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년과 30대 여인의 파격적 사랑을 다룬 영화

카테고리 : 생기발랄 한국말 | 작성자 : harrison

[ 생기발랄 한국말 46 ]

    

“스스로 저지른 죄를 깨달았는가

 

자신의 죄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묵직한 메시지를 품은 속 깊은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 Der Vorleser)>는 2009년에 절찬리에 개봉되었지만 국내에서는 2017년 1월에도 일부 극장에서 재개봉되었습니다.

    

영화는 10대 소년과 30대 여인의 파격적 사랑을 그려냅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동명 소설을 인문학적 서정과 가슴 저린 영상미로 스크린에 부활시켰습니다. 은밀하게 감춰진 사랑이 전후 전범 재판의 역사와 겹쳐지면서 두 사람의 전 생애를 뒤흔들며 관통해가는 여정이 관객의 호흡을 가쁘게 합니다. 전 세계 독서계를 휩쓴 원작의 깊이와 뛰어난 연출 코드가 합쳐져 지금도 영화읽기 텍스트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말 독일의 어느 도시. 황달로 고열 증상이 심한 15세 소년이 공동주택 입구에서 구토를 하고 있습니다. 이때 30대 중반의 여인이 다가와 다독이고 귀가하도록 부축해줍니다. 심하게 앓고 난 10대 소년 마이클 버그(데이비드 크로스)는 완치 후 꽃다발을 듣고 여인을 찾아옵니다. 전차 검표원으로 홀로 살아가는 여인 한나 슈미츠(케이트 윈슬렛)와의 한평생 인연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나의 집에서 시작된 소년과 여인의 격정은 몸의 사랑을 뜨겁게 보여줍니다. 몸은 성인처럼 커져가지만 아직 설익은 소년이기만한 마이클. 이제 삶을 갓 출발한 순수는 여인의 성숙한 관능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첫 사랑의 상흔은 참으로 오래 지속됩니다. 마이클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1958년부터 1995년에 이르기까지 교차 편집되면서 영화는 무지했지만 순수했던 한 여인의 사랑과 소통을 스케치합니다.

    

혈혈단신 한나는 외로운 여자입니다. 혼자 살아왔고 전차 검표원으로 일하며 궁핍의 시대에 살아남아야 합니다. 불행이도 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 글을 이해하는 척 살아왔습니다. 읽지 못하는 문맹의 치욕을 늘 타인에게 숨기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책을 읽는 타인의 낭독 소리를 듣고서야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는 한나에게 책은 갈망의 수준을 넘어 평생 恨으로 작동됩니다.

    

어린 마이클은 여인의 농익은 성적 매력 앞에서 무너져 내립니다. 어른이 된 것 같고 사는 게 신이 납니다. 한나에게 마이클은 책으로 다가왔습니다. 풋풋한 소년의 진지한 입술로 읊조리는 낭독을 늘 갈망합니다. 마이클에게 여자를 가르쳐 준 한나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 전, 항상 책을 읽어달라고 합니다. 책 낭독 듣기, 함께 샤워하기, 함께 사랑하기, 함께 책이야기 나누기. 한나는 마이클의 낭독을 통해 문학소녀가 되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에 눈물 흘립니다.

    

낭독의 경청은 한나 슈미츠에게 삶의 기쁨이 되어갑니다. 사랑에 빠진 마이클은 오디세이를 비롯해 온갖 책을 읽어줍니다. 어느 날 그들의 기묘한 사랑은 갑자기 중단됩니다. 전차 검표원으로서 근무성적이 너무 우수해 사무직으로 승진 발령 나자, 한나는 마이클의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맙니다.

    

8년이 흐른 1966년 독일 법정. 나치전범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20세기 최악의 범죄인 유태인 홀로코스트를 단죄하는 전후 독일사회 엄정한 분위기가 법정에 가득합니다. 법대에 다니는 대학생 마이클이 현장수업 출석차 와 있습니다. 법관의 호명에 대답하는 피고인석 43세 한나 슈미츠. 한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마이클은 깜짝 놀랍니다. 그의 첫 사랑이 나치의 전범으로 초라하게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나치의 앞잡이로 기소되어 있습니다.

