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다 죽자는 주전파 vs 항복해 살아남자는 주화파

카테고리 : 칼의 노래 | 작성자 : harrison

 

싸우다 죽자는 주전파 vs 항복해 살아남자는 주화파

 공허하지만  울부짖어야 하는 조선의 두 목소리

 

 소설가 김훈 소설 <남한산성>이 출간 100쇄(학고재)를 기록하며 60만부를 찍었습니다. 영화배우 이병헌(최명길 역) 김윤석(김상헌 역)이 주연을 맡아 현재 영화도 제작중에 있습니다. 김훈의 2007년 작품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14일부터 1637년 2월2일까지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내부를 밀착 취재한 ‘현장 르포’입니다. 국난에 휩싸인 조선의 지정학적 무력감를 영탄조로 한탄하기보다는 겨울 산성에 고립된 편전이 서서히 말라가며 토해내는 강퍅한 말(言)들의 행태와 논리를 추적했습니다.

 

사건 기자가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듯 담담한 문체가 흐릅니다. 흥분하지 않는 문장이 객관적 풍경과 표정만을 서술합니다. 차디찬 먹물을 적셔 차디차게 기록하는 사관의 붓을 따르니 처연한 가슴이 더욱 먹먹해 집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가끔 호흡을 가다듬고, 읽는 이 스스로 쉬어가야만 합니다. 한국의 최고 문장가가 1636년 조선 조정의 당대 명 문장가들이 펼쳐내는 한국말의 아수라장을 형상화했습니다. 

 

# 여진의 족장 누르하치는 만주의 모든 부족들을 아우르고 합쳐서 국호를 후금이라 내걸고, 스스로 황제의 누런 옷을 입고 칸[汗]의 자리에 올랐다. 칸은 충성과 배반을 번갈아가며 늙어서 비틀거리는 명나라의 숨통을 조였다. 누르하치의 여덟 째 아들 홍타이지는 아비가 죽자 형들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청(淸)이라 내걸었다. 칸의 결정은 신속하고 단호했다. 젊은 칸의 나라는 말먼지 속에서 강성했다. 칸은 요동을 차지했고 북경을 포위해서 명의 목젖을 눌렀다. 명의 숨통이 거의 끊어져 갈 무렵 칸은 조선 임금에게 국서를 보내어, 명의 연호를 버리고 명에 대한 사대를 청으로 바꿀 것과 왕자와 대신을 인질로 보내 군신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소설 발췌)

 

#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겨울 새벽의 추위는 영롱했다. 정갈한 추위였고 빛나는 추위였다. 골바람이 밀고 올라올 때 성벽을 따라가며 눈이 날렸다. 날리는 눈가루 속으로 햇빛이 스며들어 무지개 빛을 튕겼다. 가파르게 굽이치는 성벽 위 허공에서 빛의 대열이 흩어졌다. (소설 발췌)

 

■ 거대 대륙 동쪽 돋으라진 작은 반도. 수천 년 역사가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지만 치고 뻗쳐나갔던 도전의 기억은 먼 옛날마냥 희미합니다. 지리상의 발견이 완료되고 서세동점이 본격화될 17세기. ‘유림의 나라’ 조선은 자기 강토가 처한 주변 정황을 실감 못하고 있습니다. 중원 땅에서 사그라지는 세력과 흙바람을 일으키며 발흥하는 세력을 변별할 수 없었습니다. 주종 질서에 편입되어 조칙을 받고 조공을 받치는 신하의 나라는 대개 그러했습니다. 신하국 임금은 황제가 드리운 세력권 아래서 적절히 처신하면 작은 왕국 내부 통할은 차라리 속 편했을 것입니다.

 

명과 청이 교체되는 격변기. 둔감한 조선을 매섭게 길들이기 위해 구름 떼처럼 들이닥친 청나라(후금) 군대. 이미 1627년 정묘호란 때 조선반도는 유린당한 바 있습니다. 10년 후 1636년 누르하치 아들 홍타이지는 국호를 후금서 청으로 바꾸고 황제라 자칭합니다. 칸은 중원 중심을 정복하기 위해 세력 후방에 위치한 조선을 가시처럼 여기며 늘 수하에 복속시키려 합니다. 칸은 군신의 예를 요구하며 장수 용골대를 선봉 장군으로 삼고 압록강을 건너와 조선 조정을 몰아댑니다. 날쌘 기마군을 앞세운 20만 청병은 도성을 버리고 피난 간 남한산성 왕조를 사방에서 에워쌉니다. 조선 왕조는 외부와 단절된 고립무원 신세. 그 겨울은 가혹하게 추웠습니다.

