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은 왜 비싼가.

런던에 처음 오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의 하나가 “도대체 이 나라는 왜 이리 비싼가”이다.

전철은 1정거장만 가도 교통카드가 없을 경우 요금이 4파운드(약 7500원).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아무리 허름한 식당을 찾아도 1인당 최하 10파운드(약 1만9000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 담배 1값은 5.5파운드(1만400원)정도. 부자가 아니면 담배도 엄두내기가 어렵다. 전기요금, 가스요금, 휴대폰 요금 등도 보통 한국의 배 이상이다.

슈퍼마켓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고기나 과일 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들 품목은 영국이 비싸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여전히 두 배 수준이고, 대부분의 공산품도 한국의 두 배로 느껴진다. 전자제품이나 CD, 책 등의 출판물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 영국 출판사는 미국이나 캐나다 등과 동시출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똑같은 책도 영국에서 19.99파운드(약 3만8000원)이면 미국에서 34달러(약 3만1000원) 이런 식이다. 재밌는 것은 영국에서 출판된 책도 홍콩이나 태국 등 이 책을 수입하는 곳에서 영국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다는 것.

흔히 런던 물가에 붙는 수식어 ‘살인적’이라는 말이 전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취향이 모두 제각각이듯, 물가도 상대적이다.

아무리 런던이 비싸다고 하더라도 한국보다 싼 품목도 찾아보면 꽤 있다. 예컨대 스타벅스 같은 테이크아웃(영국에서는 takeaway라고 하는) 커피 가격은 보통 1.5파운드(약 2800원)을 넘지 않으니, 4000~5000원짜리의 ‘가공할’ 가격의 커피에 익숙해져있는 서울시민들에게 런던 커피는 참 ‘싼’ 것이다. 서울은 유난히 ‘허영’을 자극하는 품목의 가격이 비싼데 의류가 대표적이다. ‘H&M’과 같은 유럽의 중저가 의류브랜드도 서울만 들어가면 명품으로 둔갑하고 하는데 때문에 이러한 시세 차익으로 ‘보따리 상’ 비즈니스가 활개를 치기도 한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한국에서 나올 때는 말보로를 잔뜩 가져오고 들어갈 때 버버리 몇 벌 가져가면 비행기 값 정도는 금방 뽑는다”라고도 한다.

체감 물가가 상대적인만큼, 이 물가를 비교하려는 시도도 다양하다.

가격비교사이트인 프라이스러너(pricerunner.co.uk)는 이달 12일 세계 29개 도시의 26개 주요 소비재를 가지고 비교를 한 결과 런던이 평균보다 38% 비싸며 29개 도시 중 노르웨이 오슬로에 이어 2번째로 비싼 도시라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기 X박스는 뉴욕(178.63파운드), 도쿄(161.73파운드)인데 반해 영국에서 269.66 파운드를 줘야 살 수 있다. 이외에도 런던은 영화표 한 장이 8.9파운드, 런던에서 20개피 말보로 담배 한 값은 평균 5.33파운드 등이 비싼 항목으로 뽑혔다.

보다 다양하고 폭넓게 조사하는 물가 비교에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조사가 있다. 올 3월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132개 도시의 177개 소비재를 비교해 물가를 비교했는데 역시 1위는 노르웨이 오슬로, 2위 프랑스 파리, 3위는 덴마크 코펜하겐이었다. 런던은 작년 7위에서 4위로 뛰어 올랐는데 이로서 런던이 일본 도쿄를 제쳤다는 것이 이 곳 언론들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직도 “도쿄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로 알고 있는 유럽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런던과 북유럽의 물가가 이처럼 비싼 것일까.

이코노미스트는 파운드화와 유로화의 강세, 주택가격 상승 등을 그 주요 원인으로 들었다.

실제 미국과 일본 도시들의 물가는 최근 수년간 꾸준히 내렸는데 달러화와 엔화 약세의 힘이 크다. 미국의 일부 도시들은 이제 개발도상국보다도 물가가 싸졌을 정도. 아틀란타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중국의 선전보다도 물가가 쌌다.

런던은 물가가 비싼 만큼 임금도 당연히 비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도 영국 런던의 ‘삶의 질’이 결코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모두들 비싼 물가를 투덜대며, 비싸지만 형편없는 런던 외각의 플랏(flat. 아파트와 같은 뜻이지만 보통 2~4층 짜리 집의 한 층을 뜻한다)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차나,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것이 일반적인 런더너들의 삶이다.

세계에서 가장 받기 쉽다는 ‘모기지’ 덕분에 집값의 최대 90%가까이까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서 지난 10년간 런던 집값은 평균 3배나 뛰어 올랐는데 이제 런던도 ‘집값 잔치’는 끝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최근 현지 언론들은 영국 집값이 내리기 시작했다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처럼 영국에서 터지면 훨씬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팍팍한 삶에 지쳐 영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이민 간 영국민의 숫자가 1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국립통계청(ONS)은 15일 지난해 영국에서 다른 나라로 떠난 이민자가 40만 명이라고 밝혔다. 이중 영국 국적이 20만 7000명. 영국 국적 이민자가 20만 명을 넘어선 것은 1914년 이전까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서 미국으로 대규모 이주한 이후 처음이다. 영국 공공정책연구소(IPPR)의 최근 조사에 따라도 앞으로 5년 내 이민을 가겠다는 영국민은 100만명에 이르렀다.

많은 영국인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물가에 높은 세금과 집값, 비싼 치료비에 질렸다. 떠나는 게 상책”이라고 말한다. 반면 영국에 유입되는 동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이민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필자가 다니는 골드스미스 대학의 한 강사는 사석에서 뜬금없이 “영국 집값은 폭락하고 아시아 경제는 더욱 잘 됐으면 좋겠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10년 넘게 일을 하고 있지만 런던에서 집 살 엄두를 못 내겠다는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런던 북동부 외곽의 월세 700파운드(약 132만원) 짜리 플랏에 살고 있다. 런던의 투베드룸(침실 2개) 플랏 중에서는 거의 최저 가격이라 할 수준이다. 학교까지 출근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싼 플랏을 구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영국 대학들은 최근 아시아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보내고 있는데 무엇보다 아시아 학생들이 내는 학비가 영국이나 EU 출신학생들에 비해 서너 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결국 아시아 경제가 잘돼야 더 많은 학생이 영국 대학에 돈을 갖다 줘 그의 직업의 안정성과 수익성은 높아지고 영국 집값은 떨어져줘야 그 동안 집을 안 산 ‘열패감’에 시달렸던 그에게도 기회가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였다.

최근 서울 물가도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온다. 특히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은 세계 최고 수준인 런던에 비해서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괜찮은 직장에서 십년 넘게 일해도 내 집 한 칸 장만하기 어려운 것이 이 희한한 두 도시의 썩 반갑지 않은 공통점인 듯 하다.

카테고리 : 런던이야기

댓글(2) 런던은 왜 비싼가.

  1. 이린 says:

    런던에 대한 이모저모 정보를 덕분에 잘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Pingback: pc registry cleaning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