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와 혈액형의 관계

  4월17일 자로 썼던 기사입니다.

 

  1970년대 대표팀 부동의 수문장이었던 변호영 씨는 “골키퍼는 혈액형 O형이 잘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비롯해 최고의 골키퍼들은 모두 O형이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고 홍덕영, 함흥철 씨를 비롯해 조병득(수원 삼성 코치), 최인영(전북 현대 코치) 등 최고 골키퍼 계보를 있는 선수들에게 O형이 많다. 하지만 현 국가대표 수문장 이운재(수원 삼성)와 ‘꽁지머리’ 김병지(경남 FC)는 B형이다. 차세대 골키퍼 정성용(성남 일화)과 김영광(울산 현대), 김용대(광주 상무)는 A형이다. 이를 보면 골키퍼와 혈액형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축구에서 포지션과 성격은 연관성이 있다. 호서대에서 이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장연환 대한축구협회 심판실 부장은 “골키퍼와 수비수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참고 지켜야 하는 포지션 스타일이 성격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철벽 수비수였던 홍명보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감독은 다른 사람들이 말을 걸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성적이다. 친해지기 전까지는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김호 대전 시티즌 감독과 김정남 전 울산 감독도 비슷하다. 홍콩에 거주하는 변 씨도 조용히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반면 공격수는 활달하고 외향적이다. 상대 골문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어야 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이천수(전남 드래곤즈)는 나서기를 좋아한다. 너무 지나쳐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의 활달한 성격을 좋아한다.

  공격과 수비의 가교 역할을 하는 미드필더는 인간성이 좋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이 대표적이다. 허 감독은 축구계의 마당발로 소문이 자자하다. 친구가 많고 후배도 많이 따른다. 분쟁도 잘 해결한다. 부인 최미나 씨는 “감독님이 사람을 너무 잘 믿어 날린 돈도 많다”고 전했다.

  반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공격수임에도 내성적이고 조용하다. 강철 체력을 자랑하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한 데는 차분한 성격이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골이 적은 것도 사실. 이제 박지성도 좀 적극적이어야 할 때가 온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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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점호 사장의 축구 사랑

  4월10일자로 썼던 기사입니다.

 

  실업축구 하부리그인 K3 서울 유나이티드(이하 서유)의 조점호 사장은 A매치(국가대표간 경기) 때 초청장이 와도 직접 표를 구입해 경기를 관전한다. 프로축구, 실업축구 경기도 마찬가지다.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선 돈을 주고 보는 ‘상품’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왜 우리에게는 공짜표도 안주냐”며 생떼를 쓰는 일부 축구인과는 전혀 다르다.

  조 사장은 서유 운영비도 지원하고 있다. 순수 아마추어 팀이지만 연간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한사코 액수를 밝히기를 꺼려하지만 연간 기천만원을 쓰고 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그가 서울 서초동 교대 근처에서 운영하는 맥주전문점 뷰티풀 비어에서는 각급 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맥주 값을 받지 않는다. 축구 ‘베스트 11’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매월 11일에 ‘뷰티풀 데이’란 행사를 여는데 맥주는 무한정 공짜고 안주 값만 받는다. 수익의 1%는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한다.

  그는 프로나 실업도 하기 어려운 유소년축구팀도 운영하고 있다. 3부, 4부 팀에서도 유소년은 운영하는 선진 축구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뜻에서다. 맥주 사업을 하다보니 독일 등 유럽에 자주 나가는데 선진 축구를 직접 관전하고 구단 운영까지 배워서 한국에 전수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조 사장은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즐겨했고 동호인 팀에서 아직도 활약하고 있지만 ‘비 축구인’이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애정만은 축구인들을 훨씬 능가한다.

  요즘 한국 축구계는 보이지 않게 둘로 나뉘어졌다. 사상 처음 축구인이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됐는데도 서로 화합을 하기 보다는 반목과 질시에 빠져 있다. 정권을 잡은 쪽에선 자신들의 사람들만으로 인의 장막을 쳐놓고 축구 행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축구 수장에 도전했다 실패한 속칭 축구 야당 쪽이나 협회의 외곽을 맴도는 축구인들은 정당하고 적절한 비난보다는 인신 모독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진정으로 축구를 위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말없이 축구를 위해 힘쓰는 조 사장이 진정한 축구인처럼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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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의 아내 최미나 씨 사랑(기사)

  아내 자랑 하면 팔불출이라고 놀림을 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허정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54)은 부인 최미나 씨(55) 얘기만 나오면 자랑하기 바쁘다. 14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만난 허 감독은 아내 얘기가 나오자 술술 말이 이어졌다.