 

소설은 대의명분의 찬란함과 공허함을 동시에 드러내면서 삶의 굴욕과 구체성을 모질게 피워냅니다. 조선 유림사회에서 횡행했던 사대주의는 明-淸이 교체되면서 왕조의 숨통을 조입니다. 士林의 공론이란 것들은 대안 없는 쑥덕공론으로 백성들의 조롱거리가 되어갑니다. 신료들은 주상전하 앞에서 선명성 경쟁을 벌이듯 적을 향한 분기탱천 비분강개를 쏟아냅니다. 그 언설들은 아름답고 구구절절합니다. 참으로 애절하게 나부끼는 추상성들입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양단논법으로 준절하게 죽음을 불사하자는 말은 공허할 뿐입니다. 명분과 생존이 부딪칠 때 ‘선비의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 문장으로 발신(發身)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廟堂)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말들의 산맥너머는 겨울이었는데, 임금의 시야는 그 겨울 들판에 닿을 수 없었다. (소설 발췌)

 

■ 주전파 김상헌의 지고지순한 강경함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주화파 최명길의 실리주의는 굴욕을 감수한 생존의 길이었습니다. 결전을 각오하고 옥쇄하자는 결의는 아름다우나 대책 없는 막무가내입니다. 적이 껴안아 줄때 수성을 풀고 출성하여 머리를 조아려 후일을 기약하자는 주화파의 화친론은 기실 투항이었습니다. 대의명분은 깃발만으로 지탱되지 않고 진실로 강성한 무력으로 옹위되는 것입니다. 의당한 것이 말라붙어가는 겨울 성안에서 실현되지는 않습니다. 반면 항복하여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임금마저 굴욕 속을 헤맬 때 왕조의 방책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주전파 주화파 두 담론은 둘 다 옳았고 둘 다 모자랐습니다. 삶이란 영원히 힘겹고 부딪힐 것인데… 최명길(이병헌 분)과 김상헌(김윤석 분)의 물고 물리는 말 대결은 현재 영화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언어의 칼날은 푸른빛을 뿌리며 임금 앞 내행전을 가로지릅니다. 주전파의 목청은 실천불가능한 정의를 부르짖고 주화파는 실천가능한 치욕을 꾸역꾸역 삼키는 것입니다. 양대 세력을 대표하는 상헌도 명길도 맞선 상대방의 언어의 논리를 모를 리 없습니다. 당장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살지도 못하는 지경에서 맡은 형국의 좌우 날개를 펼쳐 보이는 거지요.

 

# 청장 용골대의 문서를 놓고 어전은 요란하다. 문서의 서식은 난잡했고 무례했다. 법도를 갖추지 않았다 하여 나흘이 지나 임금에게 보고된다. 신료들이 다 모인 내행전에서 승지가 용골대의 문서를 읽는다. 

 

