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의 함정수사

  얼마 전 경찰이 성매매 남성을 가장해 성매매 여성을 잡으려다 여성이 모텔 창문으로 추락사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함정수사’라는 비판이 일어 이슈가 되었는데요. 최근 서울시교육청의 ‘유치원 중복 지원 제한’ 건을 지켜보며 제 머릿 속에 떠오른 말이 다름아닌 이 ‘함정수사’입니다.

 

  제 앞선 글에서 보셨다시피 서울시교육청은 유치원 지원을 3주여 앞둔 11월 초, 갑자기 “아이당 지원을 3회로 제한한다”는 이른바 ‘가나다 군’ 안을 발표했습니다. 서울시 전체 유치원을 가, 나, 다 세 군으로 나눠 각 군당 한 곳씩 총 세 곳만 지원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학부모와 유치원, 행정기관들의 불편을 줄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교육청이 군 선택을 각 유치원의 자율에 맡기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유치원들이 특정 군에 쏠린 겁니다. 한 동네에 다섯 곳 있는 유치원 가운데 가 군이 네 곳, 나 군이 한 곳인 식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없는 유치원, 들어갈 기회마저 줄어든 셈이 되자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이에 시교육청은 부랴부랴 “군을 분산하고 3회 지원을 4회로 늘린다”고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교육청의 개선안은 추첨일자를 4개 두고 4일(사립 가군), 5일(사립 나군), 10일(사립 다군 또는 공립 가군), 12일(공립 나군)에 각 1회, 총 4회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거였습니다. 일단 ‘가나다 군은 살리면서 날짜별 4회 지원’이라는 조삼모사 같은 개선안에 학부모들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미 유치원들의 입학설명회는 끝났고, 이 개선안을 명확히 학부모들에게 전달할 통로도 없었죠. 그러니 필연적으로 여기저기서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가나다 군은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어진 것” “그냥 네 곳 지원하면 되는가 봄” 등 육아카페에는 확인되지 않은 낭설과 댓글이 떠돌았습니다. 결국 일주일도 안돼 유치원 원서접수 날짜가 되었고, 많은 학부모들이 개선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지원 접수가 다 끝난 마당에 교육청은 “중복지원을 엄중히 제한한다”고 밝혔습니다. 교육청의 중복지원 제한이라 함은 4, 5, 10, 12일에 추첨하는 유치원 가운데 하루에 두 곳을 지원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다른 날짜야 크게 헛갈릴 일이 없지만 사립 다 군과 공립 가 군이 함께 추첨을 하는 10일이 문제였습니다. 가, 다로 서로 다른 군이기 때문에 중복지원이라 생각지 못한 겁니다. ’실상 중복지원 적발 어렵다’는 기사 및 소문을 듣고 모험을 한 학부모들도 꽤 있을 겁니다. 제가 사는 동네만 해도 10일에 사립 다 군 유치원 두 곳과 공립 가 군 한 곳, 총 이렇게 세 곳이 몰린 탓에 중복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선택권이 확 줄어드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원 접수를 다 마친 지금에 와서 시 교육청이 엄중단속을 천명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지청들에 ‘지원자 명단을 모두 받아 중복지원자를 색출한 뒤 올리라’고 주문했다 합니다. 그제야 부랴부랴 개선안의 내용을 적확히 찾아본 학부모들은 그야말로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습니다. 바뀐 개선안에 조마조마해 하며 겨우 지원접수를 했는데, 유치원 추첨은커녕 문턱도 못 가보고 떨어질 처지에 놓였습니다.

 

  교육청 입장에서는 “초기 개선안부터 단속 및 처벌을 이야기했다”고 억울해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작 몇 만 원 범칙금 내는 법이라도 발표 후 언론과 플래카드 등을 통해 충분히 알리고 계도기간을 거치는 등 시민들에게 숙지의 시간을 줍니다. 그런데 한 아이와 부모의 3년 인생이 걸린 유치원 지원안을 3주 전 바꾸고 제대로 공시할 시간조차 갖지 않은 채 이제 ’법대로 처벌하겠다’니요(신문기사 및 지청 홈페이지로 계속 공고되었다는데,  영유아 여럿에 직장맘이라면 정말 신문 한 자 들여다 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이게 함정수사(아니 함정단속?)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그렇다고 개선안을 숙지해 법을 지킨 학부모들만 불이익을 받게할 순 없으니, 교육청은 이제 정말 난감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현재 자주 들어가보는 육아카페 한 곳에만도 10일 중복 지원을 했단 게시글이 여럿인데, 정말 교육청은 이들의 추첨권을 모두 박탈할 수 있을까요? 만약 박탈하지 않는다면, 법대로 지원횟수를 제한받았다 떨어진 학부모들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요? 교육청에 과연 솔로몬의 해법이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카테고리 : 이 기자는 육아휴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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