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이제 운전대론에서 벗어나길

카테고리 : 정치평론 | 작성자 : Kang

 

오랜만에 차분한 지성인의 글을 보고 바로 퍼왔습니다. 연대 행정학과 교수네요. 한국이 처한 현실을 냉철한 시각으로 정확하게 진단했다고 봅니다. 모두 한번씩 읽어 보세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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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오래된 말 중에 ‘흥미로운 시대에 살아라’라는 경구가 있다. 평화의 가치를 모른 채 무료함을 탓하는 사람들에게 퍼붓는 저주이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감사하기는커녕 자극적인 변화를 좇는 것에 대한 훈계인 셈이다.

한국을 홍보하는 브랜드 이미지로 선정되었던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도 나는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 그 다이내믹이 흥미진진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얼마나 사람 잡는 일을 야기할 수 있는지 미루어 상상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비약과 불합리 그리고 억지와 파괴가 거기에는 도사리고 있다. 무쌍(無雙)한 변화들이 속도의 쾌감을 주기는 하겠지만, 근본적 발전과 성숙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겉으로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도 속으로 혁신이라 할 만한 변화는 많지 않으며,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생명을 잃고 어떤 회사는 이유 없이 사라지며 어떤 전통은 속절없이 버려진다. 

전 세계는 지금 ‘흥미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은 쉬지 않고 예측 불가능한 언사를 쏟아낸다. 미국인의 59%가 미국판 화병을 품고 있는데, 정신과 의사들이 그 이름을 PTSD(President Trump Stress Disorder)로 부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 온 가치의 와해를 경험하며, 일부는 의료보장을 잃을까 봐, 또 어떤 이들은 시민권의 꿈을 잃고 추방될까 봐 불안해한다.  

일본의 아베 신조도 ‘흥미로운 시대’를 여는 데 일조하고 있다. 자위대를 합법적인 군대로 개조하여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가려 사활을 걸고 있다. 일본 내에서 아베의 ‘보소(ぼうそう·暴走)’에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닛케이 조사에 의하면 “아베를 지지한다”가 46%로, “지지하지 않는다” 46%와 비슷하다. 다만 그의 3연임을 반대하는 응답이 52%로, 찬성하는 40%보다 높다. 

원래 다이내믹하던 한국은 가장 심각한 어지럼증을 겪고 있다. 트럼프와 아베가 만드는 흥미로운 시대에 김정은까지 가세하여 엄청난 원심력에 휩싸이고 있다. 나는 50년이 넘도록 살아오며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요즘처럼 한국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체감한 적이 없다. 이런 판단이 나의 개인적 염세일까 의심스러워 65세로 퇴임을 하는 선배 교수에게 물어보고 72세의 택시기사에게도 물어보았다. 다행스럽게,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 역시 똑같은 불안과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평화를 기획하고 결정하는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 현실은 불과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도하던 ‘통일대박’론과 너무나 다른 내용이다. 도대체 어떤 전략과 준비를 하며 그런 수지맞는 개념을 역설한 것인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석’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희망이긴 하겠지만, 우리가 앉은 자리가 운전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평생 치과의사나 택시기사로 살아온 사람들도 모두 체감한다. 하세월 동안 우리의 운명을 주도하기 위한 네트워크와 전략을 이 정도로밖에 축적하지 않았나 하는 자성과 개탄이 이어진다.  

 

대박론이나 운전석이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허사, 더 솔직히 말하면 허위가 아니기를 나는 소망한다. 지도자들이 진실성과 책임감을 전제로 목숨을 걸 때 외부의 다이내믹을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 국민들이 보내는 신뢰로 엄청난 구심력과 지렛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같은 공직은 엄중한 자리이고, 그것을 약탈의 기회로 삼는 자들은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새로 출범하여 개혁을 모색하는 문재인 정부는 보다 넓은 앵글로 국가 혁신을 설계해야 할 듯하다. 지금은 ‘정치적 외환위기’와 같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은 정치적 응징을 넘어 구조적 혁신으로 가야 하고, 겉치레 허위들을 걷어내 내실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과거의 낙하산을 자신의 낙하산으로 교체할 게 아니라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갑질뿐 아니라 떼법과 무질서도 바로잡아야 한다. 어느 한쪽에서의 접근이 아닌 전방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 우리가 원치 않는 다이내믹스에 노출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의 결정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MainTop/3/all/20170912/86278813/1#csidx841ee6a7e35a0d28d4bf8e074fddb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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