, 내가 내 국민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한은, 김대중에겐 불행이 없고 김대중에겐 슬픔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

    립니다(박수, 옳소!)

    따라서, 나는 지금 게딱지같은 국민주택에 살고 있지만(웃음), 국민을 배반하면서 부를 얻

    는 것보다는 하느님과 우리 국민을 택했습니다. 국민을 배반하면서 안전을 택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이 신념은 내가 죽는 그 날까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박수).

    여러분! 나는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입니다. 예수는 내 스승입니다. 나는 하

    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예수는 나의 형님입니다. 나는 그의 제자이기 때문에 스승의 말씀

    을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 나의 스승 예수는 우리에게 이와 같이 우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자유와 권

    리와 행복을 위해 싸운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의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

    씀드립니다(박수).

    북한은 한쪽으로는 대화를 하면서도 간첩선을 내려보냅니다. 폭력과 무력을 통해서 남한을

    뒤집어엎겠다는 소위「남조선 해방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국가의 안보와 반공

    의 태세를 조금도 늦출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강조합니다(박수, 옳소!).

    나는 반공주의자입니다. 그러나 국민에게 넘치는 자유와 정의와 안정을 줌으로써 국민들이

    이 땅에 정을 붙이고, 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이 나라를 지키

    려고 하는, 공산당 침투의 여지가 없는 반공과 안보를 주장하는 것이 나의 정책이요 박정희

    씨와 다른 점인 것입니다(박수).

    국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이 있는 곳에, 김대중이가 있습니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데 김대

    중이는 있습니다. 김대중이는 천 번 죽어도 국민을 떠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필요로

    하면, 우리 민족의 혼이 내게 명령하면, 나는 다시 열 번 납치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백 번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천 번 연금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여러분에게 봉사할 것

    을 다짐합니다!(옳소! 환호, 박수)

    (연설 끝)

    • 사막의향기

      너무 길어서 댓글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다음부터는 좀 짧게… 읽을 만한 분량만 올려주시길…

  19. bk16660

    노판석, 권오석 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 좀 알려주시요? 누구 애비고 6.25떄 어떤 짓을 했으며 어쩌다 눈이 멀어서 못된 짓하다 옥살이 하다 뒈졌는지… 왜. 전라도 살다
    경상도 진영따으로 숨어 들어가 호적 바꾸고 살게 되었는지 확실하게 알려주시요..

  20. 익명

    떼중이때 대한해협 상당수를 일본에 바쳤다 당시 동해어선들 평상시와 가치 조업하다 일본에 연행.. 국내언론들은 꿀먹은 벙어리..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예전에 빚진 은혜의 보답으로..북에도..)

  21. 익명

    [스크랩] 현존 기록이말하는 김대중 노무현 좌익매국노이다 !!!!!!
    2005.02.03 22:53 | 기본폴더 | 실버스타

    http://kr.blog.yahoo.com/minkjung2001/137

    1. 김대중은 김정일에 충성하는 골수 좌익입니다 노무현이는 김대중 김정일을 대행하는 좌익정부

    똘만이에 불과합니다

    (1980. 5월, 김대중 자필 진술조서)

    김대중은 80년 5월 17일 체포되어 수사 받는 과정에서 5월 20일과 5월 25일 2차례에 걸쳐

    자술서를 썼습니다.

    1. 1945년 9월경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목포지부의 선전부장으로 참가했음.

    2. 1945년 9월경 결성된 목포청년동맹에 가입했음.

    3.. 1945년 말경에 좌우합작을 기치로 출범한 신민당(당수: 좌익 백남운)에 가입, 목포지부

    조직부장을 맡았음.

  22. 익명

    너그피는 파란피가 흐르냐?

  23. 익명

    박정희잡안이오리지날빨갱이집안이여만천하가아는사실이다

    • 사막의향기

      박정희도 빨갱이 였던것 맞지요…
      공산당으로 몰려 죽음에 문턱에 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니 말입니다.
      .
      싱가폴의 리콴유 역시 초기엔 빨갱이였습니다…
      빨갱이와 손잡고 정치를 했었지요.

      그러나 위의 두사람은 공산당의 허구를 빨리 깨닫고 돌아 섰다는데 그 차이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공산당을 잘알았기에, 공산주의에 대응해 이길수 있었구요…

      사실 공산주의 처럼 멋진 사상도 또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 한것이 있어 실패했지요… 바로 인간의 탐욕

      • 나무신

        그 당시 한국에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자체가 없었고, 조선왕조를 끝내고 마르크스,레닌으로 연결된 공산주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모두 공산주의가 말이 그럴듯하니까 동조했다가, 동물농장이 되는 걸 보고 발을 뺀 것인데… 실정을 생각안하고 악의적인 편가르기 만합니다.