  “이런 얘기하기 힘들지만 아내는 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군이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항상 옆을 지켜줬다. 아무런 말은 하지 않고 그저 내 옆을 지켜주지만 그것 하나로 내게는 큰 힘이 됐다.”

허정무 감독(오른쪽)과 부인 최미나 씨의 단란한 모습

  4월1일 북한과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때의 일이다. 허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뒤 북한과 4무를 하자 주변에서 허 감독에 대한 비판론이 일었다. 꼭 이겨야하는 상황. 당시 최 씨는 북한 전 다음날 목 디스크 수술을 받게 돼 있었다. 하지만 허 감독에게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한 달 전부터 입원 치료를 권유했지만 “남편이 맘 편히 경기에 임해야 한다”며 극구 사양했다. 결국 허 감독이 북한을 1-0으로 꺾은 뒤에야 “여보 나 내일 수술해”라고 말했다.

  “솔직히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평소 가정에 신경 쓴다고 했는데…. 대표팀 감독이라는 핑계로 아내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술하는 날 하루 종일 병원에 있었다. 처음에는 내게 아무런 얘기를 해주지 않은 아내가 얄미웠지만 그런 아내가 있어서 대표팀이 7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14일 대한축구협회에서 인터뷰를 마친뒤 공을 앞에 놓고 밝게 웃고 있는 모습

  허 감독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강조한다. 1991년 포항 스틸러스 사령탑을 맡을 때부터 가족을 강조했다. 본인 가족은 물론 코칭스태프 가족을 불러 파티를 자주 했다. “집안이 편해야 밖에서도 일이 잘 된다”는 게 허 감독의 생각. 허 감독은 요즘에도 대표팀 코칭스태프 전 가족을 동반한 모임을 자주 갖는다. 이 자리엔 부인 최 씨는 물론 딸 재영과 사위, 그리고 둘째 딸 은까지 참석하게 한다. 허 감독은 지난달 말 남아공 현지답사 때도 최 씨와 함께 했다.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와 함께 해야 맘 편히 월드컵을 구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게 허 감독의 말.

  “잘 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바로 비난이 쏟아지는 대표팀 감독은 외로운 직업이다. 아내가 나를 이해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니 일이 잘 풀린다. 내년 월드컵 때도 아내의 내조가 절실하다.”

  1980년 지인을 통해 최 씨와 결혼한 허 감독은 자신의 불찰로 큰 돈을 잃는 사태를 당하기도 했지만 아내 최 씨와의 끈끈한 신뢰 때문에 잘 극복했고 지금도 “그 신뢰는 영원하다”고 강조한다. 허 감독은 18일 결혼 29주년을 맞는다. “이번엔 아내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은데….” 허 감독의 아내 사랑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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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가 단거리 왕국인 이유

  내친 김에 자메이카가 왜 단거리가 강한지에 대한 얘기도 해보겠습니다. 자메이카에서 든 첫 느낌은 ‘이 나라는 단거리의 나라’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우, 우, 우….” ‘쿵, 쿵, 쿵….’ 자메이카 킹스턴의 내셔널스타디움에서 열린 서인도대학(UWI) 초청 육상경기대회 남자 400m 결승이 열릴 때 였습니다. 자메이카의 ‘올림픽 영웅’ 우사인 볼트가 힘차게 질주하자 스탠드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5000여 팬들이 함성을 쏟아내며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응원전을 펼친 것입니다. 이런 응원은 볼트가 45초54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100m에 출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자메이카 선수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대회는 오후 11시에야 끝났습니다. 대회에는 12세부터 성인까지 약 20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 가운데 75%에 이르는  1500여명이 100m를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100m는 자메이카 최고의 인기 종목이었습니다.

