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수의 첫사랑

 ***이 글은 팩션이 아닙니다. 팩션의 모티브가 될 수 있는 넌픽션입니다. 팩션을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위한 준비작업입니다.

  이 글은 제가 1998년 전국을 돌아다니며 탈옥수 신창원의 행적을 추적한 뒤 쓴 4만여 자의 보고서를 정리한 기사입니다. 신동아에도 게재했던 글을 재정리했습니다. 1주일에 한, 두편 정도씩 연재할 계획입니다.***

 

  1997년 12월30일 새벽 전 씨는 음주운전을 하다 접촉사고를 낸 뒤 사고 수습을 위해 경찰에 연락하면서 신이 평택에 살고 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질투심에 사로잡힌 전 씨가 신과 강 씨가 살고 있는 집을 알려줬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1시반경 경찰은 신과 강 씨가 함께 있던 평택시 신장1동 N빌라를 덮쳤으나 신은 칼을 들고 반항하다 옥상을 통해 반대편 계단을 내려가 도주했다.

  하지만 전 씨는 질투심 때문이 아니라 신의 부탁으로 신고했다고 주장했다.

  “접촉사고를 낸 것은 내가 아니라 친구였어요. 사고처리도 운전자들 사이에 해결을 봤죠.내가 신이 사는 곳을 경찰에 알려준 이유는 강 씨를 질투해서가 아니었어요. 신이 나를 만날 때마다 쫓기며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고 여러 차례 호출기에 경찰에 신고하라는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에요.”

  1998년 1월10일 오후 10시경 신은 전 씨에게 전화해 자정에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산 산천장 앞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날 전 씨는 승용차 뒷좌석에 경찰 2명을 숨긴 채 약속장소로 나갔고 신은 이들과 30여분 간 격투를 벌인 뒤 달아났다.

  “당시에는 경찰에 시달리다 지쳐 정말로 신이 잡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신에게 아무 감정이 없어요.솔직히 신이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다시 시끄러워지면 저와 저의 가족들만 피곤해져요.”

  전 씨는 올 7월초 신을 만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남자와 새로 살림을 차려 살면서 언론과의 접촉을 극히 꺼렸다.

  신이 7월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 남기고 간 수기에는 당시 전 씨와 강 씨 사이를 오가며 겪은 고민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적혀있다. 특히 신은 강 씨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물론 이도 언론을 의식한 조작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중 일부를 발췌했다. 

  “… 그때는 여자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나는 ○○이(전 씨)가 나와의 관계를 청산할려고 하는 줄만 알았고 그녀의 말대로 ○○이(강 씨)를 데리고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석었다.… 난 성격이 모질지 못하다.○○이와 ○○이 어느 한쪽을 버렸다면 이렇게 힘든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 ○○이(강 씨)는 정말 순진하고 정이 많은 아이다.착하고 불쌍한 애.… 나에게 경찰이 들이 닥치던 날 하루전 나는 ○○이(강 씨)에게 오늘 떠난다고 말하고 울고 있는 ○○이(강 씨)를 놔두고 집을 나왔다.그날 저녁 내내 ○○이(강씨)가 너무 불쌍해서 너무 괴로와 술을 마셨고 그날 떠났더라면 그녀에게 피해는 없었을텐데 …” 

 

  “신은 불쌍한 사람이에요. 환경만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잘 성장했을 사람이죠. 머리도 좋고 성격도 차분하고 착한 성품을 지녔어요. 우리 아들과 비교해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신을 보며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10세 아들을 둔 동거녀 심 씨의 신에 대한 평이다. 심 씨는 1997년 이혼했고 아들은 전남편이 키우고 있다.

  신의 첫 전과는 15세 되던 해 저지른 닭서리, 새우깡, 카세트테이프레코더 절도.  

  1982년 2월20일 신은 친구 6명과 함께 전북 김제군 황산면 남양리의 한 양계장에서 닭 6마리를 훔쳤다. 황산면은 신의 고향 금구면 하신리 바로 옆동네.

  신과 친구들은 이날 하신리 한 가게에서 새우깡도 한상자 훔쳤다. 또 열흘뒤 금구면 금구리 한 가정집에서 카세트테이프레코더를 1대 훔쳤다. 신은 절도죄로 소년원에 송치됐다.

  신의 아버지(74)는 아들의 빗나간 인생이 이때 자기가 고지식하게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자책한다.

  “동네 사람들이 창원이를 잡아 왔더라구. 나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경찰에 알렸지. 그런데 그게 잘못이었어.” 

  신은 소년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범죄에 눈을 떴다. 신의 가족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신을 마땅히 돌봐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 신이 비뚤어지게 된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 전모 씨는 신이 6세 되던 해 숨졌다. 신의 누나(33)는 어머니가 숨진 뒤 신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는 당장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때에요. 무뚝뚝한 성격의 아버지는 자식들을 챙기고 보살피는 성격이 아니었지요. 나도 어리고 어머니도 안 계시니 창원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어요.” 

  신의 고향 친구 윤모(31) 씨는 “창원이는 머리도 좋고 남자 다워서 어렸을때부터 친구들이 많이 따랐다”며 “하지만 자기 것을 챙길줄 몰라 손해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신은 소년원에 가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중학교 2학년 중퇴가 그의 학력. 

  신은 소년원을 나와 서울에서 생활하며 본격적인 절도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1982년 7월 신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가정집에서 100만 원권 수표와 현금을 훔친 죄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4년 형을 선고받았다.

  또 1984년 2월 자정경 영등포구 영등포동에서 자동차를 훔친 혐의로 인천소년원에 기결수로 구속 수감됐다. 