    

한나는 가난하고 불운의 어린 시절을 보냈겠지요. 제때 교육받지 못해 글을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20대 때 지멘스 군수공장에서 일하다 나치 아우슈비츠수용소 감시원으로 취직합니다. 나치의 광기가 수많은 유태인들을 죽음의 가스실로 몰아가던 시절, 무지몽매한 한나는 감시원으로서 조직의 명령에 따라 저승사자 역할을 하고 맙니다. 그저 직무에 충실할 줄만 알았던 비극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여인. 한 여자의 ‘시대를 살아왔던 방식’을 단죄하려는 독일 사회. 영화는 그 당대의 역사적 시각과 관련 인물들의 시선을 주목합니다.

    

전범 재판정 피고석에 앉은 혐의자들은 모두 제 몫의 과거를 부인하기 바쁩니다. 단순무지한 한나만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은 감시원으로서 명령에 따랐다고 고백합니다. “재판장님이 그때 저라면 어떡할 수 있나요” 이렇게 항변하는 순진함도 드러냅니다. 재판정에서 그녀의 운명을 뒤흔든 사건이 추궁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송중인 유태인들을 수용한 교회에 대형 화재가 발생합니다. 불타는 교회의 문을 제 때에 열어주지 않아 수백 명의 유태인들이 몰살당합니다.

    

순진무구한 한나는 문을 열어주면 탈출이 벌어지고 이에 따라 무질서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즉 자신은 상부가 명령한 질서유지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천연덕스럽게 증언합니다. 이때부터 피고석의 동료들은 한나를 책임자급 경비원으로 지목하면서 모든 것을 한나의 지시로 몰아갑니다. 비겁한 옛 동료들은 유태인 몰살 사건 보고서를 한나가 단독 작성했다고 우기고, 재판장은 수십 년 전 보고서에 대해 필체 감정을 하여 그 진위를 가리겠다고 선언합니다.

    

피고 한나 앞에 종이와 펜이 놓입니다. 순간 한나의 얼굴은 파르르 떨립니다. 이를 지켜보던 마이클의 머릿속은 책을 읽어 달라던 8년 전 한나 모습들이 스쳐갑니다. 식당 메뉴판을 보고도 마이클에게 넘기며 먼저 고르라던 그녀, 모든 읽는 행위는 한사코 자신에게 미루던 한나… 마이클은 이제야 그녀의 비밀을 알아차립니다. 읽지도 못하는 데 무슨 보고서를 쓸 수 있단 말인가.

    

한나 슈미츠는 크게 호흡을 들이 쉰 후, 재판정의 모든 혐의점을 인정하고 맙니다. 필적 감정은 취소되고 한나는 종신형에 처해집니다. 그의 옛 동료들은 가벼운 처벌만 받습니다. 문맹의 비밀을 숨기고픈 목숨 건 자존심, 천인공노할 나치범죄에 일조한 자신의 죄과를 실감하지 못하고 “먹고 살기위해 그저 상부지시에 복무만 했다”는 단순무지함. 참관인석의 마이클은 괴로워 눈물 흘리고 속앓이는 깊어 갑니다. 법정에 제3자 증언자로 나서 옛 연인의 진실을 고백할 것인가. 한나가 택한 결정을 존중해줄 것인가.

 

 

 

세월이 흐릅니다. 법학자가 된 마이클. 법대 여자동창생과 결혼해 딸이 있습니다. 한나와의 첫 사랑에 영혼이 덴 마이클은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아내와도 이혼하게 되고 딸과도 떨어져 삽니다. 이삿짐을 챙기다 한나에게 읽어주었던 책더미를 발견합니다. 이제 마이클은 밤마다 녹음기를 틀어놓고 낭송합니다.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비롯해 수많은 책을 녹음합니다.

