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위대한 편집자

 

이순신은 인생 편집력의 화신

 

 이순신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서서 세종로 사거리를 건너는 시민들을 내려다본다. 마찬가지로 고민 많은 중년남자도 출근길 이순신 동상을 올려다본다. 오늘 따라 굳은 표정 화석화된 충무공이 아니라 한 남자로 다가온다. 그는 버겁고 힘들어하며 때론 굵은 눈물 뿌리는 조선 남자였다.

 

선병질에 걸린 듯한 선조임금의 끝없는 의심에 힘겨워했다. 당쟁과 문약에 빠진 조정이 남쪽 바다로 보내는 얄팍한 술수를 그는 온몸으로 부딪쳐야 했다. 가슴속 칼날이 쉴 새 없이 징징 울어댄다. 몸에 와 닿는 시대의 채찍질에 온 몸의 상처가 벌겋게 달아오른 초로의 남자. 푸르스름한 그의 눈빛이 허무하게 서늘하다. 그의 조국은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1905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본 해군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함대는 조선 해군을 이끈 이순신에게 진혼제를 올린다. 강국 러시아 발틱 함대와 싸우기 전 섬나라 소국은 불안하기만 했다. 평소 도고는 이순신 장군을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다. 전쟁의 신(神)은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고 일본은 신흥제국주의로 치닫는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킨 막강 일본 해군이 피식민지의 옛 장수를 승리의 수호신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순신(1545~1598)은 위대한 편집자다. 선택은 가장 뜨거운 삶의 편집행위다. 그는 문신(文臣)이 아니었다. 그는 무(武)의 세계를 택했다. 조선은 문(文)의 제국이었다. 사대부만이 사람대접을 받았던 유교의 나라 조선. 건국 200년이 지나자 조선 당파들은 제 가문의 생존을 위한 이전투구로 일관했다. 백성의 암울한 생계는 치지도외였다. 이때 순신은 문이 아니라 무(武)를 향했다. 
 그의 첫째 편집정신, 순신은 그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외부를 원망하지 않고 내부의 원칙만을 지켜나갔다. 그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문신의 붓을 접고 대신 검(劍)을 잡았다. 활을 쏘고 말을 달렸다. 무과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 늦은 나이에 겨우 급제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조국의 먼 변방을 훑었다. 14년 동안, 국경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인생의 기회는 쉬이 오지 않았다. 강등과 복직의 나날을 보냈다. 1591년 남해 바다가 심상치 않았다. 임진왜란(1592~1598)을 1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마흔 일곱 순신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어 여수 수군 사령관이 된다. 조선 최대의 국난 임진왜란 7년 동안 국토와 백성은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보름 만에 서울을 함락시킨다. 선조는 의주로 줄행랑친다. 개전 두 달 만에 조선은 멸망 직전의 위기에 몰린다. 이제 유일한 조선의 희망은 이순신의 남녘 수군뿐이었다.

 

 그의 둘째 편집정신, 순신은 오직 승리로서 전투를 표현했다.

군인은 이겨야 존재한다. 실전 상황을 장악하는 전술과 전략으로 싸움을 주도했다. 장졸들은 그를 따랐다. 밖으로 국격의 기세는 떨치지 못하고 안으로 곪아만 가는 나라의 지병을 안타까워한 조선 왕조의 진정한 신민(臣民)은 자주 모함을 받았다. 시련은 단 한 번의 전투에서도 패배를 허용치 않았던 주도면밀 군인정신의 밑거름이 됐다. 1597년 정유년은 충무공 서거 1년 전. 임진란 발발 6년째, 공의 나이 쉰셋. 남해바다는 웃음을 잃었고 빈곤한 언어마저 굳어져 있었다.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사는 2월에 서울로 압송되고 4월에 백의종군한다. 남행길에 모친상을 당하고 7월 원균의 삼도수군은 왜군에 전멸 당한다. 7월말 공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받고 남은 12척으로 함대를 꾸린다. 9월 공은 전선 12척으로 명량바다에서 서해로 우회하려는 적을 쳐부순다. 왜군 330척 함대는 선두 33척을 파괴당하고 퇴각한다. 10월 장군은 목포 앞 고하섬으로 수군진영을 옮기고 최후의 일전을 대비하는 겨울나기에 돌입한다. 그의 인생에 패전의 기록은 전무했다.
 

그의 셋째 편집정신, 자신의 소멸로써 시대의 종결자가 된다. 적은 사각사각 엄습하고 주군은 보채고 조정은 의심하고 세월은 차갑고 무력은 빈한하고 백성은 울며 자맥질할 때 그는 밤새워 뒤채이며 전전반측한다. 결국 충무공은 조선 중기 나라와 왕조가 침몰할 위기를 수습해놓고 자신의 소멸로써 ‘정치적 완결행위’를 마무리 짓는다.

 

살아남은 자신이 남해바다 대승리로 말미암아 (미구에 닥칠)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을 예견한 듯하다. 장군은 애당초 그 싹을 잘라 버리는 대결단을 죽음으로써 결행한다. 기나긴 최후의 전투 노량대첩. 사신(死神)이 오가는 거친 길목에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킨다. 적선 2백여 척이 격침되고 50여 척이 도주했다. 이순신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에 알려졌다. 통곡이 바다를 덮었다. 성웅의 대업은 이렇게 완결된다.
”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칼의 노래, 김훈)

 

harrison.

카테고리 : 신문편집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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