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말고 ‘나는 공직자다’는 없나

 

지난 6일 새롭게 단장한 MBC ‘우리들의 일밤’이 첫 선을 보였다. 기대를 모았던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코너는 첫 방송은 물론 두 번째 방송 후에도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 ‘슈퍼스타K’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면 본 코너는 이미 최고의 가창력을 지닌 베테랑 가수들이 오히려 대중에게 심사를 받는 형식이다.

 

사실 데뷔 10년차 이상의 검증된 가수들이 굳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와 자존심에 흠집을 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7명의 가수들은 본업에 대한 진정성을 드러내며 출연을 결심했다. 국민가수 김건모는 “데뷔 20주년을 맞아 나태해질 수 있는 시기에 서바이벌을 통해 고칠 점이 있다면 배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폭발적인 가창력의 소유자 김범수는 “제 노래가 시청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가수들의 진정성은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후크송과 보는 음악이 대세인 요즘,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이들의 무대는 진정한 음악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갈증을 단 번에 해소시켰다. 시청자의 재미를 위해 가수 7인의 순위는 매겨졌지만 이들의 순위매기기는 무의미할 정도로 모두 감동적이었다는 게 누리꾼들의 반응이었다.

 

베테랑 가수가 500명의 청중평가단 앞에서 긴장하던 모습은 신선했다. 문득 우리사회의 지도층도 국민평가단 앞에서 세우면 저렇게 긴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최근 봇물 터지듯 터지는 공직자들의 비리는 고된 노동을 통해 수입을 얻는 다수의 서민들을 화나게 만든다. 필자는 2년 전 국회 국정감사 모니터링 요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당시 국회 본청에서 본 비리 공직자들의 뻔뻔함에 환멸을 느꼈다.

 

‘서바이벌 나는 공직자다’란 프로그램이 조만간 제작된다고 치자. 비리 검증을 통해 청렴한 순으로 서바이벌 우승자를 가리는 이 프로그램에 직업의식을 느끼고 출연을 결정하는 공직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의 가수 7인은 자신이 왜 일류 가수로 평가받는지를 대중에게 확실히 보여줬다. 공직자들도 자신이 얼마나 청렴한지를 국민 앞에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공직자들이 한결같이 청렴하다면 국민들은 가수 7인 못지않게 그들에게도 많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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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삶의 향기] 인생살이 ‘치수’

[중앙일보 박치문]
바둑은 18급부터 시작해 1급이 되고 그다음 1단부터 9단까지 이어진다. 실력 차이가 분명하다.
5급이 1급과 맞두어 이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5급이 1급과 내기바둑을 두려면 4점을 접어야 한다. 이런 걸 ‘치수’라고 한다.
골프에도 핸디캡, 즉 ‘핸디’라는 게 있다. 만약 1급이 실력을 숨긴 채 5급과 내기바둑을 둬 큰돈을 땄다면 무슨 죄목에 해당할까. 사법당국은
도박죄가 아니라 사기죄로 처벌한다.가끔 IMF 사태 언저리에 우리나라 금융 실력은 몇 단이나 됐을까 상상해 본다. 서양의
고수들은 이창호·이세돌 수준인데 그들과 맞바둑을 두며 버틴 우리 실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우리가 돌반지까지 바쳐 가며 나라가 잃은 큰돈을
메웠지만 국제사법재판소가 그들 서양의 고수를 사기죄로 처벌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세계화, 특히 머니게임(money game)의 세계화는
고수들의 계략이란 생각마저 든다. 강자들끼리의 게임은 피곤하고 리스크도 크니 국경을 넘어 하수들의 세계에서 합법적으로 마음껏 놀아 보자는
얘기처럼 들린다.바둑이나 골프·당구 등은 치수가 확연하고 예술이나 스포츠·연예도 치수가 어느 정도 드러나지만 세상사의 대부분은
치수를 잴 수 없다. 기술·능력뿐 아니라 재능·돈·가문까지 넓히면 인생살이의 치수 규격화는 엄두도 낼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맞바둑’을 두고 그걸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지면서 그렇게 살아간다.문제는 세상이 점점
‘게임화’돼 가는 데 있다. 세상살이가 비정한 승부의 논리를 닮아 가면서 강자들은 점점 신(神)이 돼 간다. 한국 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일찌감치 결사항전을 시작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무서운 통찰력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입시도 선거도 결혼도 게임이 돼 간다. 리비아의 민주화도
승부 관점에서 본다.세상은 강자들의 얘기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정치·코미디·경영·축구·영업·요리·공부 등 새로 뜬 강자·스타들의
얘기로 가득하다. 그걸 보며 우리는 이를 악문다. 8급이 7급이나 6급이 된들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할 뿐이지만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아 하다
못해 성형이라도 하고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인간관계라는 게임의 몇 가지 하찮은(?) 수라도 익힌다. 애들만 게임 중독이 아니라 어른들도 게임
중독이다. 게임의 함정, 맞바둑의 함정이 세상을 광분케 한다. 그럴수록 세상은 고수의 놀이터요, 하수의 지옥이 된다.인생살이가
게임이 되려면, 즉 인생살이가 굳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것이라면 ‘치수’가 있어야 공정하다. 치수가 없으면 법의 판단 그대로 ‘사기’가 된다.
따라서 치수를 잴 수 없는 인생살이는 게임이 될 수 없고 승패도 논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별수 없이 하수나 중수에
속한다. 40평 아파트가 20평 아파트를 괄시하는 것,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끼리 헐뜯는 것, 한 수 위에 있다고 짓밟는 것은 하수들이 흔히
저지르는 서글픈 자살골이다.  

