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기업 9년차 워킹맘의 이야기

  오늘 제가 자주 들어가는 동네 엄마들 인터넷 카페에 충격적인 글이 올라왔습니다. 대기업 입사 9년차, 대리라는 한 기혼 여성의 글이었습니다.

 

  9년차면 보통 웬만한 대기업에서는 과장 직급을 달 연차입니다. 한데 아직까지 대리 직함을 달고 있는 것은 지난해와 올해에 이은 한 사건(?) 때문입니다.

 

  지난해 이 여성은 임신을 했습니다. 첫 아이였기에 무엇이든 조심스러웠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매달 1~2주는 해외출장을 가야하는 직무였고, 팀원들 모두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 상황. 아무도 반기지 않을 임신이 그녀 역시 편할 리 없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해외출장은 면제 받았지만, 그 대신 밥도 못 먹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일상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결국 병원에서 ‘조산기’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휴직을 권고 받았지만, 차마 회사 눈치가 보여 약으로 버텼다고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출산을 코앞에 둔 37주차, 마지막 정기검진을 간 날 “아기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고생에도 불구하고 이제 곧 내 새끼 품안에 안아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불과 20분 전까지만 해도 뱃속에서 이리저리 태동하던 태아의 심장이 멈춰있단 겁니다. 부랴부랴 촉진제를 맡고 유도분만을 했지만, 이미 아이는 죽은 뒤였습니다. 한 번도 품안에 얼러보지 못한 아이를 묻는 날, 하늘에선 추적추적 비가 왔답니다. 잊지 못할 그 날을 뒤로 하고,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유산휴가 두 달 반만에 복직했습니다.

 

  눈코뜰 새 없는 1년이 지났습니다. 다행히 그녀는 지금 또 다른 아기를 잉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팀장이 그녀를 조용히 부르더랍니다. “평가 넘겼는데 O대리 작년 사산휴가랑 내년 출산휴가를 걸고 넘어지네. 확실한 건 아닌데 올해도 힘들 수 있겠다”고요.

 

  끝내 기업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그나마 처우가 낫다는 대기업에서조차 워킹맘들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이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현실은 더 기가 찹니다. “전 10년째 대리다” “임신 사실 알리자 일단 ’자진 야근 참석’ 서약서부터 쓰라더라” “육아휴직이 아니라 출산휴가를 썼다고도 인사불이익을 당했다” 등등.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주요 과제로 외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육아기 단축근무 연한을 2년으로 확대하고 분할 사용도 최대 3회까지 가능하게 하는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육아휴직을 하지 않은 만큼 사용할 수 있는 단축근무의 활용폭을 넓힌 겁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여성의 예처럼 실질적으로 일반 기업에서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용자’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모든 직원들이 정시 출퇴근하는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기업에선 직원들의 야근과 출장이 상시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단축근무는커녕 육아휴직, 심지어 법정 출산휴가까지 못 받는 여성이 수두룩합니다. 인터넷에서는 회사가 대놓고 인사불이익, 더 나아가 해고를 운운한다는 워킹맘들의 하소연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여성이 단축근무를 활용할 수 있을까요?

 

  ‘사실 육아휴직이든 유산휴가든 어쨌든 휴직이면 회사 일을 쉰 것이니 어느 정도의 인사 불이익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릅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 역시 두 번의 육아휴직을 거쳤지만, 집안에 있었던 2년여를 취재현장에서의 2년과 등가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도 이를 똑같이 여겨달란 게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의무를 수행하고 온 만큼, 단순한 공백과는 달리 처분해달란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쉰 만큼 마이너스’ 혹은 ‘아웃’입니다.

 

  국가는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지만, 대한민국 워킹맘의 상황은 이토록 참담합니다. 제 주변에도 과도한 업무 때문에 유산의 위험에 내몰렸다 가까스로 소중한 아기를 맞은 여 선배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열 달간 품었던 아이를 시신으로 마주한 사례자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저는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런 여성들이 결국 일을 관두고, 올 4월 기준 200백만 명 ‘경단녀(경력단절여성)’에 합류하겠죠. 일과 육아 병행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그를 가능케 할 제반 구축, 이런 것들이 언제쯤이나 이뤄질 수 있을지 요원하기만 합니다.

카테고리 : 이 기자는 육아휴직중

댓글(1) 어느 대기업 9년차 워킹맘의 이야기

  1. 서영주 says:

    대기업의 협력사로 있는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정말 힘듭니다. 다른 건 둘째치고 월급이 너무 적어요. 여성 직장인의 경우 월급이 정말 적습니다. 여긴 특성상 여성들이 더 많이 근무하는 곳인데 평균 월급 자체가 적죠. 저 같은 경우는 제가 가장인데, 가장 월급으로는 턱도 없는… 복지는 꿈도 안 꿔요. 그저 월급만이라도.. 요즘은 저와 같이 한부모 가족이 많은데, 아이 둘과 함께 하는 생활비로는 턱도 없어요.. 여성=가장 이라는 현세태는 전혀 반영되지 않아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