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까이 오지마세요, 그리움엔 간격이 필요합니다

카테고리 : 좋은 문학 | 작성자 : harrison

[ 책 이야기 ] 

 

너무 가까이 오지마세요, 그리움엔 간격이 필요합니다


해질녘 벤치로 향하는 길. 여름날 무성한 플라타너스 그늘은 시원한 휴식을 드리웁니다. 가을날 상수리나무 사이를 걸으면 숲길의 기운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 벅차오릅니다. 눈 쌓인 겨울, 흰 자작나무가 매서운 바람에 휘파람을 불어댑니다. 나무는 사람 마음속을 울창하게 채우고 가지런하게 다독여 줍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나무에게서 배웠다”
‘나무 의사’ 우종영.(1954년생) 청소년 시절부터 오로지 나무에게 다가가 나무와 껴안고 살아오신 분입니다. 40년 넘게 아픈 나무를 치료하는 ‘나무의사’로 일관합니다. 화원을 꾸리면서 전국 방방곡곡 한국의 나무들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없이 버티고 있지만 큰 고통 속에 처한 수많은 나무들을 목격합니다. 아픈 나무와 대화하면서 병약한 나무를 차근차근 치료해줍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해 다듬는 조경이 아니라 오직 나무의 생명력 자체를 위해 다가갑니다.


그는 2001년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를 출간했습니다. 침묵하는 나무는 항상 고통을 모르며 묵묵히 서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무 의사’의 생생한 증언으로 핍박받는 나무들의 처절한 아우성을 듣게 됩니다. 우종영 씨는 환경의 사슬로 인간과 나무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나무의 미덕은 인간을 인간답게, 인간이 인간으로 귀의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천년 사랑의 전설이 피어나는 주목나무, 박수 칠 때 떠날 줄 아는 동백나무, 어머니 품같이 그리운 느티나무, 고개 숙인 아버지들께 바치는 소나무, 첫사랑이 내게 남기고 간 라일락,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르쳐준 대나무… 이 땅의 많은 나무들이 인간에게 전하는 목향이 페이지 곳곳에 묻어납니다. 바람 한 자락에 숲 속이 윙윙거립니다. 숲으로 가기에 딱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이 책에서 빛나는 몇몇 글월을 발췌, 소개합니다.


1. 나무가 겨울을 지나 봄을 기다리는 법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 나무는 정성 들여 새순을 올리고 잎을 만들어 낸다. 한여름의 나무를 보면 그간의 노력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겹치는 부분 하나 없이 모든 이파리들이 정교하게 제 위치를 찾아 그 본연의 녹색 빛을 뽐내고 있다. 그런데 나무는 그렇게 애쓰며 만들어 낸 잎들을 겨울이 오기 전에 모질게 끊어 버린다. 가을이 깊어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영양분을 거둬들인 다음, 떨켜층을 만들어 후두둑 이파리들을 떨궈버리는 거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사람도 견디기 힘들지만 나무는 더 더욱 그렇다. 가을에는 햇볕이 여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뿌리를 통해 공급받는 수분의 양도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다음 해를 기약하기 위해선 그동안 모아놓은 에너지를 아주 조금씩만 쓰면서 추운 계절을 견뎌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나마 남아있는 수분을 증산시키는 잎을 모질게 떨어뜨리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


그 결과물이 바로 늦가을에 우리 눈에 보이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낙엽들이다. 연인들이 낙엽이 쌓인 길 위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어린 아이들은 그 위를 뒹굴며 까르르 웃어대지만 사실 나무에게 낙엽은 안타까운 포기 후에 생긴 눈물과 같다. 마음껏 햇볕을 받고, 물도 제 양껏 끌어올려 더 큰 나무가 되는 봄을 그렇게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2. 그리움의 간격이 행복의 간격


우리 부부는 열여섯 살 되던 해에 만나 십일년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한, 서로가 첫 연애 상대이자 마지막 사랑인 사이다. 우리 부부가 이십년 남짓한 결혼 생활을 한결같이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 이름하여 ‘놓아주기’.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오로지 혼자 가꾸어야 할 자기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떨어져 있어서 빈 채로 있는 그 여백으로 인해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 할 수 있게 된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서로를 그리워할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꼭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나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서로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너무나 절실하다. 나무 두 그루가 너무 가깝게 붙어 있으면 그 나무들은 서로 경쟁하며 위로만 치닫게 된다. 조금이라도 높이 자라 햇볕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경쟁은 결국 서로를 망치는 길밖에 되지않는다. 가지를 뻗고 잎을 내어 몸체 구석구석을 튼튼히 다져야 할 시기에, 위로만 자라다 보니 비정상적으로 가느다란 몸통만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들이 올곧게 잘 자라는 데 필요한 이 간격을 ‘그리움의 간격’ 이라고 부른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바라볼 수는 있지만 절대 간섭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거리. 그래서 서로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거리… 그리움의 간격은 결국 행복의 간격이 아닐까. 애달프고 안타깝지만 어느덧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행복이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묻거나 확인하지 않고도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그 거리가…


3. 해거리하듯 이젠 좀 쉬세요


이 나무란 놈에게는 한가지 엉뚱한 구석이 있다. 어느 해가 되면 갑자기 열매맺기를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해거리’. 말 그대로 열매를 맺지앟고 해를 거른다는 뜻이다. 열매 하나를 맺는데는 최소한 수십 개의 잎사귀에 해당하는 영양분이 필요하다. 나무는 해거리를 통해 한 해 동안 열매맺기를 과감히 포기한다.


해거리 동안 모든 에너지 활동의 속도를 늦추면서 오로지 재충전하는 데만 온 신경을 기울인다. 그동안 물과 영양분을 과도하게 옮기느라 망가져 버린 기관들을 추스리고, 헐거워진 뿌리를 단단히 엮으며, 말라 비틀어진 가지들을 곧추세운다. 그 어떤 생산 활동을 하지않고 전원스위치를 내린 나무가 해거리에 하는 게 있다면 오직 하나 ‘휴식’이다.


일년간의 긴 휴식이 끝난 다음해에 나무는 그 어느때보다 풍성하고 실한 열매를 맺는다. 사람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휴식없이 제대로 살 수 없는 노릇이다. 삶에 대한 반성과 더 큰 도약을 가능하게 만드는 삶의 에너지 충전, 그것이 바로 진정한 휴식이다. 한번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4. 가지치기가 필요한 때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있는 어른나무로 거듭날 무렵, 웃가지(윗가지)는 뿌리를 힘들게 하고 영양분을 축내며 나무의 수형까지 망치게 한다. 웃가지들이 보이면 나무가 더 힘들어지기 전에 쳐내야 한다. 내겐 자식이 숙영이 하나뿐이다. ‘그래, 나무 키우는 대로만 하자’ 품안의 자식이라고 무조건 감싸고 돈다거나 지나치게 간섭하면 안된다고, 그저 끊임없이 지켜보자고…


그러나 사람이 자라는 데도 가지치기를 해야 할 순간이 있다. 결정적인 순간의 조언이라고 할까. 계속 지켜보다가 아이가 너무 엇나간다 싶으면 그저 내 경험을 얘기해준다. 내가 살아왔던 이야기, 그러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들과 그 안에서의 깨달음을 그저 전해주는 것이다. 아이가 거부하면 그것은 아이 몫이다. 그때는 나무가 제 스스로 필요에 의해 자기 가지를 쳐내듯, 아이 역시 스스로 깨달아 판단하기를 기다린다.


- 해리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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