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한 낮은 뜨겁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느낌을
받습니다.해질 무렵의 느긋한 피서를 즐기는 계절이 다가 왔습니다. 한 동안 지난 5월의 행사를 마무리 하기 위해 연 사흘
아침 마다 우체국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우체국” 이라는 단어는 나에겐 참으로 오래된 기억의 한 조각
이다.
할아버지는 왕년에 인천의 우체국장 이셨고, 외할아버지는 강화도의 우체국장
이셨다.
내 기억엔 전혀 없는 그 시간은 일제에서 해방된 직후였으며 당시 우체국장이면 그 지방의
유지였다고 한다.
우체국장 끼리 만나셔서 아들 딸 혼사를 마무리
지으셨으니…
그런 우여곡절 끝에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우체국이라 하면 구수한 시골 넉넉한 인심을 떠올리며 마음이
푸근해진다.
시골 신작로 한 코너에 있는 작은 벽돌 건물에 나무팻말을 달고 서 있을 법한
우체국.
우체국 뒤로는 소나무 우거진 뒷동산이 보이고, 작은 골목길 사이로 돌담도 보이고 반 쯤
열린 대문을 연상케 하는 우체국 가는 길.
초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우편 배달 아저씨의 친절한 모습이 각인 되어서인지 우체국
직원들은 모두 친절하기만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든다.
요즘은 사무실에서 DHL 이다 TNT 다 하며 전화통을 들기만
하면 편하고 빠르게 부칠 수도 있지만,
하지만 시간을 내서 우체국을 가는 것이 우편물을 받는 편에 성의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우표딱지 받아 주섬주섬 봉투에 붙이는 기분도 우편물을 부치는 입장에서는 제법 기분이
좋을 것이다.
우체국 방문 첫날,
아침인데 역시 예상대로 우체국 문 밖 길가까지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이용자들이 많구나…
맞아. 요즘 세금 신고기간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세금 신고서를 들고 서
있었다.
모두들 묵묵히 줄을 서서 감정 없는 눈길로 무표정하게 창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바쁜
손놀림을 바라 보고 있었다.

우체국 안쪽 한 가운데에 누르면 번호표를 뱉어 내는 기계는 우째 조용히 잠자고
있었다.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기계 쪽으로 가서 때 묻은 버튼을 한번씩 눌러
본다.
그러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옆 사람이 한마디 한다.
그 기계 작동 안 해.
그래?
무안해진 사람들은 창구직원들을 힐끗 흘겨 보곤 주둥이를 내밀며 투덜거리며 우체국 밖의
긴 줄 뒤로 돌아 간다.
우체국 출근 첫날에 나는 오랜 기다림 끝에 기쁜 마음으로 드디어 봉투 하나를 프랑스
파리로 부쳤다.
우체국 가는 둘째 날 아침이 되었다.
오늘도 역시 작은 전쟁을 치르러 가는 기분 이었다.
도착하자 진작에 긴 줄 맨 뒤에 가 섰다.
아예 한 시간 정도는 서 있을 각오를 한 탓에 한결 기분이
낫다.
어제는 우체국 방문이 오랜만이라 얼떨결에 한가지를 잊고 왔었다.
우체국 직원에게 빈 봉투를 여러 장 달라 하는 것을 잊었기에 오늘은 잊지 말고 달라
해야지 하면서 긴 줄을 잇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 갑자기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 온다.
번호표 기계는 왜 작동 하지 않냐?
손님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손님들을 꼼짝 못하게 마냥 세워 놓고
있냐?
번호표 기계가 고장 났느냐? 아니면 느그들이 꺼 놨냐?
직원 왈,
기계가 고장 나서 그렇다. 고치라고 했는데 아마 오늘 중에
고칠꺼다.
진작에 고치지 이게 머냐?
왈가왈부 하는 아줌마 얼굴을 보니 따져 봐야 개선 될 것도 없을텐데 그저 심통 한번
부려 봤다는 표정이다.