  당시 신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 서울 영등포구 양천구 금천구 구로구 등 서울의 강서지역. 신이 올 7월 동거녀 박씨를 만났던 곳은 서울 영등포역 근처 사창가. 또 이보다 한달전 금천구 가산동 단란주점에 두차례 금천구 독산동 다방에 세 차례 다녀갔던 행적이 경찰조사결과 확인됐다. 

  신의 도피 원칙중 하나가 “길을 모르는 곳엔 가지 않는다”이다. 지리를 잘 아는 곳에서 활동하는 것. 

  신이 남긴 수기에 보면 “김제에 가기로 했다. 집에 갈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곳은 내가 잘 알기에 되도록이면 잘 아는 곳, 지리를 잘 아는 곳이 나을 것 같았다”는 구절이 있다.

  1985년부터 신은 활동무대를 용산구 이태원으로 옮겼다. 당시 이태원에서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했던 신의 고향 친구 윤모(31) 씨는 “창원이가 절도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던 때가 85년경”이라며 “한번은 ‘대도 조세형도 나한텐 안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해 7월 신은 이태원 한 가정집에 침입해 양복과 현금 등 230여만 원 상당의 물품과 돈을 훔친 죄로 다시 구속수감됐다. 

  1988년 출소한 신은 1989년 강도살인죄로 검거되기 전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라마다르네상스호텔 주변 유흥가와 송파구 천호동 마천동 일대, 그리고 강북의 장안동과 청량리역 주변에서 주로 활동했다. 

  당시 신이 가졌던 목표는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의 잇권을 가진 조직의 일원, 즉 ‘건달’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목표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송교도소와 부산교도소에서 신과 함께 복역했던 이모(43) 씨는 “싸움과 투지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창원이는 건달이 되기 위해 기회를 엿봤지만 끌어줄 람을 끝내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도소에서도 신은 ‘건달’들을 사귀기 위해 무척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

  “창원이는 교도소 안에서 현금처럼 유통되는 담배가 손에 들어오면 대부분을 건달들에게 주면서 친해지려 애썼다. 건달들도 창원이의 의리나 싸움실력을 인정했고 서로 잘 지내긴 했다. 하지만 그건 괜히 창원이와 시비가 붙으면 자기들이 깨질 것을 알았던 ‘건달’들이 편하게 지내기 위한 술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이용가치가 없으면 과감히 버리는 놈들이다. 무기형을 받아 빨라봤자 마흔 살이 넘어 출소할 창원이를 누가 진정으로 인정했겠느냐. 창원이에게도 여러번 말했지만 설득이 안됐다.” 

  맨몸으로 싸우면 웬만한 ‘어깨’ 5명 정도는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싸움을 잘한다고 교도소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던 신. ‘능력’은 있는데 아무도 받아주지 않자 신은 도둑질과 ‘퍽치기’(술취한 사람을 때려 정신을 잃게한 뒤 돈을 뺏는 것)에 몰두했다.

  당시 천호동 P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하면서 신을 친형처럼 따랐던 양모(28) 씨는 “형이 당시 얼마나 퍽치기를 많이 했는지 천호동 마천동 일대 유흥업소 업주들 대부분이 장사 망친다고 형이 나타나는 것을 싫어했다”고 말했다.   

  

  신이 ‘첫사랑’ 이모(27) 씨를 만난 것은 이때. 당시 신의 나이 21세 였고 이 씨는 신보다 4살이 어렸다. 이씨에 대한 신의 감정은 올 7월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서 발견된 수기에서도 잘나타난다. 

  “… 10여일을 떠돌다 ○○이(동거녀 강 씨)를 알게 됐고 ○○이(강 씨)의 모습이 ○○(이 씨)와 닮은 점이 너무 많았다.그 때문에 정이 갔고 그녀와 동거를 시작했다. …첫사랑 ○○를 잊는데 6,7년이 걸렸다.… 내가 사랑했던 세 여인들(첫사랑 이 씨,동거녀 전 씨, 강 씨를 지칭)을 힘들게 하지 말기 바란다. 만약 이들 중 한명이라도 잘못됐다는 말이 내 귀에 들어오면 그때는 엄청난 결과가 있을 것이다…” 

  신은 이 씨와 함께 천호동 마천동과 경기 성남시 일대를 주로 돌아다녔고 특히 신의 후배 곽모(27) 씨의 커플과 자주 만났다. 곽씨의 당시 애인은 최모(27) 씨로 이 씨와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

  이들 4명은 신과 곽씨가 강도살인죄로 경찰에 쫓길 때까지 거의 붙어 지내다시피 했다.

당시 신은 직접 조직을 만들어 혼자 힘으로 건달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후배들을 끌어 모아 강도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경찰조사 결과 당시 신은 천호동 장안동 영등포동 등 서울 곳곳의 여관에 5, 6개의 아지트를 두고 활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와중에 벌어진 일이 1989년 3월28일 서울 성북구 돈암1동 골목길에서 문구도매상 김모(당시 37세) 씨의 돈을 뺏고 김씨의 처남 정모 씨를 칼로 찔러 죽인 사건.

  김씨의 돈 3280여만 원도 뺏어 달아났다. 신과 함께 이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곽씨를 포함해 모두 5명. 이들 중 K(31) 씨는 당시 김 씨가 운영하던 문구점의 종업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김 씨가 가방에 돈을 넣고 귀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남 정 씨와 함께 귀가하는 김씨의 돈을 뺏던 이들은 반항하는 정씨를 칼로 찌르고 쇠파이프로 때려 숨지게 한 것. 