                                                                                                                                          박치문 바둑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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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김정운의 남자에게] 왜 꼭 참고 인내해야만 성공하는가?

[한겨레] ‘참새가 새입니까?’ 물으면 모두 아주 쉽게
대답한다. ‘예.’ 그러나 ‘오리가 새입니까?’ 물으면 약간 대답이 더뎌진다. ‘타조가 새입니까?’ 물으면 시간이 좀더 오래 걸린다. 새의
기본적인 특징은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나는 것이다. 오리나 타조를 새라고 대답하는 데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하늘을 날지 못하기
때문이다. 퇴화된 날개에 대한 논리적 추론이 동원되어야만 ‘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전형성’(typicality) 효과라고
한다.전형성 효과는 효율적 소통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사회적 편견이 되기도 하고 무의식적 억압이 되기도 한다. ‘성공’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전형성이 그러하다. 한국인의 삶을 왜곡하는 ‘성공’에 대한 전형적인 서술방식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마치 서울대 수석합격자가 ‘잠은
충분히 잤으며, 과외는 받은 적이 없고, 학교 공부를 충실히 했다’고 대답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의 성공 내러티브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일단 성공한 이들은 젊은 시절 엄청나게 고생한다. 고생하지 않으면 성공이 아니다. 그들의 부모는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하다.
젊은 시절, 의욕만 가지고 무모하게 달려들다가 처절하게 무너지고, 실패가 반복된다. 믿었던 사람에게 철저하게 배신을 당한다. 몇 번의 부도도
필수다. 좌절한 주인공은 한강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다시 굳게 마음을 다져먹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남보다 늦게 자고 먼저 일어난다. 참고
인내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일이 잘 풀려 나간다. 한번 풀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걷잡을 수 없다. 성공한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항상 힘줘
이야기한다. 포기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노력했다. 그동안 참고 고생한 아내와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고통을
딛고 일어선 그들의 성공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왜 아직도 한국 사회가 이 구태의연한 ‘성공 내러티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어째서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새벽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어야 하고, 재미라고는 전혀 없는 성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왜 성공한 사람의 아내와 아이들은 매번 참고 희생해야만 하는가? 재미있고 즐거워서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왜 전혀 없을까? 왜 꼭
실패와 역경을 딛고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여유’ ‘재미’ ‘나눔’과 같은 풍요로운 이야기는 왜 한국식 성공 내러티브에는 전혀 포함되지
않는 걸까?왜 한국형 ‘성공 내러티브’에서는 우연히 얻어진 성공은 하나도 없을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하거나 나태한 사람들인가? 아니다. 대부분의 성공은 ‘아주 적당한 시기’에 ‘아주 적당한 기회’가
‘아주 우연히’ 주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정말 황당한 것은 어린 아이돌 스타들도 이 구태의연한 산업사회식 성공
내러티브를 마구 늘어놓는다는 사실이다.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난, 십대 후반의 아이돌들이 주말마다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연습생 시절의 ‘불어터진
라면’을 이야기한다. 이야기 말미에는 꼭 고통스런 시절을 기억하며 눈물이 복받쳐 어쩔 줄 몰라 한다. 아, 이건 정말 아니다. 그들의 짧은
인생에서 ‘눈물 젖은 라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오버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재미있어서 했다!’ ‘정말 즐거워서 하다 보니 이렇게
잘됐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 미국 사회에는 1960년 이후 이혼이 2배로 늘었고,
청소년 자살이 3배로 늘었다. 폭력범죄가 4배로 늘었고, 감옥에 있는 사람이 5배 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우울증 환자는 10배로 늘었다.
성공해도 여전히 참고 인내해야 하는, 지난 시대의 잘못된 성공 내러티브 때문이다.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젠 ‘근면’ ‘성실’
‘고통’ ‘인내’ 같은 지난 시대의 내러티브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차원의 ‘성공 내러티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명지대 교수,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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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김정운의 남자에게] 시간이 미쳤다!