- 이조판서 최명길 = 전하, 적의 문서가 비록 무도하나 신들을 성밖으로 청하고 있으니 아마도 화친할 뜻이 있을 것이옵니다. 글을 닦아서 응답할 일은 아니로되 신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 말길을 트게 하소서.
– 예조판서 김상헌 = 화친이라 함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논할 수 있는 것이 온데 지금 적들이 대병을 몰아 이처럼 깊이 들어왔으니 화친은 가당치 않사옵니다. 화친으로 적을 대하는 형식을 삼더라도 지킴으로써 내실을 돋우고 싸움으로써 맞서야만 화친의 길도 열릴 것이며, 싸우고 지키지 않으면 화친할 길은 마침내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和, 戰, 守는 다르지 않사옵니다.
– 최명길 = 예판의 말은 말로써 옳으나 그 헤아림이 얕사옵니다. 화친을 형식으로 내세우면서 적이 성을 서둘러 취하지 않음은 성을 말려서 뿌리 뽑으려는 뜻이 온데, 앉아서 말라죽을 날을 기다릴 수는 없사옵니다. 안이 피폐하면 내실을 도모할 수 없고, 내실이 없으면 어찌 나아가 싸울 수 있겠사옵니까. 싸울 자리에서 싸우고, 지킬 자리에서 지키고, 물러설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이 사리일진대 여기가 대체 어느 자리이겠습니까.
– 김상헌 = 이거 보시오, 이판. 싸울 수 없는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 戰이고, 지킬 수 없는 자리에서 지키는 것이 守이며, 화해할 수 없는 때 화해하는 것은 和가 아니라 降이오. 여기가 대체 어느 자리요?
– 최명길 = 예판이 화해할 수 있는 때와 화해할 수 없는 때를 말하고 또 성의 내실을 말하나, 아직 내실이 남아 있을 때가 화친의 때이옵니다. 성 안이 다 마르고 시들면 어느 적이 스스로 무너질 상대와 화친을 도모하겠나이까.
– 김상헌 = 이판의 말은 몽매하여 본말이 뒤집힌 것이옵니다. 戰이 本이고 和가 末이며 守는 實이옵니다. 그러므로 戰이 和를 이끌어 내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옵니다. 더구나 천도가 전하께 부응하고, 전하에게 失德하신 일이 없으시며 또 이만한 성에 의지하고 있으니 반드시 싸우고 지켜서 회복할 길이 있을 것이옵니다.
– 최명길 =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갇힌 성 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 김상헌 =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 최명길 =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 인조 = 어허, 그만들 하라. 그만들 해.
– 최명길 = 장마가 지면 물이 한 골로 모이듯 말도 한곳으로 쏠리는 것입니다. 성 안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묘당의 말들은 이른바 대의로 쏠려서 사세(事勢)를 돌보지 않으니, 대의를 말하는 목소리는 크고 사세를 살피는 목소리는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사세가 말과 맞지 않으면 산목숨이 어느 쪽을 좇아야 하겠습니까. 상헌은 우뚝하고 신은 비루하며, 상헌은 충직하고 신은 불민한 줄 아오나 상헌을 충렬의 반열에 올리시더라도 신의 뜻을 따라주시옵소서.
– 김상헌 = 묘당의 말들이 그동안 화친을 배척해온 것은 말이 쏠린 것이 아니옵고 강토를 보전하고 군부를 지키려는 대의를 향해 공론이 아름답게 모인 것이옵니다. 명길이 저토록 조정의 의로운 공론을 업신여기고 종사를 虎口에 던지려 하니 명길이 과연 전하의 신하이옵니까.
– 최명길 = 전하, 늦추어야 할 일이 있고 당겨야 할 일이 있는 것이옵니다. 적의 공성을 늦추시고, 늦추시는 일을 당기옵소서. 헛된 말들은 소리가 크고 한 골로 쏠리는 법이옵니다. 중론을 묻지 마시고 오직 전하의 성단으로 행하소서.
– 김상헌 = 화친은 불가하옵니다. 크게 한번 싸우는 기세를 보이지 않고 和자를 먼저 꺼내면 적들은 우리를 더욱 깔보고 감당할 수없는 요구를 해올 것입니다. 이백년 종사가 신민을 가르쳐서 길렀으니 반드시 의분하는 창의의 무리들이 달려올 것입니다.
– 최명길 = 상헌의 답답함이 저러하옵니다. 창의를 불러 모은다고 꼭 화친의 말길을 끊어야 하는 것이겠사옵니까. 군신이 함께 피를 흘리더라도 적게 흘리는 편이 이로울 터인데 義를 세운다고 利를 버려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 김상헌 = 조정이 화친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성첩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옵니다. 和자를 깃발로 내걸고 군병을 격발시키며 창의의 군사를 불러 모을 수 있겠사옵니까. 명길의 말은 義도 아니고 利도 아니옵니다. 명길은 울면서 노래하고 웃으면서 곡을 하려는 자이옵니다.
– 임금은 ‘어허’ 하고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돌아앉았다. (소설 발췌)

 

 

 

■ 모두 몸으로 사연으로 글로 말로 시간을 받아내며 살고 있습니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 한강나루터 삼전도는 370년 전 청의 칸에게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임금의 치욕을 받아냈습니다. 농성 47일간 의식주는 부족했습니다. 창고에서 발견된 밴댕이젓 한 독. 찬이 부족한 피난왕실은 종실 사람들과 주요 신료들에게 삭은 밴댕이 두 마리씩 나뭇잎에 싸서 젓국 반 홉과 나눠주었습니다.

 

 

그 빈한과 극빈도 남한산성은 받아냈습니다. 주전파도 주화파도 흘렀습니다. 수십만 청군의 몸을 능욕으로 받아내야 했던 조선 여인네들. 그리고 청에 끌려가 타살과 자살로 흘렀던 수만 명의 치욕도 흘러갔습니다. 누구도 서술하지않았던 암울한 역사 풍경을 추적한 김훈의 소설미학은 빛나 보입니다. 오늘도 한강은 서해로 흐르고 있습니다.

 

 

  # 밝음과 어둠이 꿰맨 자리 없이 포개지고 갈라져서 날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남한산성에서 시간은 서두르지 않았고 머뭇거리지 않았다. 군량은 시간과 더불어 말라갔다. 쌓인 눈이 낮에는 빛을 튕겨냈고, 밤에는 어둠을 빨아들였다. 오목한 성안에 낮에는 빛들이 들끓었고 밤에는 어둠이 고였다. 빛이 사위어서 물러서는 저녁의 시간들은 느슨했으나 어둠은 완강했다. (소설 발췌)

 

 

- 해리슨 생각.

 

 

One thought on “싸우다 죽자는 주전파 vs 항복해 살아남자는 주화파

  1. jinbo22

    저 인간의 소설 내용이 고증상 맞긴 맞는건가? 그 시대 여진족이
    무신 칸이라는 직제를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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