  전치 4주의 상처를 입은 김 씨는 K 씨의 얼굴을 기억했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다음달 1일 경찰은 신 등 6명이 술을 마시고 있던 경기 구리시 교문동 N스탠드빠를 덮쳤다. 이날 K 씨 등 5명은 붙잡혔지만 신은 경찰과 격투를 벌이다 도망쳤다.  이때부터 신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애인 이 씨와 서울 대구 대전 전주 등의 여관을 전전하다 6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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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수, 어느 여자에게로 가야 하나

  ***이 글은 팩션이 아닙니다. 팩션의 모티브가 될 수 있는 넌픽션입니다. 팩션을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위한 준비작업입니다.

      이 글은 제가 1998년 전국을 돌아다니며 탈옥수 신창원의 행적을 추적한 뒤 쓴 4만여 자의 보고서를 정리한 기사입니다. 신동아에도 게재했던 글을 재정리했습니다. 1주일에 한, 두편 정도씩 연재할 계획입니다.***

 

  

  탈옥수로 쫓기면서도 여유를 발휘해 이웃을 돕는 신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강 씨는 감동했다.

  “요한의 집에 다녀온 날 오빠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생활비를 아끼면 매달 얼마씩이라도 이곳에 돈을 전달할 수 있을 거야.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 장애자들을 목욕도 시켜주고 밥도 먹여주자’고.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신의 이 행적에 대해 다른 시각도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탈옥수라는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이웃에게 너그러운 모범시민으로 위장하려 한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신은 1월6일 쓴 강 씨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수기를 통해 이를 반박했다.

  “… 오늘 신문을 봤다.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고 나왔더구나. 요한의 집, ○○,○○에게 갔던 것이 너를 속이고 좀 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는구나.내가 정말 그랬을까? 네가 그건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냥 그들을 돕고 싶었어. 죽을 때까지. 정당한 돈, 깨끗한 돈은 아니더라도. 내가 살던 어린시절이 생각나곤 했지. 다른 사람에겐 적은 돈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겐 큰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었어. 한달 생활비가 18만원. 그것으로 어떻게 살 수 있겠니?”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언론을 이용할줄 아는 신이 ‘플레이’ 를 했다는 주장이 있다. 

  한 경찰관계자는 “수기의 내용 곳곳에 언론을 대상으로 한 의도적인 글귀들이 보인다. 언론에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흘리면 일반인들의 신고가 줄고 도피가 유리해 진다는 것을 알고 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또 수기에 담긴 동거녀들을 향한 사랑의 표현도 언론에 부드러운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동거녀들이 자신의 과거행적을 경찰에 알리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쓴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다음은 신이 올 7월16일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 나타나기 전 열흘가량 동거했던 박모(21) 씨에게 남긴 편지 전문이다.

  “사랑하는 ○○에게.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너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행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에게 너무 심했구나. 너의 자존심을 뭉개고 나는 네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내가 뭐 잘난게 있다고. ○○야 사랑한다. 우리가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면 진짜 좋은 오빠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이틀이 됐는데도 소식이 없어 너무 답답해서 집을 나간다. 네가 날 싫어했기 때문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널 포기하겠다. 너에게 아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소식이 없으니 네가 잘못된 것 같은 불길한 생각 때문에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겠다. ○○야 너에게 잘해준 게 하나도 없구나. 나는 널 이해하면서 내 인생을 너에게 맡기고 싶다. 마지막 날까지.내가 싫어도 전화 한번 해줄 수 있겠니? 1주일만 기다리겠다. 그때까지 소식이 없다면 널 포기하마. 이틀동안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어 술을 마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너무 많이 들었구나. 너와 헤어지게 된다면 오래동안 힘들겠지. 이게 마지막이 될지.”

  절실한 사랑의 감정이 넘쳐나는 내용이다. 박 씨와의 동거행적을 살펴보면 이 편지의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을까. 

 

  신은 7월5일 서울 영등포역 부근 사창가에서 윤락녀였던 박 씨를 ‘긴밤’(하룻밤을 같이 지내는 것)비용 40만원을 지불하고 데리고 나왔다.

  박 씨는 다음날 사창가로 돌아가지 않았고 신과 7월8일까지 영등포에서 여관을 옮겨다니며 지냈다.

  7월9일 신은 박 씨를 내세워 서울 서초구 양재동 Y빌라 302호를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15만원을 주고 계약했다. 신이 이집에 소파 식탁 등 가구와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들여 놓았던 것으로 미뤄 장기간 박 씨와 동거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박 씨는 이집에서 신과 이틀간 지낸 뒤 7월11일경 고향(충청도)에 갔다.신이 박 씨에게 주민등록증을 가져 오라고 시켰던 것.

  당시 박 씨는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경찰은 신분을 드러낼 수 없는 신이 박 씨를 통해 신분확인이 필요한 일을 하려 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외도피에 필요한 서류구비나 환전 등에 박 씨를 이용할 계획이 아니었겠냐는 것. 

  7월13일 새벽 양재동 집으로 돌아온 박 씨와 신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고 신이 집을 나가 버렸다. 박 씨는 고향에서 남자친구를 만나고 오느라 늦었고 신이 이를 따지고 들면서 박   씨의 윤락전력을 들춰내 싸움이 커진 것. 박 씨도 곧 집을 나가 이틀동안 친구들과 지냈다.

  경찰은 15일 집에 돌아온 신이 박 씨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고 편지를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 씨는 경찰조사에서 “돈을 줄 수 있다고 해서 같이 살기로 했던 것 뿐이다. 신창원인줄은 알았지만 그게 나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영등포에서 고생하지 않더라도 돈을 고향에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동거를 시작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고향으로 찾아간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 새끼 애인이 아니었단 말이야.”