[한겨레] 벌써 한달이 지났다. 2011년 달력을 새로 걸고,
의미있게 살아보리라 새롭게 마음도 고쳐먹었지만, 벌써 한달이 지난 거다. 말도 안 된다. 깊은 한숨까지 나온다. 정말 시간이
미쳤다.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자꾸 빨리 가는 걸까? 심리학자들의 대답은 아주 단순명료하다. 기억할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내용이 많으면, 그 시기가 길게 느껴지고, 전혀 기억할 게 없으면 그 시기가 짧게 느껴진다.
‘회상효과’(Reminiscent Effect)다. 인생에서 어느 시절의 기억이 가장 뚜렷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학창시절을 언급한다. 노인들도
학창시절의 기억은 아주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가슴 설레는 기억이 많은 그 시절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렀다. 모두가 새로운 경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기부터 시간은 아주 미친 듯 날아가기 시작한다.지난 한달은 더 그랬다. 당연하다.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지, 기억할 만한 일들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죄다 반복적으로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하는 일들뿐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2011년도
불 보듯 뻔하다. 1년 뒤, 난 또다시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미친 시간에 한숨 쉴 것이다.한 집단의 역사는 집단적 기억이다. 기억을
통한 의미부여의 과정을 통해 한 집단의 아이덴티티는 유지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역사를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기억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미부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살만해진다. 기억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내 삶에 전혀 의미부여가 안 된다는 뜻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죽기 직전의 그 짧은 몇 초의 시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지며, 인생의 중요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짧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본능적 행위다.시간이 빨리 지난다고 느낄수록 긴장해야 한다.
의미부여가 안 되니 쉽게 좌절하고, 자주 우울해지고, 사소한 일에 서운해진다. 이런 식이라면 ‘성격 고약한 노인네’가 되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다.삶의 속도와 기억의 관계에 관한 심리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이 ‘미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억할 일들을 자꾸 만들면 된다. 평소에 빤하게 하던 반복되는 일들과는 다른 것들을 시도하라는 이야기다. 인생과 우주 전반에 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계획은 아무 도움 안 된다.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들을 시도해야 한다.오늘도 술잔 앞에 두고 부하직원들에게 한
이야기 하고 또 하지 말자는 거다. 이제 다 외우는 윗사람 이야기 참고 또 들어줘야 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면서 도대체 왜들
그러는가. 이 추위를 뚫고 집까지 한번 걸어가보는 거다. 올레길을 걷는다며 돈 들여 제주도까지 갈 일이 뭐가 있겠는가. 오늘 직접 해보는 거다.
너무 무모하다 싶고, 추위가 두려워져 비겁해지면 한강 다리라도 한번 걸어서 건너본다. 도대체 평생 살면서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본 기억이 있긴
한가.시립미술관이나 덕수궁미술관에 들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요즘 좋은 전시회 정말 많이 한다. 해설방송 헤드폰 끼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자세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거다. 눈과 귀로 느껴지는 새로운 문화적 경험은 침대에 누워 늦게까지 텔레비전 채널이나 돌리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여자 속옷 광고 홈쇼핑에 채널 멈추고 집중하다가 제풀에 흠칫 놀라는 촌스런 행동은 이제 그만 하자는 거다. 우리 주위에 그런
야한 속옷이 어울리는 여자는 이제 없다. 아, 과거에도 없었다. 미안하다. 아무튼….심리학의 창시자인 빌헬름 분트는 인간이
경험하는 ‘현재’의 길이를 측정했다. 약 5초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불과 5초만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과거나 미래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5초의 객관적 단위는 주관적 경험에 의해 얼마든지 팽창될 수 있다. 제발 현재를 구체적으로
느끼며 살자는 이야기다. 그래야 시간이 미치지 않는다.