그래 봐야 일만 더뎌지고 기다리는 시간만 더 연장 될 뿐이라는 시쿤둥한 사람들의
표정이다.
드디어 오랜 인고의 시간 끝에 내 차례가 왔다.
봉투 5개만 더 주라.
여기 있다. 모두 5유로다.
한꺼번에 계산 할께.
아니다. 봉투 값 먼저 내라.
그리고 이거 한국으로 부칠꺼다.
알았다. 보통으로
보낼꺼냐?
그래 보통으로 보내
보통이나 급행이나 내 생각엔 같은 날짜가 걸릴 것
같았다.
그렇게 원 하는 대로 일을 잘 처리하고 우체국을
나왔다.
내일은 우표 딱지만 붙이면 되겠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빈 봉투 몇 개 들고
부랴부랴 회사로 차를 몰고 출근 했다.
봉투를 완성해서 세 번째 같은 아침 시간에 우체국으로 출근
했다.
차를 대면서 우체국 대문(?) 쪽을 보니 늘상 있던 긴 줄이 안
보인다.
옳다구나 오늘은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 일찍 마치겠구나
싶었다.
우체국에 들어가 보니 번호표 기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버튼을 꾹 누르니 번호표 하나가 미끄러져 나온다.
095 번.
창구 번호를 보니 042 번.
아이쿠야! 53명이나 내 앞에..!!
어제 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할 판이다.
번호표를 쥔 사람들은 우체국 밖에서 마치 개미 쳇바퀴 돌듯 하릴없이 빙빙 돌고
있었다.
갑자기 생긴 이 공백의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할 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할 일 없는 사람 마냥 나도 우체국 근방 50 미터를 벗어 나지 않고 주위를
맴 돌고 있었다.
가만 보니 평소에 지나치던 건물들이 눈에 들어 오고, 길가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어린이 무용학원을 알리는 예쁜 꼬마 여자아이들이 무용 연습을 하는 큼지막한 선전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흐음. 어여쁜 딸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는 욕심 내 볼 만한
일이야…
시간이 남아 차 안에 들어가 음악방송도 듣다가 시간이 되어 우체국 안으로 들어
갔다.
한 켠에 서서 많은 흰 봉투에 일일이 도장 찍고 있는 사람은 연 3일 째 나와 같은
시간대에 우체국으로 출근하는 사람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눈에 익은 한 아줌마를 보았는데 어제 큰소리 치던 아줌마
다.
그 아줌마도 표를 뽑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반가운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웃음도 나온다.
얼굴 붉히는 일이지만 그저 큰소리 한마디 해야 무언가 개선이 되는 사회이니 참으로
민중의 소리는 질러야 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체국 방문이 세번째라 오늘은 제법 여유 있게 일을 처리 했다.
보통으로 부치면 며칠 걸리는데?
1주일 걸려
빨리 가는 건 며칠 걸리는데?
express 는 3일이면 가.
3 일씩이나? 가격은 얼마나 하는데?
조금 비싸. 영국은 5유로, 네델란드는 4유로 50센트
(보통 과 가격차이가 별루 없네?)
그럼 빨리 가는 걸루…
……………….
이렇게 3일에 걸쳐 우체국을 출근하면서 제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하였습니다.
한국 같았으면 한번이나 혹은 두 번에 끝날 일을 저는 3번이나
열심히 가야 했습니다.
제가 외국인이니까 실정에 어두워서 그랬다면 이해 할 수 있겠으나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들도 한번에 깔끔하게 일이 끝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봉투를 미리 받아 완성한 우편물에 우표 딱지 사서 붙이면 되는 일을 기인 줄에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다양한 경우의 일들이 세분화 되어 다양하게 처리 되지 않아
그렇습니다.
하여튼 별일 아닌 일도 이렇게 전쟁 치르듯 처리하며 삽니다.
누가 그러데요.
유럽에서는 하루에 두 가지 일을 처리 하면 그날은 제법 일을 잘 한
날이고,
만일 하루에 세 가지 일을 처리 했다면 매우 힘든 하루를 보낸 것
이라구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