  박 씨 외에 동거녀 누구도 이런 식으로 신과의 관계를 언급한 적은 없었다.

  경찰은 “박 씨가 이전 4명의 동거녀들과는 달리 조사를 받는 도중 신에 대해 좋은 감정이나 하물며 연민의 정 같은 것을 내비치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신이 남긴 수기의 작위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신이 단 며칠간 함께 지냈을 뿐인 윤락녀에게, 그것도 자신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는 여자에게 편지에 담겨 있는 것과 같은 감정을 실제 품었겠냐고 반문한다. 박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꾸며서 이 정도의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신이 남긴 수기의 신빙성과 의도를 의심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전 동거녀들과의 관계도 모두 계산된 도피의 수단에 불과했고 필요에 의해 애정을 가장했을까? 신이 도피의 수단으로 여성을 이용하는 모습은 행적 곳곳에서 발견된다.

  5월10일 새벽 경북 성주군 성주읍 신의 사글세방. 신은 옆에서 잠자던 동거녀 심 씨를 갑자기 깨우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잠을 못자고 뒤척이던 신이 “누가 밖에서 맴돌고 있다. 도망치자”며 짐을 차에 실었다.

  하지만 주위를 샅샅이 둘러본 심씨가 “아무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설득하자, 신은 다시 한번 집 주변을 돌아본 뒤 차에서 짐을 내렸다.

  신이 성주군 초전면 대왕리 W다방 여종업원 방 씨에게 처음 접근한 것은 바로 이 일이 있은지 몇시간이 지난 뒤다. 신은 이날 티켓을 끊고 방씨를 차에 태워 성주군 일대를 돌아다녔다. 이날부터 같은 달 18일까지 신은 방씨를 거의 매일 만나 함께 살자고 요구했다. 

  

  7월의 행적도 비슷하다. 경찰조사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빌라에서 동거녀 박 씨와 싸운 신은 곧 다른 여자를 찾아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14일 또는 15일 신은 서울 송파구 오금공원에서 500여m 가량 떨어진 한 다방의 여종업원에게 두 차례 접근했다는 것. 

  신은 이날 이 다방을 들렀다 나와 오금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한 여종업원을 지정해 차 배달을 주문했다. 여종업원에게 “빚진 돈이 얼마냐”고 물은 신은 500만 원이라는 대답을 듣고 “그 돈을 갚아줄테니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여종업원은 경찰조사에서 “당시 애인도 있었고 돈으로 사람을 살려는 느낌이 들어 제의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신은 이처럼 한 동거녀와의 행적이 들켰다는 느낌을 받거나 관계가 틀어졌다 싶으면 주저없이 다른 동거녀를 찾아 나섰다.

  신의 행적을 쫓고 있는 한 수사관은 “정상적인 부부로 가장해 동거하면서 의심의 눈길을 피하는 것이 도피하는 범죄자들의 첫번째 원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신이 2달가량 두 여자를 동시에 만났던 행적을 살펴보면 여자가 단순한 도피의 수단이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신은 1997년 10월16일 7개월 가량 함께 살았던 전 씨와 동거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이날 오전 5시반경 경찰이 이들이 동거하던 충남 천안시 목천면 H빌라 앞에서 신을 덮쳤던 것.

  신은 가스탄알 2방을 눈밑과 뒷머리에 맞은채 도주했다. 그 열흘 뒤 신은 경기 평택시 신장1동 J다방 여종업원 강씨를 만났고 11월1일부터 동거했다.

  11월5일 신은 전 씨로부터 옷가지 등 짐을 받아갔다.이날 전 씨에게 강 씨와 동거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11월7일 전 씨는 맥주를 마신 뒤 차를 평택시로 몰고 갔다. 다른 여자에게 ‘내 남자’를 뺏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신을 찾아 나섰던 것.

  한나절만에야 신의 차를 발견한 전 씨는 다음날까지 기다려 신과 강 씨를 만나 삼자대면을 했다.

  전 씨는 “강 씨가 술에 취해 저에게 행패를 부리더군요. 너무 어리고 철이 없어 신을 보호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됐어요. ‘오빠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덤비더군요.경찰에 노출된 내가 더 이상 신과 살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그대로 물러났어요.” 

  신은 이날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았고 일주일째 되던 날 전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는 너무 어리다. 경찰에 들통나면 ○○이만 불쌍해 진다’며 다시 같이 살자고 말하더군요.”

   이날 신과 전 씨는 송탄에서 집을 구하러 다니던 중 강씨가 일하던 J다방 마담의 눈에 띄었다. 마담은 즉각 이 사실을 강 씨에게 알렸다. 잠시 뒤 신은 강 씨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당시 상황에 대해 두 동거녀는 전혀 다르게 설명했다. 

  강 씨 : “오빠에게 다 알고 있으니 끝내자고 말했죠. 하지만 오빠가 정말로 사랑한다며 같이 살자고 매달렸어요. 헤어질 결심을 했었지만 혼인신고 하고 애를 낳으면 정말 내 남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이상 오빠를 괴롭히지 않았어요.” 

  전 씨 : “신은 강 씨의 전화를 받고 ‘○○가 당장 집에 오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했다’며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갔어요. 강 씨가 울면서 협박을 했던 거예요.” 

  이날 이후 신은 강 씨와 지내긴 했지만 전 씨와 적어도 3차례 이상 만났다. 경찰조사 결과 신은 12월28일 전 씨와 전 씨의 가족들과 함께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 놀러갔다.

