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반지하 앨리스]를 읽고서

카테고리 : 생기발랄 한국말 | 작성자 : harrison

 

 

반지하 내 집을 기중기로 들어 올려 1층으로 끌어 올리는 혁명


[ 생기발랄 한국말 63 ]

 

< 반지하 방에 내리는 눈 >


- 신현림


흰 눈이 반지하 단칸방에 내렸다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린 언니
신용 불량자인 여동생과 엄마 몸 위로
꽃가루보다 슬픈 눈이 내렸다


달빛 드는 비상구도 없고
손잡아 줄 누구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싸늘한 반지하 방을
흰 눈 모포가 덮어 갔다


영국 록밴드 스모키(Smokie)가 1976년 발표한 <Living Next Door To Alice(앨리스 옆집에 살면서)>는 그들 밴드의 최고 히트곡이 됩니다. 아이 때부터 함께 자라며 24년 동안 짝사랑했던 옆집 여친 앨리스. 어느 날 느닷없이 등장한 멋진 리무진. 그녀가 이 리무진을 타고 떠나버립니다. 사랑한다고 고백할 기회를 놓쳐버린 주인공은 비탄에 빠집니다.


하지만 2017년 한국의 앨리스는 일할 수 없는 날까지 일해야 하는 생계 가장입니다. 그녀는 오늘도 읊조립니다. ‘온 힘을 다해 노을이 지고 밤이 내리듯 온 힘을 다해 살아도 가난은 반복된다 가난의 힘은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것’ 가난에 시달리며 비루한 노동으로 울지 않으려고 겨울바람이 불 때마다 걸레처럼 축축한 자신을 빨랫줄에 널곤 합니다.


반지하는 앨리스의 꿈이 절망하는 곳이면서 광합성을 꿈꾸는 공간입니다. 그녀는 반지하 세계에서 끊임없이 동시대의 또다른 ‘반지하 앨리스’들에게 생존신고를 발신합니다. 누군가 이 발버둥치는 소리를 수신해주길 기대하면서. 햇살이 넘치는 삶이 그립습니다. 구름이 구름으로 느껴지도록 햇살가루가 반짝이는 순간이 너무 그립습니다.


‘서른 번째 생일날에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마흔 번째 생일날에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슬픔에 목메며 슬픔의 끝장을 보려고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두통에 시달린 머리통을 연탄처럼 깨부수고 싶었죠 나만 왜 이럴까 하는 우물에 빠져들며 우울의 붉은 깃발만 펄럭였어요’ ‘남 술 마시고 섹스할 때 나는 일했다 미치도록 뜨겁게 어디든 굴러가는 바퀴였다 한 부모 가장은 잠자면서도 일한다’


서른 살에 고향을 탈출해 18번 이사를 다녔던 앨리스. 우울의 습기가 축축한 반지하에서 환한 사랑을 다짐합니다. ‘환한 방에서 살면 사람다워질까 사랑스러워질 수 있을까 아 시바르’ ‘아무리 일해도 나아지는 게 없고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걸음에 내 주머니에 흐린 눈물만 가득하다’


겨울나라 앨리스는 알을 품고 있습니다. 앨리스는 혁명의 알을 쓰다듬습니다. ‘반지하에 살아도 거울 알이 있기 때문이다 끝없이 다시 일어서게 하는 거울 알’  ‘따스한 그늘에 뉘어 쉬게 하고 반지하 내 집을 기중기로 들어 올려 1층으로 끌어 올리는 혁명을 나는 꿈꾸네 정해진 법칙이 없기에 예술이 있듯이 바꿀 것은 과감히 바꿔야 사람이네’


앨리스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위문 편지를 부칩니다. 항상 렌즈로 세상을 찍습니다. 반지하에서 시를 쓰고 사진을 고릅니다. 아이를 키우고 그림을 그립니다. 상처가 생기면 문학의 연고를 고루 발라줍니다. ‘배가 고프면 밥 지어 먹고 쓸쓸해지면 달무리에 감싸인 달처럼 당신 팔에 휩싸여 깊은 잠을 자리 가슴 속으로 산비둘기 한 마리 날아오면 나는 일어나 다시 살리 당신 생각하는 힘으로’



- 해리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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