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안에 착 달라붙는 프레젠테이션
자기표현의 시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타인 앞에서 부끄러움이 유독 강한 한국인은 주장과 발표에 약하다. 수줍음이 지나쳐, 강의시간 궁금증이 하늘을 찔러도 먼저 손들어 강사에게 질문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우리 사회도 크게 변했다. 이제 스마트한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최고의 사회적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프레젠테이션은 공식적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가는 주요 의사표현 수단이다. 프레젠테이션의 핵심은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비즈니스협상, 공모전, 취업면접, 아이디어제안, 입찰, 세미나, 콘테스트 분야에서 설득전략을 갖춘 최적의 프레젠테이션은 성패를 좌지우지한다.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발표자가 장점과 구호만 나열하면서 혼자 떠드는 상황이다. 다양한 통계, 각양각색 뉴스, 화려한 이미지, 지적인 콘셉트 제시 등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청중은 “그래서 뭐?”라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올바르고 아름다운 말의 성찬이 넘칠 지라도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설교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것저것 정보요소를 마냥 쏟아 내는 태도는 무책임한 발표다. 일관된 메시지를 청중에게 확실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지, 달변가를 자처하며 속사포처럼 말만 쏟아내면 아니함만 못하다. 군더더기를 뺀 단순명쾌한 프레젠테이션은 3가지 편집전략을 갖춰야 한다.
1.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라
미국 이색음식 판매체인 ‘트레이더 조’ 사원교육 지침엔 주 고객층을 “아주 낡은 볼보 자동차를 모는 실직한 대학교수”라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직한 대학 교수’의 이미지는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는 모든 임직원들에게 고객지향점을 똑같은 이미지로 떠올리게 해준다. 즉 회사의 경영 포인트가 어떤 시장과 어떤 고객을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해준다. 트레이더 조는 그들의 고객을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고 상품의 품질에 대해서도 매우 민감하고 다양성과 새로운 경험을 중요시하는 사람들”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없이 꼬리를 무는 형용사의 나열은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여 무력하다. ‘실직한 대학교수’는 명쾌하여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집중력을 발휘한다.
수박을 그리는 것이 편한가, 수박의 생물학적 정의를 내리는 것이 편한가. 모나리자의 미소는 금방 떠오르지만 5만원권의 주인공 신사임당의 역사적 업적은 거의 모른다. 현직 대통령의 주요 경제정책 3가지는 잘 모르지만 대통령과 손잡았던 악수 기억은 내리내리 기억에 살아있다. 추상성은 멀고 구체성이 가까운 이유다. 기억력의 만국공통어는 구체적인 것이다. 감각으로 겪어낸 구체성은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인식력을 좌우한다.
정치인과 유권자, 스페셜리스트와 아마추어, 교수와 학생, 전문 강사와 일반 청중, 고위급 CEO와 말단 사원, 70대 할아버지와 10대 손자, 이 양쪽의 평소 입장과 지식수준은 너무 다르다. 프레젠테이션의 방향이 위로 향하지 않고 아래로 흘러야 하는 이유다. 구체적 사례와 구체적 계기가 작동되어야 이 간격이 메워진다.
2. 스토리로 말하라
‘여우와 신포도’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 등 대표적 이솝우화 스토리텔링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솝의 이야기들은 2,500여년 동안 전해져왔고 앞으로도 수천년 거뜬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 선한 사마리아인,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 스토리도 전부 고개를 끄덕일 만큼 익숙하다.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좋은 스토리는 추상적인 미사여구 전략 방침보다 우월하다. 주인공이 역경과 시련을 극복한 사연에 청중들도 공감할 수 있다면 기억에 오래 남아 언제라도 재생버튼이 누를 수 있다. 스토리에서 교훈을 이끌어낼 수는 있지만 교훈으로부터 스토리를 재생시킬 순 없다.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풍부하고 친숙한 스토리로 아직도 인구에 회자된다. 현대조선이 영국에서 자본을 유치할 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설득수단으로 활용하여 외자 유치에 성공했다. 서산 방조제 물막이 공사 때 폐 유조선을 가라앉혀 ‘정주영 공법’이란 새로운 전설을 낳았다. 황소 500마리를 이끌고 북한 고향을 방문하여 금강산사업의 물꼬를 텄다.
정 회장의 성공신화는 범 현대가만의 차원을 뛰어 넘어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 스토리로 평가받고 있다는 증거다. 현대가의 성장과 발전을 통계와 제품만으로 설명한다면 무미건조할 것이다. 어려운 통계문제도 스토리를 입혀놓으면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 양질의 데이터가 의미를 가지려면 먼저 스토리의 옷을 입혀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
3. 파워포인트는 보고서가 아니다
핵심 메시지도 발표 초입에 치고나가야 한다. 중요한 이야기를 감추어두었다가 뒷부분에 소개를 하면 이미 지루한 청중은 관심의 촉각을 회복하지 못한다. 슬라이드 1장엔 하나의 메시지, 하나의 이미지만 넣고, 한 슬라이드가 30초 이상 머물지 않도록 프레젠테이션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는 한눈에 단일한 메시지로 다가와야 한다. 두세 개 메시지가 겹치면 청중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게 된다.
핵심 키워드 하나만 골라 최적의 이미지와 버무려야한다. 발표자의 편집력이 가장 발휘되어야할 순간이다. 핵심 콘셉트를 보완하려는 서브타이틀도 한 문장만 덧붙여야 한다. 청중을 감질나게 하는 여운이 번진 후, 발표자가 현장 설명으로 메시지를 강화하면 무대 아래의 경청은 훨씬 깊어진다.
많은 청중이 집중할 수 있도록 활자는 크게 하고 눈에 편한 글꼴을 선택한다. 그래프, 클립아트, 동영상, 아이콘, 표, 관련 뉴스를 첨가할 때는 전체 흐름에 어긋나지 않도록 물 흐르듯 추가되어야 한다. 단순히 발표자의 정보력을 과시하는 슬라이드는 오히려 메시지 집중도를 해쳐 산만한 발표회가 되고 만다.
harri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