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사거리 운전학원 어디갔어?

서울 강남역에 있는 운전면허 학원에 4일간 다니고 운전면허를 하루 만에 다 딴 뒤 이 틀 연습하고 2주도 안돼 차를 몰고 거리에 나섰다.”

82년생 이상들은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이 뻥 치시고 있네생각하시겠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1990년 겨울 저는 서울 강남역, 아래 지도의 동그라미 부근에 있던 서울 삼일 운전학원에 20 타임을 수강할 수 있는 쿠폰을 끊었습니다.

 

당시 시험제도는 필기-코스-주행 세 단계로 이뤄져 있었는데 필기 시험은 그냥 아무 문제집이나 사서 풀면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불합격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성의 있게 공부하면 대부분 붙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스 시험은 땅바닥에 S, T자 모양으로 금을 그어놓은 위에서 S자는 선을 밟지 않고 통과하면 합격, T자 역시 선을 밟지 않고 차를 전진과 후진으로 돌려 나오면 합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행은 육상트랙 같이 생긴 길을 한 바퀴 도는 것이었는데 시작해서 횡단보도에서 한번 서고, 언덕에서 잠시 정차 후 다시 출발, 내려오면서 울퉁불퉁한 요철 길을 최대한 차가 흔들리지 않게 통과한 뒤 골인 지점에 들어오면 합격을 주는 시험이었습니다.

당시에 오토면허는 없었습니다. 시중에 팔리는 차도 대부분이 수동, 시험도 모두 수동이었기 때문에 주행시험의 언덕 코스에서 차가 뒤로 밀려서 불합격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시 강남역으로 돌아와서,

지금 아직도 그 위치에 있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땅값 비싼 운전학원이 됐을 그곳에서 저는 20회 쿠폰 중 8회 정도 강습을 받고 무작정 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결과는 필기 합격, 코스 합격, 주행 합격 끝. 필기는 70점 이상 합격에 82점을 받았고, 코스는 금 안 밟고 잘 빠져 나왔고 컴퓨터가 점수를 측정하는 주행에서도 40점 만점에 40점이 나왔습니다.

요철에서는 감점을 면할 방법이 없다고 학원 강사들이 누누이 강조했음에도 어떻게 만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한 바퀴를 돌고 골인 지점에 들어올 때쯤 ‘00점 합격입니다’ ‘00점 불합격입니다라고 안내해주던 장내 아나운서의 점수 발표가 있자 대기하던 응시생들은 마치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팀이 한국시리즈에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휘파람을 불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면서 박수를 쳐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정감 있는 그림이었죠.

하여튼 그래서, 운전면허증이라는 걸 2주도 안돼 손에 넣었지만 차를 몰고 거리에 나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만 그랬던 게 아닙니다. 당시 운전면허증을 받은 어느 누구도 그 상태로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다시 운전면허 학원으로 갔습니다.

“20회 쿠폰 중 아직 12회가 남았는데, 이걸 도로주행 연수에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학원에서는 그 쿠폰은 코스 강습 전용이라도로 주행은 따로 돈을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때가 어느 땝니까. 지금이야 사람들이 정찰제도 잘 따르고 값도 잘 안 깎지만,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니?” 분위기였습니다.

나 같은 어린 놈이 무슨 돈이 있냐” “도로 주행 안 해줄거면 12회 쿠폰 환불해달라한참 동안 징징댔더니 결국 그렇다면 도로 연수 2회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2회도 그냥 연이어서 4시간 가까이 하루에 다 타 버리고, 그 뒤로는 그야말로 제대로 차를 몰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3주도 안돼 벌어진 일이라면, 요즘 운전면허 따시는 분이나 준비하고 계신 분들, 믿으시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죠, 요즘 면허, 특히 오토면허로 따는 초보 운전자와 당시 오로지 수동으로만 운전을 배워서 수동으로 운전했던 초보 운전자와 비교하면 과연 누가 운전 내공이 더 높을까요?

조선시대 선비와 지금 대학 교수 중 누가 붓글씨 더 잘 쓰냐 비교하는 거 같아 안타깝고 이런 생각하는 저도 나이든 것 같아 슬프지만,

아무래도 강남역에서 운전 배워서 3주만에 수동 차 몰고 다녔던 사람이 지금 한~참 동안 교육받고 도로주행한뒤 자동변속 차량 몰고 다니는 운전자 보다 한 수 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요즘 자동차 회사 가격표 보면 어떨 때는 한 숨이 나옵니다.