 

 

명지대 교수,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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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황제의 부재가 아쉽다

 

 

“지금은 스타가 없다. 90년대처럼 농구가 흥하려면 대형 스타가 필요하다.”. 지난 1월 SK전을 앞두고 KCC 허재 감독이 대기실에서 했던 말이다. 비단 국내 농구뿐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포츠팬들은 항상 스타에 목말라 있다. 특히 스포츠 황제에 열광한다. 여기서 스포츠 황제는 해당 종목의 리그는 물론 스포츠계를 뒤흔들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얼마 전 은퇴한 축구황제 호나우두와 20세기 최고의 스포츠 스타 마이클 조던처럼 말이다.

 

지금도 종목을 대표하는 스타들은 많다. 축구에선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농구에선 르브론 제임스, 육상에선 우사인 볼트, 수영에선 마이클 펠프스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냉정히 평가해서 과거 황제라 불리는 전설들에 비해 이들의 영향력은 다소 부족하다.

 

메시와 호날두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여 아직 스포츠 황제 대열엔 낄 수 없다. 이들과 비슷한 나이에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데뷔전을 치렀던 호나우두의 폭발적인 활약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대회에서 그는 현란한 개인기로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펠레의 뒤를 이을 차세대 축구황제로 주목받았다. 브라질은 비록 결승전에서
지단의 프랑스에 0-3 완패를 당했지만 호나우두는 세계 축구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르브론 제임스는 단 한 개의 챔피언 반지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분명 황제는 아니다. 게다가 현재 NBA의 위상으로 선배인 조던의 황제 칭호를 물려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현재 NBA는 2000년대 초반까지 NFL, MLB에 이어 확고했던 자국 3위 스포츠의 자리마저 내줄 처지에 놓여있다.

 

볼트와 펠프스는 해당 종목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하긴 하지만 종목 파워가 크지 않아 스포츠를 대표하는 황제가 되기엔 부족하다.

 

불과 2년 전까지 세계 스포츠계를 주름잡던 황제는 타이거 우즈였다. 하지만 우즈는 2009년 11월 불륜스캔들에 휘말린 이후 골프 황제의 명함마저 내려놔야 했다.

 

지난해 8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는 생애 최악의 부진을 겪기도 했다. 한때 출전선수 80명 중 78위를 기록했던 우즈는 세계랭킹 1위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으로 팬들을 실망시켰다.

 

아내 엘린 노르데그린과 이혼한 뒤 대회마다 부진을 거듭했던 우즈는 여전히 과거 기량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계랭킹은 어느새 5위까지 추락했다. 각종 스폰서 및 광고계약은 중단된 지 오래다. 뒤돌아선 언론을 다시 제 편으로 만들기 위해선 압도적인 성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15일 축구황제 호나우두의 은퇴는 많은 팬들을 아쉽게 했다. 공교롭게도 이틀 뒤인 17일은 또 다른 황제 마이클 조던의 49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생일 하루 전인 16일 조던은 샬럿 밥캣츠의 구단주 자격으로 시카고 불스의 홈구장 유나이티드센터를 찾았다. 조던은 옛 동료이자 현재 불스의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스카티 피펜과 벤치에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둘의 모습은 20세기 프로스포츠 사상 최강팀이었던 불스(95-96시즌 72승 10패.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고 승률)의 팬들을 추억에 젖게 했다.

 

스포츠 황제의 부재가 아쉽다. 팬들도 황제의 등장을 기대하는 눈치다. 각종 스포츠 커뮤니티 게시판을 접하다 보면 압도적인 지배자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종목별 스타들은 스포츠팬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황제들의 인지도에 비교하긴 힘들다.

 

필자는 굳이 스포츠팬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그런 인물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예컨대 마이클 조던, 펠레, 호나우두, 베이브 루스, 웨인 그레츠키, 타이거 우즈와 같은 인물들은 위인전에 나오는
전설적인 인물들이다. 전 세계 어느 곳의 현지인들과 얘기해도 현지인들이 알만한 스포츠
황제들이기도 하다.

 

타이거 우즈가 황제의 자리를 내준 가운데 새로운 스포츠 황제는 누가될지 기대된다. 신화적인 인물의 등장은 분명 스포츠팬들의 가슴을 또 한 번 설레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스포츠가 흥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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