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대표작 속 하녀는 왜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을까

카테고리 : 내가 본 영화들아 | 작성자 : harrison

 [ 영화 ]

 

 

왜 하녀가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을까


타이틀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감독 : 피터 웨버
출연 : 콜린 퍼스, 스칼렛 요한슨, 톰 윌킨슨
제작 국가 : 영국
한국 개봉 : 2004년 9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은 여전히 강력한 신비를 내뿜고 있다. 소녀의 표정에 사로잡혀 소설을 썼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코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 미국 여성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는 바로크시대 네덜란드 델프트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1632~1675)의 대표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 유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를 주목합니다. 그리고 의문을 품습니다.

 

 

그림 속 소녀는 누구이고, 어떻게 그림의 모델이 되었을까? 커다란 두 눈과 보일 듯 말 듯 한 불가사의한 미소는 순수함인가? 누군가를 유혹하는 것인가? 베르메르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며 국보급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특별한 표정을 품은 그림 하나가 훌륭한 소설을 낳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슴을 콕 찌르는 예술영화 한 편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1. 왜 하녀가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을까

 

 

베르메르 화풍의 큰 특징. 실내로 햇빛이 스며드는 분위기 묘사는 압도적입니다. 그는 역동적인 ‘빛의 화가’렘브란트의 그림과는 달리 창문을 통해 걸러진 빛이 일정하게 들어오는 실내 풍경을 중시합니다. 바로크적 격정이 충만한 명망가 렘브란트와 뚜렷하게 비교됩니다. 명암의 대비가 분명하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주는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200년이 지난 후에야 전문가들의 격찬을 받습니다. 남겨진 그의 작품은 40여점에 불과합니다.

 

 

베르메르는 상류층 호사가들을 위한 추상적인 주제나 종교적 소재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평민들의 일상적 삶을 묘사한 단순한 풍경을 채취하였습니다. ‘저울을 든 여인’ ‘우유 따르는 여인’ ‘뚜쟁이’ ‘화가의 아틀리에’ 등이 있습니다.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원색이 조화를 이루는 따뜻한 화면이 베르메르 작품의 특징입니다. 베르메르의 인생과 작가로서의 삶 자체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사진이 등장하기 전 인물화는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매체였습니다. 특히 초상화는 인간의 사회적 경력을 과시하는 장치였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들은 대개 신분이 높고, 재력가 계급이었습니다. 의복 모자 장신구 표정 색감 포즈 화면구도 등이 현실 신분을 드러내는 미장센이었습니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궁금함을 자아냅니다. 그림 제작 당시의 사연도 알려진 바 없습니다. 제 3자의 증언도 없습니다. 슈발리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소녀가 당대 상류층이 아니면 착용할 수 없었던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는 것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소녀는 베르메르의 모델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글을 밀고 나갑니다.

 

 

화면 앞을 모호하게 바라보는 소녀의 눈망울엔 많은 사연이 들어있어 보입니다. 막 입을 벌려 한마디 말을 건네려는 듯한 소녀의 선홍빛 입술.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오직 진주귀걸이와 소녀의 입술, 눈빛의 묘한 반짝임만으로 소설을 이끌어갑니다. 머리에 파란 두건을 두른 수수한 옷차림의 소녀를 주인공 삼아 ‘걸작으로 남은 그림, 미완으로 남은 사랑’이란 테마로 창작의 얼개를 구성합니다.

 

 

화가 베르메르와 16세 하녀 그리트. 이 둘은 주인과 하녀, 화가와 모델, 스승과 제자, 남자와 여자로 두 축을 이룹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 대한 치밀한 고증과 풍부한 미술사적 배경 묘사는 소설을 풍요롭게 합니다. 한 편의 그림이 탄생하기까지내밀한 속내를 파헤친 문학적 보고서이기도 합니다.

 

 

 

2. 욕망의 꼭짓점에서 태어난 명화

 

 

1999년 소설<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발표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피터 웨버 감독)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2003년 제작됩니다.

 

 

16세 소녀 그리트는 아버지가 시력을 잃자 가난한 집안살림을 위해 하녀살이를 떠납니다.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막내 하녀로 들어갑니다. 화가 베르베르는 형식적인 가장일 뿐 실제 집안의 경제력은 장모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질투심 많은 아내. 여섯 명의 아이들이 베르메르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리트는 베르메르 작업실 청소를 전담합니다.

 

 

베르메트의 화실에 처음 들어선 순간, 그리트는 공기마저 정지된 공간에서 신비한 영감을 받습니다. 이를 훔쳐보듯 주시하는 베르메르. 처음으로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합니다. 베르메르는 물감을 혼합해 원하는 색을 얻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화가가 알아야 할 색채와 빛의 묘사법을 일러줍니다. 글도 모르는 그리트지만 회화를 하나씩 깨쳐가는 재능을 보여줍니다.

 

 

어느덧 두 사람은 주인과 하녀 사이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발전하면서 무언의 교감을 주고받습니다. 교감이란 마음의 주고받음입니다. 교감은 공감을 낳습니다. 비록 신분이 다르고 가족들의 감시로 내색할 수 없지만 눈빛으로 대화하는 사이가 됩니다. 가벼운 포옹도 입맞춤도 없는 사랑이지만 베르메르의 시선엔 관능이 담긴 욕망이 실려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 어떤 고백도 하지 않습니다.

 

 

중년 여인이 그리트의 초상화를 앞에 두고 울부짖습니다. 그림을 보며 “음란하다”고 외칩니다. 그림 속 소녀가 달고 있는 진주귀걸이는 바로 자신의 것입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자신의 남편입니다. 초상화 속의 소녀는 자신이 부리는 하녀이고, 초상화을 그리도록 종용한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입니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남편이 그리트의 초상화를 그리자 이 사실에 질투를 느낀 아내는 왜 자신을 그리지 않았냐고 항의합니다. 장모는 사위가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을 베르메르의 후원자(패트런) 라이벤에게 바쳐야만 합니다. 집안을 꾸리는 경제적 비용은 라이벤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대부분 화가는 후원자에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베르메르 집안의 하녀 그리트에게 늙은 욕정을 품고 있는 라이벤은 베르메르에게 그리트 초상화를 그리도록 지시했었습니다. 라이벤 – 장모 – 베르메르 이런 순으로 종속관계가 이뤄지고 베르메르 – 아내 – 그리트 이런 순으로 하위 종속관계가 깔려있습니다.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기듯이 드러내는 것이 예술입니다. 예술 작품엔 작가와 작가를 둘러싼 주변인물의 욕망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엔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숨죽인 욕망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재력자 라이벤의 욕정, 집안의 권력자인 장모의 욕망,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내의 질투가 그림 주변에 흐르고 있습니다. 허락되지 않는 사랑의 결과물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욕망의 꼭짓점에서 태어난 명화입니다.

 

 

피터 웨버 감독은 베르메르의 화실을 주 무대로 펼쳐지는 연극적 구성으로 영화를 이끌어갑니다. 화면의 색감 구도 프레임을 미술영화답게 회화적 분위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영화 속 어떤 장면이라도 따로 떼내면 회화적 작품이 될만 합니다. 자극적 로맨스 하나 벌어지지 않지만 화면 가득히 교감 사랑 질투 욕망이 고밀도로 농축된 영화입니다. 두 주인공 스칼렛 요한슨(그리트 역) 콜린 퍼스 (베르메르 역)의 열연은 멜로 미술영화의 두 축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 해리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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