    

한나가 복역하는 교도소에 소포가 배달됩니다. 한나는 카세트 녹음기와 테이프 더미를 받습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누구도 모르게) 가슴속에 간직해뒀던 마이클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 어떤 편지도 첨부되지 않고 마이클의 책 낭독 테이프만 꾸준히 전달됩니다. 마이클의 한나에 대한 사랑은 어떤 경계선 위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군요. 마이클 서가에선 책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한나의 좁은 감방 한쪽 벽엔 낭송 테이프가 무수히 쌓여갑니다. 푸른 수의를 입은 한나의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어느날 한나는 교도소 도서관에서 안톤 체홉 단행본을 빌려옵니다. 책을 펴고 마이클의 녹음 테이프를 틉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는 마이클의 음성을 들으며 문장을 따라가던 한나는 연필을 들고 정관사 The를 주시합니다. 반복되는 The를 ‘더’로 발음하는 것을 깨우친 것입니다. 책을 읽어주는 남자가 ‘낭송을 듣던 여인’에게 글을 깨우치게 하는 운명적 순간입니다. 단어발음과 단어스펠을 일치시키며 한나는 드디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여인’으로 변합니다.

    

1980년 한나 슈미츠가 생애 최초로 펜을 들어 마이클에게 편지를 씁니다. “테이프 보내줘서 고마워, 꼬마야. 사랑이야기 많이 보내줘. 내 편지받고 있는 거니? 답장 받고 싶구나.” 마이클은 한나의 편지를 받고서 그녀가 이제 글을 읽고 쓰게 된 것을 압니다. 답장은 하지 않습니다.

    

그토록 답장을 기다리는 한나에게 마이클은 왜 편지를 쓰지 않았을까요? 교도소 밖의 마이클에게 한나는 반인륜적 범죄를 속죄해야하는 전범으로서, 수형생활 20년째에 접어든 노인인 것입니다. 옛사랑의 추억에 사로잡히면서도 연약한 영혼을 가진 마이클(랄프 파인즈)의 흔들리는 눈빛 연기는 촉촉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책을 읽으며 한나는 알아갑니다. 나치의 잔학한 행위를 고발하는 유태인 생존자들의 책들을 읽습니다. 광기의 시대를 거치며 자신이 나치 조직의 한 일원으로서 저지른 죄과를 깨달아 갑니다. 문맹이었던 자신이 무지함 속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문학작품을 읽으며 사람의 향기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전율하듯 느껴갑니다.

    

10대 소년 시기, 한나를 통해 삶의 흔들림을 체험한 마이클도 중년이 되었습니다. 그가 옥중의 한나에게 보낸 (감방 한쪽 벽면에 켜켜이 쌓인) 녹음 테이프는 무슨 의미일까요. 과연 한나는 평생 마이클을 사랑해서 책을 읽어달라고 했을까요. 수십년 전 책을 향한 갈망이 어린 마이클을 자신에게 오도록 했을까요. 책을 읽는 행위는 두 사람에게 무슨 의미일까요.

 

 

 

교도소장은 한나 슈미츠가 유일하게 연락을 주고 받는 마이클 버그를 주목합니다. 한나는 성실한 복역으로 종신형에서 20년 형기로 감형 받았고 이제 자유의 몸으로 가석방될 예정입니다. 교도소장은 유일한 연락자인 마이클에게 면담을 신청합니다. 그녀의 후견인으로 나선 마이클은 한나가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머물 곳을 챙겨줍니다. 드디어 가석방 날, 꽃다발을 들고 나타난 마이클에게 교도소장은 (방금 발생한) 충격적인 한나의 결단을 알립니다.

    

영화는 나치체제의 국가폭력 과정에 관련된 인물에게 손쉽게 면죄부를 주거나, 그의 속죄를 이의없이 받아주자는 메시지를 전파하지 않습니다. 시대의 광기와 인간의 무지에 대한 냉정한 시선을 유지합니다. 동시에 누가 누구를 단죄하고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에 대해 속 깊은 물음을 던집니다.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묻는 영화가 아닙니다. 스스로가 저지른 죄를 진실로 깨달았는가 자신의 죄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동시에 영화 전편에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와 함께 책을 읽고 감동하는 것, 사람과 사람사이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의 위대함입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었나요. 당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은 있었나요.

    

- 감독 : 스티븐 달드리 Stephen Daldry

- 한나 역 : 케이트 윈슬렛 Kate Wins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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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회(2009)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 더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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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역 : 랄프 파인즈 Ralph Fiennes

- 어린 마이클 역 : 데이비드 크로스 David Kross

    

- 해리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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