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 김에 자메이카가 왜 단거리가 강한지에 대한 얘기도 해보겠습니다. 자메이카에서 든 첫 느낌은 ‘이 나라는 단거리의 나라’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우, 우, 우….” ‘쿵, 쿵, 쿵….’ 자메이카 킹스턴의 내셔널스타디움에서 열린 서인도대학(UWI) 초청 육상경기대회 남자 400m 결승이 열릴 때 였습니다. 자메이카의 ‘올림픽 영웅’ 우사인 볼트가 힘차게 질주하자 스탠드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5000여 팬들이 함성을 쏟아내며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응원전을 펼친 것입니다. 이런 응원은 볼트가 45초54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대회는 오후 11시에야 끝났습니다. 대회에는 12세부터 성인까지 약 20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 가운데 75%에 이르는 1500여명이 100m를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100m는 자메이카 최고의 인기 종목이었습니다.
청소년 3그룹(14세, 16세, 18세 이하)과 성인으로 나뉜 경기는 4~5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진행이 원활하지 않아 수시로 경기는 중단됐지만 자리를 뜨는 관중은 거의 없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는 참가 선수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고 응원 나온 가족들은 환호로 답을 했습니다. 육상 경기가 아니라 마치 소풍 나온 사람들 같았습니다. 긴장감보다는 오락을 즐기는 분위기였습니다.

대회를 지켜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200m 은메달리스트이자 이번 대회 조직위원장인 그레이시 잭슨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자메이카가 왜 단거리가 강한지를 물어 봤죠. 잭슨은 “우리나라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보고 즐기고 달리면 교육에도 좋고 세계 최고도 될 수 있습니다. 볼트 같이 세계적인 선수들이 계속 나오니 국민들은 더 단거리를 사랑하게 됩니다”고 말했습니다.
10년 넘게 자메이카에 살고 있는 문영기 자메이카 한인회 회장에게도 자메이카가 단거리가 강한 이유를 물어 봤습니다. 문 회장은 “육상은 자메이카인들의 좋은 놀이 문화입니다. 볼트 같은 유명선수가 되겠다는 욕심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단거리 달리기 그 자체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게 단거리의 힘인 것 같습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 역시 진지했습니다다. 복스홀고교 1학년 키먼 존슨(13)은 14세 이하 남자 100m에서 11초8로 우승한 뒤 “볼트 같은 유명한 단거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혀 관심을 모았습니다.
자메이카 육상대회에는 우리와 다른 게 많았습니다. 제 눈을 사로잡은 종목은 허들이었습니다. 보통 허들은 남자의 경우 110m와 400m, 여자는 100m 허들 경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메이카에서는 여자부는 70m와 80m, 그리고 300m 허들 경기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12세와 14세, 그리고 18세 이하 선수들을 배려해 거리를 조정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이 쉽게 허들과 친해지도록 한 것입니다. 남자 역시 110m 허들을 뛸 때 나이에 따라 허들의 높이를 조정해 어린 선수들도 쉽게 뛸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자메이카 클리너지의 앤소니 포스터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그래도 변형 종목이 적은 편이다. 릴레이도 다양하게 변형 시켜 대회를 연다”고 말했습니다. 6세에서 10세 아이들이 뛸 수 있도록 50m와 60m씩을 나와서 이어 달리는 종목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메이카에서는 매주 토요일은 육상대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토요일 하루에 2~5개의 육상대회가 열립니다. 1년에 약 70개의 대회가 열립니다. 대회마다 2000~30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자메이카 정부의 정책도 단거리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자메이카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10년 자메이카 챔프스(전국고교육상대회)를 설립해 일찌감치 육상 강국의 기반을 다져왔습니다. 식민지의 아픔을 뛰어 넘기 위해서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 정책이 자메이카를 단거리 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한국 단거리대표팀을 이끌고 자메이카에서 훈련 중인 서말구 감독은 “현지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즐겁게 달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운동장이 잔디 트랙이었다. 우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메이카 선수들은 이런 환경조차도 행복해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공인한 세계적인 훈련소 자메이카공과대학의 상급자 훈련소 운동장을 찾아가봤습니다. 진짜로 잔디트랙이었습니다. 볼트와 아사파 파월도 여기서 훈련한다고 합니다.

한 때 자메이카 선수들은 조금 유명해지만 미국 등으로 ‘육상 유학’을 떠났습니다. 경제와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30년 전 단거리선수들을 집중 육성하는 자메이카공과대학을 만들어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면서 이젠 선수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메이카공과대학에선 280여 단거리 선수를 집중육성하고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육상 단거리에서 자메이카에 참패를 당한 ‘단거리 강국’ 미국이 2012런던올림픽 보고서를 쓰는 등 자메이카 배우기에 나서고 있기까지 합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리기에 몰두하는 것, 그리고 정무의 대대적인 투자. 자메이카가 육상의 메카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