조금 급이 높다 싶은 차 중에는 아예 수동변속 트림이 없고, 쉐보레 올란도 같은 차종은 시판 초기에 수동변속 모델을 잠깐 판매하다가 수요가 없으니까 수동변속 모델을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요즘 자동차는 뭐랄까, 사람과 호흡하는 기계 장치라기 보단 전자오락, 게임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언덕길에서 미끄러지는 차, 신호등 맨 앞줄에 서면 식은땀 흘리는 운전자, 파란 불 켜지자마자 말 뛰듯 꿀렁대가 시동 꺼지는 차는 안 보이지만 자동차와 운전자와의 관계는 멀어졌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나는 자동차와 직접 대화하고 싶은데, 변속기라는 놈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내가 한 말을 차에게 전하고, 내게 직접 안 들리는 차가 한말을 나한테 전하며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막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내가 차에게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는지, 변속기를 통해 내게 전해주는 이 느낌이 실제 자동차의 성능이 맞는지..

평소 충성스러우면서도 가끔씩 희번덕이는 눈빛이 섬뜩한 환관을 밑에 두고 있는 왕처럼 언제나 왠지 한쪽 뒷골이 땡깁니다.

me2day

댓글(6) “강남역 사거리 운전학원 어디갔어?”

  1. 냉면원샷 2012-02-08 at 9:49 pm #

    재밌슴다. 오랜만이시네요 홧팅

  2. 전지석 2012-02-08 at 9:59 pm #

    99년에 면허를 땄으니 뭐 그리 이른 나이에 딴 건 아닙니다만…많이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그때도 1톤 트럭 매뉴얼 스틱에 손을 얹으면 떨려오는 엔진의 힘이…뭐랄까…

    차하고 내가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그런게 있었죠

    아바타로 치면 샤헤일루 하는 거죠..ㅋㅋ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3. 이학은 2012-02-09 at 2:50 pm #

    저보다 늦은 면허군요..전 86년강남면허시험장면허 전 학원도 안가고 필기는 님처럼 시험책한번읽어보고 92점 실기는 코스만 면허시험장주변에서 개인적으로 지도해주던 사람들에게 배워서 통과 개인지도한다는 사람들은 배우는 사람 있음 자기차에 태워서 한강변 한적한곳에서 가르쳣죠 땅에 선그어놓고 ㅋ 지금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 그래도 일종면허 따느라 에스 코스는 통과한뒤에 다시 뒤로 한번 더 통과 해야 하는 난이도 가 있엇네요 주행은 먼저 탄사람들 이야기만 듣고 시험삼아 타봤는데 합격 ㅎ 그리고 시내주행연습도 없이 일주일뒤 면허 나오자 마자 장안평 가서 중고차 구입 .. ㅋ 내가 생각 해도 .. 대단

  4. 이학은 2012-02-09 at 2:57 pm #

    중고차 구입후 진땀난 이야기 한마디 차를 운전하고 집엘 가는데 차가 기어일단 이단에서는 잘 나가다가 삼단만 넣으면 쿨렁 쿨렁 …. 첫운전에 식은땀 나는데 차를 일단 세우려 길가로 가서 세우고 사이드 올릴려는데 보니까 사이드 올린채로 운전 하고 있더란 황당한 말씀 . . ㅎ 기막힌 첫경험 이엿네요

  5. 정세연 2012-02-09 at 8:16 pm #

    와.. 옛날 생각이 나는 글이군요.
    그 운전 학원 강사를 95년부텉 99년까지 4년간 했던 사람입니다.ㅎㅎㅎ
    지금은 송파구 장지동으로 이사 갔지만 참….
    잘 보고 갑니다

  6. 달잰 2012-03-01 at 8:02 am #

    ㅎㅎㅎㅎㅎ 반갑네요. 저도 강남역 그 운전학원에서 배워서 면허 땄거든요.^^
    저는 그 쿠폰 다 쓰고 또 추가쿠폰 끊고 강사들에게 완전 무시당하면서 다닌
    학원 전체의 최고 열등생이었거든요.

    하도 겁이 많아서 그로부터 10년넘어 서울외곽으로 이사가서야 운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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