  24. 익명

    KTX 대구 부산간 부터 철로 연장 해라.. 50년된 대구 부산간 편도 2차 경부고속도로 시내도로인지.. 확장 부터 하고.. 무안 국제 공항은 언제 지었다냐..? 나만 몰랐나.. 현재 볍씨 말리고 있다는데.. 라도에 도로들.. 대체로 적자라.. 경부 고속도로 수입이 들어가는 걸로 아는데.. 명절용 서해안 고속도로.. 서울서 화성까지를 제외 하면 평상시에는 파리 날린다.. 도로 유지 보수비는 물론 경부고속도로나 중부 고속도로비 통행료 인상에서 나오겠지.. 그리고 전남의 우주 로켓발사대에선 요즘.. 애들 폭죽 쏘아 올린다며..ㅋㅋ~

  25. 익명

    김대중전대통령은 평생정치만 해온분이다 그의업적은 나름인정해야한다 그러나 그업적이과연 이나라와 민주화를위해서 이룩한것인지는그의과거행적으로의심이아주많이간다순수함을잃은지오래다또그가이룬업적이순수하지못함으로인해이나라가지역갈등의골이깊다그리고평생정치만하신분이그가족과그를포함한재산이어찌그렇게도많은가???골수대중맨들의해명좀바란다

  26. 지금 쥐ㅅㄲ가 갉아먹는 대한민국이나 챙겨라

    북한 꼴통들과 연결시켜서 흠집내려는 작당 그만두고 좀 현실적으로 살아라 쥐ㅅㄲ들아

  27. 거시기여

    아무튼 어느잡놈이고 나쁜놈은 나뿐놈이다 ~씨버얼~때중이 사실 구린데가 많치만 이제와서 구질구질하게 밝히고 싶지 않을 뿐이것지~

  28. 역시나

    피는 못 속이는구나…..

  29. 익명

    김대중이를 빨갱이라고 하면…. 그를 지지한 서방세계는 무엇인가? 모두 빨갱이 아닌가? 한심한 이런 더러운 글은 이제는 없어졌으면 한다. 추잡하다.

  30. 익명

    박정희는 왜? 북한에서 죽일라 했나? 빨강이 파래지고, 쩐을 안 주어서?

  31. 익명

    선거가 다가오는 모양이구나.이젠 이런 빨갱이 타령 지겹지도 않냐?국민을 도데체 어떻게 보고 아직도 이런 수법을 쓰고있냐.박정희때 간첩사건 전부 조작으로 들어나서 국가에서 배상까지 하는 이때 죽은 사람 없는형님까지 만들어내는구나.대중이는 사기꾼 맹바기보다는 백배났다

    • 사막의향기

      북한에서 발행한 북한 최고영웅 시리즈 우표에 김종태의 얼굴이 있다는것은,
      “박정희때 빨갱이 간첩은 전부 조작” 이란 주장에 대한 반대 증거물이 될수 있을듯합니다.

      김일성이 아무 연고도 없는 김종태의 죽음을 그렇게 애도 하고 북한의 영웅으로 만들었을까요?
      북한에서 만든 우표, 북한의 도로 이름…
      이런것도 다 거짓말이라고 주장 하시겠습니까?

  32. 전라인민공화국

    더러운 협잡꾼 빨갱이들의 과거보다 더 시급한것이 있다

    지금의 민주,민노당이 바로 그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

    핵지원,정동영,이정희,를 비롯하여 모두 잡아 처형해야 이나라의

    제 2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을수 있다

  33. 익명

    같은 민족끼리 전라도 경상도 하면서 편갈라놓는 바보 정말 없기를믿습니다
    경상도나 전라도나 좋은사람은 좋고 나쁜사람도 있어요 김대중님 존경합니다.
    보복정치않는 훌륭한 대통령이었어요 난 경상도사람이지요 오해는 하지말고 서로 편 갈라 놓은 나쁜정치를 한탄하며 속지말고 정치에 전라도는 피해를 많이입어 이해도 합니다 우리민족 다 사랑합니다. 우리민족끼리 다 사랑합시다

    • 사막의향기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잘한것이 있고 잘못한것이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싸우는 분들은 다 외국으로 내 보내면 좋겠습니다…
      나와 보면 다 “한국사람” 이지 경상도사람, 전라도사람이 아니거든요… 외국에 나가 살면 지역주의, 사상, 이런건 별의미가 없어 지는듯 합니다….

  34. terry

    선거가 있나보지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빨갱이 소리 이제는 귀가 따갑네요 .
    언제까지 이런 수법을 써먹을 겁니까? 지금시대 에도 그런 소리가 먹히는 가 보지요.
    이재 그만 정신좀 차리시요. 이번에는 누구의 장난인가요 .
    국민 선출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여 국가 가 위기에 빠저있을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시고 지금은 세상에 안계시며 일국에 대통령을 역임하신 그분에 대한 예의가 안이라고 생각합니다.김대중 전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소리치던 그사람들 나라를 경재 위기로 빠뜨고 국가를 파산위기로 빠뜨린 그들 또 시작이란 말인가?
    선거 때 마다 등장하는 망국적인 그말 지하에 있는 옛사람에게 까지. 한심 ….
    이재 그만들 하시지요 !!

  35. 익명

    이글을 올린너의 정체는 뭐냐. 친일파냐. 친일파들의 교묘함이란 본시 자신들을 감추기위해 좌빨을 써먹거든.