  두 여자 사이에서 고민했던 신. 그게 화근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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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수에게 끌린 여자들

  ***이 글은 팩션이 아닙니다. 팩션의 모티브가 될 수 있는 넌픽션입니다. 팩션을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위한 준비작업입니다.

      이 글은 제가 1998년 전국을 돌아다니며 탈옥수 신창원의 행적을 추적한 뒤 쓴 4만여 자의 보고서를 정리한 기사입니다. 신동아에도 게재했던 글을 재정리했습니다. 1주일에 한, 두편 정도씩 연재할 계획입니다.***

 

 4월27일 아침.

  동거녀 심 씨는 신의 갤로퍼 승용차에서 잠을 깼다.전날 만난지 채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같이 살기로 했던 신과 심씨는 차에서 밤을 보냈다.

  “여관에 가자고 했더니 ‘얘기나 하자’며 한적한 곳으로 차를 몰았어요.다리 밑으로 기억해요.나는 너무 피곤해서 곧 잠이 들었는데.신은 밤을 샜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됐더군요.” 

  이날 심씨는 신이 모는 차를 타고 대구 어머니와 친구집에 가서 전날 신으로부터 받은 200만 원으로 빌린 돈을 갚았다.

  이날 신은 심씨에게 대구의 여러 폭력조직 이름을 열거하며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이 말했고 조양은과 조세형의 범죄행각에 대해 ‘신화’나 되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신창원이도 알겠네’라고 물었더니 신이 ‘내가 신창원인데’라고 대답했어요.놀란 표정을 지었더니 신이 웃으면서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말했죠.” 

  심씨는 그때까지 신의 얼굴을 알지 못했고 그저 신이 기소중지자 이거나 전과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은 이날도 차에서 잠을 자기를 원했다.

  “경찰과 부딪치기 싫어서 그래.차에서 자자.”

  심씨는 “성주는 원래 경찰간부들도 많이 놀러와 다방 여자들과 즐기는 곳이기 때문에 검문이 없다”며 신을 설득해 성주군 월양면 M여관으로 갔다.

  신은 여관앞에서 수박을 샀고 ‘칼도 사야지’라고 말하는 심씨에게 차에서 회칼(사시미 칼)을 꺼내 보여줬다.

  “나중에 경찰한테 들은 말인데 신이 여관에 자연스럽게 칼을 사들고 들어가기 위해 수박을 산 것이라고 하더군요.” 

  신은 이날 문신을 숨기기 위해 윗옷은 벗지 않은 채 심씨와 관계를 가졌다.

  다음날 성주읍에 사글세방을 구하면서 신은 심씨에게 “세달만 성주에서 살고 집을 대구로 옮기자”며 “이사하면 가게를 차려주겠다”고  약속했다.

  TV와 탁자를 구입해 방에 들여놓은 뒤 신은 심씨에게 휴대전화를 사줬다.

  심씨는 이날 신이 탈옥수라는 사실을 알았다.사글세방에 딸린 부엌에서 몸을 씻고 있는 신의 모습을 심씨가 봤던 것.등에 새긴 문신을 본 심씨는 ‘신창원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겁나서 방에서 울고 있는데 신이 들어와 솔직하게 털어놓더라구요.어린 시절 어머니 없이 어렵게 살던 얘기부터 시작해 탈옥한 동기 등을 말하며 같이 살자고 매달렸어요.불쌍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이 심 씨를 만나면서 ‘양다리’를 걸친 동거녀 방모 (27)씨는 “신이 도망칠때까지 신이 탈옥수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5월12일 저녁부터 14일까지 성주읍의 한 여관에서 지내며 관계를 가질때도 신은 윗옷을 입고 있었고 어두워 다리의 문신을 보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신이 방 씨와 있다가 경찰에 쫓겨 도망치는 과정과 경찰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방씨가 적어도 신의 존재를 짐작은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14일 오전 여관을 나서 방씨를 성주군 초전면 다방에 데려다 주며 신은 이틀간 티켓비용과 화대로 100만 원권 수표 1장을 내밀었다.

  방씨는 “나는 몸파는 여자가 아니다.내가 좋아서 잤다”고 수표를 거절했고 신은 곧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와 현금 50만 원을 준뒤 휴대전화를 사라며 30만원을 더 내밀었다.

  이날 신은 방씨가 일하는 다방에서 멀지 않은 성주읍에서 동거하던 심씨와 서울에 갔다. 다음날 오후 신은 다시 방씨를 찾아왔다.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서 돌아와 심씨를 김제에 내려준 직후였다.

  이날 박씨는 갑자기 배가 아파 신의 차를 타고 왜관의 한 개인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병명은 급성방광염.링겔주사를 맞고 병원 근처 여관에서 쉬었지만 통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신은 “버텨보겠다”는 방씨를 왜관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로 옮겼다.치료를 받은 뒤 둘은 성주읍의 한 여관에서 밤을 보냈다.

  16일 정오 경 방 씨를 휴게소에 데려다 준 신은 부산에 일이 있다며 간 뒤 방씨에게 3차례나 전화해 병세를 체크했다.

  그 다음날 신은 방씨를 다시 만났다.방씨가 “이번엔 윗배가 더부룩하다”고 말하자 신은 약국에 들러 위장약 ‘잔탁’을 사줬다.신의 교도소 동기 유모(37)씨와 이모(43)씨에 따르면 ‘잔탁’은 신이 복역 중 위장병이 심하게 걸려 담배를 다른 재소자의 영치금과 맞바꾼 뒤 구입해 복용하던 약.방씨는 이날 신으로부터 25만 원을 받았다.

  

  이날 밤 방씨는 같이 다방에서 일하던 여종업원 유모(37)씨와 술을 마셨다.

