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절 의심하시는 거예요?”
11월 16일 신촌의 한 미용실, 손님 서너 명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트리트먼트 시술과 펌을 함께 해야만 머릿결이 상하지 않는다’는 미용사 선생님 말씀에 그 이유를 여쭈었던 것뿐인데. 쉬이 풀리지 않는 궁금증 때문에 질의응답이 40여 분간 계속됐고, 급기야 미용사 선생님을 화나게 만들고 만 것이다.
“제가 못 미더우시면 디자이너 바꾸셔도 돼요.”
“아니에요. 전 그냥 궁금해서 계속 여쭌 건데…”
한참 내 진의를 설명한 후에야 미용사 선생님의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삶에서 이런 일은 부지기수다. 식당에선 음식 맛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옷가게에 가면 옷의 시시콜콜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알려하고, 은행에 가면 모르는 단어와 상품을 죄다 탐문한다. 그러면 대부분 상대방은 불편해한다. “왜요? 뭐가 잘못됐나요?” 아뇨, 난 그저 단순하게 궁금했을 뿐인데요. 나의 행동이 남들과 다르게 유별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기자 준비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때?”
2006년의 끝자락, 한 지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을 때 그 남다른 ‘유별남’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쩌면 학창시절 때부터 꾸준히 학보사, 방송부에서 활동해온 것도 나의 미래를 예시한 것일지 몰랐다. 당장 대학원에 휴학계를 냈다. 나의 언론고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은 막막했다. 학보사 경험이 있다고 해도 애초에 ‘out of 안중’이었던 기자직에 도전하려니 배운 것도, 일궈놓은 경력 하나도 없었다. 난 심지어 앵커(아나운서)와 기자를 구분하지도 못했다. 무작정 아나운서 아카데미로 향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기사 리포팅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을 주긴 했지만, 리포팅 면접에 앞서 통과해야 할 필기시험엔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리포팅 실력 향상이란 것도 비용 대비 미미한 것이었다. 3월쯤 아카데미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의 아랑 카페를 찾았다.
<스터디 중>
일반적으로 언론고시 초입엔 아랑 카페를 통해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스터디를 꾸리게 된다. 나 역시 그랬는데, 처음 몇 번은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온라인상에서 서로의 실력을 검증한다는 명목 하에 논작문을 돌려보긴 하지만, 직접 만나보면 온라인에서 기대한 실력과 페르소나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언론고시 경력이 쌓이다 보면 양질의 스터디 문이 열린다. 나의 경우 운 좋게 첫 시험이었던 Y사 공채에서 최종단계까지 올라감으로써 단시간에 그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2007년 Y사 공채는 그야말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운 좋게 준비했던 논술 주제가 나와 필기시험 통과, 1차 면접 때는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배운대로 리포팅 원활히 수행해 통과, 실무단계에선 연습 삼아 본다는 기분으로 당당히 임해 제법 좋은 성적을 받았다. 밑천 부족으로 결국 최종 낙방하긴 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난 언론고시에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다. 준비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최종이라니. 별 것 아니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것이 터무니없는 자신감임을 알게 된 것은 이어진 연이은 필기낙방 때문이다. Y사 이후 치러진 공채 가운데 필기를 통과한 시험은 단 하나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H사 1차 필기 통과가 있지만, 상식시험이었으므로 논외. 면접만 간대도 어떻게 승부수를 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라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낙방, 낙방, 낙방 성적표를 받다보니 어느덧 연말이었다. 부모님은 물론 친지, 학교 친구, 선후배 모두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것이 재수생이라는 거구나. 내 인생에 재수란 없다고 자부해왔었는데, 오만이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은 겨울방학을 맞으며 난 마음가짐, 몸가짐을 새로이 할 필요성을 느꼈다. ‘새해 필기 all통과!’ 새 목표를 세웠다. 그에 걸맞게 빡빡한 일정표를 짰다. 열심히 하고 실력도 좋은 지인들 중심으로 스터디 3개(온라인 1개, 오프라인 2개)를 구성하고 매주 논작문 4개 이상, 그 중 2개 이상 다시 쓴다는 계획이었다. 한 주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자는 다짐도 했다. 물론 이 다짐은 2달도 못 가 유야무야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내 나름의 압력을 가한 덕에 꽤나 많은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사회과학 서적부터 소설에 이르기까지,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학부 전공이 사회학과 역사학이었던 것은 정말 크나큰 축복이었다. 기본 지식을 숙지한 덕에 웬만한 사회과학 서적은 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교양서이든 소설이든 인상적인 문구나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꼭 개인수첩에 메모했다.