    • 사막의향기

      무슨 파냐고? ㅎㅎ 내가 누군지 궁금한가?
      .
      혹시 명동의 “막가파” 쌍도끼 라고 들어 봤나?

  36. 익명

    또 빨갱이타령? 김대중 노무현 집안만 빨갱이더냐? 박정희는 친일파에 빨갱이가 아니었더냐 박정희 형은 남노당 빨갱이었고 빨치산전투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월북했거든 그 때 그 시절 정체성이 확립이 안된 시기에 친일파도 빨갱이도 모두 애국인양 행세하던 시절이었다.더구나 전쟁통에 남으로 북으로 밀고 밀리는 상황에서 민초들 이쪽저쪽 왔다갓다 했을터인데,살기위해서 또는 신념을 위해서 빨갱이 짓을 했다 하더라도 그게 지금와서? 문제있는 세사람 다 대통령까지 했으니 사상검증된 것 아닌가 말이야…그 당시에 정리 못한 죄지 드러난 친일파도 정리 못하는 주제들에, 여기 댓글 올리는 사람들 집안 조사 해봐라 안걸리는 집안있을까?

  37. 익명

    서민들의 금들이 어디로 갔을까..

  38. 익명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냐…..아직도 대한민국 안보의식이 더욱 고취 되어야해!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보면서도 그래….왜 이사건도 대한민국 자작극 이라고 하지 …역시 빨간물은 당대가 안닌 후대를 보고 하는가보군?

  39. 일당독재

    큰 일이다…20살도 안되는 연약한 소녀가 수억을 기부하는 선행에 대해서도 고향이 전라도라는 이유로 빨겡이의 저의가 있다고 최대부수 신문에 대놓고 모함하는 끔찍 한 범죄행위가 오히려 보호받고 격려 조장 되는 사회…이것이 21세기 자유민주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있는가…이런 괴물 사이코패스적 만행이 당당이 자행되는 사회가 OECD선진국인가…. 군사독재를 죽음으로 맞서 싸우고 국민에게 자유 민주를 안기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최고권위상 노벨상으로 자랑스러운 업적이 당당히 증명되었음에도 거리의 쓰레기 시궁창 하수도 썩은 병균이똥칠을 할 수 있는가…정신병자가 혼자 지껄이는 개소리가 어찌 전국민이 보는 언론매체에 올라올 수 있는가…이것이야 말로 김일성 김정일 괴물독재사회 히틀러 정신병자정권 가다피동족살해독재정권에서나 가능한 짓거리가 어찌 자유민주대한민국공화국에 있을 수 있는가…이런 정신병자들이 무슨저의로 누구의 지원을 받아 기생되고 있는가…참으로 무섭고 걱정되는 일이다… 일당독재 장기집권 종신세습정권에 딱 어울리지 않는가…미국 영국 프랑스등 OECD선진국서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참으로 통탄스럽구나…

  40. 익명

    팍정히가 우려먹든 빨갱이 ..유신헌법 선포 하면서 가장먼저 알린게 일성이 한테..왜?자꾸 공작정치 해야 하니까? ㅉ ㅉ 아직 위에 댓글 꼬라지들 보면 1억년 전에

    꾸질한 개 무식들의 표본상.

  41. 나라를걱정하는사람

    빨갱이 김대중을 국립묘지에파묻은것은 역사에크나큰비극입니다!!!~~~이제는또다시빨갱이들이영웅으로남는거는절때안됩니다!!!~~~특히전라도인간들 빨치산 자식들엄청많읍니다~~~

  42. ㅎㅎㅎ

    귀신 씨나락 까먹는소리 하는군 ㅎㅎㅎ

  43. 익명

    그래서 니가 말하고 싶은건 연좌제냐

  44. 전라도 사람 빨갱이 아님니다, 간접 아님니다, 똑 같은 대한민국 사람 님니다.

  45. 익명

    밑도 끝도 없는 글이네요. 거물 간첩의 말이면 다 진실인가요? 글쓴이가 특정 인물과 지역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갖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저는 이것이 인종차별주의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깊은 성찰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46. DJ를 싫어했던 호남인입니다. 이런 글을 왜 이제서야 올리는 지 궁금합니다.지금도 좌우가 필요합니까? 남북,동서,좌우에 진저리 난 사람입니다.

  47. 익명

    이글을 실은 분“ 위대하다고밖에 평가 할수없군요 ,,천국에 가시겟소이다
    우ㅐㄴ만 하시면 빨리 가세요,

  48. etic observer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에 나의 별장이 있습니다. 그 곳 주민들 중 연세가 높은 분들은 김종태란 사람을 기억하고 있습디다. 그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가문이고 부호였다고 합니다. 씨름을 잘하는 장사에다 똑똑한 사람으로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美人薄命.. 이렇듯 이데올로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것 같습니다. 산자나 죽은자, 살아남은자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 사막의향기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김종태는 분명 북한의 지시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김종태를 영웅으로 떠 받드는것 아니겠습니까?

  49. Pingback: 쥐박이과 원숭이 | 사막의향기

  50. Pingback: 쥐박이과 원숭이 | Freedom Develop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