  “그날 혼자 소주를 7병이나 마셨어요.언니(유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나요.” 

  다음날 오전 8시경 신은 다방 뒷방에서 자고 있던 방씨를 찾아왔다.이 때 신을 본 유씨는 초전파출소에 신고했고 한참이 지나도 경찰이 오지 않자 다시 성주경찰서에 신고했다.

  신은 방 씨가 화장을 하는 동안 다방 앞 갤로퍼 승용차에서 방씨를 기다렸다.오전 8시반경 경찰이 도착했고 시동을 걸고 방씨를 기다리던 신은 그대로 도망갔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유씨는 “같은 다방 종업원이 신창원과 닮은 사람을 사귀며 괴로와 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방씨는 술을 마시다 취해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신창원인것 같다”는 고민을 유씨에게 털어놨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조사결과 올 7월초 서울 서초구 양재동 Y빌라에서 신과 동거한 윤락녀 박모(21)씨도 동거하는 동안 신의 존재를 알았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박씨는 신이 7월16일 강남구 포이동에서 경찰의 검문을 받다 도망친 뒤에도 신과 같이 지냈다는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왜 이들 동거녀 5명은 신의 존재를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던 것일까.다방 여종업원이거나 윤락녀 라는 이들의 직업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돈을 벌기 위해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직업에 뛰어든 이들로서는 항상 뭉칫돈을 가지고 다니며 ‘턱턱’ 내놓는 신에게 끌렸을 수 있다.

  또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동류의식에 젖어 신을 보호하려 했을 수 있다.

  신을 1년 가까이 쫓아온 한 수사관은 “동거녀들 뿐만 아니라 탐문수사를 하며 만난 다방 여종업원이나 윤락녀 대부분은 ‘내가 왜 신고를 하느냐’고 반문한다”며 “돈 잘쓰고 자기들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경찰에 넘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심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거녀들은 하나같이 신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렸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동거녀 전씨는 “신이 차를 타고 가다 무거운 짐을 든 노인이나 지체부자유자가 있으면 이들을 태워 목적지 까지 데려다 주곤 했다”며 “신은 정이 많고 착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nsp; 경북 성주에서 동거했던 방씨는 “신은 조용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속을 털어놨다.

  동거녀 심씨의  경우 처음에 신을 안좋게 봤다.

  “다방에 왔을 때 눈빛이 무서웠어요.인상도 좋아 보이지 않아 옆에 앉아만 있었지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 인상은 하루도 안돼 ‘백팔십도’ 바뀐다.

  "처음엔 무서워 보였는데 하룻동안 차를 함께 타고 다니며 지냈더니 나쁜 사람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차분하고 매너도 깨끗했어요.” 

  올 7월 동거했던 박씨를 제외하곤 공통적으로 신이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동거녀 강씨는 지금도 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빠(신을 지칭)가 어떤 사람이었든 그것이 나에겐 중요하지 않아요.나는 지금도 오빠를 사랑하고 좋아해요.오빠 생각에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없어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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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수의 여자들

  ***이 글은 팩션이 아닙니다. 팩션의 모티브가 될 수 있는 넌픽션입니다. 팩션을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위한 준비작업입니다.

       이 글은 제가 1998년 전국을 돌아다니며 탈옥수 신창원의 행적을 추적한 뒤 쓴 4만여 자의 보고서를 정리한 기사입니다. 신동아 1998년 12월호에 게재됐던 기사를 재정리했습니다. 1주일에 한 편 정도씩 연재할 계획입니다.***

 

  

 “기분이 그만인데.고속도로를 타는 건 6개월 만이야.” 

  1998년 5월14일 오전.신창원은 동거녀 심모(32·가명)씨와 갤로퍼승용차를 타고 서울을 향해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신은 불안해 하는 심씨는 아랑곳 없이 스피드를 즐겼다.

  차는 기흥인터체인지에서 국도로 접어들어 수원을 거쳐 서울로 들어갔다.검문은 단 한차례도 받지 않았다. 신은 서초구 반포동으로 차를 몰았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앞을 거쳐 서초구 서초동 양재동,강남구 개포동 등 아파트 단지 주변을 돌았다.

  “저건 45평이고 저쪽 것은 60평짜리야.” 

  신은 보이는 아파트마다 평수를 일일이 대며 주저하거나 생각하는 기색 없이 차선을 바꾸고 길을 골랐다. 

  신은 한강을 건너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심씨를 내려줬다.이태원엔 심씨의 친구집이 있었다.

  “태릉쪽에 아는 형을 만나러 갈거야.물 건너 가는데 도와주기로 했어.” 

  다음날 새벽 3시경.심씨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신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강남에 있는 병원 주차장인데 오후 2시에 마포가든호텔(홀리데이인서울호텔)에서 만나자.” 

  심씨가 오후 2시 반경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신은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신은 차를 강남으로 몰았고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해 유유히 서울톨게이트를 빠져 나갔다.

  “서울에 다시는 못 오겠는데.순찰이 심해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해외도피준비에 관해서는 누굴 만났는지,얼마나 일이 진행됐는지 일절 말이 없었다.심씨가 신을 처음 만난지 20일만의 일이었다.

  4월26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대왕리 S다방. 양복을 입은 깔끔한 옷차림의 신이 들어섰다.신은 차를 마시며 한시간 가량 다방에 앉아 있다 나간 뒤 한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왔다.티켓을 끊어 심씨를 데리고 나갔다.

  

  이는 신이 동거할 여자를 고르는 전형적인 방식이다.신이 1997년 3월부터 동거했던 전모(31)씨,또 같은 해 10월26일부터 12월30일까지 함께 살았던 강모(22) 씨에게도 이렇게 접근했다. 

