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전화 기다리는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

카테고리 : 좋은 문학 | 작성자 : har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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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치 혀로 누군가를 힐난합니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려 특정인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그를 깎아내리는 댓글을 답니다.
제 이름을 숨기고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내뱉습니다.
자, 그러면 속이 시원해질까요.
체증이 내려간 듯 막힌 가슴이 뻥 뚫린 듯 스트레스가 해소될까요.
결코 기쁘지 않습니다. 속으로는 양심의 종이 댕댕~ 울립니다.
말과 글로 남발한 천박한 품격이 결코 만족감을 주지 않습니다.
차라리 부끄럽고 남이 알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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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매도해 그 자존심에 상처 주는 언어의 삿대질은
상대방에게 잊혀지지 않는 상흔을 남기고 격한 말을 내뱉는 자신에게도 불행의 단초로 작용합니다.
선(善)은 선을 부르고 악(惡)은 악을 부릅니다.
작은 폭력이 큰 폭력에 물들듯이 비난과 욕설은 언어폭력 중독증으로 이어집니다.
양심이 부끄러워지자 몰래 숨어서 작렬시키는 인터넷 언어폭력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익명으로 자행하는 글 폭력은 표현의 자유가 아닙니다.
자신과 상대방, 우리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는 악성바이러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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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찬 이슬방울에 발목이 시원해지는 산책길.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이 정겹습니다. 신선한 숲 향이 은은합니다.
산책에 나선 초면의 노부부와 마주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제게 먼저 인사를 건네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사는 아랫사람이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건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숲길을 진정으로 향유하는 푸근함이 먼저 인사하게 합니다.
주인 의식이 생길 때 인사가 절로 나옵니다.
환경에 낯설고 손님으로 머물기만 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말 걸기’가 순조롭지 못합니다.
쭈뼛거리고 뻣뻣하여 온유한 인사가 배어나오지 않습니다.
관계와 환경을 주체적으로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열린 마음의 인사가 오가는 관계가 두터울수록 우리 사회는 ‘행복 바이러스’가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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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극장에서, 식당에서, 고속버스에서, 열차에서, 강의실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면 어떨까요.
자칫하면 적대감으로 까지 비춰질 수 있는 무표정, 퉁명스러움, 삭막함을 지워나가면 어떨까요.
누구에게나 버거운 세상. 좁은 땅 욕망과 욕구가 켜켜이 쌓인 고농축 밀집사회인 한국.
한마디 칭찬과 격려가 메마른 이 땅을 적셔줍니다.
폄하하고 깎아내리는 비판보다 칭찬하고 격려해줘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챙겨주는 따뜻한 시 한편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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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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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 ㅡ ㅡ  최 명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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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가 손님 전화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꼭 솟대에 앉은 새 같다
날아가고 싶은데 날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며 서성대다가 휴대폰이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재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언제 날아와 앉았는지 솟대 위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그의 날개는 많이 꺾여 있다
솟대의 긴 장대를 꽉 움켜쥐고 있던 두 다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새벽 3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워 하염없이 걷다 보면 영동대교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은 적도 있다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정육점 앞을 지나다가 마치 자기가
붉은 형광등 불빛에 알몸이 드러난 고깃덩어리 같았다고
새벽거리를 헤매며 쓰레기봉투를 찢는 밤고양이 같았다고
남의 운전대를 잡고 물 위를 달리는 소금쟁이 같았다고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아니야, 넌 우리 마을에 있던 솟대의 새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솟대 끝에 앉은 우리 마을의 나무새는 언제나 노을이 지면
마을을 한 바퀴 휘돌고 장대 끝에 앉아 물소리를 내고 바람소리를 내었다
친구여, 이제는 한강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물오리의 길을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함께 가자
깊은 밤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휴대폰이 급하게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사라지는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
오늘밤에도 서울의 솟대 끝에 앉아 붉은 달을 바라본다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 매달려 달빛은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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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시집 <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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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대리운전하는 친구는 추락한 불우이웃이 아닙니다.
그 친구는 솟대위에 가만히 앉아 있지만
휴대폰이 울리면 총알처럼 현장으로 튀어나가야 하는 생계인입니다.
심야의 작전을 완료하면 다시 ‘원 위치’해 출동 대기해야하는 대리운전사.
생계인을 쉽게 동정의 눈길로 보지마시길…
우리 모두 자신의 생계에 매달려있지만 당당해야 하거든요.
당신과 나는 한 조각의 게으름도 피우지 못하고 생업의 바퀴를 굴려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 피어오르는 슬픔과 허무는 어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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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전선의 막막함에서 자유로운 우리 시대 생활인은 얼마나 될까요.
낮 동안 힘겹게 노동을 마친 이들이 술 한 잔에 혼곤히 젖어 호출을 시도할 즈음.
야간 대리운전자는 도심의 버스 정거장 옆 솟대 위를 박차고 나와야 합니다.
누군가의 대리운전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대리운전을 맡겨본 적이 있지요.
부대끼는 팍팍함에 발목이 끌리지만 일을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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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솟대에 내걸린 마음 한 조각이 발버둥치고 있네요.

옛 고향마을 당산나무 옆 솟대 위 새 한 마리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솟대를 떠난 친구도 우리도 어김없이 박제된 삶의 전선에 갇히고 맙니다.
새벽 3시 손님을 대리운전해주고 나니 두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택시비가 아까워 하염없이 걷다보니 다다른 영동대교.
확 뛰어내리고픈 충동을 이를 악물며 참아 냅니다.
일상의 굴레에 코 꿰어진 몸뚱이의 처지는 정육점에 매달린 고깃덩어리…
새벽거리 헤매는 밤고양이…
남의 운전대 잡고 물위를 달리는 소금쟁이로 연쇄 감정이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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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는 안테나입니다.
솟대는 땅의 섭리와 우주의 웅혼한 기운이 서로 교신하는 소통장치입니다.
솟대는 한 그루 우주나무입니다.
시인은 친구에게 나무토막으로 변하지 말고
푸드덕 날개를 품은 진짜 솟대가 되자고 속삭입니다.
솟대는 되찾아야할 눈물겨운 희망입니다.
솟대는 우리 마음속 교신의 굴뚝이요 연락의 전신주입니다.
시인이 피워 올린 격려의 솟대.
삶의 경계선 위 힘겹게 버티는 이들에게 시의 다독임이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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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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