  청소년 3그룹(14세, 16세, 18세 이하)과 성인으로 나뉜 경기는 4~5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진행이 원활하지 않아 수시로 경기는 중단됐지만 자리를 뜨는 관중은 거의 없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는 참가 선수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고 응원 나온 가족들은 환호로 답을 했습니다. 육상 경기가 아니라 마치 소풍 나온 사람들 같았습니다. 긴장감보다는 오락을 즐기는 분위기였습니다.

서말구(왼쪽) 감독, 그레이시 잭슨(가운데), 그리고 양종구

  대회를 지켜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200m 은메달리스트이자 이번 대회 조직위원장인 그레이시 잭슨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자메이카가 왜 단거리가 강한지를 물어 봤죠. 잭슨은 “우리나라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보고 즐기고 달리면 교육에도 좋고 세계 최고도 될 수 있습니다. 볼트 같이 세계적인 선수들이 계속 나오니 국민들은 더 단거리를 사랑하게 됩니다”고 말했습니다.

  10년 넘게 자메이카에 살고 있는 문영기 자메이카 한인회 회장에게도 자메이카가 단거리가 강한 이유를 물어 봤습니다. 문 회장은 “육상은 자메이카인들의 좋은 놀이 문화입니다. 볼트 같은 유명선수가 되겠다는 욕심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단거리 달리기 그 자체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게 단거리의 힘인 것 같습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 역시 진지했습니다다. 복스홀고교 1학년 키먼 존슨(13)은 14세 이하 남자 100m에서 11초8로 우승한 뒤 “볼트 같은 유명한 단거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혀 관심을 모았습니다.

  자메이카 육상대회에는 우리와 다른 게 많았습니다. 제 눈을 사로잡은 종목은 허들이었습니다. 보통 허들은 남자의 경우 110m와 400m, 여자는 100m 허들 경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메이카에서는 여자부는 70m와 80m, 그리고 300m 허들 경기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12세와 14세, 그리고 18세 이하 선수들을 배려해 거리를 조정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이 쉽게 허들과 친해지도록 한 것입니다. 남자 역시 110m 허들을 뛸 때 나이에 따라 허들의 높이를 조정해 어린 선수들도 쉽게 뛸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자메이카 클리너지의 앤소니 포스터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그래도 변형 종목이 적은 편이다. 릴레이도 다양하게 변형 시켜 대회를 연다”고 말했습니다. 6세에서 10세 아이들이 뛸 수 있도록 50m와 60m씩을 나와서 이어 달리는 종목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메이카에서는 매주 토요일은 육상대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토요일 하루에 2~5개의 육상대회가 열립니다. 1년에 약 70개의 대회가 열립니다. 대회마다 2000~30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자메이카 정부의 정책도 단거리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자메이카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10년 자메이카 챔프스(전국고교육상대회)를 설립해 일찌감치 육상 강국의 기반을 다져왔습니다. 식민지의 아픔을 뛰어 넘기 위해서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 정책이 자메이카를 단거리 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한국 단거리대표팀을 이끌고 자메이카에서 훈련 중인 서말구 감독은 “현지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즐겁게 달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운동장이 잔디 트랙이었다. 우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메이카 선수들은 이런 환경조차도 행복해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공인한 세계적인 훈련소 자메이카공과대학의 상급자 훈련소 운동장을 찾아가봤습니다. 진짜로 잔디트랙이었습니다. 볼트와 아사파 파월도 여기서 훈련한다고 합니다.

자메이카 상급자훈련소(HPTC) 잔디운동장

  한 때 자메이카 선수들은 조금 유명해지만 미국 등으로 ‘육상 유학’을 떠났습니다. 경제와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30년 전 단거리선수들을 집중 육성하는 자메이카공과대학을 만들어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면서 이젠 선수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메이카공과대학에선 280여 단거리 선수를 집중육성하고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육상 단거리에서 자메이카에 참패를 당한 ‘단거리 강국’ 미국이 2012런던올림픽 보고서를 쓰는 등 자메이카 배우기에 나서고 있기까지 합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리기에 몰두하는 것, 그리고 정무의 대대적인 투자. 자메이카가 육상의 메카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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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에서 만난 우사인 볼트

  블로그를 처음 해봐서…. 첫 글을 넘 늦게 띄워 죄송합니다.
솔직히 빨리 글을 쓰고 싶었는데… 사진을 어떻게 편집하는 지를 몰라서..ㅎㅎ.

