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에 귀한 말씀 보태주신 꿈님,
설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저는 고향이 먼 남녘인데 가족과 잘 다녀왔습니다.
진즉 답변 올려야 하는데 제 게으름을 용서하시길.
‘노인과 쓰나미’제목에 관한 꿈님의 깊은 지적은 맞습니다.
제가 직접 뽑은 제목도 아니고 타신문사 편집자의 ‘작품’인지라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만 제 의견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 타이틀.
철학적 토대와 공간적 배경이 다를진대
무리하게 끌어온 점을 같은 편집자로서 저도 인정합니다.
노인, 생사의 기로에서 사투, 고통 극복, 생환
이런 약간의 이미지 공통점으로
그 편집자는 명작 타이틀의 향기에 기대여
그야말로 ‘벤치마킹’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소 독자들께는 ‘생뚱맞는’ 제목이지만
보름 가까이 계속되는 어두운 쓰나미 후속보도를
좀 참신하고 밝게 해석해 독자께 선보이려는
그 편집자의 재치있는 마음이 제게도 전해져 옵니다.
그래서 제가 인용한 것이랍니다.
하지만 한 원칙이 다른 원칙(독자님께 친절의 원칙)에 위배되고 말았네요.
세상엔 얼마나 이율배반이 많은지요.
널리 이해해주시길…
다만 제 진의는 꿈님께 전달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많은 편집기자들은 늘 ‘불후의 명작’헤드라인을 꿈 꿉니다.
* 여기는 평양… 비가 내리고 있다
꿈님,
지금으로부터 33년전,
1972년 8월 30일 남북 적십자회담 취재차
분단이후 남쪽 취재진이 정식으로 북한에 처음 들어갔을 때
조선일보의 한 편집자는 이렇게 1면톱 명 제목을 뽑았습니다.
이때 딱딱한 팩트위주의 제목은 누구라도 할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한 편집자는 다르게 시도했습니다.
마치 금단의 땅에서 현장 중계를 하듯 이 제목 한마디를…
편집자의 절창입니다.
가슴으로 읊었습니다.
온 독자를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전 오늘도 ‘촉촉한 비’같은 제목을 꿈 꿉니다.
꿈님,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