  심씨와 동거하면서 동시에 5월10일부터 일주일간 거의 매일같이 만났던 방모(27·가명) 씨도 이런 식으로 처음 만났다.

  이들 심씨 전씨 강씨 방씨 모두 속칭 ‘티켓다방’의 여종업원이었다.신은 매번 다방에 찾아가 대상을 물색한 뒤 밖으로 나가 전화로 종업원을 지정해 차 배달을 시키거나 다시 찾아가 티켓을 끊어 데리고 나왔다.

  신창원 수사만을 전담하는 한 경찰관계자는 “신이 동거했던 여자들이 일했던 다방 주변을 탐문수사 해 보면 항상 인근 다방에도 신이 다녀갔던 흔적이 나온다”고 밝혔다.

  가장 마음 편하게 기댈 수 있고 탈옥수의 신분을 밝혀도 신고하지 않을 여자를 선택하기 위해 신은 여러 다방의 많은 종업원 중 신중하게 한명을 골라낸다는 설명.

  1999년 7월5일부터 열흘 가까이 서울 영등포의 한 여관과 서초구 양재동 Y빌라에서 동거했던 윤락녀 박모 씨(21)도 신과 서너 차례 ‘긴 밤’을 보낸 뒤에야 ‘낙점’을 받았다.박 씨는 서울 영등포 사창가에서 몸을 팔던 중 신과 만났다.

 

  신은 심 씨를 다방에서 데리고 나와 갤로퍼 승용차에 태운 뒤 다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주읍 선석사로 데리고 갔다.자신을 대구에서 체육관을 경영하는 ‘김진형’이라고 밝힌 뒤 “성주에 사는 친구한테 꿔준 돈을 받으로 왔다”고 말했다.여기까지는 처음 친해지기 위해 사실을 밝히지 않고 접근하는 단계.

  선석사에서 산책을 즐긴 뒤 차로 성주군 일대 이곳 저곳을 드라이브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내 별명이 괴물이었는데 말이야.기(氣)를 이용하면 인간이 못할 일이 없어.벽돌 20, 30장 깨는 것은 문제 없지.높은 담을 뛰어 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야.”

  심씨는 “허무맹랑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재미가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돈이 등장하는 단계.심 씨 등 동거녀 5명은 모두 궁핍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방 또는 사창가로 뛰어든 ‘직업여성’.

  이날 오후 8시경 신은 심 씨에게 “다방에 진 빚이 얼마냐”고 물었다.심씨는 실제 다방에 진 빚은 없었지만 “200만원인데 당신이 갚아줄 수 있느냐”고 장난스레 되물었다. 

  “다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잠시 내려 풀숲에서 소변을 보고 돌아오는데 신이 돈을 세고 있었어요.정확히 1만 원짜리 200장이었죠.” 

  신은 “이 돈으로 빚을 갚고 나와 함께 살자”고 제의했다.심 씨는 대구의 어머니와 친구에게 진 빚을 갚을 요량으로 이를 승낙했다.

  이들은 만난지 이틀 만에 성주읍내에 월세 9만 원짜리 방을 구했고 신은 10달치 월세 90만원을 한번에 지불했다.

  신은 여자에게 빚을 갚아주거나 돈을 과시한 뒤 주저하지 않고 함께 살 것을 제의한다.성격이 급해서라기 보다 사람의 속성을 궤뚫어 본뒤 나름대로 자신이 붙었을 때 밀어부치는 식이다.

  

  신은 1997년 10월26일 동거녀 강모(22) 씨를 처음 만났다.당시 강 씨는 경기 평택시 신장1동 J다방 여종업원이었다.

  다방을 찾아와 건축업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신은 한시간 뒤 밖으로 나가 강씨를 지목해 차배달을 시켰다.신은 다방 영업이 끝나는 시간까지 계산해 티켓을 끊고 강씨와 쇼핑을 했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옷을 발견할때마다 사주겠다고 하는 거예요.미안해서 거절했어요.그날 3만 원짜리 향수를 선물받았어요.” 

  신은 이날 강씨를 그랜져 승용차로 집까지 바래다 줬다.

  다음날 오전 10시경 강씨는 다방으로 출근하러 집을 나서자마자 신을 만났다.신이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신은 ‘올타임 티켓’(하루를 같이 지내는 것)을 끊겠다며 강씨의 동의를 구한뒤 대뜸 “우리 같이 사는게 어때”라고 말했다.

  “부유해 보이기도 했고 이정도 남자면 같이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에 제의를 받아 들였어요.” 

  신은 10월31일과 11월1일 두 차례에 걸쳐 강씨에게 1만 원권 뭉치돈 500만 원씩을 건넸다.이 돈으로 이들은 평택시 신장1동 N빌라 302호를(20평)를 보증금 100만 원 월세 40만 원에 계약했다.또 TV 냉장고 등 살림을 사 들여놨다.

  방모(27) 씨에게 접근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았다.심 씨와 동거중이던 1998년 5월10일.

  신은 이날 오전 9시 반경 경북 성주군 초전면 대장리 W휴게소(다방)에 츄리닝 차림으로 찾아와 대구에서 체육관을 운영한다며 가명으로 ‘김형진’이라는 이름을 .

  30분 뒤 다방을 떠났던 신은 1시간 가량 지나 다시 다방으로 돌아왔다.티켓을 끊었고 방씨를 데리고 동거녀 심씨와 처음 만나 함께 들렀던 절 ‘선석사’로 갔다.