<공채시험과 스터디 일정으로 가득 찼던 책상 앞 달력>
신문도 더욱 꼼꼼히 보기 시작했다. 수첩을 따로 준비해 논작문 쓸 때나 토론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었다. 스크랩하지 않고 굳이 속기한 이유는, 적으면서 한 번이라도 더 되새기기 위해서다. 내가 구독하는 신문 두 개 가운데 하나는 매주 논술 섹션을 발행했는데, 내용이 괜찮아서 꼭 모아두고 틈틈이 논술로 풀어보았다. 여러 주제를 접할 수 있는 데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환기하는 기회도 돼 좋았다.
스터디원들과 함께 한 토론 역시 큰 도움이 됐다. 첫 해와 달리 준비 2년째가 되면 아는 사람도 늘고 내 실력도 ‘중후’해져 금세 좋은 스터디를 구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스터디 3개를 구했는데 구성원들 모두 경력자에 열심인지라 토론을 하면 다양한 아이디어와 격론이 쏟아졌다. 보통 주제는 이전 시간에 정하고 발제자를 뽑아 그가 올린 발제에 맞춰 하루 정도 토론할 내용을 준비했다. 다양한 시사문제에 대해 나의 입장을 정립하고 논리를 연마하는 데는 이만한 속성법이 없었다. 나의 경우 모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 시민논객과 신문사 인턴, 시사 잡지의 모니터링 요원도 겸하면서 더욱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필기시험뿐만 아니라 1, 2차, 최종 면접에서 떨지 않고 조리 있게 말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신문사 인턴동기들과 함께>
그렇게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자 슬슬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필기에 붙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최종에서 낙방하는 일은 여전했지만, 지난해와 달리 무려 5개 회사의 최종시험에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에서 난 드디어 꿈에도 소망해마지 않던 기자 명함을 달게 된 것이다.
 

<2008년 동아일보공채 최종합격자들과 함께 (기자+사원)>
내게 최종합격의 기쁜 소식을 전해준 동아일보. 비교적 ‘빡센’ 전형과정을 자랑하는 언론사다. 일반적으로 언론사 공채는 자기소개서-필기시험(논작)-1차 면접-실무평가 및 합숙-최종 면접의 순서를 거치는데, 이 중 실무평가 및 합숙이라는 4단계 시험이 각 사 공채의 밀도를 결정한다. 동아는 이 4단계가 총 5일에 걸쳐 진행된다. 사흘 실무평가에 이틀 합숙이 이어지는데, 그동안 수험생들 간에는 물론 평가자와도 꽤나 돈독한 인적교류가 오간다. 일단 최종까지 올라오면 회사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합격의 비법? 글쎄, 굳이 말하라면 답은 하나다. ‘내가 가진 전부로 임하라.’ 내가 갈고 닦은 지식과 기술을 전부 쏟아 부어야 함은 물론이요, 그 못지않게 나라는 사람, 꾸밈없는 나 그대로의 모습 전부를 보여주라는 말이다. 내가 A라는 사람이면 그 A의 전부를 장단 모두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괜히 언론사 논조에 맞추고자 어색하게 둘러대고 좋은 사람인양인성을 치장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이번 공채 합격자들도 최종면접에서 (세간에 알려진)회사 논조와 상반된 주장을 했다고 한다. 인성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솔직하게 임한 결과, 이 자리에 서 있다.

<연수기간 중 신문배달 체험>
결국 언론사 공채 합격의 길에 왕도란 없다. 물론 햇수로 2년이라는 길을 돌아온 나와 달리 첫해에 고속도로를 탄 동기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라고 해서 대단한 비법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시사에 관심 많고 책 꾸준히 읽었고 성실하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 역시 기본적으로 호기심 넘치고 사회문제에 관심 많고 무언가를 읽고 쓰는 게 즐거운 사람이었다. 그런 밑바탕을 최선으로 끌어올리자 기자의 문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뛰어들었지만, 준비하는 동안 나에게 꼭 맞는 옷임을 알게 됐고 누구보다 예쁘게 입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 믿음, 자신감 덕에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다. 힘들고 치칠 때면 늘 떠올렸던 말이 있다. ‘언젠간 꼭 기자가 될 거잖아. 넌 아직 도착하지 못한 것뿐이야.’ 그 말을 믿고 계속 걸었기에,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 여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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