  첫 얘기로 무엇을 시작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배경 화면으로 쓴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 스토리를 먼저 시작하려고 합니다. 볼트는 제가 2월 자메이카에 갔을 때 만났습니다. 좀 시간이 됐죠? 그래도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를 만난 것은 제게 아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당시 자메이카 킹스턴의 내셔널스타디움에서 열린 서인도대학(UWI) 초청 육상경기대회가 열렸습니다. 자메이카로
출발하기 전에 볼트의 후원사인 푸마를 통해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기장에 나타나면 즉석 인터뷰를 하자’는 생각으로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운 좋게도 볼트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바로 달려가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볼트가 저를 피하더라구요. “개인 코치에게 얘기 해봐라”고 하면서. 그래서 근처에 있던 글렌 밀스 코치에게 부탁을 했죠. “한국에서 볼트를 만나러 왔다. 꼭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밀스 코치가 “기자들이 너무 많이 따라 다니니까 볼트가 좀 민감해 그렇다. 먼 길 왔는데 그럼 간단하게 하라”고 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라운드에 서서 한 인터뷰였지만 블트와 자메이카를 느낄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습니다.

 <자메이카
현지에서 기자(오른쪽)와 마난 우사인 볼트는 장난 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같이
사진을 찍을 때 손가락으로 저를 가르치며 포즈를 취했습니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육상 남자 100m(9초69)와 200m(19초30)에서 세계기록을 동시에 세우며 우승한 볼트는 현지 기자들도 잘 만나지 못하는 특급 스타입니다. 세계적인 스프린터가 되면서 많은 언론이 따라붙자 훈련과 경기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거의 않고 있습니다. 저로선 큰 행운이었던 셈입니다.

  다음은 당시 진행됐던 인터뷰 내용입니다.

자메이카에서 만난 볼트입니다

  -요즘 400m에 집중하고 있는데….

  “400m에 출전하는 이유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다. 올해 8월에 열리는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00m와 200m에 집중할 생각이다. 이 두 종목이 나의 주 종목이기 때문이다. 400m는 내년에나 도전할 것 같다.”

  -언제나 밝은 표정이던데 그 이유는….

  “나는 달리는 것 자체를 즐긴다. 그래서인지 어떤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100m 기록은 어디까지 단축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나의 미래를 예측하겠나.(웃음) 하지만 인간에게 한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

  -자메이카 대표팀 동료인 전 세계기록 보유자 아사파 파월의 반격은 어떻게 예상하나.

  “파월은 뛰어난 선수다. 우리는 트랙 밖에서는 친구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선의의 경쟁을 하는 라이벌이다.”

  -자메이카 선수들은 왜 잘 달린다고 생각하나.

  “어려서부터 육상은 생활 그 자체다. 또 세계 최고가 되고자하는 욕망도 다른 나라 선수에 비해 강한 것 같다. 훌륭한 지도자도 많다. 과거엔 좋은 선수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등으로 이민 갔는데 이젠 자메이카에서 살며 활동하는 선수도 많다.”

  -자메이카 단거리 힘은 이제 미국이 본받을 정도로 세계적이다.

  “자메이카 선수들은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우리는 경쟁력이 있다. 그래서 매번 이기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세계 챔피언이 되는 이유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2년 앞으로 다가왔다.

  “일단 올해 베를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목표다. 대구 대회 역시 기다려진다.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

  자메이카 트렐로니 패리쉬에서 출생한 볼트는 크리켓을 하다 육상으로 전환했다. 자메이카 춤에서 따온 갖가지 제스처로 우승 세리머니를 펼치는데 “요즘 새로운 제스처를 준비 중”이라며 웃었다.

자메이카 경기장에서 본 볼트입니다.

  비행기를 17시간이나 타고 갔는데…. 볼트와 인터뷰를 못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자메이카에서 훈련 중인 한국 단거리대표팀을 취재하러 간 게 주 목적이었지만 볼트를
만날 수 있어 더 없이 알찬 해외 취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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