  성주읍에서 왜관으로 가는 길 중간 외진 곳에 있는 횟집에서 점심을 먹고 대구방향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한 저수지에서 낚시를 했다.신은 갤로퍼 승용차 뒤에 낚시대를 싣고 다녔다.

  신은 8시경 박씨를 다방에 데려다 주며 ‘올타임 티켓’ 비용으로 25만원을 줬다.다음날 오후 1시경 신은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으로 다시 박씨를 찾아왔다.승용차로 성주군 일대를 돌아다닌 뒤 이날 저녁 신은 박씨에게 “함께 지내고 싶다.여관에 가자”고 제의했다. 

  박 씨는 이를 거절했고 신은 “내가 다시 너를 찾아 오는 날은 너를 내 여자로 만드는 날”이라며 25만 원을 박 씨에게 줬다.다음 날 신은 다시 박씨를 찾아왔고 이날부터 이틀 동안 둘은 성주읍의 한 여관에서 지냈다.

  “함께 살자고 하더군요.남자에게 매여 살기 싫어 거절했더니 그는 ‘네가 겉으로는 차가와 보여도 한번 마음을 주면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는 여자라는 걸 안다’며 매달렸어요.” 

  신은 이런 식으로 돈을 동원해 여자들에게 접근하지만 일단 상대가 마음을 열 준비가 돼 있다고 느끼면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동거녀들은 하나같이 신이 탈옥수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신이 1997년 1월20일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뒤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처음 만났던 여인은 전모(31) 씨.전 씨는 당시 충남 천안시 원성동 D다방에서 일하고 있었다.신은 이 다방에 여러 차례 들러 전 씨와 친해졌고, 전 씨는 연락처까지 알려줬다.

  전 씨에겐 돈을 사용해 접근하지 않았다.이 때는 신이 탈옥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 넉넉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여러 번 자주 접촉해 정을 쌓았다.

  같은 해 2월19일 신은 천안시 다가동 김모(33) 씨의 집에 침입해 김씨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과 엑셀승용차를 훔쳤다.이 때부터 동거녀 강 씨와 새로 살림을 차릴 때까지 신은 김씨의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전씨에겐 지난해 3월 초 충남 온양시 M여관에서 동거를 시작한 직후 본명을 밝히고 탈옥한 사실을 털어놨다.10년 전 결혼하자마자 이혼한 뒤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었던 전 씨는 탈옥한 신 씨의 처지가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느껴졌다. 

 “따뜻하고 조용한 사람이에요.교도소에서 도망쳤다는 말을 들었지만 무섭지 않았어요.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는 내 처지를 딱하게 여겼고 정말로 내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잘 돌봐줬어요.” 

  신은 전 씨에게 탈옥한 동기와 교도소의 재소자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에 대해서도 상세히 털어놨다.

 

  동거녀 강 씨도 신을 만난지 열흘도 안돼 신이 탈옥수라는 사실을 알았다.

  강 씨는 “우리가 살던 집에 경찰이 들이닥쳐 오빠(신을 지칭)가 도망가고 난 뒤에야 오빠가 탈옥수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거녀 전 씨는 이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지난해 11월5일 신이 저에게 전화해 옷가지와 패물 등을 갖다 달라고 부탁했어요.천안의 한 여관 앞에서 만났는데 신이 타고 온 차에는 강씨도 있었어요.신이 ‘저 여자에게 내 과거를 다 털어놨다.앞으로 저 여자와 지내기로 했다’고 말했어요.”

  신이 1999년 1월11일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산 밑에서 경찰과 격투를 벌이고 달아나면서 남기고 간 강씨에게 보낸 편지형식의 수기 1월1일자도 이를 뒷받침한다.

  “빨리 네가 (경찰로부터) 풀려나기를 빌고 또 빌을께.나같은 놈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지만.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고 했으면 괜찮을텐데 왜 알면서도 숨겨줬다고 했어.이 바보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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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 글은 팩션이 아닙니다. 팩션의 모티브가 될 수 있는 넌픽션입니다. 팩션을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위한 준비작업입니다.

     이 글은 제가 1998년 전국을 돌아다니며 탈옥수 신창원의 행적을 추적한 뒤 쓴 4만여 자의 보고서를 정리한 기사입니다. 신동아 1998년 12월호에 게재됐던 기사를 재정리했습니다. 1주일에 한 편 정도씩 연재할 계획입니다.***

                                                            

  신창원(31)이 부산교도소를 탈옥한지 어언 2년.신은 그간 경찰과 6차례 맞닥뜨렸으나 매번 도주에 성공했다. 1998년 7월16일을 마지막으로 신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하다.이날 새벽 신은 서울 강남구 포이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불심검문을 하던 경찰과 격투를 벌인 뒤 맨발로 달아났다.

  그 뒤 7만 경찰은 밤낮없이 신을 쫓고 있지만 수사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현상금이 5000만 원으로 뛰었지만 신빙성 있는 제보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신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걸까.6번째 동거를 시작했을까.아니면 이미 해외로 빠져 나갔을까.혹 도피생활에 지쳐 자수를 고려하고 있진 않을까.

  기자는 신이 포이동에 나타나기 보름여 전부터 신의 행적을 추적했다.전북 정읍시에 사는 신의 누나를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충남 천안시 경기 평택시 경북 김천시 등에 살고 있는 동거녀 5명을 모두 만났다.그 중간 신과 교도소에서 같이 복역했던 사람들과 신을 쫓고 있는 경찰, 또 신의 고향 친구들을 만났다.또 신이 도움을 줬던 사회복지시설과 소년소녀가장들의 집을 방문했다.신의 행적을 추적한지 5달 째.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신의 과거행적을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에서 제기한 의문에 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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