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들이 우리 이렇게 개고생한 것을 알기나 할랑가

카테고리 : 내가 본 영화들아 | 작성자 : harrison

[ 영화 ]

 

“모르면 호로새끼들이제”


타이틀 = 명량 (ROARING CURRENTS, 2014)
감독 = 김한민
출연 = 최민식(이순신), 류승룡(구루지마), 조진웅(와키자카)


3년 전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영화 <명량(鳴梁)>이 다가왔다. 명량해협 즉 울돌목은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전중의 하나인 ‘명량대첩’ 현장으로 남해에서 서해로 가는 길목이다. 해남군과 진도군의 좁은 해역으로 바다의 폭은 한강 너비의 절반인 300여m다. 물길은 최대 유속 11노트(시속 20㎞)의 급한 조수가 흐르며, 물소리가 크고, 거품물이 용솟음쳐 배가 운항하기 힘든 곳이다.


<명량>은 스토리라인, 캐릭터 구축, 연기자 라인업, 컴퓨터그래픽 완성도 등을 따지면서 보는 영화가 아니다. 작품성을 따져가며 평가할 영화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역사적 맥락을 체감하는 ‘감성 다큐’이다. 힘겨움의 나날 한가운데에 선 당신에게 두려움을 떨치고 죽기살기로 살아보라는 메시지다.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들을 죽여 왔다. … 이제 그대를 다시 전라 좌수사 겸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노니, 그대는 부하를 어루만지고 도망간 자들을 불러 단결시켜 수군의 진영을 회복하고 요해지를 지켜 군의 위엄을 떨치게 하라… 내 끝나지 않는 운명에 대한 전율로 나는 몸을 떨었다. 나는 다시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라 좌수사였다.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 통제사였다. 내가 임금을 용서하거나 임금을 긍정할 수 있을는지는 나 자신에게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나의 武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나는 붓을 들어 장계(狀啓)를 써내려갔다. 문장은 풀리지 않았다. 맨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 신의 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 할 것입니다.
ㅡ 김훈 소설 <칼의 노래>중에서


선병질에 걸린 듯한 임금은 신뢰의 군주가 아니었다. 순신이 지키고 있는 남해바다를 포기하고 권율 장군의 육군에 합류하라 한다. 왕족 권문세가들이 서식하고 있는 도성만 지키면 된다는 얄팍한 어명만 내려 보낸 것이다. 왜군이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천명하고 동아시아 제패를 노리는 작금의 위중한 시국에 조선 군주는 ‘바다를 포기하라’고 한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이 없는 남해 서해 조류를 타고 북상하면 사흘 만에 왜군은 한양 땅을 삼키고 만다.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명량 바다 속으로 왜군 함대를 수장시키지 않았다면 조선은 300년 먼저 일본의 식민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즉 일본의 리더십은 일본 열도를 통일한 후 조선반도를 통과해 명나라에 이르는 ‘침략의 지도’를 이미 완성한 후였고 조선의 리더십은 제 나라 제 땅의 지도조차 아득했다. 그러하니 ‘바다를 포기하라’는 망언적 어명을 내릴 수밖에…

 

 

오다 노부다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일본 열도 무(武)의 기상은 다이묘 사무라이 무역상인들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져 끊임없이 대외지향적 에너지로 분출된다. ‘천자’라 자칭하는 중화의 땅, 중국이 ‘수비형 거대 제국’이라면 일본은 기회만 되면 밖으로 눈을 돌리는 ‘공격형 제국’이다. 바로 조선반도가 그들의 탈출로이자 대륙 침탈로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저력에 밀려 패퇴하고 말았지만 일본 사무라이군단은 메이지 유신과 압도적 화력으로 재무장한 다음, 임진왜란 종료 후 300여 년 만에 다시 조선을 조롱한다. 온 백성 온 국토을 또다시 유린하고 병탄시킨다. 조선은 처참한 식민지로 전락함과 동시에 소멸되고 만다.


<명량>은 (중원 대륙을 겨누는) 지도를 가진 첨단 조총 군대가 연전연승을 치닫다 ‘조선의 외로운 남자’ 이순신에게 쓰라린 좌절을 맛보는 영화다. 임금의 신임도 받지 못하는 순신은 그래도 출정해야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충(忠)이다. 진정한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것이다.” 그의 충은 군주를 향한 충이 아니었다.


김한민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기존에 박제화된 이순신을 한국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이순신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일부 한국인은 개발연대 시절 박정희가 성웅으로 신격화한 ‘이순신 신화’에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그만큼 이순신은 낡은 가치로 오해 받았고 한국인과 멀어져 있었다. 그는 밖으로 국격의 기세는 떨치지 못하고 안으로 곪아만 가는 나라의 오랜 지병을 가장 먼저 안타까워한 진정한 臣民이었다.


젊은 시절, 조선 북방 변경을 지켜내며 몸소 체험한 전략과 전술들. 단 한 번의 전투도 패배를 허용치 않았던 주도면밀의 군인정신. 충무공은 결국 조선 중기를 기점으로 나라와 왕조가 침몰할 위기를 수습해놓고 자신의 죽음을 ‘정치적 완결행위’로 마무리 짓고자 했다.


살아남은 자신이 남해바다 대승리로 말미암아 (미구에 닥칠)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을 예견한 듯하다. 장군은 애당초 그 싹을 잘라 버리는 대결단을 죽음으로써 결행한다. 성웅의 기나긴 대업은 이렇게 완결된다. 남해 밤바다에 오롯이 서있는 한 사나이. 가슴속 칼날이 쉴 새 없이 징징 울어댄다. 몸에 와 닿는 시대의 채찍질에 온 몸의 상처가 벌겋게 달아오른 초로의 남자. 푸르스름한 그의 눈빛이 허무하게 서늘하다. 그의 조국은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영화는 탁상공론이 아닌 ‘디테일’로 말한다. 420년 전 조선남자 이순신의 진정성을 어떻게 현재화시킬 것인가. 12척의 조선 판옥선으로 왜선 330척을 물리쳤다는 해상전술은 과연 사실인가. 좁은 갑판위에서 피가 튀기는 백병전은 어떻게 치러졌던가. 왜 일본군은 헤아릴 수 없는 조선인의 코와 귀를 베어가 일본 땅에 코무덤 귀무덤을 만들었던가. 조선 수군의 대포인 지자총통은 왜 강력한가… 이제야 한국인은 <명량>을 통해 임진왜란 그 현장과 그 인물을 추상성이 아닌 가시적으로 생체험한다.


살아남은 왜군 함대마저 해협 바다로 물러간 명량 바다. 조선 수군 판옥선 내실 밑바닥에서 노를 저었던 격군(格軍)들이 간만에 풋과일과 소금으로 허기를 달래며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두 손은 간단없는 노젓기 노동으로 이미 피범벅이다.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 이렇게 개고생한 것을 알기나 할랑가”
“아~ 모르면 호로새끼들이제…”


영화 마지막 대사다. 이 땅은 누가 지킨 것인가. 영화 <명량>은 민초가 토해내는 이 최후의 대사를 미리 내걸어놓고 긴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ㅡ 해리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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